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518 ; 그날의 광주
한 남자가 낡아 중간중간 갈라진 가죽 소파 위에 긴장된 표정으로 앉았다.
남자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으며
주름살이 깊게 패여 있었다.
곧이어 회색 정장을 입은 다른 남자가 그 남자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 남자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 또 약지에 깊고 보기 흉하게 흉터가 있는 사람이었다.
" 오랜만이다, 태형아. "
" 네. 오랜만이네요, 아저씨. "
남자를 태형이라고 지칭한 회색 정장의 남자는 노트북을 열며 말을 건넸다.
" 얼마만이냐, 30년 만인가. 그게 몇 년 전이지. "
" 1980년이면, 36년 전이네요.
아저씨가 용케 나를 알아본것도 신기할 따름이죠. "
" 널 어떻게 잊어.
잡담은 이쯤하고 시작해볼까?
이름. "
" 제 이름은 정태형 입니다. "
.
정국은 마스크를 꿰뚫고도 토사물을 부르는 체취에 아랫입술을 물었다.
체육관은 쉰 개의 시체로 가득 채워져 있다가 열한 시쯤 네 구의 시체가 확인되어 총 마흔여섯 개의 시체들이 차 있었다.
정국의 교복 소매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혈액이었으리라.
허리를 피자 굵직한 소리를 냈다. 마지막으로 시체를 확인한 가족들은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정국은 고개를 갸우뚱 틀었다. 하느님이 보우하는 나라가 이토록 참담했던가.
머리를 하나로 묶은 탄소가 조심히 체육관 내부로 들어왔다. 이제 겨우 애국가 삼 절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탄소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정국 앞에 섰다.
"선배 세 시쯤에 열다섯 구의 시체가 더 들어온대요."
"열다섯 구면 체육관 자리 없을 텐데..."
부패정도가 심해 유가족들 또한 알아볼 수 없는 시체들 혹은 가족들이 없던 시체들이 문득 떠올랐으나 금방 그 생각을 저버렸다.
그는 계엄군처럼 함부로 시체를 구렁텅이에 집어넣고 싶어하지 않았다.
사 절까지 애국가를 끝마친 유가족들은 여학생의 시체를 가지고 체육관을 떠났다.
조촐했지만 나름의 장례식이었다.
체육관 문이 열리며 작은 머리통 하나가 보였다. 이제 겨우 아홉 살은 먹은 것처럼 보이는 꼬마였다.
매일 이곳을 들르는 터라 익숙해진 얼굴의 꼬마였다. 필시 민주항쟁 운동을 하는 정호석의 동생이리라.
무엇이 불안한지 하루도 빠짐 없이 저의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면 책가방을 매고 바로 이곳을 들러 형의 시체가 들어왔냐 물었다.
"호석이 없어 여기에.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호석이는 세 시쯤 들어올 것 같은데. 여기는 안 좋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 딴 길로 새면 안 된다."
"네."
태형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체육관을 빠져나간다. 차트를 들고 시체의 코와 귀에 솜을 채워넣던 탄소가 말한다.
"호석이가 여러모로 걱정 끼치네."
정국은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대답 없이 다 닳은 초를 갈았다.
.
그 시각 광주 시내에서는 총성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한 여자가 확성기를 들고 민주주의를 외치자 라는 발언이 끝나기 무섭게 계엄군의 총알이 날아와 박혔다.
태극기를 손에 쥔 호석은 급하게 총알이 날아온 곳을 살폈다. 저번과 같은 위치였다.
호석은 급하게 상가 틈으로 몸을 숨겼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길거리에 남아 있던 이들은 총알받이가 되었다.
네 살짜리 꼬마가 엄마를 잃었는지 엉엉 울고 있는 모습에 급하게 뛰쳐나가려던 호석이는 꼬마의 작은 가슴에 총알을 박아넣는 계엄군의 모습에 기력을 소진했다.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 저 개새끼들- "
역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은 호석 혼자만이 아닌지
옆에서 남준이 낮게 욕을 읊조렸다.
문득 하교를 하고 있을 태형이가 걱정되었다. 혹여나 하굣길에 군인을 만나는 것은 아닐지 늘 걱정이었다.
역시 가만히 앉아 태형을 걱정만 하는 짓은 못 하겠는지 호석은 풀린 신발끈을 매만지며 말했다.
" 너네들은 여기에 숨어있다가 계엄군들이 모두 철수하거든
그때 시신들을 옮겨라. 알아 들었지? "
" 네, 형. "
오래된 총구를 기름칠하며 지민이 작게 대답했다.
