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정국에 뷔 예보
회상 完
정국은 상처를 치료할 새도 없이 옷가지들을 가방 속으로 밀어넣었다. 멀쩡한 옷들에도 피가 묻어 얼룩져 버리고, 그치길 바라는 눈물은 제 바람을 무시라도 하듯 계속해서 새어나왔다. 진열대에 놓여진 상들을 보다 마구자비로 던지고 무너트렸다. 집 안에는 온통 정국의 비명 소리를 가득했다. 그 때 정국이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고, 아버지는 묵묵히 정국의 소리들을 새겨 들을 뿐이었다. 하나하나, 비수가 되어 꼽혀왔다. 사랑스러운 아들이었고,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며칠 전 정국의 뺨을 때린 후에도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소중한 아들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신경써주지 못한 어린 날의 정국이 아팠다. 그래서 잡을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이미 늦은 것을 알았기에. 얼굴에 멍이 들어 왔을 때면 넘어졌다고 핑계를 대며 자리를 피하려고 하던 그 어린 아이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기울였더라면. 가끔 남은 시간에 학원을 데려다주다 바깥 풍경에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걷는 아이들을 부럽게 쳐다보는 그 어린 아이에게 조금만 더 사랑을 주었더라면. 동물원, 놀이동산. 그게 너무 큰 거라면 그 작은 놀이터라도 데려가 주었더라면, 아이는 조금 더 행복하게 자랄 수 있었을까. 사랑 받는 아이라고 느낄 수 있었을까. 후회한다고 느꼈을 땐, 너무나도 늦어버린 후였다.
정국에겐 자그마한 자취방이 생겼다. 비록 그 집에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꼬박 하루도 안 되지만. 전학 수속을 밟은 학교 또한 잘 나가지 않았다. PC방. 정국에겐 생소한 장소였다. 얼핏 지나가다 보이는 간판. 혹은 또래 남자 아이들 입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였지만 저가 가볼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PC방에 들어가 무턱대고 자리에 앉았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었다.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시간만 허비할 뿐이었다. 1,000원을 지불한 뒤 PC방을 벗어나다 들어오려는 무리들 중 하나와 보기 좋게 부딪히고 말았다. 사과도 없이 나가려는 정국을 어깨를 잡아챈 무리들은 정국을 훑었다. 손목에 감긴 붕대와 볼에 붙혀진 반창고가 제법 불량스러워 보였다. 그에 헛웃음을 치며 정국을 어깨죽지를 툭툭 쳤다.
" 너 뭐냐? 처음 보는 새낀데,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해야지. 싸가지 없는 새끼가. "
" ……. "
" 어쭈, 이 새끼 봐라? 대답도 안 해? "
" ……. "
" 아, 시발. 간만에 또 사람 빡치게 하네. "
정국을 머리채를 잡아끈 놈들은 PC방을 나와 사람없이 한적한 골목으로 질질 끌었다. 바닥으로 내팽겨친 후 여러명이 정국을 둘러 싸 발길질을 해댔다. 아직 낫지 못한 상처들이 아렸다만, 정국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총대를 매 정국을 패기 시작하던 놈은 끈질지게 입을 다문 정국을 보며 도로 열이 받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정국을 한 대 더 걷어찬 뒤 골목을 벗어났다.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달뜬 숨을 내뱉던 정국이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바닥에 몸이 엎어졌다. 시발. 여기서나 저기서나……. 주먹을 쥐고 있던 정국의 앞에 누군가 손을 뻗었다.
" 개 병신 새끼. 내 살면서 이런 병신은 또 처음 보네. 야, 잡고 일어나. "
" ……. "
" 물론 저런 새끼들한테 사과하면 더 길길이 날뛰면서 좋아라 팰 새끼들이다만, 반응 없는 놈들은 더 열받게 하는 거 모르냐? 알만한 새끼가. "
" ……. "
" 아. 빨리 잡아, 팔 아퍼. "
제 앞에 뻗어진 손을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정국이 답답했던 것인지 그의 팔뚝을 잡아 일으켰다. 그제서야 인상을 찌푸리며 제 배를 감싸 신음을 내뱉는 정국에 혀를 끌끌 찼다.
