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고 말해 中
written SOW.
07.
술,고기,술,고기. 선배들이 나르는 짐은 그게 다였다. 간간이 보이는 만화책들만이 우리가 만화동아리라는 걸 상기시켜 주는듯 했다.
어제 장을 봤다는 이유로 짐나르기에서 제외된 나와 전정국, 박지민은 오늘 묵을 숙소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김여주 너, 지금 긴장하고 있지?"
"뭐?"
"하긴, 그럴만도 하지. 나같이 잘생긴 친구랑 나보다는 못하지만 잘생긴 친구 사이에 있으려니 얼마나 힘들겠어."
"말이 안 통하니까 이길 자신이 없다."
선배들을 부려먹는 호화를 누리니까 드디어 정신이 나간건가. 야자수가 박힌 여름남방을 입은 박지민이 저홀로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실제론 아직 초여름이라 저런 걸 입을 날씨는 아니었지만 일단 그는 그러했다.
하지만 박지민보다 더 미친건, 이 상황이었다. 어제 내게 고백아닌 고백을 한 전정국의 눈은 물론이고 옷자락을 보는 것도 민망했다.
이래서 오늘 밤에 술은 어떻게 먹나 싶었다. 술게임을 하면 당연히 눈을 마주할 수 밖에 없을텐데.
"너넨 쉬란다고 진짜 쉬냐. 아오 씨발 힘들어 뒤지겠네."
"선배가 쉬라고 했잖아요."
"어떤 선배가."
"민윤기 선배가요."
"‥."
윤기 선배는 자기가 안 그랬다는 표정을 짓고 있긴 했는데, 귀 끝이 빨개진 걸 보면 민망했나보다.
애써 못본척을 하며 이제 뭐하냐고 묻는 남준선배에 박지민이 당연하다는 듯 외쳤다.
"수영하러 가야죠! 지금 온도가 절정으로 치닫는 시간인 2시네요, 딱 좋네."
"‥야 수영장 있다는 말은 안 했잖아."
"그냥 아무거나 입어. 니 지금 입은거 입고 들어가면 되겠네. 왜, 비키니라도 입으려고 했냐?"
"미친놈."
왜 비키니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안되는 소릴하는 박지민에 하마터면 니킥이 날아갈 뻔했다.
중간에 전정국이 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 잠깐 전정국이 왜 내 앞에 있는건데?
"옷, 안 가져왔어?"
"아,응. 내일 갈아입을거만 챙겨와서."
"내 옷 빌려줘?"
"어?"
"2박3일인 줄 알고 하나 더 가져와서. 치수도 좀 작고."
"빌려주면 나야 땡큐지! 고마워."
고맙다는 내 말에 수줍은 듯이 웃은 전정국에 몸이 굳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부끄러웠다. 내 또래 남자아이가 날 좋아한다는 것도 민망하고
이런 애정을 받는다는게 너무 익숙하지가 않아서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이 아이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 괴로웠다.
전정국은 나와는 다르게 너무 반짝반짝 빛나서인가.
08.
"부르스타 여기에 꽂는다?"
"(이미 들어옴)"
"형, 튜브 거의 다 됬어요."
"그래? 다 되면 나한테 던져줘."
난리 난리 난리부르스였다. 벌써부터 고기 구울 준비하는 호석선배나, 벌써 수영장에 들어가서 놀고 있는
박지민이랑 남준선배랑 숙소에서 잘 줄 알았더니 신나서 놀고있는 윤기선배. 그리고 윤기선배의 노예가 되버린 전정국까지.
전정국의 큰 박스티를 입고 나와서 힙합st인 내가 정상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진정 20살이 넘은 남자들이 맞는것인가.
호석선배의 손에서 부르스타를 멀리 떨어트려논 다음 석진선배를 찾았다. 요리는 석진선배에게 맡겨야 화재가 안 날테니까.
"석진선배는?"
"몰라. 여주가 오빠가 한다니까?"
