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예쁘니까.
13
이게 뭐야. 신나서 그 종이를 펼쳐보았을 때에는, ‘김치’가 적혀 있었다. 그것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선명하게. 아니, 뭐 꽝인 것보다는 낫긴 한데…. 김치는 우리 조에 많다고, 저녁 메뉴가 김치찌갠데! 아… 찾아도 뭘 이런 걸 찾았을까. 허탈한 마음에 저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뭘 기대한 거야, 내가 그렇지 뭐…. 그 쪽지를 다시 접어 주머니에 넣고는 나는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에이, 김 빠져.
"야, 일로 와봐. 여기 가보자."
이런 미친. 산을 내려가던 도중에 나는 맞은편에서 걸어 올라오는 김승민을 보곤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만나도 왜 이딴 데서 만나고 난리야. 좀 트여 있으면 어디로 도망치기라도 하지…! 어디로 도망가야 될까 싶어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도중 풀이 무성하던, 어떤 수풀 더미 뒤로 몸을 숨겼다. 저벅, 저벅하며 발걸음이 점점 가까워지는 게 느껴져 입을 꾸욱 틀어막고 숨 쉬는 소리마저 최대한 죽였다.
"씨발, 대체 어디에 숨겨놓은 거야. 하여튼 둘 다 지랄 맞아 가지고는…."
딱 봐도 승철 선배와 권순영을 욕하는 게 느껴져 순간 울컥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런 내게 들던 의문. ……?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둘이 욕먹는 거에 이렇게 화가 나는 거지? 전에는 분명 안 이랬는데.
"아, 어디 있어!"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화를 버럭 내며 소리를 지르는 김승민에 나는 숨을 흡 들이켰다. 없으면 좀 내려가지, 왜 여기서 이러는 거야!
"어."
거기 누구야. 자세를 바로잡겠다고 잠깐 움직였더니, 바스락 소리가 나던 걸 들었나 보다. 김승민의 말에 나는 정말 굳어버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튀어야 되나? 튀면… 어디로? 산 위로? 아님, 아래로? 별생각을 다하고 있는데 야속하게도 발자국 소리는 점점 더 내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아, 미쳤어. 진짜 오늘 일진 왜 이래.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아 나는 두 눈만 질끈 감았다.
그때,
"야! 내려와 봐. 여기 두 개나 찾았어!"
산 아래서 김승민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김승민은 ‘어디!’를 외치며 뛰어가기 시작했고, 그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그제야 긴장이 풀린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와… 진짜 심장 터지는 줄 알았어. 무슨 보물찾기 하다가 나 혼자 서바이벌을 찍고 있냐. 숨을 고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시선을 땅바닥에 옮겼을 때였다.
"헐."
대박, 진짜 오랜만이다! 그곳에는 토끼풀들이 잔뜩 자라있었다. 어렸을 때 이사 가기 전에, 아파트 뒤뜰에서 맨날 동생이랑 네잎클로버 찾겠다고 해가 질 때까지 쪼그려 앉아서 찾고 그랬었는데. …항상 못 찾았었지만. 갑자기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 생각에 방금 전까지의 긴장감은 잊고 어느새 나는 웃고 있었다. 오늘은 찾을 수 있으려나. 나는 눈에 불을 켜고 그것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약간은 쌀쌀해졌다고 느꼈을 때쯤, 나는 그중에서 다른 것들과는 유난히도 다르던, 어떤 것을 발견했다. 이건가? 혹시라도 잎이 겹친 건 아닌가 싶어서 그것의 잎을 하나하나 세어 보는데….
"…대박."
찾았다. 그토록 찾던 네잎클로버. 처음 발견하는 네잎클로버에 도무지 흥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을 조심스레 꺾어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하나, 둘, 셋, 넷…. 잎은 정확히 네 개였다. 와, 미쳤다. 얼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이거 하나 찾았을 뿐인데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졌다.
"…진짜 행운 좀 찾아왔으면 좋겠네."
