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지코] 안녕, 병신아.
01
" 야, 나랑자자. "
풀리지않는 수학문제에 여러 공식을 대입하고 있던지호를 툭툭 건드린것은 노는 무리에 섞여 대장비스무리한것을 하고있는 지훈이었다.
새학기가 시작하고 한달이 다되어가는데도 한마디 말도 섞어보지않았는데 자자니? 자신이 잘못들은건가 싶어 고개를 들었더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호를 멀뚱멀뚱히 쳐다보는 지훈이 있었다. 아, 잘못들었구나.
자자가 아니라 잘해보자였나? 쎄보이는 인상을 가졌지만 보기보다 낯을 많이 가리는 지호가 가진 친구라고는 반에서 경과 유권. 딱 두명 밖에 없었다. 성격이 더러울줄 알았는데 먼저 말을 건내다니 의외로 착하구나. 그렇게 생각한 지호가
해사하게 웃으며
" 그래! "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지훈이 피식하고 바람빠지는 소리를 낸다.
" 엄청 쉽다 너. 그렇게 안봤는데. 그럼 끝나고 교문 앞에서 기달려. "
뭐가 쉽지? 잠깐 미간을 좁히며 마지막 남긴말을 해석할세도 없이 말이 끝나고서 교실 구석에 모여있는 자신의 무리에게로 향하는 지훈이었다.
그 동태를 눈동자로 쫒았더니 평소와 다를바없이 시시껄렁한 농담거리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리고 있다. 시선을 문제집으로 옮겨 펜을 잡고 쓱쓱 풀어나갔다.
새로운 친구가 생겨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지 안풀리던 문제도 잘 풀리고 무슨일이든 잘될 것 같았다.
*
" 가위 바위 보! "
" 아, 씨발 "
지훈의 입에선 탄식에 가까운 한숨이 흘러나왔고 지훈을 제외한 나머지는 하이파이브가 난무하는 축제의 분위기였다.
다들 지훈에게 줄 벌칙을 생각 하고 있었는데 책상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찬열이 손바닥을 짝하고 마주치며 밑도 끝도 없이 웃었다. 뭐야, 왜 갑자기 처웃고 지랄.
" 저기 보이냐? 문제집 잡고 있는 새끼. "
" 보여 왜. "
" 재 부탁 졸라 잘 들어주잖아. 가서 자자고 해봐. "
" 미쳤냐? 시팔. 호모질은 너새끼나 많이해라. "
" 자알 봐봐 표지훈아. 저정도면 여자보다 낫지않음? 색기가 아주 좔좔 흘러 넘치고, 잠깐 심심풀이 땅콩으로 갖고놀기 딱이잖아. "
찬열이 한쪽눈을 감은채 양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네모를 만들고 그 사이로 지호의 모습을 담았다. 캬아-쩌는 구만? 그리고 짠듯이 내뱉는 감탄사.
잠깐 인상을 찌푸렸다가 고개를 돌린지훈. 저놈은 반에서 유령 같은 존재였는지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햇살을 받아서 더하얗게 반짝이는 옆태는 좀 봐줄만했다. 눈도 쪽 찢어졌고 입술도 도톰한게 빨개서 한번 빨아...뭐? 빨어?
" 씨발, 박멸구같은 새끼. 이상한 말 하지마라. "
" 그래서 안할거냐? 벌금이 엄청날텐데.. 일인당 만원 씩이니까. 6만원이네. "
" 벌금은 현금으로 박아주셔야됩니다. 고객님~ "
찬열의 말을 옆에서 거든 준홍이 상냥하게 웃어보이며 두손을 모아 내밀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모여드는 손들.
아오! 징그러운 새끼들! 그래 한다. 해! 지훈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니 찬열은 한500살 먹은 늙은 여우처럼 능글거리며 연신 휘파람만 불어댄다.
"야, 빠구리 뜬다음에 후기 말해줘야 된다? "
"엿이나 먹어, 미친놈아. "
자신에 귓가에 작게 속삭이는 찬식의 머리통을 한대 갈겨줬다. 100만명의 군인들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처럼 지훈의 표정은 아주 비장했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수록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가까이 갈수록 명확해지는 형태에 침이 꿀꺽 삼켜져 아담스 애플이 꿀렁였다. 표정에서는 드러나지않았지만 아주 머릿속이 뒤죽박죽 된 느낌이었다.
드디어 책상 앞에 도착. 동그란 뒤통수를 만지작 거리며 지우개로 문제를 지웠다가 썼다가를 반복하는 지호는 아직 지훈이 자신의 앞에 있는줄 모르는 눈치였다. 꼭 깨문 아랫입술이..참..매력..시발.
자신에게 기대를 하고있을 친구새끼들의 시선이 뒤에서 느껴진다.
지훈이 쉼없이 펜을 놀리고 있는 지호의 오른쪽 어깨를 툭툭 건들였고 갈색으로 물든 머리를 살랑이며 고개를 든 지호와 그대로 눈이 딱 마주쳤다.
