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예쁘니까.
14
"……여기가 임원들 술자리인가 보죠?"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일까. 어디서 튀어나온 지 모를, 갑작스러운 권순영의 등장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그건데, 너는 왜 또 내 옆에 앉는 건데…? 여기 자리가 얼마나 많은데! 가뜩이나 옆에 승철 선배가 앉아있어서 신경 쓰여 죽겠고만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는 권순영으로 인해, 나는 오도 가도 못하고 그 둘 사이에 껴서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
왜, 왜….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건데. 아무 말없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권순영의 눈빛에 내 고개는 저절로 숙여지고 만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애써 모른 척해 보려고 하지만 계속해서 느껴지는 그의 시선에 힐끔 그를 올려다보는데, 다시 보니까 나를 보는 게 아니고 어디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응? 뭘 보는 거지….
"좋네요. 이렇게 다 모이니까. 안 그래도 조 없어서 되게 심심했는데."
"……."
"정말 다 좋은데… 그전에,"
"……?"
"이 손은 좀 놓으시고."
엄마야…! 어떻게 보면 부드럽게, 혹은 거칠게 승철 선배의 손을 내리친 권순영은 제 쪽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무방비 상태였던 난 그대로 이끌렸고. 아, 아까부터 보고 있던 게 이거였나 보구나…. 권순영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승철 선배에게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던 나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을 수가 있었다. 어깨에는 아직 선배의 온기가 남아있었지만.
"이제 정신 좀 차렸나 보다?"
"네, 뭐 그럭저럭."
"다행이네. 걱정했었는데."
"그렇게 가만히만 있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지금처럼.' …지금 저 둘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건 확실하게 알겠다. 나뿐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그 둘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이럴 거면 그냥 둘이 앉아서 얘기를 하든가 하지, 왜 나는 가운데에 껴가지고…. 눈치만 보다가 앞을 바라보았을 땐 여기서 제일 어린 석민이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보였다. 괜히 내가 다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아, 분위기가 왜 이래요! 선배, 잔 받으세요. 제가 따라드릴게요."
그때, 분위기를 좀 띄워보고자 전원우가 웃으면서 승철 선배에게 잔을 권했다. 선배는 좋다는 듯이 그에게 잔을 건넸고, 그렇게 조금씩 분위기가 풀어지자 그제야 석민이도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진짜 어떻게 해야 될지 감이 안 잡혔었는데…. 전원우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아까 많이 마셨어?"
"어? 언제?"
"저녁 먹을 때."
"음… 조금…?"
"마실 수 있겠어?"
옆에서 이지훈의 잔을 채워주던 권순영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음… 오늘은 기분이 기분인지라 마셔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니 잔의 반절만 채워주던 권순영은 말했다.
"혹시라도 속 쓰리면 말해. 약 사다 놨으니까."
"응… 고마워."
받은 술을 홀짝 마시려던 순간, 양옆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두 남자 때문에 아주 술을 마시다가 체를 할 지경이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다들…! 내가 술 먹는 게 그렇게 신기한가? 권순영이 조금만 채워준 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선들이 너무 부담스러워 얼마 못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니,
"왜, 못 마시겠어?"
"자, 안주."
못 마시겠냐며 당장이라도 제가 대신 마셔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권순영과, 안주라고 뜯어놓았던 과자 중에 하나를 내게 건네주는 승철 선배 때문에 나는 작게 한숨을 푹 내쉬어야 했다. 불편해미치겠네, 진짜…. 하지만 티는 못 내고 어색하게 하하 웃으면서 권순영에게는 괜찮다고, 과자를 건네준 선배에게는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나는 이 둘이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러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민규는 어디 있을까? 이 자리가 너무 숨 막혀서였을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그런 민규가 갑자기 불현듯 떠오르자 나는 그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민규가 김승민이랑 같은 조라 얼마 보지도 못했는데… 한 번 찾아보기나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저기 뭐야?'
'쟤가 왜 저기에 있어?'
'뭐야; 존나 안 어울려.'