어렸을 때부터 네잎클로버는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했기에, 그래서 더 열심히 찾아다녔었다. 이 네잎클로버는 과연 내게 행운을 가져다 줄까? 황폐하고 피폐한 내 인생을 한 번쯤은 행복으로 적셔줄, 그런 행운을 가져다주면 좋으련만…. 하지만 이내 부질없음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거 어디다가 보관하지? 그냥 주머니에 넣으면 망가질 거 같고, 어디에 보관하는 게 나을까 생각하던 나는 일단 핸드폰 케이스를 열어 그 안에다 구겨지지 않게 잘 넣고는 다시 닫았다. 이러면 좀 낫겠지.
"어우, 추워."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코를 훌쩍이고 있을 때, 손에 들린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끊기지 않고 반복적으로 울리는 진동에 전화임을 알아차리고는 그것을 확인했다. 누구지….
"……?"
응? 승철 선배…? 임원이니까 저장만 해놨었지, 사적인 걸로는 연락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나와 선배였기에 지금 내 핸드폰에 그의 이름이 뜨는 것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뭐야, 잘못 건 건가? 잘못 걸었나 싶어서 멍하니 그것만 쳐다보고 있는데, 그 전화는 이내 뚝 끊겼다. 그럼 그렇지. 잘못 걸었나 보네, 선배가.
하지만,
"…엥?"
다시금 걸려오는 전화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디야?
"저 여기 뒷산인데…."
-왜 아직도 거기 있어!
"네?"
-…하, 아니. 안 보이길래. 걱정돼서.
뭐야, 지금 몇 신데?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시간을 확인하니 시간은 어느새 여섯 시를 향하고 있었다. 헐, 나 이걸 대체 몇 시간 동안이나 찾은 거야. 그제야 나는 왜 하늘이 어둑해진 건지, 왜 한기가 들었던 건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금방 갈게. 거기서 기다려.
……?!!! 아니요!!!! 선배의 말에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선배가 나를 왜 데리러 와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리고 우리가 막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요…?
-왜?
"저, 저 혼자 내려갈 수 있어요!"
-정말로?
"당연하죠…!"
-…위험한데.
아니에요, 진짜 혼자 갈 수 있어요. 다급하게 그 말을 하고는 이따 뵙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후우, 진짜 놀랬다. 선배가 나한테 전화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서. 그것도 데리러 온다니…. 으으, 생각만 해도 어색함의 극치다. 그나저나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내려가야겠네…. 시린 어깨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나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
"후…."
전화해보길 잘했네. 아까 피구할 때 그렇게 사라지고 나서 그 뒤로 통 못 봤더니 아직도 그 아이가 혼자 있는 줄 알고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모른다. 목소리 들어보니까 그나마 나아 보이는 것 같긴 한데….
"권순영."
쟤는 왜 아까부터 저렇게 뭐 하나 빠진 사람처럼 저러고 있냐고. 쪽지를 숨길 때에도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지 제가 몇 번이나 불러도 대답이 없었고, 지금은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는 순영을 보며 승철은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까 여주랑 무슨 일 있었나? 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니 이번에도 한 3초 후에나 반응을 보이며 저를 바라보던 순영.
"너 아까부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뇨. 아무것도."
"뭔진 모르겠지만 정신 차려."
그럼요. 정신 차려야죠…. 제 볼을 두 번 찰싹이던 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왜."
"선배, 아까 전화한 사람 김여주예요?"
뭐야. 멍 때리고 있더니 들을 건 또 다 들었나 보네. 고개를 끄덕이니 순영의 얼굴은 다시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진 것 마냥.
"…아, 나도 사적으로 전화해본 적 없는데."
"어?"
"아니에요."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제 머리를 싸매고 혼자 구시렁거리던 순영에 승철은 정말 물음표,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냥 내버려 둬야겠다. 건드려봐야 좋을 게 없을 것 같았으니까.
"선배!"
그때,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병신아. 어찌 된 게 너는 꽝만 뽑냐?"
"지는. 하나도 못 찾은 게 왜 지랄?"
