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조금 늦었죠. 집에서 깜빡 잠이 들어가지구….”
“아냐. 방금 오픈했으니까 괜찮아.”
미쳤어. 침대에서 잠깐 졸아서 카페 오픈 시간에 20분이나 늦어버렸다. 때마침 세탁기 건조가 끝났다고 소리가 안 울렸으면 어쩔 뻔 했어. 숨을 고르며 사장님의 눈치를 보았다. 평소와는 달리 동글한 안경을 쓰지도 않았고, 앞머리를 내린 부스스한 머리는 가지런히 정리 되어 있다. 옷 스타일도 평소처럼 캐주얼한 차림이 아닌 깔끔한 흰 셔츠에 슬랙스를 입었다. 며칠 동안 봐 오던 사장님에게서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자 괜히 지각한 게 더 미안해진다. 약속이 있어 보이는데, 내가 늦게 와서 혹 사장님까지 약속에 늦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도 약속이 있는 건 아닌지 점심시간 까지 사장님은 깔끔한 차림으로 카페 한 구석에서 책을 읽으셨다. 웬만한 음료는 내 선에서 다 해결이 되고, 케이크 종류들은 쇼케이스에 전시 되어 있는 걸 빼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외관 하나 달라졌다고 사람 행동이 저렇게 까지 바뀌는 걸 보니 신기하기까지 한다. 평소 같았으면 주방에서 레시피 탐구를 한다면서 박혀 있거나, 내 옆에 서서 음료 만드는 걸 도와줄 텐데. 혹시 어제 일 때문에 화가 아직 안 풀린 건지, 쪽지로만 사과를 끝내는 건 좋지 못한 행동이었는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 점심 약속 있어서 나갔다 올게. 혼자 카페 잘 볼 수 있지?”
“네. 다녀오세요.”
이제 손님들이 막 들이닥칠 시간인데 사장님 없이 혼자 잘 볼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질 수는 없지만 무미건조하게 날 쳐다보는 사장님의 눈빛에 반박을 하지는 못했다. 일반 체인점이 아닌 카페라 손님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 혼자 처리하기에는 벅찼다. 주문이 밀려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손님이 깬 유리잔을 치우고, 더러워진 테이블을 정리하고 보니 어느덧 카페 안이 한산해 졌다. 카운터 의자에 앉아 카운터에 얼굴을 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돈 벌기 쉽지 않은 걸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여태까지 편하게 살아오긴 했구나. 한숨을 푹 내 쉬었다. 나 혼자 놔두고 가버린 사장님에게 서운하기도 하구. 잘못한 게 있긴 하지만 점심시간이 바쁘다는 거 알고 있으면서….
“저기요.”
“…아. 타르트 드릴까요?”
또 잠깐 졸았나 보다. 머리 위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 눈을 번쩍 뜬 후 자세를 바로 했다. 오늘은 마스크도 쓰지 않고, 모자도 쓰지 않은 채로 카페를 찾아온 이웃 남자에게 아직 잠이 덜 깬 채 물으니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잠에서 깨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곤 쇼케이스를 살펴보았다. 아, 냉장고에 있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
주방에 들어가니 앞치마를 메고 반죽을 하고 있는 사장님이 보인다. 언제 들어오셨지. 말을 걸려 했지만, 사장님 얼굴을 보니 더욱 차오르는 서운한 마음에 나를 보지도 않는 사장님을 흘기고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타르트가…. 여기 있네. 내 키 보다 더 높게 냉장고에 넣어져 있는 타르트를 까치발을 들어 조심스레 꺼내 들어 주방을 나왔다.
“…?”
“아, 여섯 개만 주세요.”
“저 정말 팬이에요! 작가님! 다음 작은 언제 나와요?”
“준비 중이에요. 좋아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타르트를 들고 나오니, 이웃 남자 손에는 분홍빛 책과 사인펜이 들려 있고, 그 앞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한명이 눈을 빛내며 남자에게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의아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이웃 남자는 내게 타르트를 여섯 개를 부탁했다. 뭐하는 사람인데 저러고 있는 거지 하는 내 궁금증은 여자 덕분에 풀렸고, 상자에 타르트를 옮기고 있던 나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무슨 작가지. 남자가 책에 사인을 마치고는 여자를 향해 싱긋 웃어주자, 여자는 감격에 찬 얼굴로 자신의 테이블로 돌아간다.
유명하신 분인가 봐요?”
“아, 그렇게 까지는 아니에요.”
“에이, 겸손할 필요는 없는데. 이웃 주민이 되게 유명한 작가인걸 알게 되니까, 제가 그 근처에 산다는 게 영광이네요.”
“하하. 잘 먹을게요.”
“네. 맛있게 드세요. 이웃 주민 작가님!”
진담 반, 농담 반 섞인 말들을 건네며 이웃 남자를 보내주니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헝클이면서 카페를 나간다. 머리를 헝클이는 건 버릇인 건가. 오늘도 말끔하게 입고 오셨네. 흰 반팔과 검은색 진을 입고 스니커즈를 신은 이웃 남자를 보다가, 사장님이 떠올랐다. 옷 색깔 매치가 비슷하네. 잊고 있던 사장님이 생각나 입술을 삐죽였다.
“알바하면서 연애질까지 하는 걸 봐 주는 사장님한테 언제까지 삐쳐 있을 거야? 우리 알바는?”
“네? 저 사장님한테 안 삐쳤…. 아, 그리고 저 연애질 한 거 아니거든요!”
“너 다 티내고 다녔는데, 아니라고 말하지는 말아라. 냉장고 문도 쾅 닫고, 쿵쿵거리면서 주방 나가고, 타르트 높은 데에 넣어놨다고 투덜투덜 대고. 이랬는데도 아니야?”
나도 모르게 투덜대고, 성질을 냈나보다. 감정 조절 못하는 거 티내는 것도 아니고. 호석이가 옆에서 입이 닳도록 하던 말이 문득 생각이 난다. 기분 안 좋으면 말을 하라고, 행동으로 표를 내서 옆에 있는 사람 눈치 보게 하지 말고. 고쳐야지 맨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 한 게 맞는데. 사장님한테 미안해져 반박하려고 열었던 입을 꾹 다물었다.
“죄송해요. 피곤해서 저도 모르게 틱틱 대고 다녔나 봐요. 어제 일도 죄송하고. 쪽지로만 사과를 해서 맘에 좀 걸렸거든요. 그래도 저 연애질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풉, 알겠어. 나도 어제 일은 미안해. 내가 들어가서 자라고 해 놓고….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해.”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하다 사장님께 제대로 된 사과를 했다. 약간 굳어 있던 표정이 풀리는 것을 보고 연애질을 한 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자, 그런 내가 웃겼는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고는 사장님도 나에게 사과를 하신다. 오해가 다 풀리자 편해진 마음에 사장님을 향해 활짝 웃어보였다.
“처음인 것 같은데.”
“뭐가요?”
“나한테 웃어 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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