"호석선배는 진짜 믿음 안가요."
"응..미안.."
"알면 그냥 수영장가서 노세요. 제가 할게요."
작년 MT 때 숙소 불태워먹을 뻔한 사건은 까마귀고기해서 드셨는지 자꾸 불을 맡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한숨부터 나왔다.
6명이나 되는 남자들이랑 와서 무슨 호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순순히 끌려왔는지.
그래도 믿을만한 사람은 석진선배 뿐 이었는데,
"김남준!!!!!!!!!!!!!!!!!!!!!!!!!!!!! 나의 드라이브 B를 받아라!!!!!!!!!!!!!!!!!!!!!!!!!"
그냥 인생을 포기하기로 했다.
"야, 박지민 너 수영 못하냐?"
"아, 할 수 있거든!"
"못하네."
"너도 못해서 튜브끼는거잖아!"
"아닌데."
"그럼 수영하는걸로 뜨던가! (쒸익쒸익)"
"그러던가."
수영장에 발만 담구고 있는 내게 튜브를 씌워준 전정국이 얕은물에 있는 박지민을 끌고 깊은 곳까지 왔다.
흥미진진한 상황에 그냥 웃으며 즐기고 있었는데, 나도 놀고 싶어서 튜브를 벗고 들어가려고 하자 박지민을 내팽겨치고 순식간에
내앞으로 헤엄쳐온 전정국에 기절할 뻔 했다.
"들어올꺼야?"
"응, 왜."
"그, 너‥."
"응?"
"물에 젖으면, 보일거아니야."
"아, 헐."
그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나의 소중한 라인이 보일 것이라는 걸. 물론 라인이라고 해봤자 D라인이겠지만,
남자친구마냥 그런 것 까지 챙겨주는 전정국에 또 지랄맞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 앞에는 나보다 더 소중한 라인을 드러내고 있는
전정국의 탄탄한 몸이 아른거렸다. 무슨 21살 남자애 몸이 이렇게 좋아? 하필이면 물에 젖어서 속살까지 은은하게 비치는데,
변태 ‥ 같나? (누군가의 '매력 ‥ 있나? 가 떠오르지만 접기로 하자.)
"튜브 빼지말고 있어. 나중에 겉옷 가져다 줄게."
"응, 고마워."
그렇게 듬직하게 말하곤 내가 수영장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있는 전정국에 정말 내가 연애라는 걸 해도 되나 싶었다.
연애하면, 더 잘해주려나. 사귀지도 않는데 벌써 머릿속에선 별의별 생각이 섞여 결혼까지 갈 기세였다.
"아, 전정국 뒤진다, 진짜!"
전정국에게 내팽겨쳐지더니 빠졌다가 나왔나보다. 근데 너의 야자수 남방은 왜 벗은거니? 눈이 썩어들어가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토하는 시늉을 하자 전정국이 손으로 내 눈을 친절히 가려주셨다. 저런거 보지마, 지지야.
지지래. 나이가 몇인데 지지라니. 아, 이런것까지 귀여워보이면 난 이미 전정국을 좋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좋아하는거 같다.
09.
첫 잔은 원샷이지. 그치 여주야? 내게 능글맞게 묻는 석진선배에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샷으로 먹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먹일 기세였다. 그리고 음식만큼 술도 많이 먹는 석진선배 앞에서 나댔다가는 아침에 낙서가 잔뜩 그려져있을게 뻔했다.
"야, 아서라. 쟤 맛가면 피곤한건 우리다."
"아, 제가 뭘요!"
"너 취하면 겁나 치대잖아. 귀찮아."
"왜요, 형. 나름 귀엽잖아요."
"역시, 남준센빠이."
"이제 오빠라고 부를 때도 되지 않았냐? 무슨 선배야, 선배는."
오빠라니, 친오빠한테도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 내게 거는 기대가 많은듯 싶었다. 호석선배는 오빠라고 부를만 한데,
나머지는 영 ‥.
"나한테도 오빠라고 불러주는고얌?"
