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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nival

민윤기X박지민

 

 

 

 

1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윤기는 눈을 뜨자마자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물을 한 잔 마셨다. 커튼을 치니 창밖에서는 구슬프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쏴아아 쏟아지는 비를 보며 윤기는 방안 벽에 있는 달력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창문을 열어 차가운 공기를 한 번 맞았다. 빤히 창밖을 응시하던 그는 복부에 있는 흉터가 근질근질 했다. 씻어야지. 아침부터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를 보던 그는 늘 그랬든 샤워를 하고 나왔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아래층 사무실에서부터 진한 커피향이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며 계단을 타고 내려온 윤기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는 남준을 발견하였다. 흰 가운에 청진기를 목에 걸고 있는 그는 다리를 꼬고 앉아 컴퓨터를 응시하며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윤기의 인사에 남준은 그제야 그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개를 슬쩍 끄덕하는 것으로 인사를 받은 남준은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아침 신문 기사를 확인하는 건지, 마우스를 움직이는 그의 손이 매우 바빴다. 그러더니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거슬렸는지, 창밖을 한 번 쳐다보더니 중얼거렸다. 비가 엄청 쏟아지네.


 젖은 머리를 털던 윤기가 커피포트로 다가가 남준이 내려놓은 커피를 한 잔 따랐다. 쪼로록 커피가 잔에 담기는 소리에 신문 기사를 읽고 있던 남준이 의아한 얼굴로 윤기를 돌아보았다. 답지 않게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윤기의 모습이 상당히 낯선 모양이었다. 고개를 한 번 갸웃 하던 그는 커피가 담긴 잔을 들고 소파에 앉는 윤기를 보더니 책상 앞에 놓인 달력을 확인했다. 정확하게 오늘 날짜로 빨간색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 것을 본 남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커피 잔을 잠시 내려놓고 지난 달력을 다시 앞으로 돌려서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단 말이지. 쏴아아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소리가 그날과 오버랩이 되는 기분이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났구나.”
 “네.”
 “그래.”

 

 


 얼마 남지 않은 커피를 한 번에 입에 훅 털어놓은 남준은 의자 바퀴를 굴려 싱크대 앞까지 갔다. 그리고 싱크대 안에 빈 잔을 내려놓고 다시 바퀴를 훅 밀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컴퓨터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소파에 앉아 커피를 즐기고 있는 윤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상당히 여유로워 보였지만 윤기의 눈빛은 다른 때보다 날이 서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임을 직감하고 달력으로 그 날짜를 확인한 남준은 두 손을 모아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여 앉았다. 그는 한참동안 무언가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듯 하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떠날거냐?”
 “네.”
 “꼭, 그래야만 해?”
 “네.”
 “윤기야.”
 “오늘 처음 마셔보는데 선생님이 내린 커피, 진짜 맛있네요.”

 

 


 윤기에게 요구하는 답이 있는 건지, 남준은 계속해서 그를 설득하려 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런 남준의 질문에 짧게 대답하며 일부러 말을 돌리던 윤기는 커피 잔을 들어 보이며 가볍게 웃었다.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건가. 너무나도 단호하게 나오는 윤기를 보며 남준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나 강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그를 설득하는 건 더 이상 무의미 하다고 느꼈다. 윤기를 지켜보는 남준의 얼굴에선 피곤함과 안쓰러움이 잔뜩 묻어났다. 그런 남준의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커피를 마시는 것에만 집중을 하는 윤기의 눈은 다른 날보다 더욱 빛났다.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산속에 버려진 듯, 다 죽어가는 윤기를 남준이 데리고 와 작고 허름한 이곳 동네 보건소에서 그를 치료해준 것이 벌써 2년 전의 일이었다. 그날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웅덩이에 몸이 반 이상 처박혀 잠겨있던 윤기를 발견했을 당시, 그의 몸은 상처 투성이었다. 온몸이 축축하게 비로 젖어 있고 옷은 피로 얼룩이 져 있었다. 얼굴에는 어디에 긁힌 자국이 잔뜩 나 있었으며 온몸 곳곳이 성한 곳 없이 잔 상처가 가득이었다. 그리고 복부에 치명상을 입어 붉은 피가 핏물에 섞여 고여 있었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을 법도 한데, 남준은 그런 윤기의 앞을 지나가다 아직 살아서 자신을 응시하는 그의 눈과 마주했다. 어떻게든 살길 원하는 그 눈에, 남준은 그 길로 윤기를 이곳까지 데려왔다.


