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어쩐지 처연한 (도쿄출장 中)
어영부영 첫 일정을 소화해내고, 옹과장님과 유관기관 사람들과 함께 약간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메뉴를 고르고 있으라던 옹과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공항에서 걸려온 전화이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기다리고 있는데, 옹과장님이 밝은 표정을 하고 돌아왔다.
"찾았대요. 비행기에 있었대. 인천에서 보관 중이라고 해요.
우리 입국하는 날에 찾으러 가겠다고 이야기해 뒀어요.
너무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그래도 찾았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일은 강과장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하는 것.
이따가 밤에 옹과장님의 휴대폰을 빌려 연락처를 알아내야 할 것 같다. 나도 이런 내가 싫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감사합니다, 옹과장님께 인사를 했더니 아니라고, 찾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씀해주시는데 너무 미안하면서도 감사했다.
나는 진짜 옹과장님한테 잘 해야 해... 일도 잘하고 일 아닌 것도 잘해야 해.. 이런 좋은 분을 실망시켜 드릴 수는 없어...
그런 마음으로 유관기관 사람들에게 더 싹싹하게 말을 붙이고, 대화를 나누었다.
"출발이 좋아요, ○사원. 이번 출장 순탄하게 잘 마무리될 것 같은데?
거래처나 지사 사람들이랑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그러면 돼요."
"네, 과장님.. 그런데 정말 죄송해요, 제가. 칠칠치 못해가지고..."
"아니에요. 그래도 찾았으니까 얼마나 다행이야. 급한 전화 있으면 내 휴대폰 쓰고요."
"네, 과장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그리고 저, 과장님. 제가 드릴 말씀이 있는데..."
"드릴 말씀?"
"어... 일정 중에 귀찮은 일은 다 저한테 맡겨만 주세요! 제가 귀찮은 일 다 처리해버리겠습니다!!
뭐든 다요! 시켜만 주세요!!"
옹과장이 크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나는 사실 진심이었다. 솔직히 그것밖에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머리가 나쁘면 몸으로 때우는 거랬어... 우리 엄마의 말씀이다.
과장님은 코를 한 번 찡긋, 하시더니 내게 그러면.... 하면서 운을 띄우셨다.
"맛집 찾는 건 ○사원이 하죠."
"맛집이요?"
"응. 나는 맨날 가던 데만 가니까 지루해서.
이번 첫 출장 기념으로 ○사원이 리드해봐요. 나는 따라갈게요."
"오... 네, 과장님! 근데 저 휴대폰이 없어서... 검색이 어려운데.."
"내꺼 빌려주면 되지. 참고로 나는 아무거나 잘 먹고, ○사원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고.
뭐, 알고 있죠?"
얼굴이 훅 발그레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어쩜 이렇게 스윗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담.
내 빨개진 볼을 눈치 챈 과장님이 내 볼을 콕콕 찌르며 웃으셨다.
"귀엽네. 우리 막내 귀여운 거 다른 데에도 소문나서 큰일 났어요."
"네? 소문이..? 그럴리가.."
에이... 뭘 소문까지... 그냥 과장님 눈에만 귀여워 보이는 거 아닐까요.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과장님은 응, 진짜. 장난 아닌데? 하시면서 사뭇 진지해지셨다.
왜 이런 데에서 또 진지하고 그러세요 과장님... 그러면 제가 얼마나 민망하게요...
"난 황민현 대리 입에서 누구 귀엽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봤어요."
"황민현 대리님이요? 전략팀에 그 잘생기신 분?"
"잘생기신 분.... 그래. 잘생겼지, 민현이.
그래도 내가 좀 더 낫지 않아요?"
음.... 오.... 아.... 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서 미간을 긁고 있으려니, 농담을 다큐로 받으면 어떡하냐고 웃으시는 과장님이다.
아니에요.. 농담 아니었잖아요 솔직히... 진짜 옹과장님이 더 잘생기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말투였잖아요... 다 안다고요...
"미안해요. 여튼, 지나가다가 황대리를 만났는데 마케팅팀 신입 귀엽다고 호들갑인 거예요."
"에이, 그럴 리가 없는데.."
"그래서 내가 등짝 한 대 때려줬어요. 정신 차리라고.
이건 다른 얘기긴 한데, 황대리는 여자친구랑 조만간 결혼할 것 같거든요."
"와... 결혼이라... 멋있다.
그러고 보니, 과장님은 여자친구 없으세요?"
"나?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아요?"
"음... 처음에는 있으실 것 같았는데 지금은 없으실 것 같아요."
"왜요?"