…아. 목이 뻣뻣하게 굳은 게 느껴질 정도로 경직이 된 나는,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그 상태로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잠시 잊고 있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빛이 나고, 그만큼 주목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었다는걸. 나 같은 건 함부로 같이 할 수 없는, 그런. 혹시라도 누가 저 말을 들었을까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다들 끊김 없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걸 보니 아무도 그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 이렇게 시끄러운데 그걸 누가 듣겠어…. 이런 거에만 쓸데없이 귀가 밝은 나만 듣는 거지. 기분이 우울해져 손가락으로 괜히 술잔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신경 쓰지 마, 저런 말."
……?
"……네?"
"엄연히 따지면 네가 있는 곳으로 우리가 온 건데, 알지도 못하면서 저런다. 그치?"
누군가가 내 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기에 고개를 들자, 승철 선배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선배는 들었구나. 나 말고도 누가 내 흉보는 소리를 들었다면 굉장히 쪽팔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이 그냥 무시해버리는 승철 선배를 보니 괜한 생각을 한 것만 같아 내가 다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뭐야, 둘이 무슨 얘기해요?"
"넌 몰라도 돼."
"아, 뭔데!!! 왜 나만 빼고 둘이 얘기해요!!!!"
"비밀이야, 인마."
그러니까 귀 좀 열고 살라고. 얄밉게도 술을 마시며 말하는 승철 선배에 권순영은 '귀 잘 열려 있거든요?'라며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 나는 이내 큭큭대며 웃어야 했다. 이 둘이 나한테 왜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적어도 악의는 없는 거 같으니까. 조금은 마음을 열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
"어디 갔나 했더니…."
또 저기에 있네. 정한은 여주 옆에 철썩 붙어있는 승철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열심히 너를 찾은 내가 등신이지… 너무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걸까, 앞에 앉은 여자 후배들이 선배님 어디 보는 거냐며, 내 말은 듣고 있는 거냐며 칭얼대는 소리가 들리기에 정한은 미안하다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놈의 인기는 복학을 하고 나서도 식을 줄을 모른다.
"선배는 여자친구 없어요?"
"응."
"왜요?"
"그냥."
여자 후배의 눈에서 알 수 없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 빛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굳이 말을 안 해도 알 것 같아서 정한은 그저 모른 척, 그들이 노골적으로 던지는 질문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답하고 있었다. 그렇게 별 시답잖은, 영양가 없는 대화들을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야, 야! 이리 와! 여기 앉자."
그때, 어디선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기에 정한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말 마음에 안 들던 승민이 제 친구들을 무더기로 데리고 한 쪽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인상이 절로 찌푸려질 지경이었다. 역시 마음에 안 들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후배가 따라준 술을 마시려고 하는데,
"어, 여기! 여기야!"
김승민이 손을 흔들며 누군가를 아주 격하게 반기기 시작했다. 같은 조를 하면서 쟤가 저렇게 환하게 웃고, 또 격하게 행동하는 건 처음 보는 터라 대체 누군가 싶어서 걔가 손을 흔들고 있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
거기에는 민규가 서 있었다. 딱히 김승민을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그런 민규가. 민규의 팔목을 잡아끌고선 제 옆자리에 앉히던 김승민은 아주 술이 넘칠 정도로 민규의 잔에 가득 따르기 시작했다.
"야, 얘 봐. 존나 잘생기지 않았냐?"
"어. 근데 이렇게 잘생긴 애를 네 옆에 앉혀도 되냐?"
"왜?"
"너 존나 못생겨 보이니까."
"뒤질래?"
그쪽에 시선이 팔려 잠시 대화가 뜸해지자 여자 후배들이 다시 뭐라 하기 시작했고, 정한은 알겠다며 그들을 달래야만 했다. 그들을 달래면서도 귀가 그쪽으로 향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야, 민규야. 술은 잘 마시냐?"
"…아니요, 선배님은요?"
"나야 말할 것도 없지. 야! 선배님이라고 하지 마! 그냥 형이라고 불러!"
"…네?"
"원래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넌 잘생겼으니까 특별히 허락해줄게.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인마."
"…아."
"솔직히 16애들 중에 니가 제일 잘생긴 거 같아. 그 최한솔? 존나 잘생기긴 했는데 존나 별로야. 난 너 같은 스타일 좋아하거든. 키 크고, 잘 생기고."
