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겨울
02 下
w. Un Bel Viso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을 앓아누웠었다.
뭘 먹을수도, 뭔가를 할수도 없이 그저 누워있다가 울고 지쳐 잠들기를 반복했다.
나와 똑같이 힘들었을 언니는 오히려 그런 나를 챙기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언니에게서 재현이의 소식은 간간이 들었다.
다행히 재진이가 떠나가기 전 마지막 모습은 볼 수 있었다는 것과,
재진이가 그 때까지 고사리 손에 꼭 쥐고 놓지 않았던 것은 윤이의 나비모양 머리핀이었다는 것.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이상 재현이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졌다.
누구라도 먼저 서로에게 연락할 용기가 있었다면, 그래서 서로를 안아주고 위로해줄 수 있었다면.
그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상처가 누구의 것보다 더 클 것이라 생각해서,
이기적이어도 한참을 이기적이어서,
서로를 돌보는 일이 곧 자신을 돌보는 일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 채 서로를,
그리고 그 속의 우리를, 무참히 상처 속에 내던져 둔 채로 곪게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현이가 미국으로 떠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에 계신 재현이네 부모님께서 재현이를 돌아오라고 불렀다고 했다.
재현이는 부모님 얘기를 내게 꺼낼 때면 항상 지쳐보였다.
내 기억 속의 재현이네 부모님은 참 무심하고 이기적이셨다.
어릴 때부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부모님의 입맛대로 교육 받는 삶에 지쳐있던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만큼은 한국에서 자유롭게 다니게 해달라고 빌고 빌어서 거의 가출처럼 떠나와버린 한국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재진이는 방학 때 마다 형을 보러 삼촌과 함께 한국에 왔고, 윤이와 친해져 항상 여기저기를 놀러다녔다.
그런 재진이의 사고가 있은 후, 재현이네 부모님께서 재현이와 나 모두를 많이 원망하신다고 들었다.
아마 미국에 돌아간 재현이는 누구보다 외롭고, 힘들고, 어두울 것이었다.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재현이가 출국한다던 그 날 새벽,
재현이에게서 정말 오랜만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받은 문자 한 통에는
[ 헤어지자 ]
그 네 글자가 끝이었다.
서로가 얼만큼 괴로운지, 또 얼만큼 괜찮은지, 우리는 묻고 쓰다듬어줄 시간도 없이 서로를 떠나보냈다.
그 후 갖게 된 2년이라는 시간은, 내가 윤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후회없이 사랑해줬다고 믿게 했고,
누구보다 멍청하게 놓쳐야했던, 절대 누구보다 덜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만 몇백배로 증폭시켰다.
다시 만난 반가운 모습, 전처럼 나를 대하려는 너의 노력,
내가 감히,
내가 섣불리 그걸,
니가 날 다시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걸로 착각해도 될까?
애초에 원망 같은 건 없었던 걸로,
내가 그렇게 이해해버려도 될까?
--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자 그에 따른 감정들은 엉망진창으로 뒤섞여버렸다.
무거워진 머리를 베개 위로 던지듯이 침대에 쓰러져 누웠다.
다시 만나면, 다시 정재현에게 담배 피지 말라고 잔소리 해주는 강아지 같은 여자친구로 돌아가면,
이따금씩 서로를 보며 떠오르는 그리운 두 사람에 대해서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을까?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며 윤이도, 재진이도 딱 저럴 때인데, 하면서 쓴웃음이라도 지을 수 있게 될까?
그 때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도 모르게 방문 밖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 재현이 왔어? "
" 네, 삼촌은요? "
뭐야 안 온다면서 오긴 또 왔네, 참나...
... 사실은 목소리만 들어도 좋다.
재현이가 돌아와줘서 너무 좋다.
그렇게 싸가지 없게 네 글자로 우리 사이를 끝내놓고 떠나버렸지만,
혼자 남은 나를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한 추억들로 끈질기게 괴롭혀왔지만,
떠난 직후 1년 정도는 그를 떠올리는 것이 윤이와 재진이의 생각으로 이어져 고통스러웠지만,
그렇게 떠나버리지 말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모습이 그 때가 되게 하지는 말지,
하는 생각들로 미치도록 원망했지만.
사실 진짜로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우리가 행복하는 길이야말로, 이 길었던 서로의 방황을 끝내줄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 이불 속에서 윤이랑 손장난 치며 나눴던 대화 + |
『 언니, 언니는 그 오빠 어디가 그렇게 좋아? 』
『 웅...? 음, 그냥... 그냥 다정한 사람이라서 좋아. 착한 사람이라서. 』
『 언니도 착한 사람이니까 그 오빠가 정말 좋아하겠다. 언니 그 오빠랑 결혼할거야? 』
『 야, 좋다고 막 결혼하는 거 아니야! 성 윤, 너는 언니가 그 오빠랑 결혼했으면 좋겠어? 』
『 나는 언니가 행복한 게 좋으니깐. 언니는 그 오빠랑 있을 때 제일 행복해보여. 』
『 ... 언니가... 그래? 』
『 응, 언니. 큰 언니랑 내가 없어도 언니는 그 오빠가 행복하게 해줄거야. 언니, 그 오빠한테 꼭 시집 가. 알겠지? 』
『 시러어, 언니는 평-생 이수언니랑 윤이랑 살거야. 』
『 치이, 바보. 이수언니랑 내가 언니랑 평생 안 살아줄건데? 』
『 ㅋㅋㅋ 야, 성 윤!!! 너 진짜 그럴래? 일루와, 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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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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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오고 싶었는데, 몇 번이나 썼다가 엎었다가...ㅠㅠ 죄송해요 그리고 정성스런 댓글들 모두 정말 감사드려요 하나 하나 잘 보고 있어요!♥ 초록글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많이 부족한 거 아는데 그저 부끄럽고 TT 더 노력할게요 (๑و•̀Δ•́)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