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03
도영 focus
나랑 정재현은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인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다. 허세로 꽉 찼으며 일진이니 뭐니 거리는 유치한 아이들과는 많이 다른 아이였다. 정재현은. 지금보다는 조금 앳된 얼굴이었지만 훈훈한 얼굴에 다정한 성격, 그리고 공부도 잘했다 정재현은. 뭐하나 빠지는 게 없다는 거지. 솔직히 정재현을 볼 때마다 뭐 이런 이기적인 놈이 다 있지? 그랬다. 아무튼,나와 정재현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고 급속도로 친해졌다.
"저기 이것 좀 재현이한테 전해줄래?"
"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했다.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거다. 나는 낯을 가리는 편이기도 하고 여자를 무서워한다. 무서워한다고 하면 조금 찌질해 보이니까…… 그래. 싫어한다. 여자를. 그런데 그 여자애들이 나에게 자꾸 말을 걸어왔다. 이유는 다 똑같았다. 정재현, 정재현이었다. 한 번은 그냥 넘어갔다. 선물도 받네. 하면서 놀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 한 번을 시작으로 끝도 없이 여자애들이 나에게 부탁을 걸어왔다.
"저기 도영아 이거 재현이 좀……."
"재현 선배 뭐 좋아하는지 아세요?"
"이거 재현이 좀 줄래?"
"도영아 이번에 재현이한테 고백할 건데 좀 도와주면 안돼?"
정재현은 같은 학년뿐만 아니라 1학년 후배들한테도 3학년 선배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안 그래도 낯가리는 성격에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그때부터 여자를 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여자애들이 말을 걸어오면 무시하거나 피하기 바빴다. 부탁을 들어주면 들어주는 대로 힘들고 안 들어주면 왜 안 들어주냐고 뭐라 하는 여자애들이 싫었다.
그런 내 성격은 고등학교에 와서도 지금 새 학기가 되어서도 똑같았다. 물론, 김시민 너도 똑같을 거라 생각했다.
"누구…… 설마 김도영?"
"…."
"…."
내 이름이 들렸고,고개를 들었을 때 너는 날 보고 있었다. 나 역시도 너를 보았다. 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을 돌렸다. 하지만 신경 쓰진 않았다. 너도 똑같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상했다. 수업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자꾸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그때마다 정재현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눈썹을 들썩거렸다. 그리고 신기했다. 정재현을 3년 정도 봐왔는데 먼저 여자에게 말을 건 적도 없던 놈이 너한테는 말을 걸고 장난까지 쳤다. 친구처럼. 그냥, 되게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너를 자꾸 쳐다봤던 것 같다. 그래서 막연하게 생각했다.
아, 정재현도 김시민을 좋아하는구나. 잘 됐네.
"어디 가?"
"노트 안 챙겼다. 먼저 가고 있어."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3교시는 음악 시간이었고 복도를 걷다가 문득 떠오른 노트 생각에 나는 정재현을 먼저 보내고 혼자 교실로 돌아갔다. 사물함에서 꺼낸 노트를 손에 쥐고 돌아갈까 하던 찰나에 내 눈에 띈 건 김시민이의 활짝 펼쳐진 교과서였다. 교과서 끝자락에 조그맣게 쓰인 글씨. 김도영, 내 이름이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냥, 이해가 안 갔다. 김시민이 왜? 내 이름을? 한참을 생각해봐도 답은 하나였다. 나랑 친해져서 고백을 도와달라거나 어쨌든 그런 이유겠지. 다른 여자애들과 너도 다를 게 없었다. 근데 그렇다면 왜? 지금도 충분히 친해 보이는데. 어렴풋이 떠오르는 정재현과 김시민이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자들은 다 똑같아. 이게 내가 내린 답이었다.
"배가 안 고파서."
"…."
그래서 나는 너를 피했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마주치면 너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서. 그래서 피하기 급급했다. 그때마다 네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처음엔 어이없어 하는 것 같다가도 어쩔 땐 조금 슬픈 표정을 지었다. 피하기 바쁜 그런 내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매점에서 너와 나는 마주쳤다. 나를 보자마자 놀라는 너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또 너야? 말하고도 놀랐다. 나도 모르게 날이 선 내 말투에 네 표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피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등을 돌렸고 너는 그런 나를 붙잡았다. 너의 입에서 나올 말을 지레 짐작했다. 안 봐도 뻔하지. 정재현 얘기겠거니 했다. 탁- 나를 잡은 너의 손을 쳐내렸다. 어안이 벙벙해 보이는 네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서둘러 매점을 빠져나왔다. 솔직히 생각해보면 김시민이 잘못한 건 없었다. 먼저 정재현 얘기를 꺼낸 적도 없었고 그럼 내가 왜 피해야 돼? 모르겠다.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너에게 나는 일방적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괜찮아?"
"괜찮아 보여 이게?"
"아니?"
아닌 거 알면 좀 조용히 해줄래? 정재현을 향한 말이었다. 내 말에 녀석은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도영이가 낯을 많이 가려서 그래. 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으며. 그게 낯을 가려서 하는 사람의 행동이야? 그게? 딱 봐도 싫어하는 것 같은데. 근데 내가 뭐 했나…… 아닌데 나 진짜 한 거 없는데. 얼빠져 있던 나를 끌고 나온 건 다름 아닌 정재현이었다. 녀석은 내 손을 끌고 운동장에 있는 벤치에 앉혔다. 재현아 도영이가 나 싫어하는 거 같지? 울상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자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은데 도 그렇게 생각하니?