……아, 뭐야. 고작 저런 거 때문이었어? 정한은 술을 마시다가도 어이가 없어서 허, 하고 웃어야만 했다. 보니까 각 나오네. 잘생긴 애들을 곁에 두면서 쓸데없이 우월감을 느끼는, 그런 한심하기 그지없는 애라는 걸. 잘생긴 것도 아닌데 그런 애들이랑 잘 지내면 자기가 뭐라도 된 양, 잘생긴 애들보다도 더 깝치고 다니는 그런 애.
"……근데 저긴 뭐냐?"
한껏 업 되어있던 김승민의 목소리가 순간 싸해질 정도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서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제 앞에서 들려오던 후배들의 중얼거림.
"저기 뭐야?"
"쟤가 왜 저기에 있어?"
"뭐야; 존나 안 어울려."
누구? 정한의 말에 여자 후배들은 아니라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사실 보지 않아도 누굴 말하는지 잘 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정한은 굳이 그들의 시선을 따라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보같이 웃고 있는 최승철, 아까 봤을 때는 없었던, 언제 등장했는지 모를 권순영, 그리고 그 사이에 앉아 있는 여주. 그 외에도 전원우, 이지훈, 석민이라는 남자애. 누가 봐도 핫플레이스다. 그런데 그 중심에, 그것도 홍일점으로 저 아이가 앉아있으니 다들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 거겠지.
"……아, 진짜 좆같네. 쟤 어떻게 내 눈앞에서 없애는 법 없냐?"
"없어, 그딴 거."
"씨발. 존나 꼴 보기 싫은데 어떡하지? 또 가서 깽판 한 번 쳐줘?"
……생각하는 꼬라지하곤. 지금 저쪽을 보아하니 최승철은 아무것도 모르는 거 같고… 그러면 막을 사람이 나 밖에 없다는 건데. 뭔가 귀찮은 일에 휩싸일 것만 같아 골치가 아파졌지만 그래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진 않았기에 승민이 무슨 짓이라도 하면 제가 막아야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형. 저 궁금한 거 있는데."
"어?"
"물어봐도 돼요?"
"어, 어…! 그래!"
갑작스러운 민규의 질문에 승민은 당황이라도 한 건지 몇 번이고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당황한 건 정한 자신도 마찬가지였고. 누가 봐도 그 자리에 있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던 민규가 뜬금없이 궁금한 게 있다며 승민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 타이밍에서? 처음에는 의문을 가졌지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또 거듭하자 점점 짜 맞춰지던 퍼즐들.
"아……."
네가 지금 방패막이 되겠다, 이거야? 생각해보니 쟤를 잊고 있었다. 최승철이나 권순영 못지않게 여주를 끔찍이도 생각하는 저 아이를. 낮에 피구를 할 때에도 김승민이 여주에게 모진 말을 하자 민규는 가차 없이 그의 머리통에 피구공을 날렸고, 여주가 보이지 않았을 때에도 혼자 쩔쩔매며 걱정을 했었다. 이번에는 이렇게 해서 김승민의 시선을 잡아두겠다는 것 같은데… 하, 되게 웃기는 애네. 흥미로운 상황에 정한은 피식 웃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봐!"
"네, 형."
형 소리는 죽어도 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억지로라도 그의 비위를 맞춰주는 민규 덕분에 다행히 큰일은 벌어질 것 같지 않았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 돼, 말아야 돼…. 뭐, 어쨌든 민규가 김승민을 맡고 있으니 그럼 내가 해야 할 일은….
"너네."
"네?"
"쟤 싫어해?"
말실수를 했다는 걸 아는 건지 제 눈치만 보고 있는 후배들에게 물었다. 김여주 싫어하냐고. 자기가 지켜봤을 때, 여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김승민은 싫어하는 걸 넘어서 아주 증오하고 있었고. 무슨 이유 때문인 지는 모르겠다. 나는 저 아이들이랑 친하지도 않고, 마주친 적도 얼마 없으니까. 그래서 한 번쯤은 들어봐야 된다고 생각했다. 제 친구가 몹시나 아끼고, 챙겨주는 아이였기에. 그런 아이에 대해서 나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겠는가. 마침 상황이 이러니 지금이 물어보기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데, 제 질문에 여자 후배들은 쩔쩔매기에 바빴다.
"너네 쟤 싫어하는 거 아까 다 들켰으니까 얘기해봐."
"……."
"왜 싫어하는 거야?"
"……그게."
