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소꿉친구 민윤기를 기록하는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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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보니 시간은 12시가 넘어있었다. 덕분에 오늘도 오전 강의를 못 들었다. 윤기가 알면 나는 아마 반은 죽었겠지? 혹시나 윤기에게 연락이 왔나 싶어서 핸드폰을 보는데 문자가 한 통, 전화가 한 번 왔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속은 괜찮냐.' 다섯 글자에 들어간 윤기의 다정함이 묻어나는 문자였다. 싱글벙글 웃음꽃을 피우며 어리광을 부렸다. '아파. ㅠㅠ' 문자를 보내고, 씻을 생각으로 일어나는데 진동이 울렸다. 윤기였다. '죽고 싶냐. 어제 얼마나 마셨어?' 다짜고짜 낮은 목소리로 화를 내는 탓에 말이 안 나왔다.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또다시 들려오는 윤기의 한숨 섞인 목소리를 듣고서야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수업 안 나왔다며. 집이지?' '미안. 약속 못 지켰네.' '됐어. 집에서 기다려.' 거절할 것 같았는지 역시나 윤기는 내 대답을 듣지 않고 끊어버렸다. 덕분에 40분이 넘게 걸리는 샤워를 20분 만에 해결할 수 있었다. 머리를 말리려고 방에 들어가서 앉아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물기를 제거하고 나온 탓에 그대로 문을 열어줬는데, 윤기가 내 눈을 보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곤 준비 다하면 부르라는 말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아니, 문은 내가 닫아야 정상인데 윤기가 밖에서 닫아버렸다. 고개를 까딱이고는 밖에서 기다릴 윤기를 위해 빠르게 머리를 말렸다. 그리고 어제 아침에 세탁해놓은 윤기의 맨투맨을 탁탁 털어서 윤기가 좋아하는 내 향수를 한 번 뿌리고, 작은 쇼핑백에 넣었다. 약간 방은 어지럽혀져있지만 기다리는 윤기를 위해 문을 열었다.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들어오는 윤기였다. 그리고 손에 들고 온 쇼핑백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나를 의자에 앉혔다. 이게 뭔가 싶어서 윤기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는데 세상에. 죽이었다. 물론 윤기가 만든 죽은 아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호박 죽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고맙다고 윤기의 팔을 잡고 이야기하는데 소스라치게 놀랐는지 허억, 하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집이 떠나갈 듯 웃자, 너 아픈 거 맞냐는 소리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탓에 급히 병자인 척을 했다. '아파... 죽겠어, 윤기야. 나 죽으면 너는 예쁜 아내랑 오래오래 살다가 와. 알았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적에는 분명 장난이 섞인 눈길이었다. 근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기의 눈빛도 달라졌다. 남자친구 앞에서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본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그딴 소리 하는 거 아니야. 취소해.'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싫다고 하면서 수저를 들자 내 손등을 아프지 않게 때리는 탓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짧게 '취소.'라고 하자 아무 말 없이 놓친 수저를 다시 내 손에 쥐여주었다. 그렇게 약간은 어색한 상태로 같이 점심을 먹었다. 둘 다 말을 안 하고 밥을 먹은 적은 거의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오늘 일도 그 경험에 집어넣어야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윤기가 밥그릇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어제 많이 마셨냐.' '아니야. 조금.' '술 적당히 마셔. 속 버려.' 윤기의 말을 끝으로 고개만 끄덕이곤 의미 없이 다 먹은 밥그릇에 수저를 넣고 장난치는데, 얼굴 들고 쳐다보라는 윤기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내가 좋아하던 그 바보 같지만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웃음을 보이는 윤기였다. 아까 손등 때린 거 미안하다면서 다 먹고, 영화를 보자는 말에 수업은 어쩌냐고 묻자 이미 나 때문에 중간에 나왔고 나도 오전 수업 빼먹었으니깐 서로 쌤쌤하자고 했다. 그래, 이래야 역시 민윤기랑 김여주야. 설거지를 하려고 일어서자 윤기가 아픈 사람 시키기 싫다면서 소매를 올리고 설거지를 했다. 나 안 아픈 거 다 알면서 괜히 놀리나 싶어 설거지를 하는 윤기의 뒤로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걸어가서 놀래주려는데, 역시나 윤기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나 보다. 나보다 더 먼저 놀래키는 탓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울상이 되어버린 내 표정에 윤기는 설거지를 하면서 내게 몇 살 먹었냐고 물었다. 콧방귀를 뀌고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윤기 맨투맨이 들어있는 쇼핑백도 들고 나왔다. 오랜만에 본 영화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윤기가 보여줘서 그런가? 영화를 보고 나오니깐 저녁 시간이 조금 안돼서 우리는 영화관 내에서 운영하는 오락실에 잠시 들렸다. 카드만 있던 윤기여서 내 지갑에 들은 현금을 탈탈 털어 4000원을 만들어서 우리는 게임을 했었다. 철권을 했는데 역시 윤기는 못했다. 느릿느릿해서 그런지 내게 자꾸 옆구리와 팔을 맞는 탓에 윤기는 결국 포기를 선언했고, 내게 딱밤을 맞았다. 봐주지 않는다고 세게 때리자 윤기는 승부욕이 올랐는지 코인 노래방을 다음 결투로 신청했다. 진짜 나한테 이기고 싶었었나 보다. 내가 얼마나 노래를 못하는데... 역시나 윤기의 압승이었다. 내게 딱밤을 놓는 윤기는 정말 얄미웠다. 나보다 더 세게 때린 탓에 아직도 얼얼한 이마다. 그렇게 인형 뽑기와 철권을 몇 판 하고 나니 시간이 꽤 많이 지났다. 점심에 먹은 단호박 죽이 아직도 소화가 안됐는지 배가 안 고픈 탓에 오늘은 일찍 헤어졌다. 윤기는 내게 혹시나 배고플까 봐 편의점에서 돈가스 도시락을 하나 사줬다. 그걸 들고 집으로 같이 걸었다. '윤기야, 오늘 꿀잼.' '나도 허니잼.' '아, 노잼.' '죽어, 김여주.' '나 부탁하나 있어, 윤기야.' '뭔데?' '아까 노래방에서 불렀던그 노래 자기 전에 불러주면 안 돼?' '미쳤냐.' '그래, 됐다. 집 다 왔으니깐 이만 돌아가시죠?' 내 말에 윤기는 어깨를 살짝 주물러주고는 내일은 수업에 늦지 말라고 하곤 돌아갔다. 윤기가 돌아가고 들어온 집안은 역시나 적막이 가득했다. 부모님은 이제 다음 주에 오실 테고, 그전까지 혼자 있으니깐 집안은 엉망 중에 엉망. 그래도 오늘은 좋네. 내일은 꼭 수업 빼먹지 말아야지. 추신- 하루만. [암호닉] 언제나 환영입니당! 땅위, 찡긋, 설탕물, 달밤, 윤기야메리미, 핑쿠릿, 다솜, 너만보여, 사랑, 쿠크바사삭, 보보, 바다코끼리, 둘리, 또로롱, 미뉸기짱, 쫑냥, 아아악, 울샴푸, 네이버, 가든천사, 빅닉태, 1472, 슈가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