 윤기를 치료해주고 그가 회복을 하면서, 남준은 2년이라는 시간을 조건으로 걸었다. 내가 너를 살려주었고 그것이 마음에 걸려 신세를 진 것 같은 기분이라면, 2년 동안 이곳에서 지내면서 일을 도와달라고. 지금 당장 자긴 이곳을 떠나야 하고 가야 할 곳이 있다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고집을 부리던 윤기를 붙잡아두는 것엔 이유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누군가를 죽일 듯한 눈이었던 그는 그대로 밖을 나가기엔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왠지 큰 사고를 칠 것 같은 아슬아슬함에 남준은 이런 식으로라도 그를 붙잡고 있어야 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남준은 윤기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했다.


 떠나는 날도, 비구나.

 

 


 “시간이 참 빠르네. 다 죽어가는 민윤기 살려낸 게 엊그제 같은데.”
 “…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이제 너 가면 누가 내 시중 들어줄지 걱정이다.”

 

 


 윤기의 잔이 다 빈 것을 보고 대신해서 싱크대에 빈 잔을 갖다놓는 남준. 하얀 가운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빙긋 웃는 그를 보며 윤기는 마음 편하게 웃어 보이지 못했다. 자신을 살려주고 도와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윤기는 2년 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어떻게 보면 남준과의 약속을 어기고 2년이 채 되기 전에 이곳을 몰래 도망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모르는 사람처럼 지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윤기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망가진 몸이 완전히 회복이 되기까지, 그리고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스스로를 무장할 때까지. 그래서 어젯밤 잠을 설쳤다. 설렘도 긴장도 아닌, 자신이 앞으로 곧 해야 할 일에 대한 오묘한, 그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감정 때문이었다.

 

 


 “짐도 겨우 이것뿐이냐?”
 “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야하는 게 맞지만, 신경써주셔서 감사해요.”

 

 


 간단한 개인 소지품만 넣기엔 부담스럽게 큰 검정색 가방. 그것을 맨 윤기는 모자를 푹 눌러 썼다. 그리고 자신을 배웅 나온 남준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팔짱을 끼고 문틀에 기대어 선 남준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윤기를 설득했다. 꼭 이렇게 해야 해? 그러자 윤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남준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앞으로 윤기가 어떤 행동을 할지 대충 짐작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윤기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총이었다. 남준이 내민 총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윤기는 말없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탄창을 확인하여 탄알을 확인했다. 총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방법을 몰라서 그날 네 몸에 있던 거 그대로 고이 보관해 놨다. 이건 돌려주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잘도 숨겨놓으셨네요.”
 “왜. 찾으려고 했었어?”
 “네.”

 

 


 윤기의 상태를 걱정한 남준이 일부러 그가 소지하고 있던 총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춰두었다. 그는 혹시라도 총을 찾은 윤기가 이곳을 벗어나서 무리한 일을 벌이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2년 동안 용케 그 총을 잘 숨기긴 했지만 역시나 떠나는 사람에게 그 사람의 물건을 돌려주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총을 자신의 품에 고이 넣은 윤기는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러자 남준은 윤기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려놓고는 토닥였다. 슬쩍 고개를 들어 남준을 쳐다보던 윤기는 차마 그와 오랫동안 눈을 마주하고 있을 수가 없어 금방 고개를 떨어뜨렸다. 남준은 윤기의 모자를 한 번 더 쓱 눌러 써주더니 손을 흔들어 보건소 안으로 들어갔다. 별 다른 말은 없었다. 건강 하라느니, 잘 지내라느니, 그런 흔한 인사는 하지 않았다. 보건소 문이 탁 닫히자 윤기 역시 미련 없이 돌아섰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 * * * *

 

 

 

 


 남준과 함께 지냈던 보건소를 떠나 밖으로 나온 윤기는 오래된 전당포에 들어섰다. 매우 익숙한 곳인 듯, 헤매지 않고 단 번에 찾아 온 그곳에서 윤기는 자신이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전당포 주인에게 내밀었다. 그가 착용하고 있던 시계는 금이 가 있었고 시간도 제대로 맞지 않아 거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윤기는 그 시계를 굉장히 자신 있게 전당포 주인에게 건넸다. 창살 너머로 윤기를 힐끔 쳐다본 전당포 주인은 모자를 푹 눌러쓴 탓에 윤기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가 건넨 시계를 보자마자 쓰고 있던 돋보기를 슬쩍 내려 보더니 시계에 새겨진 글자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흠칫 놀라는 얼굴이었다. 자신을 응시하는 주인의 시선에 윤기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모자 아래로 보이는 윤기의 얼굴에 주인은 또 한 번 놀랐다. 찬찬히 그의 얼굴을 살펴보던 주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로 옆방으로 가 무언가를 꺼내왔다. 어느 정도 무게가 있어 보이는 검은색 가방을 들고 나온 주인은 윤기의 앞에 그 가방을 내려놓았다.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내려진 가방을 그 자리에서 확인한 윤기는 가방 한 가득 들어있는 오만원짜리 묶음을 보고는 도로 가방을 닫아버렸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구만.”