괜히 자신이 긴장이 돼 정한은 침을 꼴깍 삼켰다. 무언가 감당 못할 이유가 나온다면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몰라서.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성격이 엄청 이상하거나, 혹은 심각할 정도로 어디에 문제가 있어서 안고 갈 수 없을 정도라면 승철에게 정말 냉정하게, 그만 지내라고 말을 해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여주도 여주지만 자신에게는 제 친구가 더 중요했으니까.
……그러나,
"뭐 싫어하는 데 이유가 있나요… 그냥 싫어하는 거지."
'싫어하는 데 이유가 있냐. 그냥 싫은 거지.'
……어? 갑자기 오버랩되는 기억에 정한은 잠시 멈칫했다. 2년 전, 그 아이를 봤을 때 다들 저렇게 말을 했었지. 굳이 싫어하는 데 이유가 있겠냐고. 그때 최승철 너는 뭐라고 얘기했었더라….
'그냥 싫다는 게 어딨어. 그건 걔네들이 기억하기 귀찮아서 그런 거야. 사람이 사람을 싫어한다는 걸 내가 어쩔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내가 그 사람을 왜 싫어하는 지 한 번쯤은 생각이라도 했으면 좋겠어. 욕먹는 그 사람은 대체 어쩌라는 거야? 이유도 안 알려주면서 그냥 싫다고만 하면.'
"……그게 끝이야?"
"……네?"
"이유가 그게 끝이냐고."
"어……."
"……."
"그냥 별론데… 진짜 이유 없는데."
"……."
"아마 다들 별 이유 없을걸요. 싫어할만 하니까 싫어하는 거지."
……아, 잠깐만. 다시금 떠오르는 악몽 같던 그때의 일에 정한은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2년 전과 똑같은 루트다. 확실하게 장담할 순 없지만, 겉으로 봤을 땐 거의 비슷해. 아무 이유 없이 여주를 싫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여주 옆에 있는 최승철. 승철이 여주에게 관심을 보였을 때도 아니겠지 하고 넘겼다. 잠깐 그러고 말 거야, 하고. 그런데 승철은 줄곧 여주에게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 증거로 지금도 저 아이의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으니까.
그때도 그랬다. 그 아이를 싫어하는덴 이유가 없었고, 웃기게도 그 아이 옆에 남아 있던 건 최승철 하나였다. 다들 기피하던 그 아이를 혼자서만 그렇게 챙겼었지.
…그 동정심이 나중에 독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
정한은 다시 고개를 돌려 승철을 바라보다가 그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승철의 옆에 앉아있던, 그 아이에게로.
"……."
……넌 어떤 아이일까?
과연 넌, 그 아이하고 많이 다를까?
*
"승철아, 잠깐만."
교수님이 찾는다는 조교쌤의 말에 승철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피곤하면 들어가서 쉬라는 말을 해줬고.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내게 인사를 하며 멀어지는 승철 선배를 보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권순영이 갑자기 내게 말을 건네왔다.
"여주야."
"응?"
"아까 내가 할 말 있다고 한 거… 기억나?"
……아, 맞다. 얘 아까 나한테 할 말 있다고 했지. 뭔진 모르겠지만 저렇게 다시 얘기를 꺼낼 정도면 그렇게 중요한 얘기였던 걸까…? 중요한 거니까 지금 다시 말을 꺼내는 거겠지? 생각해보니까 나 되게 웃기네. 얘가 나한테 하려는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지도 모르면서 나 혼자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넘겨버리다니. 쉽게만 여겨버렸던 내가 너무 어리석고, 또 권순영에게 너무 미안해서 나는 당연히 기억이 난다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잠깐 나가서 얘기할까?"
뭐야, 뭔데 밖에 나가서 얘기하자는 거야…. 이번에는 무조건 그의 말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진지하게 말을 하는 권순영을 보자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무서워졌지만….
아니야, 피하기만 해서는 안돼. 그리고 이번에도 안 들어버린다면 나 진짜 얘한테 실례하는 거잖아. 언제나 내 편 들어주고, 나 믿어줬던 앤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권순영을 따라 나도 일어나려고 하는데…,
"…선배님!"
두 볼은 발그레하게 물들어서 권순영의 팔에 팔짱을 끼던 혜지의 등장에 나도, 권순영도 서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선배님 어디 가세요! 나 선배님이랑 술 마시려고 여기 왔는데에!"