호석은 밑단이 약간 젖어 흙모래가 다닥 붙은 바지를 무심하게 털고 일어났다.
그리곤 뒤쪽에 나 있는 문으로 향하며 뒤돌아 말했다.
" 혹시나 이쪽으로 계엄군이 들어오려는 낌새가 보이거든
이 문으로 도망쳐라, 응? "
네, 형.
지민이 창살에 작게 나 있는 구멍으로 바깥 동태를 살피며
무심히 대답했다.
새끼. 정 없기는. 나 진짜 다녀온다.
호석은 오른쪽 호주머니에 있는 태형에게 줄 초콜릿을 매만지며 밖으로 나갔다.
약간은 더운 봄, 5월이었다.
.
" 태형아! "
" 형아! 저 아저씨가 데려다줬어! "
호석의 품에 안긴 태형은 우물우물 사탕을 물며
부정확한 발음으로 호석을 향해 말을 건넸다.
윤기는 그 둘의 앞에 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호석에게 오른손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
" 아, 학생 안녕하세요.
교복 보니까 광주 중앙 고등학교 학생 같네요.
아저씨는 기자예요. 신문 기자.
전남 매일 신문사 기자 민윤기 입니다. 명함 드릴까요? "
아뇨, 됐어요.
호석은 오른손을 맞잡으며 윤기를 쳐다봤다.
" 정호석 입니다. 보시다시피 민주화 운동 해요.
기자분이시라고요? 기사 잘 적어주세요. 그런데 저희 동생은 어떻게 아셨어요? "
호석의 말투에는 미세하게 가시가 돋아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호석의 학교에는 소문이 돌았는데, 요즘 기자들은 일을 안 한다더라.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외부 사람들은 하나도 모르는 이유가
기자들이 신문에 이 내용을 안 올려서 그렇다더라.
하는 소문이 첫 번째 이유요,
두 번째 이유라 하면 호석에게 가장 소중한 늦둥이 동생 태형을
외간남자, 그것도 ' 신문 기자 ' 가 데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꽤나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 아, 어린 애가 혼자 돌아다니길래 위험해보여서 사탕 물려주고
집 방향 묻는 길이었어요. 절대 나쁜 마음 먹고 말 건 거 아니니까 오해 말아요, 학생. "
얼굴도 희멀건게 완벽한 서울말까지 하네.
윤기에 대한 모든 게 다 못마땅한 호석이었다.
" 네, 감사합니다. 앞으로 그러실 필욘 없어요. 제가 데리고 다닐거거든요, 우리 동생.
감사했어요. 안녕히 가세요. 태형아 가자. "
윤기는 멀어져가는 형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떤 앤진 몰라도 영리한 애 같네. 어린 나이에 시위까지 하고 말이야.
.
" 엄마! "
" 테형아, 신발 벗어야지. 엄마, 다녀왔어요. "
늙은 여자는 문 맞은편 방 구석 이부자리에서 작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들어올린 손은 앙상했으며, 금방이라도 시들 것 같이 어두운 색을 띠고 있었다.
" 엄마 졸린가봐. 형아. 나 오늘 받아쓰기 만 점 받았다! 선생님이 껌도 주셨어! "
" 우리 태형이 기특하네. 가서 손 닦고 발 닦고 방으로 들어가자. 형이 밥 차려줄 때까지
손 발 닦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식탁 차리고 있어라, 응? "
" 응 형아! "
호석은 좁고 낡은 부억 뒷편으로 돌아가 하얗게 샌 연탄을 꺼냈다. 매캐한 냄새가 났다.
곧이어 새까만 연탄을 작은 구멍에 넣었고, 연탄의 구멍들 사이사이로 붉은 빛이 올라왔다.
오늘의 저녁은 엄마를 위한 죽과, 태형을 위한 김치찌개였다.
비록 태형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친구네처럼 참치를 넣어주진 못하지만.
얼마 안 돼서 죽이 들어있는 냄비에서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고,
김치찌개는 보글보글 끓어 시큼한 냄새를 풍겼다.
동그란 식탁에 세 명이 오순도순 앉아 따뜻한 밥을 나눠먹는,
모처럼 단조롭고 화목한 하루의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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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보라해입니다.
무심코 518로 글을 쓰고싶다- 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쓸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벌써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싶긴 하지만 ㅎㅎ
암호닉은 지금부터 받아요! (제가 다 정리할 수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글잡 빙의글로
역사를 최대한 왜곡하지 않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니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첫 화는 감히 포인트를 걸지 않았습니다.
부디 즐거운 감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담을 마무리합니다.
봐주셔서 감사해요.
#연재 패턴은 불규칙할 예정이에요. #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