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어둠 속, 누군가 나를 구해줄 수 있다면 그 건 지훈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지훈과 말을 안한 지도 일주일 째였다. 지훈은 혼란스러워했고, 나랑 키스했다는 것에 대해 진리에게 죄책감을 가지는 듯했다. 그 날 이후 진리에게 늘 사랑한다는 말을 귓가에, 그리고 큰 소리로 말을 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지호의 머리 속을 울렸고, 지호는 가만히 있었다. 평소의 지호라면 지훈의 사랑 고백을 듣고 난 뒤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진리를 윽박지르거나, 소리치거나, 욕하거나, 비난하거나 어떻게든 진리를 울리려 애를 썼다. 그리고 지훈에게 원망 섞인 눈빛도 감추지 않았다. 그랬던 지호가 가만히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전교생들은 지훈과 지호 그리고 진리의 괴기스러운 관계를 주목했었고, 그 관계는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곤 했었다. 그랬던 지호가 조용하다. 마치 아픈 것처럼.
지호는 점점 자신이 말라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다음 날 유권은 지호의 반까지 찾아와 태일과 어떻게 아는 사이냐며 추궁했다. 아무 사이도 아니야, 란 지호의 말에 유권은 거짓말 치지 말라고 말했다. 쉬는 시간 마다 권은 찾아와 지호에게 태일의 존재에 대해 물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오히려 유권이 지호를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지호네 반 핵생들은 태일의 존재에 대해서 엉청 예쁜 여자일지도 모른다느니, 지호와 동거를 했던 사이라더니, 지호의 옛 애인일지도 모른다느니 등 온갖 루머를 생성했다. 그 루머들은 살이 붙고 붙어서 태일은 쭉쭉빵빵한 미녀 혹은 정말 잘생긴 미남에다가 신이 내린 목소리에 신이 내린 감성 그리고 신이 내린 매력을 가지고 있는 마성의 사람으로까지 묘사되었다. 태일이 형은 되게 무심한 사람이라서, 난 이때동안 그렇게 사람에게 무심한 사람은 처음 봤었는 데, 유권의 말이 윙윙 맴돈다.
노래를 하고 있구나, 음악을 계속 하고 있구나, 그랬구나 넌. 난 이리 매말라가고 있는데 넌 여전히 생기가 넘치는구나.
*
"자, 조용히 해! 오늘 상담은 23번부터 30번까지 다 할꺼니까 그렇게들 알고, 이번 주에 학원때문에 상담 못한 사람들 남아서 오늘 하고 간다. 이상!"
상담은 우선 번호 순대로 하고, 그리고 빠진 애들은 그 뒤에 하자, 일단 교실에서 자습하고 있어라는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야, 담임이 뭐라든?, 대학 어디 갈꺼냐고 묻지 당빠, 아 난 어디 가냐 대학 날 받아줄 곳도 없다, 킥킥 거리는 두 학생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호는 생각했다. 27번, 오늘 자신도 상담을 받는 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지훈을 쳐다봤다.
"우지호, 너 오래."
그 말에 교무실 문 앞에 섰다. 괜히 두근거린다. 죄지은 것도 아닌 데.
"어? 지호야. 여기 우선 앉아라."
"네."
"대학 어디 갈지는 정했냐? 보자, 우선 너가 전교1등이니까 학교장 추천 받아서 서울대 넣고, 그리고 고려대는 2,3등이 아마 받을 꺼야. 올해부터 연세대는 학교에서 여러명씩 낼 수 있으니까 서울대, 연세대 내고 또 다른 곳 생각한 곳 없니?"
"아, 저, 그냥 성적 되는 곳에 내려고요."
"지호야, 요즘 스카이 뿐만 아니라 서성한 내려면 자기소개서 필요한 거 알지? 추천서랑, 교과 100으로 넣는 곳 없어. 나중에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쓰려고?"
"그 때되면 알겠죠, 지어내면 되니까."
"……."
"……."
"그래 알겠다, 일단 그렇게 해두고 과는 아직 못정한 것같으니까 과도 생각해두고, 너무 높은 과를 내면 또 떨어질 수 있으니까, 알지?"
"네."
"1학년 진로란에 음악인을 적어 놨던데……."
"……."
"음악 관련 준비하는 거 아니지?"
"아니에요, 그만 뒀어요. 음악, 그냥 재미삼아 했던거에요."
"아 그렇지? 그래,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도와주마."
"……네."
재미삼아 음악을 한 적없었다. 한번도 난 진심을 담아, 나의 모든 것을 담아, 그리고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난 열심히 했었다.
밖으로 나와 고개를 흔들고는 걸어나가려고 했다. 진짜 그만 뒀냐, 낮은 목소리에 지호의 발목이 잡혔다. 지훈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고, 지훈의 눈동자에 자신이 있었다. 응 그만 뒀어, 지호는 웅얼거리곤 교실로 향하려고 했다. 갑자기 잡힌 지호의 손목은 뜨끈뜨끈했다, 땀이 묻어져 나와 끈적거리기도 했다. 지훈의 몸은 뜨거웠다. 너무 뜨거워서 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뜨꺼웠다. 지호가 놀라 지훈을 쳐다봤다.
"왜 그만 뒀냐?"
"너가 그만 하라고 했잖아."
지훈은 그 말을 듣고는 말문이 턱 막혔다.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지호의 어깨를 뜯고, 뭉게고, 날지 못하게 가둬놨었다. 엉엉 울면서 지호가 자신에게 말했던 기억이 어스름하게 떠올랐다. 지훈아, 제발, 망가진 지호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뭐라고 했는 지 기억 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지훈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할 말 없으면 가볼께."
"너, 나랑 이대로 말 안할꺼냐?"" 내가 말 안하는 거 아니야, 너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 거겠지."
더보기 급작스러운 전개가 이어져나가네요ㅠㅠ 이번화는 잼없음 ㅠㅠ 난 지호가 성질내는게 좋아여...흡흡 담편에 성질내는 지호를 기대하면서 댓글달아주신분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조금은 지호와 태일과 지훈의 관계가 드러나네여 ㅋㅋ........ 예전에도 적었는디 저는 공수관게를 떠나서 그냥 지훈과 지호의 사랑이야기를 쓰는꺼ㅃ니다 지훈이 남자역할 지호가 여자역할이 아닌 남자와 남자가 좋아하는 걸 쓰는거니까여 그래서 우표든 피코든 상관없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