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내 차 타요
"○사원, 오늘 야근 몇 시까지 해요?"
"저 아홉시까지 하려고요, 과장님."
"그래요? 그럼 같이 밥 먹고 올까요?"
저번주부터 야근이 부쩍 늘은 건 기분 탓이 아닐 거다. 워낙 업무가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신입이 계속 신입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통상 야근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일을 해도 끝내지를 못해서이거나 한 달에 할당된 시간외수당을 챙겨받기 위해서다.
오늘 야근의 이유는 전자였다. 그래도 신입이 야근을 많이 하면 얘는 일을 버거워하는구나, 하면서 안 좋게 생각한다는데.
그래도 이건 어쩔 수 없었다. 버거운 것도 사실이고 그냥 두고 집에 갈 수도 없는데 어찌하리.
그러나 조금이나마 힘이 된 건 옹과장님과 함께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만 빼고 다들 가버렸네... 의리 없어, 마케팅팀."
"과장님도 많이 바쁘시죠?"
"괜찮아요. 그래도 스트레스는 안 받는 바쁨이에요. ○사원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일 쏟아지니 정신없죠?"
"아, 아닙니다. 그래도 빨리 적응하려면 일 많이 해보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럼요. 우리 회사는 일 못하는 사람한테는 일 안 줘요."
싱긋, 웃어보이는 얼굴에 나도 몰래 미소가 번졌다.
옹과장님은 성격도 스윗하시고... 목소리도 좋으시고... 얼굴도 깔끔하게 잘생기셨고... 키도 딱 좋으시고... 스타일도 괜찮고... 일도 잘하시고... 부족한 게 뭘까.
여자친구는 있는지, 있다면 이렇게 잘난 남자와 사귀는 여자는 어떤 여자일지 궁금해졌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스펙이 저 정도면 틀림 없이 눈은 엄청 높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과장님의 뒷모습을 졸졸졸 따라갔다.
"나는 자장면. ○사원은요?"
"저도요."
정해진 야근식대는 한 사람 앞에 육천 원이었다. 회사 근처 밥집 물가를 생각하면 터무니 없이 적은 금액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메뉴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러는 돈을 더 내고 다른 음식을 먹는 분들도 계셨지만, 자기 돈까지 써가며 회사에 갖다 바칠 필요는 없다는 게 우리 팀의 정설이었다.
시킨 지 3분도 안 됐는데 식탁 위에 차려진 두 개의 자장면을 보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진짜 빨리 나왔어요. 하는 나의 말에 그러니까요, 쉴 틈이 없네. 하며 웃으시는 과장님.
"들어요. 든든히 먹고 일해야지."
"네, 잘 먹겠습니다."
이렇게 일대일로 마주보고 식사를 같이 하는 건 처음이라 내심 어색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과장님은 어색한 분위기를 그대로 끌고 가는 분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많이 풀어주셨다.
덕분에 나도 조금은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고 과장님도 그러셨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밥의 목적은 결국 야근. 먹는 건지 마시는 건지 모를 정도로 둘 다 빠르게 자장면을 흡입했고,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와아, 과장님. 저희 자장면 마셨어요. 하는 내 말에 과장님은 하하, 하며 소리내어 웃으셨고 그렇게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하나 사서 올라갈게요. ○사원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네! 저 커피는 아아만 마셔요. 하하."
"알고 있죠, 내가."
"오.. 어떻게 아셨어요?"
"신입에 대한 과장의 관심?"
"........."
찡긋, 하고 웃어보이는 모습에 약간 심쿵이 왔던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저 멘트는 심쿵할 만한 멘트 아닌가...
이성적인 그런 감정에서가 아니라, 잘 챙겨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려고 하는 모습이 감동이었던 거다.
감사한 마음에 나도 웃어보였더니 먼저 올라가있어요. 라고 하시는 과장님의 말에 네, 알겠습니다. 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난 지금 가보려고 하는데. ○사원은 많이 남았어요?"
"아, 아니요. 과장님. 저도 이제 가보려고요!"
"○사원 집이 어디라고 했죠?"
"저 일산이요."
"일산?"