산으로 내려와 우리 조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앞에서 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승민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노선을 변경했다. 한 바퀴 돌아서 가야겠네. 조금은 귀찮더라도 쟤랑 마주치는 것보단 낫겠지. 그나저나 아까 그렇게 뛰어내려가더니만 하나도 못 찾았나 보구나. 쌤통이다. 왠지 모를 통쾌함에 나는 혼자 큭큭 웃었다.
"선배!"
한 바퀴를 빙 돌아 우리 조원들이 있는 곳으로 갔을 때에는, 석민이가 내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석민이는 찾았으려나 모르겠네.
"많이 찾았어?"
"저 하나도 못 찾았어요."
그 흔한 꽝 쪽지도 못 찾았어요…. 흑흑 우는소리를 내는 석민이를 보며 나는 그저 등을 토닥여 줄 수밖에 없었다. 근데 뭐, 상품권 아니면 다 부질없는 거니까…. 혼자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내 생각이라도 읽은 건지 갑자기 석민이가 발끈하며 말했다.
"아니, 선배! 쟤가 그거 찾았다니까요?"
"응?"
"그 상품권!"
"누구?"
"쟤요!"
헐, 누구지? 나는 석민이가 손끝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끝이 닿은 곳에는….
"이혜지요! 아, 대박 부러워. 나는 진짜 하나도 못 찾았는데."
혜지가 있었다. 권순영 앞에서 쪽지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던 혜지가. 권순영에게 자랑이라도 하는 건지 그 쪽지를 펼쳐 보이며 그 아이는 누구보다도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런 혜지를 보는 권순영의 눈에서는 약간 그런 게 담겨있었다. 오구오구… 뭐 이런 거? 저런 표정을 짓는 권순영은 처음이라 기분이 좀… 이상했다.
와, 그나저나 저렇게 예쁜 애는 운도 가지고 태어나나 보다. 얼굴도, 머리도, 몸매도 다 가지고 태어난 그 아이는 어떻게 상품권 쪽지를 떡하니 찾았을까. 확률은 정말 희박했었는데. 괜스레 마음이 우울해져와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백날 노력해도 나는 아마 저 아이보다 낫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1조부터 차례대로 자리를 잡고선 다들 앉았다. 1등에게는 상금이 지급될 예정이니 각자 생각해 온 요리들을 한 번 잘 만들어보라던 교수님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모두 집에서 가져온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아, 요리를 하려면 버너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꽤나 무거워 보이는 것에 석민이가 이걸 들고 오느라 고생 좀 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까 석민이 덕분에 내가 나름 편한 걸 들고 올 수 있었구나. 그때 이 아이가 나 대신에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생각해보니 그때 고맙다는 말도 못한 거 같아 나중에 꼭 고마웠다는 말을 전해야겠노라고 다짐하고 있을 때,
"뭐? 안 가져왔다고?"
"아, 깜빡했어. 분명 아침에 들고 나온다는 게…."
"까먹을 게 따로 있지, 미친놈아! 우리 이제 어떻게 해!!!"
……? 이게 무슨 소리야.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던 나는 선배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하게 된 나는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석민이한테 버너를 넘기고 귀찮은 일 하나 없앴다고 좋아하던 현석 선배였다. 그리고 그날 자기가 김치를 가져오겠다며, 맡겨달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했었고. 그런데 그 선배는 자신이 그렇게나 큰 소리를 치던 김치를, 가져오지 않았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표정관리가 안 되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두의 표정이 굳은 이 와중에 이지훈의 표정은 말로 할 것도 없었다.
"야, 그냥 대충 해."
"뭐?"
"우리 참치 있지 않아? 그냥 그거 하나 까서 밥이랑 마요네즈랑 비비면 안 돼?"
"장난해? 마요네즈는 있냐? 그리고 너 솔직히 양심이 있으면 어디서 얻어오든가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아, 어디서 얻어와. 내가!!!"
