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엇갈리다 (도쿄출장 上)
[어디야?]
강과장에게서 카톡이 와있었다.
정신없이 오전 내내 옹과장님으로부터 출장 관련 업무 인수인계를 받고, 점심시간이 되어 허겁지겁 같이 식사를 하고 온 상태였다.
휴대폰을 확인할 겨를조차 없어서 한 번도 쳐다보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11시 30분쯤 온 카톡인 걸 보니 점심 먹으러 같이 가자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들어온 후 양치질까지 하고 나서야 잠깐 짬이 생겨 사내 메신저로 강과장에게 쪽지를 보냈다.
금방 또 한시 반까지 소회의실에서 보자는 옹과장님의 호출에 네네! 하며 급하게 답을 함과 동시에 말이다.
[카톡을 이제야 봤어요. 미안해요.
저는 밥 먹고 들어왔는데, 식사는 했어요?]
쪽지를 보내면서도 미안한 마음과 무안한 마음이 같이 들었다.
휴대폰을 이제야 본 이유를 말하려면 출장에 대해서 말해야 할 것 같고, 출장에 대해서 말하려면 옹과장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선뜻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모니터 앞에서 계속 기다려도 답장은 오지 않고, 옹과장님이 말씀하신 한시 반은 가까워지고...
결국 답장을 확인하지는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회의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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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번 출장 관련해서 도쿄 지사랑 연락했던 메일들은 다 ○사원 참조 걸어놨어요.
돌아가서 확인하면 될 거고, 보다가 궁금한 점 생기면 나한테 물어보구요."
"네, 과장님."
"아침부터 정신없죠? 조금이라도 일찍 정해졌으면 좋았을 텐데, 당장 다음주라..."
"아, 아닙니다. 저는 데리고 가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고개를 저으며 웃어 보였더니 스윗하게 웃어주시는 옹과장님. 어쩌면 내가 혹이 될 수 있을 텐데도 귀찮아하지 않아주셔서 다행이기도 하다.
나야 내가 실수하고, 내가 못할까봐 걱정인 거지만 옹과장님은 본인이 잘해도 내가 실수하면 본인이 욕먹을 수 있으니 그게 더 걱정일 텐데...
절대로, 절대로 옹과장님께 폐 끼치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또 하며 다시 과장님의 말씀에 집중했다.
이렇게 열심히 알려주시는데 일본 가서 맛있는 밥 한끼라도 사야 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네... 아니면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저녁에 거래처나 지사 분들과 미팅 잡아둔 건 되도록 점심으로 수정할 생각인데,
만약 그 분들이 일정이 정말 어렵다고 하면 저녁 미팅이 있을 수도 있어요."
"아, 네!"
"○사원한테 술 많이 주면 내가 막을 테니까, 힘들어지면 언제든지 이야기하고.
알았죠?"
"하하, 네, 과장님. 감사합니다."
"일본도 우리나라랑 회식문화가 비슷해서... 불편할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질 필요는 있어요."
"네... 괜찮습니다, 과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이 되죠, 우리 막내. 내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기나. 응?"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는 모습에 나도 따라서 크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배우고, 잘 준비해서 가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뿜뿜 솟아났다.
나 혼자 가면 너무 어렵겠지만 그래도 과장님이 계시니깐 큰 힘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정말 확실히 든든한 느낌이 자신감의 근원일지도.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두어 시간을 또 인수인계를 받다가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더랬다.
옹과장님은 말씀을 많이 하셔야 하고, 나는 또 계속 들어야 하는 입장이라 서로 조금씩 지치는 것 같아서 탕비실에 가서 커피 좀 타오겠다고 하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누, 카누... 카누가..."
찬장에서 머그컵 두 잔을 꺼내 정수기에서 얼음을 받았다. 얼음이 들어찬 머그컵은 찬장 밑 탁상에 올려뒀다.
커피는 무조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내 취향에 옹과장님이 맞춰주시는 것 같다.
커피를 사오거나 만들어야 할 때마다 '나는 ○사원과 같은 걸로!'를 외쳐주시기 때문이다.
굳이 다른 메뉴를 안 외워도 되어서 얼마나 편한지...
"엄마, 깜짝아!"
커피를 타는 데 집중하느라 탕비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못 들었나보다.
그래서 내 위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겹쳐오는 것도 몰랐다. 그 누군가의 가슴팍이 내 뒷통수에 닿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본 거다.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이내 익숙한 얼굴이라는 것에 안도했고, 큰 손이 내 입을 살짝 덮어와서 높은 소리는 나지 않았다.
"누구 들어오면 어쩌려고요!"
강과장이었다.
내 뒤에 밀착해온 그에게 안겨있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는 제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갖다 대고 쉬이- 하며 능청맞게 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떨어지고자 했지만 뒤로 갈 틈이 없어 그대로 강과장의 품 안에 갇혀버렸고, 그 또한 밀려날 생각은 없어보였다.
"하루종일 소회의실에만 있고. 점심 때도 튕기고.
볼 시간이 하나도 없네. 이렇게라도 봐야지."