일산이라는 말에 과장님의 눈썹이 살짝 꿈틀했다. 가까우면 같이 차 타고 가자고 하려 했는데, 그건 어렵겠다... 하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아, 아닙니다. 과장님. 저 괜찮아요. 그래도 버스 타면 괜찮습니다. 하며 손사레를 쳤다.
과장님은 알았어요. 그럼 더 늦기 전에 조심히 가요.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나는 안녕히 가시라며 꾸벅 인사를 했다.
"나도 가야겠다."
어차피 들을 사람은 없을 테니 혼잣말을 뱉었다.
컴퓨터를 껐다. 책상 위를 정리하고, 가방에 휴대폰을 챙겨넣고. 빼놓은 게 없는지 주변을 한 번 둘러본 후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 가면 금방 열시 반이겠구만. 생각하니 후우, 하고 한숨이 나왔다. 다른 건 다 좋은데 회사가 집에서 너무 먼 게 좀 흠이다.
조금 다니다가 정 안 되겠으면 돈 모아서 이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내심 과장님과 둘이서 같이 있는 게 긴장이 된 모양이다. 일어서서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기까지 몸이 축 늘어져 천근만근이다.
아아, 힘든 하루였어. 야근은 할 때는 모르겠는데 끝나면 정말 피곤한 것 같다.
하암- 하고 소리내어 하품을 했는데 불쑥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
"아,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밤 아홉시에 안녕하지는 않아요."
차갑게 들리는 말에 금방 주눅이 들었다. 그런 내 얼굴을 흘끔 보더니 농담이에요. 하는 강과장이었다.
농담이 하나도 농담같지가 않다... 농담을 저렇게 농담같지 않게 하는 것도 재주야.
나와 강과장은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를 탔고, 사무실이 있는 7층에서 출발해서 1층에 도착하기까지 서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내릴 때가 되어서야 강과장의 입에서 무어라 한 마디가 나왔는데, 그건 날 적잖이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한 마디였다.
"집이 일산이라고."
"네? 아, 네... 어떻게 아셨..."
"8시 45분부터는 사무실에 있었어요, 나도."
"아아..."
바보처럼 아아, 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옆 팀이라서 자리에 계시면 안 보일 리가 없는데 지금에서야 마주친 게 이상했다.
사내에는 도서관이 있어서 종종 사무실이 아니라 그 곳에서 남은 업무를 보시는 분들이 있다. 아마 도서관에 계시다가 올라오신 게 아닌가 싶었다.
"일산 어느 쪽이에요?"
"호수공원 근처입니다, 과장님."
"...가깝네."
"예?"
"우리집이랑."
와.... 정말 너무 어색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어쩜 이렇게 어색할 수가 있을까 싶어서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아... 예.... 하며 대강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이 어색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피해보고자 저,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라고 하려고 했....는데.
"내 차 타요."
"....예???!"
화들짝 놀라서 엄청 크게 예???! 하고 물었다. 강과장은 묵묵히 걸어갔고, 나는 일단 그의 뒤를 안 따라갈 수는 없어서 쫓아 걸어갔다.
어쩌다 보니 조수석 문 앞에 서있게 됐는데, 지금이라도 물러야겠다 싶어 저, 과장님... 하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이미 과장님은 탑승 완료하셨고요...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조수석 문을 열었다.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저, 과장님... 저 버스 타고 가도 되는데... 라고 하는 중에 차에 시동이 걸렸다.
"버스 타면 한 시간 반이잖아.
지금 고속도로 타고 가면 삼십 분이에요."
혹했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혹해버려서 그렇게 조수석에 몸을 싣고 말았다.
그런데 그게... 어째 발을 잘못 들인 것 같았단 말이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강과장을 보면 기분이 이상해졌던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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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편에 암호닉 신청해주신 [40745] [자체발광] 두 분 외에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자까는 오늘까지 휴일이라서 2편 들고 왔지라... 약간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글이라 그냥 편하게 읽어주셔요.. 보고싶은 소재 있으면 댓글 달아주세요!! 보고 개연성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써드리겠습니다! 낼부터 저는 출근이네여... 엉엉 학교 가시는 분들, 회사 가시는 분들 모두 홧팅홧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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