" 난 김태형. "
" ……. "
" 네 성격이 존나 병신같은데 또 마음에 드네. 이건 친구하자는 뜻이야. "
" ……친구? "
" 왜. 싫냐? 싫어도 해야 돼. 내가 너 마음에 들었으니까. "
김태형. 태형이랬다. 친구라는 그 생소한 단어를 난생 처음보는 저에게 그렇게 쉽게 입에 담은 태형이 신기했다.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몰랐던 정국에게는 신기하기도, 부럽기도했다. 아니, 그냥 태형의 모든 게 신기하고 부러웠다. 태형의 손에 이끌려 태형의 집으로 갔을 때 제 몰골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고 어서 오라며 환하게 웃어 반겨주는 그의 어머니와 태형이 친구를 데려오는 게 얼마만이냐며 다정한 손길로 어깨를 토닥여주는 그의 아버지도, 제겐 모든 게 신기했고, 부러웠다. 주책맞게 흐르려는 눈물을 애써 삼켰다. 제 방으로 끌고 들어와 침대에 앉혀두고 서랍을 뒤지면 약을 찾아 정국의 옆에 앉은 태형은 두 눈을 똥그랗게 떴다.
" ……야, 울어? 우리 엄마 아빠가 너무 부담스럽게 해서 그러냐? 아니, 이 아줌마 아저씨를 그냥! "
" ……. "
" 나 달래는 거 못 해. 생긴 건 안 그래서 왜 질질 짜고 지랄이야? 안 어울리게. "
" ……. "
" 얼굴이나 쳐 들어 봐. 치료하게. "
치료랄 것도 없이 손가락에 후시딘을 짜 바르고 밴드를 붙히는 게 다였다. 근데, 그 손길 마저도 처음이라, 그 손길 마저도 너무 좋아서, 그 손길 마저도 너무 따뜻해서. 정국은 태형의 옷깃을 잡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어릴 적, 제가 눈물을 흘리면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눈물이 날 것 같으면 늘 허벅지를 꼬집으며 입술을 꾹 깨물고 참곤 했다. 울지 말자. 미움 받지 말자. 정국은 입술을 꾹 깨문 채 서럽게 눈물을 떨궜다. 태형은 후시딘을 짜다 말고 그런 정국을 바라보기만 했다. 눈물이 그칠 때까지. 한숨 푹 내쉰 태형이 후시딘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두곤 침대에 풀썩 누웠다.
"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귀가 뭔지 아냐? "
" ……. "
" 잡아 먹히느니, 잡아 먹겠다. "
" ……. "
" 이게 좀 잔인할진 몰라도 난 이 글귀가 그렇게나 좋더라. 음, 약간 공감이 된다고 해야 하나? "
" ……. "
" 근데 가만보니 이 글귀에는 네가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잡아 먹히지 마. 잡아 먹을 수 있는 거라면, 네가 잡아 먹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넌. "
" ……. "
" 그래서 처음 본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귀에 제일 잘 어울리는 너라서. "
어느 새 눈물을 그쳐가던 정국이 태형을 바라보았다. 눈가가 벌건 채 아직 추스르지 못한 감정 탓에 들썩이는 몸의 정국은, 아직 어렸고, 또 여렸다. 내가 또 다시,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내놓아도 괜찮을까. 내가 또 다시, 믿었던 누군가에게 버림 받지는 않을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어리고 여린 정국은 그렇게 서툴게 뻗은 태형의 손을 덥썩 잡았다. 구원의 손길을 내민, 내 구원자.