 

 


 돈이 든 가방을 어깨에 짊어진 윤기가 말없이 전당포를 떠나려는데 주인이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그러자 윤기는 걸음을 멈칫 하더니 슬쩍 뒤돌아 주인을 쳐다보았다. 눈에서 나오는 살기가 현재 그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코에 걸쳐있던 돋보기를 벗어 윗옷 주머니에 넣은 주인은 시력이 좋지 않은지, 윤기를 쳐다보는 얼굴을 잔뜩 구겼다. 그러자 윤기는 주인을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줘, 영감. 해봤자 영감한테도 별 도움 안 될 거야.”
 “그 아이를 찾으려는 게지?”

 

 


 전당포 주인의 입에서 ‘그 아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윤기는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돈 가방을 쥔 그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더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속으로 숫자를 열까지 세어 마음을 다스린 윤기는 침착하게 답했다.

 

 


 “아니, 안 찾아.”
 “하긴. 네가 그 아이를 찾는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을 게다.”

 

 


 곧바로 전당포를 나서려던 윤기는 전당포 주인의 말에 자꾸만 발목을 잡혔다. 내가 찾아도 아무 소용이 없을 거다, 라고? 그의 말을 통 이해할 수가 없었는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주인을 돌아본 윤기는 전보다 더 냉랭한 말투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박지민을 찾아도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니.”
 “소용없어. 그 아이, 기억을 잃었거든.”

 

 

 

 

* * * * *

 

 

 

 


 가게 안은 한 바탕 난리였다. 다짜고짜 들이닥친 태형 일행은 가게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가장 먼저 앞장 선 태형은 방문 하나하나를 열어젖혔다. 어두운 방안에 모여서 접대를 하고 있는 여자들 머리채를 쥐여 잡고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그는 그 중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여자 한 명을 유심히 보더니 씨익 웃었다. 찾았다. 그러더니 그녀의 긴 머리가 다 뜯어질 정도로 세게 머리카락을 쥐어 잡더니 그녀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러자 방안에 있던 다른 여자들은 겁을 먹고 하나 둘 자리를 피했다. 그들과 함께 엉겨 붙어 있던 몇몇 남자들이 태형에게 지금 뭐하는 짓이냐며 시비를 걸었지만 면도칼을 꺼내 목에 갖다 대는 태형을 보더니 꼼짝없이 얼어붙어 버렸다.

 

 


 “왜. 확 그어줄까?”

 

 


 배시시 웃으며 위협적인 말을 하는 태형에 남자들 역시 겁을 먹고 방을 나섰다.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는 남자들을 보며 태형은 바닥에 침을 퉤 뱉으며 욕을 지껄였다. 활짝 열린 방문 앞에서는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있는 석진이 여자를 다그치는 태형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 옆에 서 있던 지민은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다. 방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쫓아낸 태형은 바닥에 내동댕이 친 여자를 가까이 보기 위해 쪼그려 앉았다. 바닥에 넘어지며 부딪친 충격에 아파서 꿈틀거리던 여자는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태형에 겁을 먹고 덜덜 떨었다. 그는 훤히 드러나 있는 여자의 팔에 면도칼을 슥 갖다 댔다. 상처가 날 듯 안 날 듯, 아슬아슬하면서도 그 소름끼치는 감각에 여자는 두려움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힘겹게 꺼낸 여자의 한 마디에 그녀의 팔 위를 움직이던 면도칼이 갑자기 멈췄다. 그러더니 태형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확 쥐어 끌어당겼다. 바로 코앞에까지 여자의 얼굴을 끌어온 그는 자신의 눈을 피하는 여자의 머리채를 슬쩍 흔들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자기야. 내가 거짓말하면 천당 간다고 그랬어요, 지옥 간다고 그랬어요?”
 “흐, 흑… 왜, 왜 이러세요….”

 

 


 끝내 태형 앞에서 눈물을 보인 여자. 그러자 태형은 그녀의 눈물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녀의 목 가까이 면도칼을 갖다 댔다.

 

 


 “아, 씨발. 딱 질색이다. 뭘 잘했다고 울어? 그러게 누가 남의 돈에 손대래?”
 “전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전 아니….”