"과장님은 일을 너-무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일을 너-무 사랑하시는 것 같다는 나의 말에 낮게 웃으시는 과장님.
늘 일에 열중해 계시고, 내가 야근할 때에도 거의 항상 같이 남아서 야근하시고. 내가 야근이 아닐 때에도 야근하시고...
일을 너무 사랑하지 않고는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나저나 운전을 하는 과장님의 모습은 사무실에서 보는 일하는 모습과는 좀 다른 것 같아서 신기했다.
사무실에서는 한없이 일 잘하고 또 열심히 하는 내 직속 상사이자 자랑스러운 선배인데,
이렇게 옆에서 보고 있으면 뭔가 더 가깝고 친해지는 기분? 그래서 그런지 차 안에서는 조금 더 말을 편하게 하게 된다.
"원래 일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
"요새 누구 가르치면서 좀 재밌어져서."
"........"
"재미 붙이니까 또 열심히 하게 되고... 그런 거죠."
갑자기 웃음기가 사그러들어 진지해진 분위기에 쉽게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나 지금 그 '누구'가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겁나게 눈치 없는 거겠지?
지금 약간 누가 들어도 그 '누구'가 나인 것 같은 상황인데...
"혹시 그 누구가 저인지요...?"
"네. 잘 알고 있네요-"
"아.. 그래도 재밌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저는 짜증나시면 어떡하지 하고서 맨날 걱정했어요."
"가끔 짜증날 때도 있는데,"
"진짜요???!!"
"아니, 농담. 짜증난 적 한 번도 없었어요.
워낙 한 번 알려주면 잘 하니까. 짜증날 일은 없었어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하면서 슬쩍 웃었더니, 도착하려면 조금 남았다고 눈 좀 붙이라 하신다.
오전부터 잃어버린 휴대폰 찾느라고 정신 없었던 데다 이제는 긴장이 풀려서 피곤하지 않느냐고.
그래도 운전하는 상사를 옆에 두고 자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분위기를 띄우고자 과장님 휴대폰의 블루투스를 켜서 차에 연결했다.
이왕 과장님의 휴대폰을 겟한 김에 강과장의 전화번호를 찾아보려 시도했다.
그래도 최소한 전화번호부 어딘가에는 강과장 번호가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강... 강... 강....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강다니엘은 없는 거다.
그래서 혹시 강과장 번호가 저장되어있지 않은 게 아닌가 하고 있는데,
".....??!!!"
눈에 보인 건, '양아치 강다니엘'.
강다니엘인 건 알겠는데 왜 하필 양아치인가 싶어졌다. 그래도 너무 오래 휴대폰을 잡고 있으면 이상하니 눈대중으로 번호를 얼른 외웠다.
공일공... 사구이오... 어쩌고 저쩌고를 억지로 머릿속에 넣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렇게 저장되어 있는 걸까? 내가 알기론 두 분의 사이가 그렇게 좋은 것 같지 않았는데.
보통 친하지 않은 사람이면 이름만 저장해놓아도 충분하지 않나... 나는 그런데.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싶어 옹과장님을 슬쩍 쳐다봤는데,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열심히 운전 중이시다.
어쩐지 둘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어보인다 싶어 좀 궁금증이 생겼다.
한 번 쯤 분위기가 괜찮을 때 여쭤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저어,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예요, 과장님. ○○○가요."
"○○○?"
혹시라도 국제전화라 안 받을까봐 조마조마하며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안 받아버리면 정말 연락할 도리가 없다 싶어 더 노심초사였다.
낮게 가라앉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미안해요, 과장님. 휴대폰을 잃어버린 거 있죠.
비행기에 두고 내렸어요. 인천공항에서 보관 중이래요."
"......."
"어... 저, 혹시 화... 났어요?
미안해요. 연락 못한 거... 그래도 옹과장님 휴대폰에서 과장님 전화번호 보고 연락했어요."
"......."
"아, 화 풀어요. 네? 미안해요. 진ㅉ..."
"화 안 났어."
".....안 났어요?"
"걱정했어. 엄청."
뭔가 약간...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걱정했어. 엄청. 이라는 말이 귓전을 때리자마자 눈 밑이 덜덜 떨리는 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내심 하루종일 걱정했던 거다. 화 많이 났을까봐, 내가 연락 없다고 미워졌을까봐. 그런 생각 때문에 힘들었던 거다.
그랬는데 화는 안 났고 걱정이라니... 그것도 엄청...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잘 도착은 했는지, 밥은 먹었는지,
걱정했는데 카톡은 안 오고."
"....."
"그래서 전화해 보니까 안 받아서...
호텔에 전화해봐야 하나, 그러고 있었어."