그건그렇고 이 망할놈에 입이 마음대로 짓껄인다.
"야, 나랑 자자."
그 선홍색혀로 입술을 훓고 가는 모습이란.
놀란 토끼눈을 하고서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에 오마이 갓. 정말 이건 말로 설명할수 없었다. 졸라 이쁨의 극치. 숨이 멎는 줄만 알았다. 잠깐 고민하는듯 미간을 좁히더니 그 쪽 찢어진 눈꼬리를 살짝 접고서 웃어보인다.
" 그래! "
뭐지, 순진한척 하는건가? 유혹하는거임? 단숨에 거절할줄만 알았던 지호가 헤헤거리며 긍정을 표시하니 잠깐 당황해서 표정이 흩뜨려진 지훈이 다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피식 웃었다.
" 엄청 쉽다 너. 그렇게 안봤는데. 그럼 끝나고 교문 앞에서 기달려. "
그리고 돌아선 지훈의 상태는 멘붕 그 자체 였다.
친구놈들에게는 아무일 없었다는듯 자랑 스럽게 웃으며 내가 좀 마성이긴 한가보다. 금방 자자고 하던데?
라며 허세를 떨어댔지만, 그렇게 안봤더니 순여우잖아? 지훈의 속마음에서는 머리를 쥐어뜯고 난리도 아니였다.
*
" 야 우지호! 짐싸 급해. 나 빨리 집에가야되. "
" 먼저 가던가- "
" 뭐냐, 너. 왜이렇게 싱글 벙글이야? "
" 나? 그냥 그런데. 빨리가야 된다며 가. 오늘 나도 약속있거든."
경은 의아해하며 지호의 앞자리에 의자를 돌리고 앉았고 유권은 지호의 앞머리를 들춰 이마에 손을 넣었다.
열은 없고, 얼굴도 뭐 똑같고, 정신이 어떻게 됬나. 경이 지호의 몸뚱아리를 샅샅이 만졌다. 손이 살짝 목언저리에 닿자 간지럽다며 손을 쳐낸 지호.
수학 문제집을 백팩에 넣는 것을 마지막으로 안녕. 권과 경은 손인사를 하며 먼저 자리를 뜨는 지호를 멍하니 바라만 봤다.
*
언제쯤 지훈이 나올까 교문에 기대어 영어단어집을 집중해서 보다가도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는지호. 찬바람이 자꾸 목도리 틈세로 세어들어와서 더 꽉 동여매었다.
그런 지호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훈은 찬열과 함께 학교뒤 공터에 쪼그려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얼마전 명수가 소개시켜준 옆학교여신 진리와 나누는 카톡에 웃음만 실실.
지훈이 쥐고 있는 담배끝에서 몽실몽실 피어나는 연기를 멍하니 보고만 있던 찬열이 지훈의 등짝을 시원하게 내리쳤다. 악! 씨바! 뭐야 미쳤어?
" 야, 너 걔한테 기다리라 그러지 않았냐? "
"아씨.. 아파죽겠네. 누구?"
" 너새끼는 금붕어냐? 어떻게 된게 오늘 있었던 일도 까먹어. "
눈이렇게 째지고 하얀애. 찬열이 자신의 눈꼬리를 쭉 잡아당겨 얼굴묘사까지 해주니 물고있던 담배를 떨어뜨리고, 씨발..맞다.. 그제서야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서 가방을 챙겨드는 지훈이었다.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까?"
"가보면 알겠지. "
"넌 안가냐? "
"이것만 마저 태우고, 친구여 오늘 역사적인 밤 보내삼."
말없이 가운데손가락을 치켜드니 찬열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저것도 친구놈이라고 두고있다니. 중얼거리며 공터를 벗어나니 차갑게 날이선 바람이 지훈의 얼굴을 스쳤다. 패딩을 턱 끝까지 잠그니 좀 괜찮은것 같기도...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지호를 생각하며 빠른걸음을 하고 있을때였다. 헉. 지훈의 입에서 작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시선이 멈춘곳엔 발갛게 얼어붙은 손을 호호 녹이며 목도리에 얼굴을 폭 파묻은 지호가 서있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웃었다. 진심으로 심장 터져 나가는줄.
*
"몇분이나 기다렸어?"
"한..삼..십분 정도? "
"컥.."
빨대를 앞니로 물고서 뭉개지는 발음으로 느릿하게 말하는 지호를 보고있던 지훈의 목에 사레가 들렸다. 입에 담고있던 카페모카가 시원하게 입밖으로 분출 될뻔한걸 간신히 면했다.
그대가로 입안을 온통 데어버려서 혀를 빼어물고 헥헥 거리는데 자꾸만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지호. 눈치를 슬쩍보다가 민망해져서 혀를 집어넣고 입맛만 다셨다. 졸나게 미안한데, 차마 입이안떨어진다.
그런 지훈의 상황을 모르는 지호는 핫초코를 만지작 거리며 두손을 녹이다가 입안에 가득담긴 내용물을 꿀꺽 삼키고서 입을 열었다.