* * *
정국은 학교를 다니기로 마음 먹었다. 태형이 다니던 학교였다. 정국을 만나기 일주일 전 자퇴서를 내고 가출 중이었으나, 정국 덕에 집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집 나간 아들을 반겨주는 것치곤 매우 밝은 부모님들이었으나 말이다. 정국의 제 자취방보다 태형의 집에 있는 날들이 더 많았다. 그에 싫은 티 하나 없이 착한 아들 하나 더 생겼다며 좋아해주셨다. 이런 게 가족의 행복일까. 다정한 말들에 정국은 웃었다. 어머니와 투닥거리는 모습, 아버지와 장기를 두다 짜증을 내는 모습도, 영락없는 고등학생의 평범한 가정의 아들이었다. 한 때 꿈꾸었던 그 모습에 저도 스며들고 있었다. 행복하고 싶었다. ……행복했다.
" 학교가냐? 그냥 계속 다니지 말지. 아님 내일 가면 안 되냐? 오늘은 나랑 노는 게 네 신상에 좋을 텐데. "
" 좆 까. 너도 복학이나 하든지. 어머니 애 좀 작작 먹이고. "
" 엄마가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 미친아. 애 먹여도 좋아해 줘. 틱틱 대는 거 울 엄마 애정표현이야. "
" ……알아, 병신아. "
밤만 되면 혼자 잘 잠들지 못하는 걸 알던 태형이 고분고분 정국의 자취방으로 달려와 같이 자주었다. 교복을 입고 있는 정국을 아니꼽게 바라보던 태형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까치가 집을 지은 것 마냥 머리가 산발인 것도 모르는 채 자세를 잡고 허공에 주먹을 휙휙 날려댔다. 넥타이를 매다 말고 설쳐대는 태형을 보던 정국이 먼지 난다며 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쩝, 입을 다신 태형이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 저번에 PC방 뒤에서 너 개 패던 새끼있지. 그 새끼 같은 학교다, 너랑. "
" ……. "
" 알지? 잡아 먹히느니, 잡아 먹겠다. 가서 휩쓸고 다녀라. 찌질이 되는 것보단 짱 먹는 게 나아, 인마. "
" 미친 새끼. 좋은 거 가르친다. "
" 어차피 너 걔 만나면 반 죽여놓을 거 아니였냐? 나 패는 것처럼만 패도 전치 4주 식은 죽 먹기다. "
" 나대지 말고. 나 갔다 올 동안에도 집 구석 이 꼬라지면 뒤져. "
" 지랄? 너도 같이 어지러놓고 왜 내가 치워, 시발아. "
" 안 치워놓고 있어 보던가, 어디. "
노발대발 소리를 질러대는 태형을 뒤로 하고 정국은 가방을 울러맨 채 집을 나오는 정국은, 미소를 걸쳤다. 오랜만이었다. 학교가는 길도, 등교하고 있는 아이들도, 예쁘게 웃던 탄소의 모습도 겹쳐보였다. 버스 맨 뒷자리에 몸을 실어 앉고서 창가에 머리를 기대었다. 미웠고, 싫었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서, 내 머리 속에서 영영 사라졌으면 했다.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어졌으면 했다. 지나가다 마주쳐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칠 수 있게.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자꾸 생각나는 걸 보면 내게 너는 차마 말로 형용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존재였나 보다. 정국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을 미련한 새끼라 칭하며.
" 그래, 한 번 사는 인생, 시발 나도 좆같이 한 번 살아보자. "
태형이 늘 입에 달고 사는 소리였다. 한 번 사는 인생 좆같이 살자고. 그 말을 내뱉는 태형을 늘 한심하게 바라보던 저의 모습이 생각났다. 허나, 아무래도 그런 인생이 저가 살아가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을 했다. 그래, 잡아 먹히느니 잡아 먹겠다. 태형이 말했던 글귀는 제법 잔인할 수도 무서울 수도 있는 말이었다만, 평생을 잡아 먹히며 살아왔던 삶이었다. 이젠, 내가 잡아 먹을 수 있길 바랐다.