옹과장님한테 전화를 하지... 라고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왠지 그러기에는 강과장의 자존심이 또 허락하지 않았을 걸 알기에 말을 않기로 했다.
어쨌거나 엄청 걱정했다는 말에 좀 감동이긴 했다. 미안한 마음도 컸고.
그러나 저녁식사 때문에 옹과장님이 기다리고 계셔서 오랫동안 전화기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공항 가서 휴대폰 찾아 놓을게. 그래야 마음 편할 것 같아."
"아니에요, 피곤할 텐데. 괜찮아요."
"그럼 있는 동안은 연락할 방법 없는 거지?"
"옹과장님 휴대폰 조금 사용하고는 있는데... 그걸로 과장님한테 연락할 수는 없으니까요."
"응. 하지마."
너무 단칼에 하지 말라는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고 옹과장님 휴대폰에 '양아치 강다니엘'이라고 되어 있던데... 왜 그런 건줄 알아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배짱도, 패기도 없어서 포기했다.
그리고 강과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무 막, 같이 있지 마. 옹성우랑."
"알았어요."
"일정 끝나면 피곤하다고 하고 호텔에서 쉬어."
"알았어요."
"차에 타면 피곤하다고 하고 무조건 자."
"알겠다니까요."
"임자 있다고 그래. 강다니엘이라고."
"알겠.... 아, 뭐예요. 안 돼요, 과장님."
낮게 웃는 그다. 아까까지만 해도 축 처져있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다.
능글맞게 장난치는 모습이 귀여워 나도 티가 안 나게 웃었다. 음... 연애하는 기분.
"이제 저녁 먹으러 가겠네. 둘이 먹어?"
"네, 오늘은요. 내일은 거래처랑..."
"응. 술 많이 마시지 말고."
"...과장님 오늘따라 말이 되게 많은 것 같아요."
"........"
"그래도 걱정해주니까 좋아요, 과장님.
미리 잘 자요."
"응. 너도."
짧은 말이었지만 부드럽고 상냥한 말이었다.
며칠 새 달라진 서로의 분위기와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 이제 나가봐야겠다. 급하게 마무리를 하고 침대에 올려둔 겉옷을 챙겨 호텔 방을 나갔다.
-
호텔 근처에 괜찮은 집이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오후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서 내가 봐둔 곳이었다. 사람도 좀 있고, 이래저래 호텔과 가깝기도 하고 괜찮아 보였다.
낮과는 다르게 좀 편하게 입고 나온 과장님을 보니, 과장님도 수트와 캐주얼한 옷의 갭이 꽤 큰 것 같았다.
이런 옷을 입은 걸 처음 봐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과장님, 이런 옷도 잘 어울리세요.
수트랑은 또 다르게 멋지시네요."
"정말?"
활짝 웃어보이는 얼굴이 좀 귀엽다고 생각했다. 우리 과장님 보고 귀엽다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이런 모습도 있구나 해서 좀 신기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식당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저녁 공기는 선선했고, 물기가 살짝 어려있었다.
비행기도 타고, 차도 타고, 미팅도 하고, 가벼운 일정은 아니었기에 노곤함이 조금 몰려왔다.
"저는... 소고기 카레."
"그럼 나도. 그리고 아사히 둘.
맥주 괜찮죠?"
"네, 과장님."
왠지 맥주 조금에도 금방 풀려버릴 것 같은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도쿄에서의 첫 밤을 맥주 없이 보낼 수는 없으니까.
밥은 맛있었고, 하루의 피로를 싹 가시게 만드는 맥주도 시원하니 좋았다.
창가쪽 자리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있으려니 낮과는 달리 마음이 좀 편해졌다.
아무래도 강과장과 전화를 해서 좀 마음이 놓이는 게 있었던 것 같다.
"고생했어요. ○사원.
그래도 끝났네, 도쿄에서의 첫 날."
"아니에요, 과장님. 과장님이 훨씬 고생하셨죠...
감사해요, 여러가지로. 저 데리고 와주신 것도 그렇고...
제가 남은 일정까지 다 잘 해낼게요."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한 마디가 많이 위안이 되었다.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사실 입사하고 나서 항상 불안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딱히 크게 혼난 적은 없었으나 내가 잘해서 혼나지 않는 건 또 아닌 것 같았다.
다들 많이 바빠서 나 따위는 챙겨줄 시간도 없는 것 같았고, 실수를 하더라도 혼낼 만큼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기 싫어하시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와중에 옹과장님께서 잘 챙겨주셔서 옹과장님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정말 50대 50 만큼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번 출장도... 마찬가지고.