"? 석진 선배, 얘 언제부터 먹었어요?"
"고기 굽기 전부터."
내 핸드폰에 저장된 박지민의 이름이 뭔지 아는가? 바로 박취개다. 박지민은 취하면 개가된다의 줄임말로써,
지금과 같은 개같은 말을 자주 던지는 '개'가 된다. 술에 취하면 지가 귀여운 줄 알아서 피곤함이 두 배가 되는데,
이럴 땐 같이 취해주는게 상책이다.
"호석오빠, 저 술 좀."
"헐, 오빠래! 형, 봤어요? 여주가 저보고 오빠래요!"
"와, 좋겠다."
아마 윤기 선배는 술을 먹으러 온 듯 싶은데, 분위기 파악 못하는 호석선배가 자꾸 말 시켜서 귀찮은 듯 싶었다.
석진 선배와 윤기 선배의 술을 주고 받는 모습은 흡사 왕을 음해하려는 술자리 같았다. 한 마디로 겁나 음침했다는 소리.
"히히 우리 왕게임해여! 왕게임! 찌미니가 번호표 만들어써염! 윤기형이랑 석찌니형만 침침하잖아여!"
분위기 파악 못하는 새끼 하나 추가하겠다. 윤기선배랑 석진선배만 침침한게 아니라 이제 너의 눈도 침침하게 만들어 주고 싶구나 친구야.
'왕게임'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호석선배가 서둘러 게임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새내기때부터 좆같았던 나의 운은 내가 왕게임에 트라우마까지 생기게 했다.
OT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왕게임에서 단 한번도 왕을 해본적이 없었다. 정말 미친 운이다. 항상 벌주를 마시는 건 나였다.
왠지 오늘도 그럴 것 같은 느낌이 쎄하게 들었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아싸! 나 왕이다! 1번 2번 ‥."
"첫판은 가볍게 뽀뽀로 시작해여!"
"뽀뽀!"
"‥."
"헐, 윤기형 2번! 1번 누구냐 1번!"
"‥전데요."
"여주? 아 좋다! 여주가 있어서 다행이다. 뽀뽀해! 뽀뽀ㅎ ‥!"
윤기 선배랑 나라니 ; 온 몸으로 내가 거부하고 있는게 보이지 않는건지 호석선배는 발갛게 취한 얼굴로 뽀뽀해!를 연달아 외쳐댔다.
아; 죽일까. 윤기선배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살며시 저었는데, 석진선배가 탄 벌주를 보고는 내게 미안하다며 다가왔다.
"아, 슨배? 벌주! 제가 마실테니깐..!"
"너 저거 먹으면 내일 하루종일 못 일어나."
"으, 제발."
"저! 제가 흑기사할게요!"
전정국의 흑기사발언에 박지민과 호석선배가 더 흥분했다. 오, 전정국 선수! 그럼 여주랑 뽀뽀하나요!
그 말에 저절로 몸이 경직된 내가 전정국만 바라보고 있자 전정국이 고개를 반대로 틀더니,
"? 방금 뭐‥."
윤기선배한테, 뽀뽀했다.
10.
전정국이 윤기선배한테 뽀뽀한 후, 윤기선배는 별의별 육두문자를 날리며 술자리를 떴고, 석진선배는 술맛 떨어졌다면서 남준선배를 데리고
다시 수영장으로 가버렸다. 그 뒤를 따르려던 박지민과 호석선배를 끌어다가 숙소에 넣곤 전정국과 둘이 파탄난 술자리를 치우고 있었다.
아까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흘끔흘끔 전정국을 보며 웃자 전정국이 그냥 크게 웃어도 된다며 해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난 나한테 할 줄 알았어. 근데 윤기 선배라니, 진짜 대박이다 너."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떨려죽겠는데."
* * *
"뭐? 전정국이 널 좋아한다고?"
"응."
"지랄하지마, 걔가 뭐가 부족해서 널 좋아해. 걔 아직도 차석이니?"