"이러고 있는 거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빨리 나와요."
"싫은데. ○○○ 얼굴은 좀 봐야겠는데."
"이런 자세 아니어도 얼굴은 볼 수 있잖아요. 나와요, 얼른."
내가 제법 화난 표정을 지으니, 무겁긴 하지만 슬쩍 옆으로 밀려나오는 그다. 좀 귀엽지만 이 자세는 정말 위험했으니 귀여운 건 애써 모른척 했다.
"바빠? 책상 앞에 앉아있는 걸 못봤네, 오늘."
"그게, 저..."
"......?"
"출장 가게 됐어요. 도쿄. 옹과장님이랑."
뭔가 미안하기도 하고, 또 둘이 사이도 안 좋으니까 쉽게 이야기가 안 나와서 눈도 못마주치고 말을 꺼냈다.
하루종일 바쁘고 또 바빠서 이렇게나마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좀... 그랬고. 어떤 반응이 나올지도 걱정됐고.
그렇다고 이야기를 안 하면 그 때는 더 감정이 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온갖 걱정을 뒤로하고 일단 입을 열었다.
"...알아."
"네? 알고 있었어요?"
"그럴 것 같았어."
"어떻게요?"
"느낌."
"거짓말... 뭐 봤죠? 무슨 이야기 들었어요?"
"관습이야. 신입 들어왔을 때 일찍 출장 보내는 거."
"진짜요?!"
"응. 그래야 빨리 배우니까."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그를 보며 긴장이 좀 풀렸다. 그래도 구구절절 설명할 일은 아니겠구나 싶어 마음을 놓았다.
"근데 좀, 신경쓰여."
"......."
"옹성우랑 둘이 가는 거잖아."
"....네... 그쵸..."
".........."
그의 입에서 '옹성우'라는 풀네임이 나온 건 처음 들어봤기에 또 묘하게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굳어진 표정에도 슬쩍 몸이 굳었고.
가만 보면 웃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게 갭이 엄청 큰 것 같다. 물론 두 쪽 다 멋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웃지 않으면 좀 무섭다고... 해야 할까.
무서운 표정을 보고 쫄아든 마음에 쭈구리가 되어 그를 흘깃 쳐다봤더니 담담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눈이 맞춰지면서 가슴 속에 몽글몽글, 또 이상한 게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우리 부서 회식 때 기억나?"
"부서 회식이요? 어.... 아, 네. 기억 나죠."
"너랑 나랑 옹성우랑, 화장실 앞에서 셋이 마주쳤을 때 옹성우가 그러더라고."
"뭐라고요?"
"눈독 들이지 말라고."
그 날, 뒤에서 내 귓전을 때렸던 목소리는 옹과장님의 것이었다. '눈독 들이지 말지.' 하며 조용히, 그리고 낮게 깔리는 목소리는 그의 것이었다.
여기서 강과장이 그 이야기를 꺼낼 거란 생각은 못한 지라 놀란 마음에 표정관리도 못하고 다시 강과장을 쳐다봤는데, 그가 살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뭐. 어떡해. 우린 이렇게 됐는데."
".......아...."
"아...가 아니야. 조심하라고."
"........"
"대답."
대답. 하고 보채는 그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 '눈독'의 임팩트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
그래, 그건 옹과장님의 말이었다. 어느샌가 기억 저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버린 그 날이었는데, 내가 그걸 까먹고 있었다니.
그랬구나... 하며 나도 모르게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을 때,
".....!!!!"
쪽, 하며 강과장의 입술이 내 입술에 깜빡 닿았다 떨어졌다.
나는 깜짝 놀라 커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 봤고, 그는 옅은 미소와 함께 내게서 멀어져 탕비실을 나서고 있었다.
이따 퇴근 같이 해. 따라오는 입모양을 보고 있으면서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방금 뭐가 왔다 간 거지....
손을 들어 입술을 쓸어 보았다. 누군가의 온기가 닿았다 간 자리. 그게 강과장의 것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지금 이 상황.
한참을 벙 찌고 서있다가, 옹과장님이 기다리실 것 같아서 머그잔 두 잔을 챙겨 탕비실을 나왔다.
쿵쾅쿵쾅, 요란하게 뛰는 심장이 머그잔을 쿵쿵 울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잘 잤어요?"
"네! 저는 잘 잤습니다. 과장님도 잘 주무셨어요~?"
"글쎄. 나는 좀 설쳤어요. 잠이 잘 안 와서."
싱긋, 웃어 보이는 옹과장님의 눈이 좀 피곤해 보였다. 실은 나도 잘 잔 건 아니었다.
첫 출장이라 걱정이 된 것도 당연하고, 내색은 안 하지만 나보다 걱정이 많을 강과장도 신경이 좀 쓰였고...
그래도 좀 마음이 놓였던 건 잘 다녀오라고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준 그 손길이었다. 걱정 안 할 테니 연락이나 꼬박 하라며 웃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일정과 업무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왠지 그래야 이번 출장이 후회 없을 것 같아서 그랬다.
