특별편 : 사자소굴에 초대된 토끼.
정꾸
윤기
너탄
저는 토끼에요. 저희엄마는요, 제가본 토끼들 중에서 제일 예쁘셨어요. 아부지도 진짜 진짜 잘생겼었어요. 저희 가족은 단란했고, 또 화목했구요.. 저의 언니오빠들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커갔어요.
단지,저만 빼고요.
무슨일인지 저는 일년이 지나도, 또 이년이 지나도 수인으로 발현되지 못했어요.. 걸음마를 떼고, 귀여운 앞니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은 정말정말 기뻐하셨지만,
저는 그런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나도 아장아장 걸어가 엄마품에 포옥 안기고 싶어서, 사랑받고싶어서.
앞니가 난 저를 꼬옥 끌어안고 부둥부둥 해주는 부모님의 꿈을 꾸면서 매일 잠들었어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그 품에 안길 수 있었는데.
조금만... 그러면 되는데..
'경종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중에, 간혹 수인으로 발현되지 못하는 토끼들도 있다더라, 경종으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발현도 못하는 새끼까지 거둬야해?'
저는 그렇게 버려졌어요.
수많은 종들의 수인들이 걸어다니는 길거리위에,
'발현되지 못한 새끼토끼입니다. 부디 잘 키워주세요.'
반듯하지 못한 글씨로 새겨진 상자에, 그렇게 버려졌어요.
눈이 새뿌옇게 상자 위를 덮을만큼,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그렇게 추운 상자 속에서, 저는 팔도 생겨났구요..
머리카락도 만져졌구요.. 그렇게 사람이 되었어요.
"어머, 가여워라..."
"엉마! 뭔데에?!"
"윤기야, 토끼야 안녕 인사해봐."
그렇게 만나게된 윤기 가족이에요.
상자위에 쌓인 눈을, 따듯한 맨손으로 거둬주시고
그렇게 처음으로 발현된 저의 작은 몸을 안아주신게, 사자엄마에요.
-
"아가야, 이름이 뭐야?"
"탄소..."
"응?"
"탄소...."
성장이 한참이나 어려, 앞니만 겨우 혀로 만져지는 저에게 제이름을 발음하기란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도 엄마는 따듯하게 안아줬어요.
"야! 우리엄마거든!! 우리지베서 나가아!!!!"
유독 윤기는 그러질 못했지만, 나는 그래도 윤기가 너무너무 좋았어요.
"융기야... 사자옴마는 융기꺼야, 탄소엄마는 따로있더.."
어릴때 매일매일 했던말이에요, 그래도 한참 사랑받고 어리광부릴 나이에, 작고 약한 토끼에게 엄마를 뺐기는 기분에 화가나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어요.
"민윤기!!! 애기 귀 잡아당기지 말랬지!!"
"얘가 막, 어, 엄마침대에 눕따나!!! 그래서 혼내준거거든!!!"
허구언날 축 처진 제 귀를 잡아댕겨 귀가 찢어지는가 하면,
"야! 이고 장갑 오디서난고야!! 엄마가 사조찌? 내가 다아라~ 빨리죠!!"
유난히 손이 차가운탓에 엄마가 선물해준 분홍색 벙어리 장갑도 뺐겼었어요.
저는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었고, 동시에 깨달았어요.
이곳이 작고 쓸모없는 토끼가 있을곳이 아니라는걸.
"엄마, 토끼는 산에서 살고싶어요..."
산에는 , 저처럼 버려진 토끼들이 저를 반겨줄 테니까요.
-
"생일 축하한다 민윤기!!!"
아버지의 굵직한 목소리를 시작으로.
윤기는 작은 입술을 귀엽게 오므려 케이크위에 올려진 8개의 촛불을 하나씩 꺼갔어요. 기분이 좋은지 머리위에 차마 숨기지 못한 귀가 오늘따라 쫑긋 하고 서올랐답니다.
"토끼느은?"
막 촛불 3개가 위태위태하게 케잌 위에서 춤을 춰대는데,
윤기가 불을 끄다말곤 주위를 둘러보며 이야기했어요.
평소엔 눈앞에서 보이면 죽일듯이 달려드는 녀석이, 탄소가 사라지고 난 후에 찾아대니 부모님은 맞추기라도 한듯 입을 꾹 다물었어요.
"건방진 토끼가! 사자님 생신이라시는데!!"
윤기가 화난 표정을 지으면서 콧김을 뿜어대다가, 토끼가 머물던 작은 방으로 뛰어들어갔어요.
"야 김탄소! 사자님이 촛불을끄신다는데!! 오디가써어!!"
윤기는 그제서야, 토끼가 마지막으로 사자 가족에게 남긴 그림한장을 발견해요.
가운데에서 귀엽게 촛불을 끄는 윤기의 양옆으로 박수를치는 엄마와 아빠.
그림안 어디에도, 작고 쓸모없는 토끼는 보이지 않았어요.
"엄마아.... 토끼가 엄떠져떠...."
"응... 토끼 이제 보내주자 윤기야.."
"왜에...? 융기가 맨날 귀 잡아땡겨서...? 아니면 융기가... 맨날 못살게 구러서? 흐윽... 흑..."
"아니야, 토끼가 가고싶다고했어."
"흐아아앙 안니야, 토끼 데려와아!!! 와서 촛불같이 끄라구 해에!!!"
있을때엔 그렇게 못잡아 먹어 안달이던 아기사자가, 울고불고 서러움에 난리를 쳐대니, 엄마아빠는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에 없었지요.
날이밝자마자 추운날씨에 꽁꽁 몸을 싸맨 사자가족이, 토끼를보내줬던 낮은 산앞에 서, 숨을 고르고 있었어요.
불시에 혼현을 드러낸 아기사자 윤기가, 코를 킁킁대며 산속으로 뛰어들었지요.
"윤기야, 토끼는 겁이많으니까 잘 달래줘야해요."
부모님은 그런 윤기의 뒤를 쫓아 부지런히 탄소를 찾아 헤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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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야..."
산 중턱, 가까운 마을사람이 버려진 토끼 수인들을 위해 가져다 놓은 당근하나를 품에안고 작은 바위 뒤에 주저앉아 추위에 잘 벌어지지 않는 입을 열려던 때에,
토끼는 그렇게도 그립던 윤기를 마주했어요.
귀를 잡아댕겨도, 제물건을 모조리 빼았고 괴롭혀도.
토끼는 제 오빠인 윤기가 정말 좋았거든요.
"토끼야.... 흐윽.... 내가아... 너 장갑, 이거랑 장난깜 다 주께에... 융기지베가자..."
윤기는 천천히 탄소에게 다가와, 작은손에 분홍 벙어리장갑을 끼워줬어요.
"토끼는 애기라서, 아직 산은 위허매..."
추위에 발발떠는 가여운 아가를 제 품에 꼬옥 안고, 그렇게 한참을 토닥였어요.
결국 울다 지쳐 잠든 두마리의 새끼를 안고 내려온건, 사자부부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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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밤
"빨리 여기 토끼 그려어!!!! 흐에엥!!! 빤니!!!"
토끼가 또 사라져버릴까봐, 제 품에 꼬옥 안고는
탄소가 생일선물로 그려준 사자가족에 토끼를 그려넣으라 울부짖는 아기사자 한마리가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