* * *
역시나 학교에서는 그 학교를 휘어잡을 법한 우두머리 하나씩은 존재했다. 이 학교에는 아무래도 아침에 태형의 입에서 나온 정국을 무자비하게 밟던 그 놈인 것 같았다. 재수도 옴팡지게 없다고, 하필 같은 반이 되는 덕에 보기 좋게 시비가 걸렸다. 선생의 소개가 끝나자 자리로 간 정국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녀석은 선생이 나가기만 기다렸던 것 같다. 교실 문이 닫히고, 선생의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때가 되서야 정국의 앞으로 다가온 놈이 정국의 뒷통수를 때렸다. 앞으로 꼬꾸라진 고개가 한참동안 들리지 않았다. 그 때도 교실 안은 정적이었다. 누구 하나 말릴 수 없이 그것을 구경했다. 전학생을 아는 것을 신기해 할 틈도 없이 새 타깃이 된 정국을 불쌍하게 바라보았다. 반응이 없자 열이 받은 그가 정국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고 두 눈을 마주쳤다.
" 이 새끼가 여전히 말이 없네. 저번에 쳐 맞을 걸로는 안 되겠어? 더 패줘? "
" ……. "
" 대답 안 해? "
" 놔, 시발 새끼야. "
" ……뭐? "
" 놓으라고. "
정국의 욕지거리가 내뱉어지자 머리채를 잡고 있던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명 며칠 전 저가 때릴 때는 한마디도 내뱉지 않던 놈이 지금와서야 이런 식으로 나오니 황당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을 주어 끌어당겼고, 정국은 잡아끄는대로 몸을 일으켰다. 눈높이가 같아 지고나서야 정국의 주먹이 그의 뺨을 갈겼다. 그대로 옆으로 떨어져나간 놈이 제 볼을 감싸곤 헛웃음을 치며 정국을 올려다 보았다. 정국은 제 뒷머리를 만지며 머리칼을 정리할 뿐이었다.
" 미친 새끼가…. "
" 난 너 같은 새끼들이 제일 싫어. "
" ……. "
" 할 줄 아는 거라곤 쥐뿔도 없는 놈들이 지 밑에 있는 놈들 우습게 보고 깝치다, 결국은 그렇게 깔보던 놈들보다 못한 새끼들인 거. "
" 너, 시발. "
" 왜. 치게? 어디 한 번 쳐 봐, 시발. 내가 아주 개같이 다뤄줄 테니까. "
그 말을 끝으로 정국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을 죽어라 팼다. 발버둥을 치던 놈도, 어느 새 저항도 없이 그 주먹에 힘 없이 얼굴을 내어주고 있어야 했다. 정국의 오로라는 차마 다가갈 수도 없이 매서웠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베어질 정도로. 손을 털며 일어난 정국은 제 머리를 걸치게 쓸어올렸다. 그리곤 주위를 훑었다. 저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받아보는 시선이었다.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이런 시선을 받으면서 우월감에 취해 살아갔구나, 네 새끼는. 정국은 끝내 녀석에게 닿지 못할 그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 더러운 새끼. "
밑에 엎어져 있던 놈의 배를 걷어차곤 교실을 벗어났다. 이제 정국은 저가 그렇게도 싫어하고 증오하던 놈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제가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또 똑같은 굴레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저를, 지키기 위해.
* * *
여러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 나 진짜 눈물 날 것 같아,, 저 두부 먹고 오는 길이에여. 무려 일주일 넘도록 오지 못한 저ㅜㅜ
얼마나 오고 싶었는지 아시나요?! 덕분에 소재들도 마구마구 생각해 놓았답니다^^,, 저 벌써 잊으신 건 아니게쪼..? (눈물)(흙흙)(자갈,)
쨋든 결론은 제가 여러분을 많이 보고 싶었다는 말입니다.. 요 며칠 너무 추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주말엔 알바에 찌들려 몸살 걸리고..
바쁘게 현생에 치이다가 왔답니다, 글을 못 쓰는 동안! 안 쓴 거 아닙니다! 못 쓴 거예요ㅠㅠ!! 그리고 양아치도 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 얼른 알콩달콩(?) 만들어 주고 다음 글을 쓰고 싶어요! (두근두근) 아마 소재는 퐌톼지 혹은 새드물이 아닐까 싶습니댜...(뉴뉴슴)
그리고 내일 이때까지 올린 브금과 암호닉 신청을 받으러 올 테니 아직 신청 못 하신 분들 조금만 기달려주세용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