"나는 ○사원이 우리 팀 들어와서 다행이고, 좋아요.
첫 직장인 만큼 일 잘 배우고, 열심히 해서 본인 커리어 잘 쌓아갔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과장님."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겠지만,
이왕 과장과 사원으로 만났으니 나한테도 많이 배워갔으면 좋겠고."
짠 할까요? 하는 말에 넵! 하고 잔을 들었다.
스윗하게 웃으시는 그 모습이 딱 내가 첫 출근했을 때 내게 웃어주시던 그 모습 같아서 조금 설렜다.
시원한 맥주가 달게 느껴지리 만큼 맛있었다. 크으- 하며 소리내는 나를 보며 과장님이 웃었다.
"아 맞다. 그때 다쳤던 무릎은 좀 괜찮아요?"
"무릎이요? 아, 네. 과장님.
그때 병원에서 잘 치료해서요. 먹는 약은 끝났고, 바르는 약만 계속 바르고 있습니다."
"다행이다... 예쁜 다리에 흉 안 지게 조심해요."
예쁜 다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흉은 안 지게 조심하겠습니다! 하고 웃었다.
함께 조금 웃은 뒤에 잠시 정적이 흘렀는데, 과장님이 먼저 입을 여셨다.
"다니엘이랑은 대학 선후배에요."
"....."
"내가 1년 선배에요. 입사도 내가 1년 빨랐고요."
"아....."
같은 과에 같은 동아리. 학번도 바로 위아래라 안 친해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어쩌면 '양아치 강다니엘'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귀를 쫑긋 세웠다.
흥미를 가지지 않고 들을 수는 없는 이야기였다. 자연스럽게 과장님 쪽으로 기울여지는 몸을 느끼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춤 동아리였기 때문에 같이 땀 흘리며 연습도 하고, 무대도 많이 섰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입대했다가, 전역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부대끼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단짝이 될 수밖에 없었더랬다.
옹과장님이 1년 먼저 졸업하고, 강과장은 4학년을 다녔어야 했던 상황에서 룸메이트까지 했을 정도로 친했단다.
비슷한 점이 많았는데 본인이 노는 걸 좋아하는 반장이라면 다니엘은 말 잘 듣는 착한 양아치였다고 그랬다.
.....실은 여기에서 '양아치 강다니엘'의 기원을 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1년을 같이 살다가 옹과장님이 입사했고, 어쩌다 운이 좋게 다음 해에 강과장님도 입사해서 사이 좋게 회사를 다녔더랬다.
그렇게 사원이 지나 대리도 달고, 대리가 지나 서로 과장을 달아야 할 때쯤이었다.
승진을 목전에 두고 성과를 평가할 만한 중요한 시기가 있었는데, 그 시점에서 일이 터진 거다.
"니엘이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당장 승진 평가라고 할 수 있는 PT가 다음날인데 부산으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니엘이가."
서울에서 같이 학교는 다녔는데 강과장이 서울에 연고가 있는 게 아니라서, 강과장 주변에는 옹과장님밖에 없었다고 했다.
부산을 떠나온 지도 오래, 그렇다고 대학 졸업한지는 한참인데 서울에 딱히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외아들이기까지.
기댈 사람 하나 없는 상황에서 부산으로 내려가야 했던 강과장, 그리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과장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옹과장.
과장으로의 승진이 허락된 정원은 제한이 되어 있었고, 당연히 그 중 두명은 옹과장과 강과장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결과가 정해진 PT였는데.
강과장이 부모님의 장례식으로 부산에 가면서 기회를 놓쳤고, 현재의 옹과장과 다른 팀의 과장님이 승진을 하게 되었더랬다.
같이 가줄 사람은 옹과장 본인밖에 없었는데 기회를 놓치는 게 무서웠고, 두려웠고, 그래서 잡을 수밖에 없었고.
부산을 다녀온 강과장은 한껏 수척해진 얼굴이었고, 옹과장에게 어색한 인사를 내밀었다고 했다.
옹과장은 죄책감에 힘들었지만 선뜻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고,
강과장 또한 옹과장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상해버린 마음은 겉잡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둘 사이의 간극이 조금씩 벌어졌고, 결국 옹과장이 과장을 단 지 2년이 지나서야 강과장이 과장을 달게 된 거다.
"어떻게든 사과하고 싶었는데. 니엘이는 귀 막고 눈 감고...
그러다 보니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이미 미안하다는 말 하기에는 너무 어색해져버렸고...
둘 다에게 힘든 2년이었는데. 막상 그렇게 되고 나니 그 간극을 좁힐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니엘이가 과장 되고 나서는 과장끼리의 기싸움까지 더해지니까, 화해라는 건 할 수도 없었어요."
