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블업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저 곳이 내가 원하던 목적지인지도 잘 모른 채 그저 이끌려 발을 내딛었다.
내딛는 걸음마다 발 끝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몸이 부르르 떨렸지만,
연연치 않은 채 한 발, 두 발 걸어갔다.
헝크러진 머리를 정리할 새도 없었다.
나는 무엇을 갈망하듯 머나먼 길을 걷고 또 걸었다.
"..."
10여분 정도 걸어갈 때 쯤 보이는 하얀 불빛.
그 곳이 내가 닿으려던 곳이였을까.
하얀 불빛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 불빛은 내 손을 잡아 당겨 품에 꼭 안아주는 척 하더니
이내,
내 몸을 집어 삼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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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았던 눈을 떳다.
언제나 그렇듯 캄캄한 내 방 안이 나를 맞이하였다.
무거운 몸에 힘을 주며 일어나 침대의 머리 맡에 앉았다.
머리 맡에 놓여진 하얀 토끼인형은 나를 쳐다본다.
무심히 그 토끼인형을 쳐다보다 손으로 머리를 툭-치자 나의 하얀 베개로 픽 쓰러지고 만다.
몸을 이끌어 창문 앞에 섰다.
깜깜한 밤하늘이 나를 맞이하였다.
별 하나 없는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벽에 걸려진 시계를 봤다.
2시 15분
어느 새 1분이 지나가 버렸나보다.
한숨을 폭 내쉬고는 화장실을 들어가 샤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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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역시 적응이 안 된다. 이 녀석.
"안녕, 시민 씨? 오늘도 슬랙스 입으셨네요."
"아, 네.."
이제야 온 듯 가방을 머리에서 빼내 책상에 놓으며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가볍게 주억이며 나는 마저 남은 일을 한다.
자켓을 벗어 의자에 걸어놓은 후 나에게 다가와 커피?라며 말을 거는 재현씨에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매일 이 시간이 너무 고역이었다.
밤잠이 없어 커피를 마시면 밤을 새야함을 알고 있었기에 거절을 했다.
매일 나에게 커피를 마시러 가자하는 재현씨의 선처에 매일 거절만 할 수 없어 한 번 먹으러 간 적이 있는데,
그 날 밤은 원치도 않게 잠이 오질 않아 다음 날의 일을 미리 해야했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내 입으로는 잠 못잔다는 말 못하지.
아침부터 커피는 안 당긴다며 웃으며 말을 하자, 나를 한 번, 휴계실을 한 번-사무실 바로 앞에 있다.- 쳐다본 후 이내 고개를 주억였다.
발을 돌려 휴계실을 가는 재현씨의 뒷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려고 할 때 쯤
재현씨는 휴계실이 아닌 다른 부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화장실을 가는건가 싶어 의자를 끌어당겨 자세를 고친 뒤, 다시 일에 열중했다.
5분 뒤,
재현씨는 손에 커피가 아닌 새콤달콤을 두 개 들고 들어왔다.
왠 새콤달콤이냐며 물으려고 했지만 괜히 오지랖인 것 같아 속에 꾹 눌러놓았다.
그리고, 내 어깨에 전해져 오는 따스한 촉감에 놀라 옆을 쳐다보니 재현씨가 새콤달콤을 나에게 들이대며 웃었다.
"시민 씨 무슨 맛 드실래요? 포도랑 복숭아맛 있는데..
저는 복숭아가 더 좋지만 시민 씨가 복숭아 고르면 드릴께요."
아.. 입을 벌리고 그냥 재현씨 얼굴만 쳐다보자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주친 눈에 살짝 당황을 하다 고개를 숙였다.
재현씨가 들고있는 새콤달콤의 색과 똑같이 내 얼굴은 선홍빛을 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