 

 


 여자가 손사래를 치며 결백을 주장하자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태형의 손이 여자의 뺨을 휘갈겼다. 힘없이 옆으로 픽 쓰러진 여자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해 바닥에서 꿈틀거릴 뿐이었다. 쓰러진 여자를 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태형은 한 번 숨을 툭 뱉어내더니 면도칼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말로 해서는 안 되는 언니네.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 넣은 그는 바닥에 쓰러진 여자의 머리를 구두를 신은 발로 꾹 눌렀다. 아악. 여자의 비명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방문 앞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석진은 단념하고 뒤돌아섰다. 미친개 김태형이 한 번 저러면 그를 말리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빨랐다. 여자의 비명소리가 가게 안에 울려 퍼지자 태형이 등장한 후로 잔뜩 겁을 먹은 나머지 여자 종업원들은 더욱 두려워졌다. 그 모습을 힐끔 쳐다보던 지민은 곧바로 정면을 응시한 채 말없이 방문을 지켰다.

 


 방안에서는 여전히 태형이 여자를 짓밟으며 그녀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실토하라 협박 중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살려 달라 빌 뿐이었다. 그러자 태형은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여자에 지쳤는지 뻐근한 목을 한 바퀴 휘 돌려 근육을 풀었다. 이래서 존나 짜증난다니까, 여자는.

 

 


 “내가 재워주고 먹여주고 일도 갖다 주고 인간 만들어 줬더니, 뒤통수를 쳐? 어?”
 “아니에요… 난 아니에요….”

 

 


 머리가 산발이 되어서 끝까지 아니라고 말하는 여자에 태형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자 가게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태형의 고함소리에 웅성거리던 여자들의 목소리도 뚝 끊겼다. 헉. 헉. 가쁘게 내쉬는 태형의 호흡소리가 흥분을 해서 그런지 꽤 거칠어졌다. 금방이라도 여자를 죽일 듯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그를 말리러 석진이 방에 들어섰다.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조심스럽게 이제 그만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석진을 쳐내고 무섭게 째려보던 태형은 방을 나갔다. 그는 방을 나가면서 방문 앞에 있던 지민에게 뒤처리를 하라며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그러자 마치 기계처럼 태형의 명령에 응한 지민은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섰다. 지민이 들어서자 석진은 심각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더니 말없이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방문을 탁 닫았다. 곧이어 안에서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무자비하게 폭행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는 석진의 마음은 썩 편치 못했다. 방문을 닫아 안의 상황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소리만으로도 지금 방안에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다. 모여 있던 여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믿을 수가 없어.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잖아?”
 “그러게. 그래도 예전엔 쾌활하고 친절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 일을 겪고 난 후로 저렇게 된 것 같아. 기억을 잃었다며?”
 “아무래도 가장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골로 가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지. 윤기씨 죽은 것에 연루되어 있었다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이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가 있어? 그리고 저건 사람이 아니야. 괴물이지.”

 

 


 사람이 아니야. 괴물이지.


 여자들이 수군거리는 말들을 조용히 엿듣고 있던 석진은 말없이 그녀들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녀들의 대화 내용이 상당히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옹기종기 모여서 지민에 대한 이야기를 내던지던 여자들은 석진이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모두 딴 곳을 응시했다. 그러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다들 흩어져 개인 볼 일을 보기 시작했다. 그녀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석진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꼭 닫힌 방문 안에서는 여전히 비명소리와 폭행을 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슬쩍 돌아본 석진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모든 것이 자기 탓인 것만 같았다.

 

 

 

 


* * * * *

 

 

 

 


 감정 없는 기계처럼 명령과 지시에만 움직이는 지민을 볼 때마다 석진은 마음이 쓰였다. 형, 형, 거리면서 자신을 곧잘 따르던 귀여운 동생이기도 했고 밝은 성격에 말도 잘 듣던 착한 동생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던 지민이 완전 변해버렸다. 정확하게는 윤기가 죽은 후부터였다. 그가 죽었던 그 날, 그 현장에 함께 있었던 지민은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윤기가 피를 흘리고 도망을 쳤다는 흔적이 남아있긴 했지만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몸에 치명상을 입고 사라진 것을 보니 얼마 못가 죽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당시 온몸에 피 철갑을 하고 쓰러져 있던 지민은 정신이 들었을 땐 이미 모든 기억을 잃고 자신이 누구인지만 겨우 기억해내고 있었다. 왜 자신이 피 범벅이 되어 있었으며, 함께 있던 윤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대체 그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마지막 기억인 지민의 기억마저 저 편 너머로 사라진 마당에, 석진은 그저 윤기가 쫓기다 죽음을 면치 못했을 거라 추측할 뿐이었다.

