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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를 하고 나서 제일 많이 느낀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 참 극과 극이라는 것이었다.
대중들은 유명한 연예인들에게 열광했지만 자신이 모르는 연예인들에게는 무심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말을 하는 연예인에게는 긍정의 표시를 던졌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말이 나오면 욕설을 퍼부었다.
자신들이 하는 일에는 관대했지만 연예인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냉정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아무런 설명없이 툭 던져놓은 논란글에는 자신들의 증거를 찾아서 신빙성을 더했지만
누군가가 열심히 자료를 모아서 정리해놓은 해명글에는 무심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유명 아이돌은 연애를 할까?
05
w. 복숭아 향기
리얼리티 첫방 날짜가 뒤로 미뤄졌다.
이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걸까, 너무하다고 말을 해야하는 걸까.
나는 멍한 표정으로 핸드폰 스크롤을 내렸다.
처음 올라온 기사에 댓글들은 끊임없이 업데이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제대로 하나하나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진흙탕이었다. 지금 댓글 상황들은.
회사에서는 바로 반박기사를 냈다.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양 쪽 의견 (그러니까 네 의견과 작업팀 슈가 즉 민윤기의 의견)을 다 들어봤지만 절대 이는 표절이 아니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처음에는 표절 문제로 시비를 가리자던 사람들은 점점 이상한 논쟁거리를 하나둘씩 들고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치열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네가 기억도 하지 못할 것 같은 지나가는 말 한 마디로 꼬투리를 잡는 사람도 있었고
너의 동창이라고 주장을 하며 네 과거사를 풀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스텝이라며 네가 대기실에서 걸그룹 멤버와 스킨십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실 이 때 조금 찔리긴 했는데 우리는 절대 대기실에서 스킨십을 한 적이 없으니 이건 지어낸 이야기가 틀림없었다.)
하다못해 우리 회사 연습생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들 문예창작과 나왔나봐.
하나하나 모두 읽어봤다던 김남준의 짧은 감상평이었다.
무슨 일인건지 민윤기에게 물어보자 대답은 의외로 빠르게 돌아왔다.
간단하게 말을 하자면 기사에서 주장을 하는 네가 했다는 표절의 대상은 민윤기의 가사와 비트였다.
민윤기가 슈가 라는 이름으로 낸 노래들 중 한 곡의 비트와 네가 작업을 했다고 알려진 네 노래의 비트가 같다는 것이었고
민윤기가 쓴 가사와 네가 쓴 가사가 비슷한 구절들이 몇 개 있다는 것이었다.
"비슷할 수 밖에."
"왜?"
"정호석 가사집이랑 내 가사집이랑 같았으니까."
"뭐?"
연습생 시절 노트 하나라도 아껴야 한다는 이유로 두 사람은 작사 노트를 공유하곤 했었다고 한다.
하도 두 사람이 떠오르는 가사만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노트에 끄적이다보니 작사 노트는 어디 부분이 네 것이고 어디 부분이 내 것인지 모를 정도로 복잡했다고 하고.
화근이라면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 작사노트에 있던 구절을 민윤기가 먼저 작사에 사용한지 모르고 네가 사용하기도 하고
반대로 네가 먼저 작사에 사용했던 구절을 민윤기가 모르고 사용하기도 했단다.
본인들도 그걸 지금 알았다고 하고.
비트 역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민윤기가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연습생 시절에 만들어놓은 비트를 정호석이 우연히 회사 컴퓨터에서 찾아내서 사용한 것이었다.
민윤기는 자기가 만든 거니까 usb에 있길래 오 괜찮네 하면서 사용했다고 하고.
이에 회사는 작업실이 같다보니 혼선이 빚어낸 실수 라는 말도 덧붙였었다.
하지만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은 이러했다.
정호석이 그런 가사를 썼다고? 아이돌 주제에?
마음만 같아서는 그 댓글을 쓴 사람을 찾아가 네 작업실에 처넣어버리고 싶었다.
얼마나 네가 작사를 할 때 몇날며칠을 고생하는지 눈으로 직접 보라고 말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그 댓글을 신고하는 것.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너는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전정국이 문 앞에서 울어도, 김석진이 소리를 질러도, 박지민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도, 김태형이 하염없이 기다려도 너는 나오지 않았다.
민윤기가 문 밑을 발로 차기까지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저 작업실 안에서 너는 나는 괜찮아. 라며 밝은 목소리로 말을 할 뿐이었다.
나는 작업실 문에 기대 쪼그려 앉았다.
방음 때문에 확실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너는 피아노를 두드리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피아노를 치는 걸까. 선율이 고르지 않았다. 드문드문 삑사리가 나기도 했다.
나는 문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네가 언제 문을 열고 나올지 몰랐다.
그렇게 하염없이 멍한 표정으로 연습실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닫혀있던 연습실 문이 열렸다.
김석진이었다.
김석진은 나를 보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러다 너 쓰러져."
"호석이도..."
"열쇠 아저씨 불러서라도 저 문 열거야."
"..."
"너는 언제 일어날건데?"
"호석이 나오면..."
"병신들."
김석진은 내 옆자리에 앉으며 혀를 끌끌 찼다.
