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은 뱀파이어로 변화된지 한달도 채 안된 신생 뱀파이어였다. 신생 뱀파이어는 말 그대로 뱀파이어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을 지칭했는데, 인간으로 치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와 같았다. 순백에 가까운 그들에게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본능적인 욕구 뿐이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사랑 받길 원하며, 마치 아이처럼 무엇인가를 갈구하였다. 그렇기에 신생 뱀파이어는 그들을 돌봐줄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대부분 성숙한 뱀파이어가 신생 뱀파이어를 맡아 돌보았고 그 돌봄에는 교육과 훈육이 꼭 포함되었다. 신생 뱀파이어는 무엇이든 본능에 따라 행동하기에 자제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해칠 위험이 컸다. 예컨데 성숙한 뱀파이어는 흡혈의 대상을 사냥하는 솜씨도 뛰어났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흡혈을 언제 중단해야 할지 아는 것과, 흡혈을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자제력이었다. 뱀파이어에게 자제력이 중요시 된 이유는 그들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인간은 뱀파이어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으나, 시간이 흘러 인간은 기술을 발명하고 지식을 습득하며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이 발전하게 된 원천은 그들 본성인 두려움과 이기심이었다. 환경에 대한 막연하고도 커다란 두려움과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은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방패이자 창으로 작용하였다. 인간이 지식과 힘을 가지게 되자, 뱀파이어는 더이상 제멋대로 흡혈을 할 수 없었다. 인간이 뱀파이어의 존재를 알아채고, 그들을 파괴할 수 있는 방법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생존을 위협당하게 된 뱀파이어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으로 그들을 방어했다. 자신들의 존재를 설화로 만들고, 상상 속의 존재로 살아갔다. 설화가 진실이 되는 증거를 남겨서는 안됬기 때문에, 흡혈로서의 살인은 금기가 되었다. 종종 교육받지 못한 신생 뱀파이어가 본능에 취해 흡혈을 통한 대량살상을 저지르곤 하였는데, 이는 뱀파이어의 엄격한 규약을 통해 처벌받았다. 처벌의 내용은 단순하고도 완벽했는데, 존재의 물리적, 정신적인 파괴를 의미했다. 사형. 그것이 본능에 따른 파괴적 흡혈에 대가였다. 따라서 성숙한 뱀파이어들은 신생 뱀파이어들에게 흡혈에대한 자제력을 교육시켰다. 자제력이란 곧 뱀파이어의 성숙을 의미하기도 했거니와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였기 때문이다.
신생 뱀파이어인 지민은 매순간 갈증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갈증을 참으려 노력하기에는 너무 어려서 자주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흡혈하였다. 뱀파이어의 뿌리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을 뱀파이어로 변화시킴으로서 종족을 늘렸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신생 뱀파이어를 만들어 낸 뱀파이어가 그들의 어머니 또는 아버지의 역할, 즉 성숙한 뱀파이어의 역할을 맡게 되는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지민은 어떤 이유에선지 성숙한 뱀파이어 없이 숲속에서 홀로 헤메고 있었다. 그런 지민을 제 저택으로 데려온 것이 남준이었다. 남준은 뱀파이어들이 모여있는 저택에서의 가장 성숙한 뱀파이어였다. 남준이 있는 저택에는 다섯의 뱀파이어가 함께 모여있었다. 수장급인 남준과 성숙한 뱀파이어인 윤기와 호석, 그리고 아직 미성숙한 정국과 태형이 함께였다. 남준은 지민이 그동안 뱀파이어가 받아야 할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을 염려하였다. 교육이 늦어지면 유아기의 행동이 고착화 될 수 있었기에 지민이 다른 아이들보다 강화된 교육을 받도록 했다.
교육은 신생 뱀파이어의 본능을 일부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는데, 아직은 자제력이 제로에 가까운 신생 뱀파이어에게 족쇄를 채워 힘을 억제시켰다. 족쇄로는 십자가 모양의 은 귀걸이를 사용하였다. 뱀파이어에게 은과 십자가는 약점과도 같았기때문에 종종 그들을 파괴하는 무기로도 사용되었다. 신체 중 혈관이 가장 존재하지 않는 귓가에 십자가 모양 은귀걸이를 채워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신생 뱀파이어의 파괴력과 본능을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지민이에게는 일부러 피를 금하고 인간일 적 먹었던 음식들을 먹였다. 이 교육을 통해 흡혈에 대한 자제력을 기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식사시간이 되면 길고 커다란 식탁 앞에 음식들이 준비되었다. 인간으로 치면 다섯살배기 아이같은 신생뱀파이어를 위해, 보통 단 음식들로 상을 꾸렸다. 아이가 단 음식을 좋아하는것은 당연한 이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에 인간의 음식이 뱀파이어의 입에 맞을 리 없었다. 그가 갈망하는 것은 단내가 나는 붉은 피였지만 식탁 어디에서도 그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딱히 끌리는 것이 없었으나 그나마 사과에 눈길이 갔다. 붉은 표면에 입맛이 돌았다.
그는 갈망하던 달콤함을 기대하고 사과을 한입 베어물었다. 그러나 마른 혀 위에서 느껴지는 것은 불쾌한 떫음과 쓴맛 뿐이었다. 그렇게 지민이 뱀파이어 교육을 받고 있을때였다. 언젠가 뱀파이어 저택에 여자인간 하나가 들어오게 되었다. 뱀파이어 저택에 살아있은 인간이 들어오는 일은 흔치 않았지만, 남준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가능하였다. 어떤 일에서 살아있는 여자인간이 들어오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저택의 또다른 뱀파이어인 윤기가 물어보았지만, 정확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저 그 아이는 건들지 말라는 말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남준을 비롯한 다른 뱀파이어와는 달리 지민은 자제력이 약해 그아이를 보면 이성을 잃고 흡혈을 할 위험이 있었다. 윤기가 급하게 지민이의 눈을 가려보았지만, 이미 지민이 그 인간을 눈에 담은 뒤였다.
“Bitter, bitter, ...sweeter.” 쟤, 달아. 먹고싶어. 그 인간 여자를 보고 단 것이라고 읖조리는 지민의 입술이 벌어지고, 곧 입맛을 다시었다. 아직 자제가 안되는 어린 뱀파이어였기 때문에 인간의 향내만 맡아도 바로 날카로운 이가 드러났다. 어린 인간 여자는 아름다운 피조물이 금새 무서운 짐승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남준은 실신한 그 아이를 안아들고 식당을 벗어났다. 남준은 지민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절대로 그 아이를 건들지 말 것. 만약 그 애가 위태로워진다면, 넌 더이상 이 저택에서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여자는 무거운 눈커풀을 들여올렸다. 어젯밤 제 눈에 담겼었던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생전 처음보는 아름다운 인간, 아니 괴물이었던가? 그녀는 제가 봤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혼란스러웠다. 지끈거리는 머리에 산책이라도 할까 싶어 가벼운 겉옷을 두르고 저택을 벗어났다. 저택은 정원인지 숲인지 모를 공간 속에 있었기에, 머리를 식히기 좋았다. 홀로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제 눈 앞에 나타난 것으로 온몸이 다시 굳을 수 밖에 없었다.
“쉿. 들키면, 혼이 크게 나서 말이야. ” 어제 보았던 아름다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