"응."
"나같으면 맨날 지 1등자리 막는 너 싫어할 거 같은데, 정말 전에 만난 적 없어?"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전정국이라는 이름을 내 머리에 넣어 본 적이 없다고."
MT날 이후, 나와 전정국은 친구도, 연인사이도 아닌 애매한 관계로 남아버렸다. 전정국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뒷정리를 도와주려는 석진선배와 남준선배가 오는 바람에 뭐라 대꾸할 새도 없이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다.
그렇다고 사이가 서먹해진건 아니었다. 간간이 학식도 같이 먹었고, 교양이랑 전공도 같이 들었으니까.
나와 지금 얘기하는 친구는 손승완. 나를 만화동아리에 넣고는 저 홀로 휴학해버린 나의 유일한 여자사람친구였다.
캐나다로 배낭여행 갔다더니, 중간에 고추장 맛이 너무 그리워서 귀국했단다.
"뭐 너 고등학교 동창이라던가."
"나 2학년 올라가기도 전에 자퇴했잖아."
"졸업앨범 보긴 글렀네."
"고등학교 때 친구없어서 빌려볼 친구도 없어."
"아! 너네 동창회 안하냐?"
"‥동창회?"
"동창회 할 때 가서 전정국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고 나오면 되겠네."
"귀찮아."
"난 가끔 니가 어떻게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지 탐구해보고 싶어."
"‥니가 대신 가주면 안돼?"
"응, 안돼."
궁금하긴 궁금했지만, 굳이 동창회에 가야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냥 전정국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는거 아닌가.
그래, 전정국한테 직접 물어봐야겠다.
11.
동방에 들어갔더니 보이는건 오늘 공강인 석진선배를 제외한 모두였다. 아니, 이 사람들은 학교에 만화 읽으러 오나.
전정국에게 다가가 저번에 빌린 택시비를 손에 쥐여주곤 박지민 소파에 걸터앉은 박지민 어깨에 기대선 이번 조별과제는 망했다고 칭얼대고 있었는데,
전정국이 만화책을 접곤 제 어깨를 툭툭 치는거 아닌가.
"왜."
"거기말고, 여기."
"응?"
"여기 기대라고."
"아,응."
제대로 심쿵당했다. 아니, 저렇게 무심하게 말할건 또 뭐람. 괜히 감정을 들킨 것 같아 어깨에 기대진 않고 전정국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 전정국!"
"어?"
"너 고등학교 어디 나왔어?"
"XX고."
"아, 그래?"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OO고등학교였다. XX고는 이 대학교 근처아니던가. 하긴, 그럼 그렇지. 전정국이랑 내가 같은 고등학교였으면
뭐 운명이게?
"전정국, 너 소개팅 나갈래?"
"네?"
"내 동기가 너 좀 소개시켜달래. 왜, 싫어? 뭐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냐?"
왜 그 말을 하면서 나를 쳐다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호석선배가 나를 보며 씨익 웃길래 나도 씨익 웃어줬다.
웃는 내 표정을 보며 썩은콩같이 표정을 굳힌 선배가 다시 전정국을 바라봤다. 할래, 말래. 사진 보여줘?
"사진, 있어요?"
"어, 톡으로 보냈어."
사진을 확인하는 전정국에게 달려간 박지민이 사진을 보고선 대박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야, 유아교육과 선재누나 아니야? 대박."
선재언니라면, 호석선배의 동기며 청순의 끝판왕 아니던가. 선재언니와는 안면은 있는 사이였다. 호석선배와 워낙 친한친구여서
자주 동방에 놀러오기도 했는데, 언니도 만화를 좋아해서 가끔 둘이 카페가서 놀곤했었다. 지금도 친하긴 하지만 연락을 귀찮아하는
내 성격에 언니도 연락하길 포기한거 같다.
"예쁘지? 소개 받을래?"
"예쁘시네요."
"그럼 지금 걔 오라고 한다? 여주도 얘 알지?"