어떤 이야기가 있는 건지 궁금했는데, 막상 듣고 나니까 양쪽 다 이해가 가고 안타까워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아직도 형으로서 너무 미안하고, 내가 잘못한 것도, 상처받은 그때의 니엘이도 너무 잘 아는데.
왜 나를 이해해줄 수 없었던 걸까. 아니, 이해하면서도 나를 그렇게 미워했어야 했던 걸까 하는 원망도 같이 있어요."
"......."
"언제까지 이렇게 서로를 미워해야 하고, 언제까지 쓸모 없는 감정싸움을 이어가야 하나 하는 마음도 있고요.
그러면서도 하루하루 일은 바쁘게 흘러가고, 쏟아지는 서러움을 틀어막은지는 오래고... 그러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옹과장이 낮은 목소리로 그만 일어설까요? 하고 물어왔다.
네, 과장님. 하며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쩐지 무거워진 마음 때문에 몸도 무거워진 것 같았다.
"밤공기가 좋네요. 선선해서... 춥지는 않죠?"
"네, 과장님. 괜찮습니다."
아무런 말 없이 호텔을 향해 걸었다. 생각보다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짐짓 놀란 마음이 더해져 입을 닫게 된 거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과장님보다 앞서서 걷고 있었나 보다. 내 뒤에서 과장님이 날 부르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과장님의 손이 내 손목을 가볍게 잡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끌어당겨져 내 앞에 과장님이 가까이 서게 됐다.
쏟아져 내리는 달빛. 선선한 밤공기. 맥주 한 잔으로 살짝 달아오른 체온. 생각지 못하게 들은 속얘기로 복잡해진 머릿속까지...
복잡한 눈으로 과장님을 올려다 보았다.
"오늘 들은 이야기는... 모른척 해줘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과장님."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는데 과장님은 웃지를 않으셨다. 웃지 않는 그의 모습에 어색함을 느낄 수 없을 만치 마음이 복잡했다.
과장님은 웃음기 없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계셨다. 과장님이 키가 컸던가, 확실히 내가 운동화를 신으니 나보다 크시구나 싶었다.
웃음기 없는 눈빛은 어렴풋한 처연함을 담고 있었다. 매일 위트 넘치고, 센스 있고, 스윗하시던 그 모습은 간 데 없었다.
"...미안한데, 잠깐만."
잡고 있던 손목이 놓여짐과 동시에 내 앞에 과장님의 품이 열렸고, 그대로 나는 그의 팔 안에 가둬진 신세가 됐다.
맥주 냄새가 살짝 섞인 달큰한 향이 나를 감싸고 나서야 내가 옹과장님한테 안겨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매일 옆에서 내게 일을 가르쳐주실 때 나던 달큰한 향이었다. 품 안에서 맡으니 향은 더 진했다.
선선하고 차가웠던 어깨 위로 그의 온기가 닿고, 녹아들듯 두 몸이 맞물려졌으나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손을 들어 과장님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애처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주, 잠시만.
....안아줘요."
잔뜩 물 먹은 먹먹한 말에 시간이 멈추는 듯했다.
쿵, 쿵, 일정한 소리로 그의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어쩐지 처연한, 어쩐지 애처로운, 그래서 안타까운,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없는,
슬픈 도쿄의 밤이었다.
더보기 |
안녕하세요! Y사원입니다. 오늘은 분량이 평소보다 좀 많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풀어나갈 이야기가 많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강과장과 옹과장의 이야기를 좀 풀어봤어요. 급 진지해진 느낌이 있긴 하지만 적절히 완급조절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관계와 세 사람의 마음이 잘 납득이 가셨으면 좋겠지만... 안 되신다면 제가 설득력이 부족한 것으로...ㅠㅠ엉엉 글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 덕분에 제가 더 열심히 쓸 수 있어용ㅎㅎ
프듀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끝이 나면 또 데뷔조와 새로운 시작을 할 거라 믿기 때문에 영업2팀 강과장은 양아치니? 는 여러분이 사랑해주시는 한 계속 연재가 될 겁니다!ㅎㅎ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시고 계속계속 같이 달려주시기를 바랄게요~~
도쿄출장 에피소드는 담편에서 마무리됩니다! 그 후에는 조금이라도 강과장과 달달한 에피소드를 좀 그려보려고 해요..ㅋㅋ 혹시 보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꼭 말씀해주시고요!
암호닉은 한꺼번에 신청받겠습니다. 궁금한 점이나 글에 대한 피드백은 댓글로 마구마구!!! 남겨주세요~~ 남은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댓글창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뿅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