"…혜지야, 내가 잠깐 갈 데가 있어서."
"어디요? 나도 같이 가요!"
나도 선배님 따라갈래-! 꺄르르 웃으며 말을 하는 혜지를 보던 권순영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말할 타이밍이 아니란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권순영은 멋쩍은 듯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미안하다고 말을 해왔다. 아니야, 네가 왜 미안해해! 네 잘못도 아닌데…! 손사래를 치며 말을 하자 권순영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다며 일단 혜지를 자리에 앉히기에 바빴다.
"너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나 많이 안 마셨는데에…. 저 멀쩡해요, 진짜로!"
……음. 권순영은 혜지를 챙기기에 급급했고,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어들 틈은 없었다. 누가 없나 주변을 둘러보는데 전원우와 석민이는 벽에 기대 잠든 지 오래였고, 이지훈은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오늘 웬일로 술을 그렇게 마시나 했더니 결국에는 뻗어버렸구나…. 혼자 술을 마시기에도 뭐 하고, 딱히 얘기할 사람도 없고 해서 나는 바람이라도 쐴 겸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
좋다. 바깥공기를 마시고 있자니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어 나는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 영롱하게 떠 있는 별과 달도 내 마음을 괜히 간질거리게 만들었고. 엠티 오길 잘했네…. 작년에는 울면서 자기에 바빴는데, 오늘은 이렇게 하늘을 감상할 시간도 있고 말이야.
펜션 주변을 걷다가 낮에 내가 앉아 울던 벤치가 보였다. 다시 그 벤치에 앉아 오늘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해본다. 떠오르는 여러 가지 기억들. 여기에 앉아서 울기도 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도 참 많았지. 깊게 팬 구덩이가 다시 메꿔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 그 구덩이를 채워주던 덕분에 오늘은 슬픈 기억보다 기쁜 기억이 더 떠올랐고, 그것들을 더더욱 안고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이 엠티를 돌이켜봤을 땐, 행복한 기억만 떠오를 수 있도록.
으아, 잘 버텼다! 작년에 비해서는 굉장히 발전한 거지. 내년에 엠티를 오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울지 않고, 웃기만 하고 왔으면 좋겠다…! 혼자서 그런 다짐들을 하며 다시 하늘을 쳐다보려고 하는데….
"……으으."
……? 뭐야, 이거 무슨 소리야…? 어디선가 들려오던 이상한 소리에 나는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저쪽에서 보이던 누군가의 형체. 어두워서 그런지 잘 보이지 않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지만, 그래도 그 사람의 정체를 전혀 알 수가 없어 나는 이제 공포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씨, 뭐야. 대체 누구야…! 도망칠까? 술 먹고 나한테 행패 부리는 거 아니야…?
…잠깐, 저거 혹시 김승민 아니야?
"…오 마이 갓."
진짜 김승민이면 어떡하지?! 날이 날이다 보니 걔는 뭐 안 봐도 술 한 트럭은 마셨을 테고, 그럼 당연히 취했겠지…? 아, 망했어. 어떡해. 빨리 여기서 도망쳐야 돼!!! 그래, 내 인생이 그렇지, 뭐. 오늘 이상하게 잘 끝난다 싶었다…!!! 상대가 김승민이라는 생각을 하자 극도로 무서워져서 황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우욱!"
그 사람은 갑자기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고,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는 차마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아오, 이 바보야. 그냥 가자. 나 말고도 저 사람을 챙겨주는 사람 하나 없을까 봐…!
……아, 근데 못 가겠어! 만약에 내가 그냥 갔다가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해…? 저렇게 술까지 마셨는데. 진짜 미련하기 그지없는 나를 자책하면서도 나는 그 사람에게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래, 김승민이면 냅다 튀자. 상대는 술 취한 사람인데 죽기 살기로 뛰면 혹시 못 도망칠까…. 그 사람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내쉬는 심호흡의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을 무렵,
"……어?"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전혀 예상 치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순간 아무런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지금?
"……으."
"괜찮…?"
속이 많이 쓰린 건지 가슴팍을 두들겨대던 그에게 괜찮냐고 물으려고 하는데, 정말 예측할 수 없던 인물답게 그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 아이는 잡을 수도 없게, 냅다 산길 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던 게 아니던가.
"어, 어…!!!"