그냥 때려치워! 현석 선배는 의자를 퍽 걷어차더니 그대로 일어나 자리를 이탈했다. 아, 저 미친 새끼가…. 태형 선배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제 머리만 박박 긁었고, 이 상황을 뚫고 나갈 마땅한 방법이 없어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조들은 지금 다 만들기 바쁜데…. 진짜 큰일 났네. 정말 다른 조에 가서 얻어오기라도 해야 되나…?
"……."
…으. 무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 이지훈의 표정은 진짜 오금이 저려 미칠 것만 같았다. 아, 무서워 죽겠네. 나라도 어디 가서 얻어와야겠다…! 민규는 볶음밥 만든다고 했는데 김치가 있으려나? …아, 그것보다 거기는 김승민이 있어서 못 가겠구나. 전원우네 조는 뭘 만들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온몸이 떨려와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선 몸을 웅크렸다.
"어?"
이거 뭐지? 주머니 속에 집히던 무언가. 뭔가 싶어서 그것을 꺼내보는데…
"……헐!"
맞다. 나 아까 이거 찾았었지?! 내 목소리에 의도치 않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나는 그 쪽지를 펼쳐 보이고는 말했다.
"우리 요리할 수 있어요!"
"뭐?"
"이거 아까 보물 찾기할 때 찾은 건데…!"
헐, 대박!!! 석민이는 그 쪽지를 보고는 진짜 놀라기라도 한 건지 손에 들고 있던 국자를 떨어뜨리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지훈이 쪽지를 달라는 듯이 손짓을 하길래 그걸 그에게 내미니, 그걸 확인한 이지훈의 얼굴은 아까보다 조금 나아있었다.
"와, 선배님 진짜 짱!!! 저 지금 소름 돋은 거 알아요?"
"정말 후배님이 한 건 하셨네."
나를 보며 웃는 태형 선배와 희원 선배를 보는데 나는 거기서 왜 바보같이 눈물이 나오려고 했을까. 사람들에게 인정받아본 게 이번이 처음이라 그런 건지, 나는 속에서 벅차오르는 이 감정을 어찌할 길이 없었다.
"저 이거 바꿔서 올게요…!"
이지훈에게 그 쪽지를 돌려받고선 얼른 승철 선배에게로 뛰어갔다. 무슨 일이냐며 내게 다가온 승철 선배에게 쪽지를 펼쳐 보이면서,
"이거 주세요!"
하고 우렁차게 말하니, 선배는 그걸 보고는 피식 웃으며 내게 김치가 담긴 락앤락 통을 건네주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
"네?"
"기분 좋아 보이네."
아… 그렇게 티가 났나. 그 정도로 나는 이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거짓말처럼 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그저 씨익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그런 나를 보던 선배는,
"좋네. 웃는 거 보니까."
"……?"
"가 봐. 다들 기다리겠다."
…뭐야. 승철 선배는 아무런 의도 없이 말한 거겠지만, 낮에 혼자 울던 내 모습이 떠오르자 괜히 찔려서 나는 얼떨떨하게 인사를 꾸벅하곤 다시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자리로 돌아가니 석민이는 내가 무슨 금의환향이라고 한 듯이 나를 열심히 띄어주기 시작했다.
"이야- 우리 조 영웅! 여주 선배!"
"아니야…."
"그 뭐야, 상품권 다 쓸모없네! 김치가 짱이었네!"
얘 나 너무 띄어주는 거 아니니…? 민망할 정도로 나를 띄워주는 석민이었지만 그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면 좋았지. 선배들도 다 나를 보며 엄지를 척 들어 보였고, 무엇보다도,
"잘했어."
이지훈의 잘했다는 그 말 세 글자가 왜 이리도 기분을 좋게 만들던지. 나는 저녁을 만드는 내내 입에서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이렇게 웃어본 건 오랜만이었다. 항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내가 처음으로 느껴본 소속감. 이렇게 누군가가 어울리면서 대화를 한다는 건, 무얼 같이 해 나간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구나…. 아마 나는 오늘 일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다시금 되뇌고, 또 되뇌면서 끊임없이 추억할 것 같다.