"김도영 원래 여자 싫어해."
"알아. 아는데……."
그걸 직접 겪으니까 아무 말이 안 나오더라. 뒷말은 애써 목구멍으로 삼켜냈다. 말을 꺼내면 아까 본 도영의 표정이 떠오를 것 같았다.
"도와줄까?"
고개를 숙이고 한숨만 푹푹 쉬던 나를 보고 정재현이 말을 꺼냈다. 고개를 저었다. 너가 도와주면 더 피할 거 같은데. 아무래도 나 혼자 해결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괜찮다는 내 말에 힘내라며 녀석은 제 큰 손으로 내 머리를 헤집었다. 올라가자. 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정재현은 내 손을 덥석 잡고 교실로 돌아가는 걸음을 서둘렀다. 말이 서둘렀다지, 거의 뛰다 싶이 했다. 앞문을 쾅- 하고 열어젖히는 정재현 때문에 반 아이들의 이목이 모두 우리에게 향했다. 정확히 말하면 정재현이 잡고 있던 내 손을 보고 있었다. 정재현에게 잡혔던 손을 급하게 빼냈다. 그러니까 다들 오해는 하지 말고…… 여자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이 모두 내게 꽂혔다. 그렇게 쳐다보면 매우 부담스럽다.
"교내 인기스타 답네."
"뭐가?"
저 뒤로 보이는 아이들의 시선이 안 보이니? 나만 보이는 건가? 자리로 걸어갈 때도 자리에 앉을 때도 쏟아지는 아이들의 관심에 당황한 건 내 쪽이었다. 정재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실 난 알고 있다. 저 자식 지금 다 알고 있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는 거야 저거. 한 대 때리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는 정재현의 모습에 주먹을 쥔 손이 부들거렸다. 너 진짜 그러다 나한테 한 대 맞아…? 엉? 교내스타라도 내가 안 봐줄 거야……? (살벌)
"그러다 진짜 사람 한 대 치겠다?"
"도영이 앞이라 참는 거야."
"걔는 너 신경도 안 쓰는데?"
너 나한테 상처되는 말 아무렇지 않게 한다… 자꾸. 미간을 좁히며 말을 꺼낸 내게 정재현은 저기 좀 보던지. 턱 끝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녀석의 턱짓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저 앞 쪽에서 정말 아무 표정 없이 책만 보고 있는 도영이의 옆모습이 보였다. 근데 진짜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아닌데…… 나 진짜 한 거 없는데? 그럼 왜 날 싫어해? 실수라도 했나? 이 많은 물음에 답해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속에서 여러 가지 질문들을 쏟아냈다.
"넌 뭐 짚이는 거 없어?"
"어… 글쎄. 딱히?"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하는 듯싶더니 꺼낸다고 꺼낸 말이 딱히란다. 딱히. 응 그래. 내가 뭘 기대했겠어. 실망한 티가 팍팍나는 내 모습에 정재현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툭 내뱉었다.
"그냥 고백해."
"뭐?"
뭐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지금? 어이없는 자식이네. 내 말을 무시한 채 녀석은 턱을 괴더니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고백해. 그러면 오해도 풀리고 좋잖아.
"고백하다가 차이면 어떡해. 고백 말고 차라리 좋아하는 티를 내야겠어."
"어떤 식으로?"
"그건 나도 모르지."
"그게 뭐야."
나도 이런 적 처음이니까. 짧게 뱉어진 내 말에 짝사랑 처음이냐며, 모태솔로냐며 크게 놀라는 정재현의 모습에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래. 넌 고백도 많이 받아보고 ? 여자친구도 많았겠지? 그럼 김도영은? 도영이는 어땠을까? 갑자기 도영이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래도 몇 년 친구인데 수영이보단 더 잘 알지 않을까? 정재현한테 물어보는 게 좋으려나? 도영이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휙- 고개를 돌려 정재현을 쳐다봤다. 줄곧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인지 나와 눈이 마주치 마자 씩 웃었다. 녀석은. 정재현의 웃음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렇게 웃지 말라고 너. 장르가 호러로 바뀌는 거 같아.
어니언's
2편도 초록글이라니 너무 감사드려요. 여러분이 댓글 달아주시는 거 하나씩 읽으면서 또 읽고 계속해서 읽고 그랬네요... :)
드디어 도영이가 왜 그렇게 여자를 싫어하는지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짝짝) 조금 색다르게 도영이의 조금 차가운? 예민한 모습을 쓰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서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하염없이 감사하더라고요. 진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면서 서툰 글 솜씨에 혹시 독자님들이 실망하시면 어떡하나 걱정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많이 노력해서 좋은 글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작? 글? 에는 캠퍼스물로 유타랑 윈윈이 민형이 생각하고 있는데 독자님들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네요...(떨림)
도영아, 동영아 생일 축하해. 1일이 가기 전에 꼭 쓰고 싶었어...(코쓱) 도영이도, NCT도 항상 응원할게!
암호닉
암호닉 [일등이당] [도랑] [하늘] [동동] [현현] [영] [나스] [토끼] [아윤] [유타유타]
[유타야 쟈니] [달탤] [쿠크다스] [도릉도릉] [저기여] [꿀돼지] [뎡이랑] 님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