 

 


 “… 병신 같은 새끼. 죽긴 왜 죽어.”

 

 


 죽었다고 믿고 싶진 않았지만 죽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살아있었어도 무사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를 죽이려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차라리 그때 죽는 것이 마음 편하게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석진의 생각이었다. 서랍 안에 있던 윤기와의 사진 한 장을 빤히 보던 석진은 서랍을 탁 닫아버렸다. 윤기를 떠나보내니 힘든 건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불행 중 다행일까. 어쩌면 그가 떠나고 가장 힘들어 할 지민이 기억을 잃은 관계로 윤기 자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다행스러운 부분이었다.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지민이 얼마나 슬퍼할 지는 석진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되게 웃기네. 기억을 잃었다는 걸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게.”

 

 


 의자에 털썩 앉은 석진이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았다. 온몸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나오지 않는 라이터 때문에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내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마른세수를 했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자기 자신만 마음고생 중인 것 같았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생각해보니 방금 바닥에 내던진 담배도 마지막 담배였다. 석진은 튀어나오려는 욕을 겨우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를 사러 종종 들르는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익숙한 길을 걸어가던 그는, 편의점 문을 열고 막 나오는 남자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그를 보게 된 석진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온통 까만색의 옷을 걸치고 있던 그 남자는 푹 눌러쓴 모자마저도 까만색이었다. 하지만 아주 살짝 스치듯 지나가던 그의 얼굴에서 석진은 굉장히 낯설지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쭉 지켜보던 그는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서둘러 편의점에 들어선 석진은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인사를 꺼내기가 무섭게 그의 인사를 가로채고 물었다.

 

 


 “방금 전 나간 손님, 뭐 사갔어요?”
 “네?”
 “방금 전에 까만 모자 쓰고 있던 손님! 뭐 사갔냐고요!”

 

 


 아르바이트생에게 대답을 추궁하는 석진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러자 놀란 아르바이트생은 두 눈을 껌뻑거리며 라이터와 담배를 사갔다고 답했다. 라이터와 담배. 아르바이트생의 대답에 석진은 누군가를 떠올리며 다시 물었다.

 

 


 “담배. 어떤 담배요?”

 

 


 세세하게 담배의 종류까지 물어보는 석진을 보고 아르바이트생은 겁을 먹음과 동시에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등 뒤에 있는 담배들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걸로 사가셨다고 대답했다. 아르바이트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담배를 본 석진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보헴시가 모히또. 윤기가 태우는 담배 종류였다. 감사합니다. 자신이 담배를 사러 왔다는 것도 망각하고 곧바로 편의점을 뛰어나간 석진은 자신이 눈으로 뒤쫓던 남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냅다 달렸다. 이미 늦었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를 볼 수 있을까, 약간의 기대를 걸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석진은 확신했다. 자신이 편의점에서 나온 남자를 보았을 때 느꼈던 그 분위기가 확실하다면, 어쩌면 윤기는 죽은 게 아니라 살아있을 수도 있을 거라고.


 결국 석진은 돌아가는 길에 그 편의점에 다시 들러 담배와 라이터를 구매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담배를 한 대 태우던 그는 평소보다 담배 맛이 더 쓰게 느껴졌다. 오만가지 생각이 그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현관에 놓인 지민의 신발을 보고는 그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곧장 그에게 갔다. 거실에 자리를 펴고 앉아 총기를 손질하는 그를 보며 석진은 냉정하게 물었다.

 

 


 “정말 그때, 윤기가 죽은 게 확실해?”

 

 


 기억을 잃은 지민에게 이러한 사실을 묻는 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네가 윤기를 등지고 전정국 편에 설 이유가 없잖아. 석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늘 지민을 보며 이 생각만 떠올렸다. 하지만 지민은 요지부동이었다. 총기를 손질하던 그는 손을 잠시 멈추고 석진을 올려다보았다. 그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지민은 잔뜩 일그러진 석진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누구죠?”
 “민윤기. 민윤기. 떠올려봐. 민윤기.”
 “그런 사람 모릅니다.”

 

 


 일부러 힘주어 윤기의 이름을 말하던 석진은 딱 잘라 모른다는 말을 하는 지민의 모습에 힘이 쫙 빠졌다. 석진의 질문에 짧은 대답을 던진 지민은 다시 총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얼굴에 감정 하나 보이지 않는 그를 보며 석진은 힘없이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총기를 매만지는 지민의 뒷모습에 두 눈을 감았다.


 그래, 착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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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분위기 너무 좋아요 작가님 앞으로 잘부탁드릴께요 의문의 윤기너무 궁금하네여!!!
7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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