"근데 지금 어디가는거야? "
"우리집."
"부모님 계셔서 방해되지는 않을까?"
"같이 안살아. "
아아, 그렇구나. 같은 상황에서 마주하는 관점이 달랐다. 지호는 놀다보면 시끄러워서 부모님께 방해되지는 않을까.라는 취지에서 질문한거였지만
지훈의 입장에서는우리의 역사적인 첫날밤에 방해될요소중하나인 부모님은 안계시는거지? 라는 전혀 다른 의미로만 들렸다.
목도리사이로 보이는 하얀 지호의 속살에 지훈의 눈이 가늘게 뜨여졌다. 이것도 일종에 작업인가? 오해의골은 깊고도 넓었다.
*
지훈의 집에 처음 들어가마자 느낀것은 소름돋는 차가움, 따뜻한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혼자살기에 넓은 집은 가구도 딱 필요 한것 밖에 없어서 휑한 느낌 마져 들게 했다. 쇼파위에 가방을 던져 놓고 방안으로 들어가는 지훈을 쫄래쫄래 따라간 지호는 씻고오겠다는 지훈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들어오자마자 책장위에 세워져있는 건담프라모델들에게 정신을 빼앗겨버렸다. 경의 집에서 봤던 건담들보다 더 비싸보이고 반짝반짝 빛났다. 대애박. 완전이뻐..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지훈이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욕실에서 나왔다. 해맑게웃으며 건담들을 쓰다듬고 있는 지호는 순수그 자체였다. 절대 누가 자자고해서 흔쾌히 수긍할 그런 사람으로는 보이지않았다.
궁금한게 생겼는데 물어보면 서운해 할려나..
" 야. "
"어어? 어 미안. 허락 없이 만져서."
"아니, 그거말고. 너 이름이 뭐야? "
"우지호. 같은반된지 한달이 다됬는데 이름도 모르는구나."
금세 시무룩해져서 침대에 풀석 앉아버린 지호를 제법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지훈이 컴퓨터 의자를 돌리고 앉아 살풋이 웃었다. 그러는 넌, 나알어?
"잘은 모르지만 넌 항상 애들한테 둘러싸여있잖아. 인기도 많고, 성격도 좋고. "
"나 성격 안좋아. 졸라 싸가지없고, 인기도 없어. "
"친구라고는 박경이랑 김유권밖에 없는 나한테 잘해보자고한거보면 충분히 착한것 같ㅇ.."
"너한테 잘해보자고 그랬다고? "
도톰한 입술을 오물거리며 종알종알 말하는걸 흐뭇하게 경청하고 있던 지훈이 미간을 좁히며 지호의 말을 끊고 다시한번 확인사살 했다. 내가? 짐짓 무서운표정을 하고서 말하니 어벙한 표정을 지으며 그럼, 아닌가? 란다.
씨발, 진짜로 미치게하네. 여태까지 자신과 지호가 주고 받는 대화를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해지는 기분이다. 오해와 오해가 둘러싸여 시트콤보다 더 웃기게 돌아가는 이상황에 지훈이 이마를 짚으며 푸스스웃었다.
혼자서 웃고 막 그러는거 보니까..소문대로, 정말 또라인가보다. 지호는 호랑이굴로 잡혀들어온 토끼처럼 다리를 달달 떨며 겁에 질려있었다. 잘못 걸렸나봐. 어떻게해 경아.같이가자고 할때 같이갈껄.
새로운친구 생겼다고 기분좋아서 너무 앞뒤분간을 안했나보다. 지금에서야 후회해봤자 돌이킬수 없는일이었다. 어찌나 웃어댔는지 눈에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영화나 보고갈려냐는 지훈의 질문에 덜덜 떨리는 목소리르 감추고 침착하게 말했다.
"괜찮아. 시간도 늦었는데 집에 가야지 이제."
" 야, 병신. 아니 우지호. 너 잠깐만 일루와봐."
침대에 걸터앉아 일부러 건담을 만지작거리며 못들은척을 하고 가까이올 생각을 안하는 지호. 그걸본 지훈이 입꼬리는 한껏올라가 하트모양이 되있는데 겁에 질린 표정이 재밌어서 일부러 목소리를 더깔았다.
빨리 안튀어와? 살짝 움찔하더니 시선을 어디다 둘지모르고 왔다갔다. 결국엔 지호가 지훈의 앞에서서 두손을 꼭 모아두었다. 허여멀건 얼굴과 갈색의 머리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에 또한번 지훈의 안에있는 토끼가 쿵덕쿵덕 방아를 찧어대기 시작했다.
"앞으로 누가 너한테 잘해보자고 하면 무조건 싫다고해. "
자자고 하는거 병신같게 잘못듣고 응이라고 할까봐서 미리해두는 협박.
"... ... ... "
"우지호, 대답. "
"그렇지만... ... ... "
토다는것도 귀여워 귀여워.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나.
"어허-"
"알겠어어.."
아.졸라 씹덕... 진짜. 미치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