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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맞잡은 두(명의) 손
"...차 안은 될 수 있지. 얼른 와요."
나를 보며 해사하게 웃는 그를 따라 다시 차에 탔다.
테이블 위에 둔 채로 그에게 잡혔던 손은 어쩐 일인지 차 안에서도 계속 그의 큰 손 안에 자리해 있었다.
남자의 큰 손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진 적이 있던가.
대학 시절 만났던 남자친구들 중에는 그다지 손이 큰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 걸지도.
잡혀 있는 손은 적당히 따뜻했고, 적당히 부드러웠다. 너무 거칠지도, 너무 말랑하지도 않은 느낌.
이 느낌이 살풋 간지러워졌다. 간지러워진 김에 그의 손을 간지럽혔다.
운전 중이던 그가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차를 잠시 멈춰 세웠고,
그 틈을 타 나를 바라봤다.
"...야한데,"
".....?"
"여긴, 우리 둘 뿐이 없고."
"......"
"그런데다 이렇게 간지럽히기까지 하면,"
"......."
"너무 위험해."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함과 동시에 좌회전 신호를 받은 차가 움직였다.
아아, 차가 멈춰 있는 동안 혹시나 내 심장 소리가 들릴까 조마조마했는데,
그래도 곧장 신호를 받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너무 위험하다는 그의 말에 살짝 손을 빼려 했지만, 이내 더 힘을 주어 내 손을 잡아오는 그.
꿀꺽, 하며 내 목울대를 타고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는 그 소리를 들은 건지 아닌 건지 옅은 미소만을 입에 띄우고 있었다.
우리 집까지는 가까웠다. 한 번 데려다 준 적이 있으니 길을 찾는 건 쉬웠다.
순식간에 집 앞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집에 온 10분 정도가 1분처럼 느껴졌다.
그가 우리 집 현관 앞에 차를 세웠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선을 내게 두었다.
"......"
"........"
막상 그의 시선을 느끼고 있으려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그렇게 당돌하게 이야기했던 나는 어디 가고, 다시 소심하고 쭈굴한 내가 여기 있다.
무슨 말을 어디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를 몰라 그대로 입을 꾹 다물고 그의 시선을 피하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봐요."
낮고 메마른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그대로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내려오는 가로등 불빛에 비춰진 그를 보자니 맘 한 켠에서 몽글몽글 무언가가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는 숨소리도, 심장소리도, 목에 침 넘어가는 소리마저 다 들켜버릴 것 같았다. 너무 부끄러웠던 거다.
"나는, 크게 서두를 생각은 없어서."
"....."
"○사원 아직 어리고, 이제 막 시작하는 시기라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
"다만 ○사원 괜찮다면 하나씩 같이 해보죠."
".......과장님."
"과장님 말고, 니엘 오빠."
니엘 오빠. 정말 이렇게 한 번에 호칭이 바뀌어도 되는 건지. 슬며시 웃음이 나는 것과 함께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웃는 나를 본 그도 활짝 웃어보였는데, 이렇게 활짝 웃는 걸 본 적이 많이 없어서였는지 뭔가 어색하면서도 좋았다.
이래도 되는 걸까,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과 고민이 스쳤지만 지금 이 타이밍에 무를 수도 없는 노릇.
과장님의 말처럼 하나씩 같이 해보아도 되는 시기, 그런 나이의 나. 그리고 그런 시기와 나이에 만나게 된 그.
오빠라는 말이 당장 나오지는 않겠지만 어찌 됐든 그의 말로 우리의 관계가 어느 정도 규정된 것 같아 보였다.
물론 나 또한 반대 의견은 없었다.
"........"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보며 활짝 웃어 보인 그가 손을 들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그 손이 꼭 예쁘다,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눈을 휘어 크게 웃으니 그의 말이 따라온다.
"눈에 피곤이 가득 들었네."
".......네에, 좀 피곤했나봐요. 아침부터."
"응, 얼른 들어가서 쉬어야지."
"......."
이대로 들어가자니 뭔가 아쉬워 마른 침만 꿀꺽 삼켰다.
그는 나를 내려주려는 듯 세워둔 차를 다시 뺐다. 이대로 오늘은 안녕이겠다 싶어 아쉽지만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안전벨트를 풀었다.
벨트를 푸는 내 손을 빤히 보고 있던 그가 내 손을 가져가 제 손에 깍지를 끼웠다.
그러고는 하는 말,
"고생했어."
순식간에 요동치는 마음에 얼른 손깍지를 풀고 후다닥 내린 건 안 비밀.
홱 돌아서 가는 척 하다가도 내심 부푼 마음을 숨길 수가 없어 그의 차를 향해 손을 흔든 것도 안 비밀이다.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을 표정이 안 봐도 뻔히 보였다. 기분 좋은 초여름 바람이 볼을 스쳤다.
-
[집에 잘 도착했어요? 연락이 없어서 먼저 톡 보내요.]
집에 가서 휴대폰을 확인하니 옹과장님으로부터 카톡이 와 있었다.