"이야, 선배님들 빨리 드셔보세요. 끝장납니다, 진짜로."
요리는 제게 맡기라던 석민이는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마침내 다 완성이 된 건지 간을 보고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곤 얼른 맛 보라며 숟가락을 하나씩 쥐여 주었고. 오… 색깔부터 제대론데? 기대감에 젖어있는 석민이의 눈을 보다가 나는 한 숟갈을 들었다.
"…와, 대박."
"괜찮죠?"
"어. 진짜 맛있어!"
크으- 이래 봬도 저 요리하는 남자입니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자기 자신에게 심취해있는 석민이가 웃겨서 나도 모르게 큭큭 웃었다. 석민이랑 같이 있으면 계속 웃음이 나온다. 마치 해피 바이러스에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우리 조가 만든 김치찌개는 영광스럽게도 1위를 차지했다. 1조라는 이름이 호명될 때 얼마나 기쁘던지. 낮에는 너무 우울해서 기분이 엉망이었지만 지금은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엠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마구 들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같이 만들었던 김치찌개를 절대 잊지 않기 위해, 훗날 추억할 수 있게 나는 사진이라도 남겨놓자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틀었다. 그러자 갑자기 느껴지던, 너무나도 익숙한 데자뷰.
"……아."
나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꼬옥 쥐었다. 케이스 안에 있을, 네잎클로버를 떠올리면서.
정말로 네가 내게 행운을 가져다주었구나.
*
진정한 엠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들 저녁을 먹으며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쯤, 남자 임원들은 어디서 술을 궤짝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넘쳐나는 소주와 맥주를 보며 나는 그때 대면식 날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라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그때 이후로 소주 병만 보면 치가 떨렸던 나다. 나는 이렇게 저것만 봐도 괴로운데, 너는 아무렇지도 않겠지. 시선을 돌려 김승민이 있는 쪽을 바라보자, 화가 나게도 김승민은 드디어 술이 왔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좋은 기분을 쟤 때문에 망치고 싶진 않았다. 언젠가는 깨야 할 트라우마였다. 오늘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신나서 술을 받아오는 석민이를 보며 나는 혼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이 사람들이랑 마시는 술은 괜찮을 거야. 그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야.
"선배, 제가 따라드릴게요!"
우리 조의 일등공신이라며, 나를 보며 헤헤 웃던 석민이는 내게 잔을 채워주었다. 잔을 채워줄 때도 가득이 아닌, 반절만 채워주는 석민이를 보며 이때마저도 느껴지는 이 아이의 배려가 나는 너무나도 고마울 뿐이었다.
"자, 그럼 우리 짠할까?"
태형 선배의 말에 모두가 짠을 외쳤고,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그것을 꿀꺽 삼켜내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이 술이 그렇게 쓰지 않았다. 오, 웬일이지? 가끔 사람들이 술이 달다고 하는데,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신기해하며 석민이가 따라주는 술을 다시 받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혜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아까 요리할 때부터 표정이 좀 안 좋아 보이던데…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아프면 무리해서 마시지 말라고 말을 하려던 찰나에 혼자서 한 잔 가득 담긴 술을 삼켜내는 혜지를 보며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냥 기분이 좀 안 좋나 보다.
밤이 깊어지니 날씨도 제법 추워지고 해서 모두 펜션 안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마시라며 조교쌤이 말해왔다. 이제부터는 조가 무방하다는 말이었다. 모두가 먹은 것들을 정리하고 그곳으로 들어가 자리를 대충 잡기 시작하는데,
"나는 선배랑 같이 마실 거예요."
"어?"
"저랑 있어줄 거죠?"