야, 너 어디 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무작정 산길을 올라가는 그 아이를 보며 나는 소리쳤다.
"야!!!! 이지훈!!!!!!"
차차차입니다! |
안녕하세요, 우리 예쁜이들!!!!! 이 애칭 오랜만에 적으려고 하니까 굉장히 오글거리네요. 공지 올리고 나서 나름 빠르게 온다고 노력을 했는데 벌써 5월이 되고 8일이나 지났군요... 인생...ㅠㅠㅠㅠㅠㅠㅠㅠ 정말 오랜만에 여러분들을 뵙는 거라 많이 떨리고... 네... 마치 첫 화를 올리는 느낌인 것 같아요... 얼른 현생이 조금이라도 정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쭉 달리게ㅠㅠㅠㅠㅠ 얼마나 시간이 걸릴진 모르겠지만, 최대한 빠르게 다시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바쁘실 텐데 우리 조금만 힘내요ㅠㅠㅠㅠ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암호닉은 일단 13화 본문에 올렸던 걸로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청해주실 분은 [암호닉] 이렇게 괄호에 넣어서 적어주세요!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ㅠ |
❤ 암호닉 ❤ |
밍구님 / 민세님/ 17학번님/ 신아님/ 뿌야님/ 발꼬락님/ 호잇님/ 순영님/ 기복님/ 반장님/ 두루마리님/ 잼재미님/ 소원님/ 별이님/ 계란과자님/ 내감자키쟈님/ 흰둥이님/ 8월의 겨울님/ 쮸쀼님/ 달레님/ 뽀나노우유님/ 까르보나라님/ 뿌아리님/ 솔방울님/ 밍구칭구님/ 거얼음님/ 스팸님/ 레인보우샤벳님/ thㅜ녕이님/ 뿌잇뿌잇츄님/ 0815님/ 권데레님/ 벨베뿌야님/ 오레오님/ 폼피님/ 지눼뀨님/ 히히님/ 오허니님/ 복덩어누님/ 뿌뿌뽐뿌님/ 뿌뿌승관님/ 호랑님/ 권순영다리털님/ 감자오빠님/ 빙구밍구님/ 17뿡뿡님/ 최허그님/ 부부젤라부라보님/ 두유워누님/ 0213님/ 명탐정코코님/ 새얀님/ 세네님/ 함냐님/ 스틴님/ 낙타님/ 초록책상님/ 비회원님/ 침개님/ 둥둥님/ 급식체님/ 준휘는 처으메야?님/ 헨델님/ 코인님/ 1600님/ 홋이님/ 애를도라도님/ 솔랑이님/ 세봉이님/ 1978님/ 열일곱님/ 아드리나님/ 어흥님/ 얼음땡님/ 숭늉님/ 쎕쎕님/ 몬드님/ 원우야 나랑 살자님/ 치자꽃길님/ 꼬야님/ 꽃잎님/ 규애님/ 팝콘님/ 낑깡님/ 부르르님/ 100609님/ 스타터스님/ 프리지아님/ ㅂ님/ 귀마개님/ 낭낭님/ 라온하제님/ 뱃살공주님/ 들국화님/ 만두짱님 뿌뀨야님/ 코코몽님/ 복덕방아줌마님/ 부정한님/ 꿀님/ 삐용님/ 찬이엄마님/ 다람쥐님/ 전주댁님/ 몰몽님/ 킨다님/ 충전기님/ 7월17일님/ 세븐틴틴틴님/ 울려줘요님/ 이지훈오빠님/ 귤콩님/ 벌렝님/ 앙지수띠님/ 순영맘님/ 수녕이님/ 민규샵알바님/ 개빛살구님/ 프레이그런스님/ 호찡님/ 느린걸음님/ 호시탐탐님/ 난희님/ 고구마라떼님/ 0708님/ 필소님/ 햄찌의시선님/ 녜남님/ 단찬단찬님/ 쑤뇨님/ 우양님/ 문홀리님/ 꿀과너님/ 조히님/ 지하님/ 스코님/ 치킨반반님/ 고라파덕님/ 도리님/ 순영인절미님/ 박수짝짝님/ 호시 오빠님/ 유레베님/ qaz_plm님/ 봉글이님/ 달님/ cracker/ 눈꽃님/ 찬란한 순영이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