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소꿉친구 민윤기를 기록하는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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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술을 마신 탓에 속이 안 좋아서 오전 수업을 자체 공강으로 만들고 집에 있었다. 덕분에 왜 안 오냐는 연락에 시달렸고, 내게 조별 과제가 있었다는 말을 해주는 착한 친구들의 말에 연신 사과를 했다. 미안한 마음에 오후 수업이 끝나고, 같은 조 친구들과 동네 포장마차에 가기로 했다. 중간에 윤기한테 약속 있으니깐 이따 연락한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답장이 왔었다. '오냐.'라고 대충 보낸 답장이니깐 빠른 거겠지? 수업은 6시에 끝났으나 친구들은 남자친구에게 선물을 받아야 되다면서 강의실에서 기다리는 탓에 포장마차에는 7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친구들은 내게 줄 사람이 없냐고 장난을 쳤고, 그중에서 가장 장난이 심한 친구는 윤기에게 연락이 없냐고 물었다. 어색한 미소를 보이면서 친구한테 그런 걸 왜 주냐고 말하곤 우리가 시킨 우동을 그릇에 옮겨 담았다. 포장마차에서 마시기에는 생각보다 추운 날씨였다. 그렇게 살짝 상기된 볼을 거울로 보고 있는데 윤기한테 전화가 왔다. '윤기야.' '응, 어디야?' '나 지금 술 마시고 있어. 너는?' '그냥 밖이지. 언제 들어가냐.' '글쎄... 오랜만에 만난 거라서. 올래?' '됐다. 동네 포장마차겠지, 뭐.' '헐 맞아. 역시 내 친구야, 민윤기. 멋져.'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들어가는 길에 전화해.' '응, 윤기야. 이따 봐.' 짧은 통화였지만 친구들은 뭐가 그렇게 난리인지 나보다 더 신나 보였다. 언제 사귀냐는 쓸데없는 소리에서부터 추우니깐 실내로 옮기자는 말까지 우리는 마치 랩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4명에서 두병을 마시곤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급히 들어간 술집이라 헌팅 술집인 줄도 몰랐다. 정말이다. 애인 있는 친구가 두 명이나 있는데도 들어간 거 보면 말 다했지, 뭐. 그렇게 우리끼리 잡다한 이야기를 하는데 옆 테이블에서 합석 제의가 들어왔다. 애인이 있는 친구들은 급히 선물 받은 사탕과 초콜릿을 가방에 넣고는 합석 제의를 받아들였다. 싫은 내색을 하지 못했다. 애인 있는 친구 두 명과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는 얼마 전에 헤어져서 많이 슬펐기 때문에. 정말 단순히 그 이유에서 우리는 합석을 한 거였다. 친구들은 내게 술이 약하다면서 조절해서 마시라는 소리를 해줬고, 내 옆에 앉은 남자는 내가 벌칙에 걸릴 때마다 자신이 마셔줬다. 약간 어지러운 상태여서 그런지, 꽤나 내 스타일의 모습처럼 보였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앞머리에 웃을 때마다 사람 심장을 녹이는 미소, 큰 키는 술에 취한 내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애인이 있는 친구 두 명은 오래된 남사친을 만난 듯 합석한 남자들에게 대했고, 다른 친구 한 명은 당장이라도 사귈듯한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주만 먹었다. '여주 씨, 여기 안주가 진짜 맛있죠?' 아... 내가 너무 돼지처럼 먹었나 싶어서 입술을 삐쭉 내밀곤 수저를 내려놨다. 그러자 그 남자는 당황했는지 내 손에 다시 수저를 쥐여주고는 '오해하셨나 봐요. 그냥 맛있게 드셔서 제가 다 배불러서, 아니 좋아 보여서 그랬어요.' 라며 머쓱하게 웃었다. 동시에 시선이 마주쳤고, 남자는 내게 잠시 바람을 쐬고 오는 게 어떠냐는 말을 했다. '술도 깰 겸 친구들 우유도 사 와요, 우리. 괜찮죠?' 고개를 끄덕이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를 따라나갔다. 술집과는 다르게 찬 바람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부르르 몸을 떨자 내게 목도리를 해주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준 씨, 이거 괜찮은데...' '아니에요. 하고 있어요. 제가 데리고 나온 건데 춥게 놔두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내게 다정한 배려를 해주는 탓에 고맙다는 말과 함께 웃음을 보이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예쁘다는 말을 해줬다.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생긴 철없던 전 남자친구를 빼고는 예쁘다는 말을 오랜만에 들었다. 그런 탓에 나도 느낄 만큼 볼이 붉어졌고, 뜨거워졌다. 남준의 리드로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했고, 함께 우유를 사서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라 우리는 각자의 친구들과 헤어졌다. 너무 졸렸다. 그래서 윤기에게 전화 대신 문자 하나를 남기고, 침대에 누웠다. 보내자마자 답장이 오길래 윤기인가 싶어 확인을 하는데, 아까 만난 남준 씨였다. '여주 씨, 잘 들어갔어요? 우리는 아까 거기가 일차여서 친구들끼리 한잔 더 하고 있어요. 주머니에 초콜릿 넣어뒀는데 그거 드세요. 오늘 화이트데이잖아요.' 급히 일어나 아까 입었던 코트 주머니를 보는데 작은 초콜릿이 두 개 들어 입었었다. 언제 넣은 건지도모르는데... 고맙네. 내가 이런 날 초콜릿도 받아보고. 그리고 연속으로 온 문자. '다른 술집은 아니고, 우리 집에서 마셔요. 오늘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혹시 부담이 안 된다면 일어나면 연락 주세요. 알아가고 싶은 게 많은 사람 같아요, 여주 씨.' 취한 탓에 답장을 보냈다가 실수할 것 같아서 홀드 카를 눌렀다. 그건 그렇고, 윤기는 왜 연락이 없는 걸까. 내가 전화를 안 해서 그런가? 그런 걸로 삐지는 애가 아닌데 바쁜가. 아까 왜 나오라고 한 걸까? 자꾸 머릿속에는 윤기에 대한 물음표만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가 않았다. 일어나면 전화나 해봐야겠다. 추신- 작은 초콜릿 하나. 어제... 너무 늦어서... 여주의 일기를 못 올려서 이제 올려요. ㅠㅠ 그래서 어제 시점으로 봐주시면 된답니다. 3월 15일편 여주 일기장은 없어요. 내일 만나요, 우리! 다들 좋은 밤! [암호닉] 언제나 환영입니다! 땅위, 찡긋, 설탕물, 달밤, 윤기야메리미, 핑쿠릿, 다솜, 너만보여, 사랑, 쿠크바사삭, 보보, 바다코끼리, 둘리, 또로롱, 미뉸기짱, 쫑냥, 아아악, 울샴푸, 네이버, 가든천사, 빅닉태, 1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