하기야 늦은 시간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으니 걱정이 될 만도 했겠다 싶었다.
죄송한 마음이 들어 급하게 답을 보냈다.
[네, 과장님. 들어와서 정신없이 정리하느라고 이제야 톡 드립니다.
저는 괜찮으니 걱정 마시고 집에 조심히 들어가세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좋으신 분이다. 성격도 좋으시고, 인품도 좋은 사람. 최소한 지금까지 봐온 그의 모습은 그랬다.
사람이 제일 중요한 회사생활. 잘못 만난 사람으로 인해 내 삶이 송두리째 달라질 수 있는 그 곳에서 이렇게 좋은 분이 계시다니,
게다가 직속 상사라니...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무심코 손을 넣은 주머니에서 강과장님의 손수건이 나왔다. 낮에, 내 무릎에 묶어준 하얀 손수건.
새롭게 규정된 관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달라질까. 그 변화에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금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떠보니 일요일 아침이었다.
-
"○사원, 할 말이 있는데."
일요일 내내 꼭 며칠 못 잔 사람처럼 잔뜩 잠만 자다가, 오후 늦게서야 강과장님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래저래 집 근처에서 산책도 하고 그랬더니 어느덧 밤이 되어 서로 안녕을 고하고,
몇 시간 떨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아침이 되어 강과장님의 차를 타고 출근했다.
일요일에 아무리 쉬어도 월요일만 되면 피곤한 게 정석이라 꾸벅꾸벅 졸음을 참고 있던 찰나,
옹과장님의 호출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소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옹과장님과 마주본 상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긴히 하실 말씀이 무엇인가 싶어 차분히 펜뚜껑을 열어 다이어리에 적을 준비를 했는데,
"놀라지 말고 들어요, ○사원."
"네!"
"다음주 도쿄 출장, ○사원과 내가 가게 되었어요."
"네??!! 도쿄요???!!!"
신입이라고 해봐야 입사한지 갓 2개월이었다. 다른 동기들은 이제 막 조금씩 일을 시작하고 있는 찰나에 나는 유난히 주어지는 일이 많았다.
일손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생각은 하지만 2개월차에 해외출장은 너무 성급한 일이 아닌가 싶어 내 귀를 의심했다.
도쿄라니, 이게 왠 말. 마케팅팀 특성상 해외출장이 드문드문 있다고는 하지만 굳이 신입을 데려갈 이유가... 그럴 필요도...
"팀장님이 사원 한 명 데리고 가라고 했는데 내가 ○사원 적극 추천했어요."
"....아...."
"아직 한 번도 안 가봤지만, 다녀오면 확실히 배우는 게 많거든요."
하아... 그렇게 깊은 뜻이...... 라고 생각은 해도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저 안 가요!!!라고 외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럴 만한 용기도 없었다.
까라면 까야지, 하라면 하는 거고. 별 수 있겠나, 사회생활.
"그래서 이번 한 주 동안은 출장 준비하는 것 내 옆에서 잘 배우면 좋을 것 같아요."
"아, 네. 과장님."
"이미 거의 다 끝내놓긴 했는데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알려줄게요.
이번에 잘 배워두면 다음 번에 훨씬 가기 쉬울 거예요."
부드럽고 사근사근한 말투에 감탄하며 다이어리에 그 내용을 잘 받아 적었다.
적으면서도 내심 걱정되었던 건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
괜히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애가 짐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 걱정이 제일 컸다.
옹과장님 혼자 가면 일사천리로 잘해낼 수 있는 일들이 괜히 나 때문에 제동이 걸려버릴까봐. 그게 두려워지기 시작한 거다.
"출국은 다음주 월요일 오전이고, 입국은 금요일 밤. 자세한 스케줄은 출장계획서 확인하면 돼요.
혹시 궁금한 것 있어요?"
음... 아니. 있을 리 없었다. 워낙 철저하신 분이라 궁금할 만한 사항은 다 말해주셨기 때문에...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젓자 나를 향해 웃어보이는 옹과장님.
"그럼, 이번 출장 잘 부탁합니다."
나를 향해 제 오른손을 내밀어 보이는 그.
3초쯤 주저하다가 나도 오른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하나님,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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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이틀 다 왔어요!!! (뿌듯) 많은 분들이 너무 반겨주셔서, 힘을 내서 오늘도 찾아왔습니다!!! 몬가 강과장과 쿵짝쿵짝 좀 해볼랬더니 옹과장과 출장을 가게 되는데요... 가서는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저도 기대됩니다 흐흐 댓글 써주신 많은 분들 정말 감사하고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진짜 뿌듯하고 너무 좋았다는... 흑흑 앞으로도 자주자주 뵙겠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주말저녁 보내시길 바랍니다~~ >.<
+) 3, 4편 쓸 때 정신을 다른 데다 빼놓고 소제목을 안 썼더군요... 5편부터는 다시 소제목 열심히 쓰려고 합니다. 요게 은근 내용을 축약하는 맛이 있더라고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