나는 내 다리를 끌어안으며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잠시나마 들려오던 피아노 소리가 멈춰버렸다. 울고 있을까.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김석진이 내게 물병을 내밀었다.
나는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시고싶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너도 지금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는데...
목마르진 않을까. 배가 고프진 않을까.
"절절하다 아주."
"..."
"홉이도 홉이지만 너도 참 너야."
"오빠는..."
"뭐."
"나 안미워요?"
"네가 왜?"
나 아니었으면 네가 저렇게 힘들어 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잠시 힐끗 김석진을 바라보았다.
김석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푸스스 웃어보이다 내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마구 헝클어뜨렸다.
나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이잖아.
나 때문에 지금 네가 저렇게 피해를 보고 있다는 건.
"그게 중요한가?"
그럼요.
"그렇게 자책하고 있을 동안에 그 기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보는 게 더 낫지 않아?"
"아..."
"막말로 너희처럼 숨막히게 연애했던 애들이 어디있어."
주변에 뭐 이상한 일 없었어?
아.
있었다.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상한 일. 있었다.
-
"물건들만?"
"아직까지는요."
"최근에 없어진 거는 뭐야?"
"... 텀블러요."
"그 사람 변태는 아니지?"
"저야 모르죠. 왜요?"
상식적으로 정상은 아니잖아.
잘 때 쓰는 안대에 만날 네가 입에 달고 사는 텀블러에 네가 먹다 남은 물병에. 막말로 그걸 왜 가져가?
김석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내 물건들을 하나둘씩 가져간다는 거 자체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 생각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직 완전히 스토커다 라고 단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내 물건들을 가져간 사람이 한 사람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짐작가는 사람은 있지?"
"있어요."
"그런데 말 그대로 짐작일 뿐이고."
"그렇죠."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
"애매하네..."
애매했다.
모든게 애매하게 심증만 있고 물증은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하다못해 최기영이 최정연과 무슨 사이인지도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석진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작게 웃어보이며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물증이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니까.
"다녀올 곳이 생긴 거 같아요."
"어디?"
"있어요.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만나야 할 거 같은 사람."
"..."
김석진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 이내 손짓으로 나가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나는 푸스스 웃어보이며 연습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콜택시를 불렀다.
지금 내가 가려는 곳은 매니저 언니한테 부탁을 하기엔 아직 좀 그랬다.
-
인터넷 기사들 인기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원래 인터넷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었다. 한 번에 확 들끓었다가 한 번에 확 가라앉곤 했다.
네 팬들이 올려놓은 해명글은 조회수가 매우 처참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읽어봤지만 아직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회사에서 낸 기사를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한 거에 불과했으니까.
이 모든 사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었고 그 방법을 해낼 수 있는 자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민윤기가 직접 해명을 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내는 기사 뒤에 숨지 않고 직접 본인이 '슈가'임을 드러내면서.
그러면 이 진흙탕을 말끔하게 밀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민윤기의 옆에 가까이 있는 김남준 역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대중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달라.' 라고 부탁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형도 지금 생각 많은 거 같아.)
"..."
(호석이는?)
"아직 작업실 안에 있어."
(너는?)
"잠깐 볼 일 있어서 나왔고. 아. 알아봤어?"
(뭘? 아. 최기영?)
"응."
(너 근데 어떻게 알았어?)
"말하자면 길어. 알아봤어?"
(대충. 너무 깊게 알아보는 건 좀 무리라서.)
외국에서 살다 왔나봐.
외국으로 입양이 되었다가 지금 파양돼서 한국으로 돌아온 거래.
그 쪽 집안하고는 계속 연락하는 모양인 거 같고. 최씨는 입양 되기 전에 갖고 있던 성이라 그러고.
네가 말한대로 여동생이 있는지도 봤는데 우선 입양된 집에는 다른 아이가 없어.
혹시나 누나도 있나 찾아봤지만 역시 없었고.
입양 되기 전에 가족들은 어떤지 나오지 않아. 너무 어릴 때라 그런가봐.
입양이라...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예전 가족이 누군지 아직 정확히 모른다는 거지.
그렇다면 아직은 내가 여기에 온 것은 헛걸음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시계를 바라보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다시 한 번 벨소리가 울려댔다.
이번에는 민윤기였다.
(어디야?)
"볼 일 있어서."
(정호석은?)
"김남준이랑 똑같은 거 물어보네."
(...)
"민피디."
(왜.)
"나 진짜 미안한데."
(뭐.)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무슨 부탁.)
"..."
(야. 성이름.)
"어."
(네가 뭐 하나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거 같다.)
"뭐가."
(정호석 네 남친이기 전에 내 동생이거든?)
"..."
(부탁은 지랄. 끊는다.)
민윤기와 전화를 마치자마자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러지 않으면 눈가에 고인 눈물이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눈물을 흘려서는 안된다. 절대로 내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그렇게 애써 차오른 눈물을 식혀가며 앉아있을 때 앞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이름씨. 최정연씨 면회입니다."
절대로 최정연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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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몽으로 신청해주신 분이 계세요...ㅎㅎ
암호닉 모집을 마감합니다.
다음에 다시 열거니까 너무 아쉬워하지는 않으셔도 괜찮아요.:)
오늘도 제 글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