어… 사실 조가 해체되면 나랑 같이 있어 줄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혼자 조용히 있다가 잘 생각이었는데. 내게 팔짱을 끼며 환하게 웃는 석민이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맨 처음에는 솔직히 석민이한테 거부감이 좀 들었었는데 이제는 이 아이와 같은 조가 된 걸 정말 하늘에 감사해하고 있었다. 아, 승철 선배한테 고마워해야 하나. 어쨌든, 엠티에 가기 전에 민규가 내게 석민이는 착한 아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석민이는 착하다. 내 마음이 다 따뜻해질 정도로.
"지훈 선배! 선배님도 같이 마셔요."
마침 우리 앞으로 지나가던 이지훈을 잡으며 석민이는 말했다. 이지훈은 됐다며 그의 손을 뿌리쳤고, 핸드폰을 보며 다시 걸어가려는 이지훈을 석민이는,
"아! 선배님. 이제 저랑 좀 놀아줘요!"
"니가 애야? 혼자 놀아!"
"너무하다, 진짜로!!!"
"어? 이거 놔라?"
그의 팔을 잡으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저러다가 진짜 한 대 맞는 거 아닌가 몰라….
"왜 여기까지 와서 참고 그래요, 오늘은 엠티잖아요!"
"아, 참는 거 아니야!"
"그럼요?"
"몰라도 돼."
"……아아, 혹시."
"뭐."
"…선배님 술 못 마시는 거였어요?"
"뭐?"
"어쩐지. 그래서 아까도 안 마신 거구나!"
…이제야 깨달았구나, 이지훈 술 약한 거. 아까 우리 조끼리 술을 마실 때에도 모든 술잔을 거부하던 이지훈이었다. 그걸 보면서 석민이가 이제는 좀 알겠지 싶었는데… 지금 눈치챈 거였구나. 석민이는 그제야 제 머리를 긁적이며 자기가 미안하다고, 다시는 귀찮게 안 하겠다고 말을 하는데….
"…누가 술 약하대?"
"네?"
"앉아."
……? 예상외의 전개에 나는 지금 이게 뭔가 싶었다. 옆에서 석민이는 눈치챈 줄 알았더니 그럴 줄 알았다며, 얼른 가져오겠다며 신나서 술을 가지러 뛰어갔고. 나는 이지훈을 힐끔 쳐다보며 생각했다. 아마 동기들은 다 알 것이다. 이지훈은 정말, 술을 못 마신다는 것을. 얘는 지금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까."
"넵!"
서로의 술잔을 채워주던 이지훈과 석민이는 이내 챙- 소리가 나도록 술잔을 부딪히고는 쭈욱 들이켰다. 그런 이지훈을 바라보는데 왜 내가 다 불안한 건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해 보이지만 나는 보고야 말았다. 이지훈의 미간이 잠시 찌푸려지던 것을.
"뭐야, 이지훈. 네가 술을 다 마시고?"
그때 전원우가 자연스럽게 우리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인사를 쩌렁쩌렁하게 하는 석민이에게 웃어주던 전원우는 웬일이냐며 이지훈에게 묻지만, 이지훈은 그저 말 걸지 말라는 듯이 손을 휘휘 저을 뿐이었다.
"나도 여기 앉아도 되지?"
"……!"
"후배님. 나도 한 잔만."
헉. 갑자기 내 옆에 앉던 승철 선배에 놀라 나는 숨을 흡 들이켰다. 아니, 여기 자리도 이렇게 많은데 왜 내 옆자리에 앉고 그래, 사람 불편하게…! 얼마나 가까이 앉았는지 옆에 앉은 선배의 긴 속눈썹마저 자세히 보일 정도로 내 옆에 앉아 있는 선배가 부담스러워 슬금슬금 그에게서 떨어지려고 하는데,
"!!!!!"
"어디 가."
선배가 내 어깨를 감싸 안고는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 뭐야, 지금 이거 뭔데!!! 선배의 손에 닿은 어깨가 불에 타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아, 아니 이것 좀 놓아주시지…. 그에게서 벗어나 보겠다고 몸을 살짝 비틀어 보지만 선배는 그런 나를 더 꽉 잡으면 잡았지, 절대 놓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선배의 행동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래, 놀라도 너무 놀란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뛸 리가 없지. 혼란스러운 이 상황에서 주체 없이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려고 할 때였다.