"아, 알죠! 선재언니 진짜 예쁘잖아요."
"‥나 소개팅 나가?"
"어?"
"니 소개팅 나가는걸 왜 김여주한테 물어. 당연히 나가야지 새꺄! 나같으면 만나달라고 했다."
"여주야, 나 소개팅 나가?"
"어? 네 마음대로 해 ‥."
"‥."
전정국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나보단 선재언니가 훨씬 나았다. 내가 예쁘길 예뻐,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뭐 잘하는게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전정국 옆자리는 나같은게 어울리지 않았다. 근데 전정국 표정은 나가지 말라고 붙잡아 달라는 것 처럼 보이지.
"그럼 우리 정구기! 형 약속 잡는다? 내일 4시, 교문 앞이 좋겠다. 그치?"
"네."
"여주야, 그치?"
"네? 아, 네."
"김여주, 잠깐 나와봐."
"? 응."
+)
여주와 정국이 나간 후, 동방에 남은 아이들은 모두 호석에게 엄지를 치켜 올렸다. 넌 천재야.
"전정국이 김여주 좋아하는거 같지?"
"네, 맞는거 같은데요."
"빼박이야, 저 정도면. 김여주는 눈치를 못 채는거야?"
"ㄴㄴ 눈치 챘어 백퍼. 근데 쟤 또 자기는 예쁘지 않다느니, 뭐가 부족하다느니같은 병신같은 걸로 고민하고 있겠지."
그렇다. 정국이 여주를 좋아한다는 것쯤은 한 시간만 같이 있어도 눈치 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눈에 꿀이 떨어지도록 쳐다보는데 눈치 못채는게 바보일 정도로 정국은 나름 자신이 좋아하는 걸 티내고 있었다.
그걸 눈치챈 호석이 소개팅을 제안한건데, 여주는 질투하기는 커녕 아주 밝은 표정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속이 탈 수 밖에. 아, 물론 가장 속 탈 사람은 정국이겠지만.
12.
정국은 여주를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자판기 앞 의자에 모셔두곤 한숨만 내뱉는 중이었다. 분명 자신은 좋아한다고 직접 말한걸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평온할 수가 있는건지. 자신은 여주가 지민과 친하다는 것도 짜증나는데, 여주는 자신이 다른 여자와 놀아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아 화가 난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면 제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보이는 여주가 미운거지만.
하지만 곧 제 이름을 부르는 여주에 90%는 풀어져버린게 함정이었다.
"정국아, 왜?"
"왜라니, 여주야 나는."
"알아, 너 나 좋아하는거."
"‥."
여주의 담담한 말에 풀이 죽는 건 정국이었다. 마음이 무거운 사람이 을이라더니, 그게 맞는 말이었다.
자신과 여주의 관계에서 갑은 여주, 을은 자신이었다. 그냥 잠자코 여주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수 밖에.
"네가 나 좋아해주는건 정말 좋아."
"응."
"근데 너랑 나는 안 어울려."
"뭐?"
"선재언니가 너랑 더 잘 어울ㄹ‥."
"그래서."
"어? 그러니까 소개팅 나가라고."
"넌 내가 다른 여자랑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
"난 네가 나 안 좋아한다고 해도 계속 기다릴 자신 있어."
"‥."
"넌 기억 못하겠지만, 난 너 좋아한지 4년 됬어."
"어?"
"가볍게 좋아하는거, 아니야 .다른 사람말고, 네 마음은 어떠냐고."
"아니, 정국아."
"진짜 한 번만 더 소개팅같은 거 나가라고 하면 죽는다."
"‥응."
.
.
..
.
아 한 편안에 끝낼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애매한 곳에서 끊어버리네여...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약속은 지킴! 오늘 안에는 올렸ㅇ... 아니에여 죄송해여.... 내일 下편으로 찾아옵니다! 혹시 보면서 뭐 떠오르신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여! 달달한 일을 못 겪어봐서 적기가 너무 힘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