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주웠습니다.
w.muscle king
"정국아."
"..아, 으.."
"나 회사 가야 해.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잠에 얼마나 취한 건지 정국이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 한채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는 하는지..
나는 정국이에게 테이블 위에 돈을 올려놨으니 시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시켜 먹어도 좋다고 말하고서 등을 돌렸다.
아침 회의가 잡혀있던 터라 오늘은 조금 서둘러야 했다.
가방을 챙기고서 방을 나서려는 그 순간, 언제 침대에서 일어났는지 뒤에서 나를 끌어 안은 정국이가 갈라진 목소리로 칭얼칭얼 매달리기 시작했다.
"벌써 가?"
"8시야 지금."
"안 가면 안 돼?"
"내가 정할 수 있는 일 아니야. 내가 안 가면 누가 내 일을.."
"....."
"..대신 빨리 올게. 빨리 오겠다구."
"전화 해도 돼?"
"하지 말라고 해도 하잖아."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큭큭거리며 웃는 정국이를 겨우 떼어내고서 현관으로 걸어갔다.
더 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정말 안 됐기에 급하게 구두에 발을 구겨넣으며 흘러내리는 가방을 고쳐 매는데, 어느새 현관 앞까지 따라와 철푸덕 주저 앉은 전정국이 내 종아리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신발을 신다말고 고개를 돌려 전정국을 쳐다봤지만 전정국은 그런 날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종아리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허벅지에 도달했을 때,
"정국아."
쪽, 쪽.
"바쁘다고 말했잖아. 못 알아들었어?"
쪽
"..일어나 봐."
쪽
"그만,"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갑자기 벌떡 일어난 전정국이 이번엔 내 뒷목을 핥짝거리기 시작했다. 전정국의 뜨거운 혀가 내 뒷목에 닿는 순간,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전정국의 양 볼을 부여잡고 입을 맞췄다.
이 상황을 원했던 건지 전정국이 두 손으로 내 허리를 결박하고서 더 깊게, 더 은밀하게 파고들었다.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가 여실히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어야 했다. 전정국에게 놀아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봐줄만 했으니 말이다.
"회사 안 늦었어?"
"늦었어. 너 때문에."
"그럼 가지 마."
"정국아,"
"외로워."
"..전정국."
" 네가 회사에 가있을 동안 난 너무 외로워."
"......"
"나 집에 혼자잖아."
전정국은 내 허리를 지분거리며 전혀 외롭지 않은 말투로 외롭다 말했고, 나는 그의 땡깡 아닌 땡깡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빨리 준비하고 나와.
"가서 회사 돌아다녀도 돼?"
"그래. 더 이상 내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면."
"..네 비서누나랑 놀아도 돼?"
"그래. 다신 내 얼굴 보기 싫다면."
"..그럼 널 내 다리에 앉혀놓고 있어도 돼?"
"그래. 오늘을 끝으로 다신 회사에 오고 싶지 않다면."
내 말을 들은 전정국이 '아이씨'하는 거친 소리를 내며 자신의 머리를 잔뜩 헝클였다.
급하게 회사에 도착한 나는 전정국의 머리를 정리해 주며 엘리베이터로 빠르게 걸어갔다. 전정국은 내 손을 부여잡아 억지로 깍지를 끼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나를 뒤따랐다.
회사에선 얌전하게 굴어야 한다고 말하며 몇 번이고 주의를 주기도 잠시, 다들 이제 막 출근을 하는 건지 텅텅 비어있던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한 명, 두 명 차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족족 나를 보고선 '이사님, 안녕하세요.'하며 깍듯하게 인사를 해댔다. 그 중엔 나와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저 목례를 해 인사를 받아주었고 전정국은 언제나 그렇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아마 머릿속에선 나를 어떻게 놀려먹을지 고민하고 있겠지.
그러면서도 전정국은 여전히 깍지를 풀지 않고 있었다. 놔달라고 해봤자 귓등으로도 안 처들을 게 뻔했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던 건데, 회사 식구들이 보기엔 그게 아니었는지 깍지 낀 손을 한 번, 전정국을 한 번,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작게 물었다.
"그런데 이사님.."
"네."
"옆에는 누구..신지.."
나와 전정국을 제외한 엘리베이터에 모든 사람들은 마치 관심이 없는 척 앞만 보는 듯했지만 나는 어느정도 다 알고 있었다. 전부 다 귀를 쫑긋 세우고서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훔쳐들을 것이란 것을 말이다. 회사 사람들은 대부분 가십거리를 좋아했으니까. 아까부터 계속 내 쪽을 힐끔힐끔 눈치보고 있는 것부터가 그랬다.
아마 언젠가부터 내가 영계를 데리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서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기 위함이 틀림없으리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을 하려다, 그랬다간 괜히 소문만 이상하게 날 것 같아 무심하게 대답했다.
"사촌 동생입니다."
"사촌.. 동생이요?"
"네. 이제 그만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 죄송,"
"괜찮습니다."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던 전정국이 한순간에 얼굴을 굳히며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런 전정국을 눈치챘으면서도 끝까지 전정국을 쳐다보지 않았다. 제 마음에 들지 않아 심술을 부리는 아이의 행동은 꽤 귀여웠으니 말이다.
물론 도가 넘어간다면 혼을 내야겠지만.
사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엘리베이터 문이 계속해서 열리는 데도 단 한 명도 내리질 않았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회사 식구들에게 짐짓 엄하게 말했다.
"이 다음층이 이사실인데, 전부 이사실 가시는 겁니까?"
그리고 사원들은 그제야 어벙한 소리를 내며 우르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달아났다.
오직 이사실만이 있는 18층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비서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이사실로 들어갔다. 내 뒤를 따라 이사실로 들어온 전정국이 거칠게 문을 닫으며 나를 벽으로 밀어붙여 대뜸 입을 맞춰왔다.
정국이가 삐졌나 보다.
아니면 화가 났든지.
전정국은 그렇게 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죄다 뜯어놓은 후에야 입을 때어냈다.
"사촌 동생이랑 이런 짓 하는 사촌 누나도 있어?"
"삐졌어?"
"삐진 게 아니라 나는,"
"나는?"
"나는 그냥.."
"....."
"..하, 씨발 좆같아서 진짜.."
전정국이 내게서 등을 돌려 나지막히 욕을 읖조렸다.
나는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서 전정국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해. 근데 그렇다고 거기서 애인 사이는 아닌데 그냥 같이 산다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잖아. 이해하지?"
"....."
"갔다와서 놀아줄게."
"....."
"비서누나 괴롭히지만 않을 거면 한 번 놀아달라고 해 봐. 심심하면 회사 돌아다녀도 되고. 대신 나 회의 끝나서 돌아왔을 땐 여기 있어야 해."
"......"
"그렇다고 아무데나 막 쏘다니지 말고."
"김탄소.."
"누나 갔다올게."
전정국은 갔다 오겠다는 내 말에 마지못해 몸을 돌려 나를 마주봤다.
여전히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주제에 가지말라는 애처로운 눈이라니,
참 귀여운 아이였다.
난 떼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떼어내 회의실로 향했다.
정국이가 얌전히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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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이는 19살
독자님들은 27살입니다!
무려 8살 차이네요
내일모레 서른으로 만들어버려서 죄송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