출장을 준비하는 일주일이 정말 금방 갔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돌아서면 끝나있고, 돌아서면 끝나있고 그랬다.
출퇴근을 강과장과 같이 하긴 했지만 몸이 피곤하다 보니 퇴근 후에 뭘 할 수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신경이 많이 쓰였을 텐데도 일부러 괜찮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그에게 고마웠다.
일본 가면 꼬박꼬박 연락 자주 해야지, 절대 귀찮은 걱정은 시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조금 서두를까요? 공항에 사람이 많다고 그러네."
"네, 과장님! 얼른 출발해요!!"
집이 먼데도 공항까지 같이 가자며 굳이 날 데리러 와주신 옹과장님이었다.
옹과장님의 차를 타는 건 처음이었는데, 회색 SUV가 어쩐지 옹과장님을 닮아있는 것 같았다.
굉장히 본인 같은 차를 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조수석에 몸을 실었다. 그는 안전벨트를 매는 나를 보며 얕게 웃었다.
"○사원은 운전 좀 해요?"
"네, 과장님. 저 아예 못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잘하지도 않지만...
과장님 피곤하실 때 제가 핸들 잡겠습니다!"
"하하, ○사원이? 가면 일정 때문에 피곤해서 엄청 졸릴텐데?"
"그래도요. 과장님도 피곤하실 텐데 혼자서만 운전하면 안 되죠.
저 그래도 못하지는 않습니다, 과장님."
"하하하, 그러면 우리 회사에서 ○사원이 운전하는 차는 내가 처음 타보는 거겠네요~"
시원한 웃음소리로 도쿄출장 일정이 시작되었다.
우리 집에서 인천공항까지는 약 한 시간 남짓. 옹과장님은 항상 들으시는 것 같은 아침 라디오를 틀어주셨다.
밝고 경쾌한 DJ의 목소리와 함께 회색 SUV가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려나갔다.
기분이 좋다. 왠지 예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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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다는 말, 왠지 예감이 좋다는 말 취소.
아니, 그건 사실이긴 했다. 최소한 아까까지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아마 사실이었을 것이다.
처음 가는 도쿄에 설렜고, 그 옆에 옹과장님이 계셔서 정말 든든했고, 그래서 잘할 수 있겠다고 믿었는데.
"과장님... 저 휴대폰을 비행기에서 흘린 것 같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왠 걸. 체크인하러 호텔에 왔는데 휴대폰이 없는 거다. 망했다.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있던 휴대폰이 내 손에 없다.
초조한 마음에 옹과장님을 붙잡고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 같다 말을 하니, 과장님이 차분히 우리가 이용한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주셨다.
"일본이니까 아마 들어왔던 비행기가 간단한 점검 거치고 그대로 사람 싣고 나갈 거예요.
분실물 있으면 그쪽에서 보관해두고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요."
옹과장님은 내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셨지만 그쪽에서는 점검 시 획득된 휴대폰은 없었다며,
혹시라도 인천에 착륙했을 때 다시 꼼꼼히 뒤지면 휴대폰이 있을 수도 있으니 조금 기다려달라는 답이 왔다.
사실 휴대폰 자체를 잃어버린 것 보다야 휴대폰 아니고서는 연락 수단이 없어서, 그게 제일 불안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옹과장님 휴대폰이라도 빌려서 할 수는 있겠지만... 강과장한테는 연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꼭 휴대폰이 되찾아지기를 바라고 또 바랐던 거다.
"정말 비행기 안에서 잃어버린 거라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일단 급한 연락 있으면 내 휴대폰 사용하고, 일정 수행은 해야 하니까 이제 출발할까요?"
차분히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다독여주시는 덕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긴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한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컸다.
평생 잃어버리지도 않았고, 잃어버릴 일도 없었던 휴대폰을 왜... 하필 여기서.
그리고 연락이나 꼬박 하라던 강과장의 모습과 그런 그를 위해 정말 꼬박 연락이라도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나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아... 진짜 큰일이네. 제발 인천에서 찾았다고 연락 와야 하는데... 제발, 제발.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또 바라며 옹과장의 뒷모습을 따라 호텔 문을 나섰다.
그게 내 도쿄출장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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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이라서 오늘 올 수 있었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저도 연재하는 데에 재미를 붙이고 있나봐용ㅎㅎ헤헤 앞으로도 많은 댓글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들 직캠 보셨는지여.. 녤맘인 저는 9358289348번 봐도 안 질리네요...ㅠㅠ 진짜 성인인증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이렇게 야할 수 있냐며.. 예 뭐 그래서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글에서는 짧게나마 뽀뽀씬이 나왔네영... 흐흐 과연 휴대폰을 잃어버린 여주의 도쿄출장은 어찌될지!!! 담편 많이많이 기대해주시고요!! 혹시 보고 싶은 소재 있으시면 꼭 말씀해주시고요!! 암호닉은 한꺼번에 몰아서 받겠습니다~~
남은 현충일 편안하게 잘 보내시고요, 저는 아마... 현생 마무리하고 주말에... 오겠습니다!ㅎㅎㅎ 다들 현생 잘 살다가 주말에 만나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