"……여기가 임원들 술자리인가 보죠?"
٩(๑`ȏ´๑)۶ |
꺄아아아아ㅏ악!!!! 이야 마지막에 총집합했네요ㅋㅋㅋㅋㅋㅋㅋ 아 오늘 애들 사진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아주 신나게 작업하고 그랬습니다ㅎㅎㅎ 사진 넣으면서 심쿵하고.. 네... 즐거웠던 13화였네요...ㅎㅎㅎㅎ 많은 분들이 쪽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셨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치라서 죄송합니다 (눈물) 오늘도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우리 다음에 만납시다٩(ˊᗜˋ*)و!❤ |
❤ 암호닉 ❤ |
밍구님 / 민세님/ 17학번님/ 신아님/ 뿌야님/ 발꼬락님/ 호잇님/ 순영님/ 기복님/ 반장님/ 두루마리님/ 잼재미님/ 소원님/ 별이님/ 계란과자님/ 내감자키쟈님/ 흰둥이님/ 8월의 겨울님/ 쮸쀼님/ 달레님/ 뽀나노우유님/ 까르보나라님/ 뿌아리님/ 솔방울님/ 밍구칭구님/ 거얼음님/ 스팸님/ 레인보우샤벳님/ thㅜ녕이님/ 뿌잇뿌잇츄님/ 0815님/ 권데레님/ 벨베뿌야님/ 오레오님/ 폼피님/ 지눼뀨님/ 히히님/ 오허니님/ 복덩어누님/ 뿌뿌뽐뿌님/ 뿌뿌승관님/ 호랑님/ 권순영다리털님/ 감자오빠님/ 빙구밍구님/ 17뿡뿡님/ 최허그님/ 부부젤라부라보님/ 두유워누님/ 0213님/ 명탐정코코님/ 새얀님/ 세네님/ 함냐님/ 스틴님/ 낙타님/ 초록책상님/ 비회원님/ 침개님/ 둥둥님/ 급식체님/ 준휘는 처으메야?님/ 헨델님/ 코인님/ 1600님/ 홋이님/ 애를도라도님/ 솔랑이님/ 세봉이님/ 1978님/ 열일곱님/ 아드리나님/ 어흥님/ 얼음땡님/ 숭늉님/ 쎕쎕님/ 몬드님/ 원우야 나랑 살자님/ 치자꽃길님/ 꼬야님/ 꽃잎님/ 규애님/ 팝콘님/ 낑깡님/ 부르르님/ 100609님/ 스타터스님/ 프리지아님/ ㅂ님/ 귀마개님/ 낭낭님/ 라온하제님/ 뱃살공주님/ 들국화님/ 만두짱님 뿌뀨야님/ 코코몽님/ 복덕방아줌마님/ 부정한님/ 꿀님/ 삐용님/ 찬이엄마님/ 다람쥐님/ 전주댁님/ 몰몽님/ 킨다님/ 충전기님/ 7월17일님/ 세븐틴틴틴님/ 울려줘요님/ 이지훈오빠님/ 귤콩님/ 벌렝님/ 앙지수띠님/ 순영맘님/ 수녕이님/ 민규샵알바님/ 개빛살구님/ 프레이그런스님/ 호찡님/ 느린걸음님/ 호시탐탐님/ 난희님/ 고구마라떼님/ 0708님/ 필소님/ 햄찌의시선님/ 녜남님/ 단찬단찬님/ 쑤뇨님/ 우양님/ 문홀리님/ 꿀과너님/ 조히님/ 지하님/ 스코님/ 치킨반반님/ 고라파덕님/ 도리님/ 순영인절미님/ 박수짝짝님/ 호시 오빠님/ 유레베님/ qaz_plm님/ 봉글이님/ 달님/ cracker/ 눈꽃님/ 찬란한 순영이님❤
암호닉을 신청해주실 때는 [암호닉] 이렇게 신청해주세요! 모두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