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김수민. 너 오늘 1교시 아니야?"
갑자기 이불을 확 걷어가는 손길에 찬 기운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씨..' 작게 짜증을 부리니, 한 번 더 내 등짝을 짝- 하고 때리는 손에 결국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고,
침대 앞에서 'ㅇㅇ 일어났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내 방을 나가는 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 속 쓰려.."
"콩나물국 끓여 놨으니까 먹고 학교 가. 나 오늘 야근이라서 늦는다."
"응.. 땡큐"
"아, 참. 민현이 왔더라?"
괜히 나 혼자 또 찔려 흠칫 놀라면서 언니를 바라봤다.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표정.
"어, 뭐.. 걔 왔어!"
"왔음 좀 알려주기라도 하지. 어제 보고 깜짝 놀랐잖아."
"아.. 어제 만났어?"
"너 연락 안되서 그냥 기다리고 있었는데, 민현이가 업고 들어오더라."
아, 그랬지.
이제야 좀 어제의 기억이 슬며시 나기 시작한다.
내가 둘이 만나라고 자리를 마련해준 꼴이네.
"암튼, 밥 챙겨 먹고 가. 갔다와서 설거지 바로 하고."
"아, 알았어ㅓ.."
거울을 한 번 확인하고 나가는 언니의 뒷모습을 그냥 쳐다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황민현이 날 대하는 것 같은 형식적인 태도. 표정.
괜히 또 가슴이 아려온다.
*
[야, 밥 좀 같이 먹자ㅠ] - 황미년
뭐야.. 3월달에 제일 바쁠 것 같은 분이.
나도 마침 독강을 마친 터라, 같이 먹을 사람도 없었고, 이러저러한 핑계를 혼자 대면서 황민현을 만나러 향했다.
경영관 앞으로 데리러 온다는 황민현의 말에 그냥 근처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앞 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그럼 내일 밥 사주시는 거에요?"
"그래, 너 내일!"
"그럼, 저는 모레요!"
"아, 모레는 안되고. 그럼 너는 금요일에, 괜찮아?"
"좋아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황민현이 보였다. 그 주위를 둘러싼 병아리들도.
점점 가까워지는 게 보여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보는 척 했다.
"김수민!"
"아우, 빨리 가자."
황민현의 뒷편에서 나와 황민현을 번갈아보며 소근대는 새내기들이 보였고,
나는 멋쩍게 먼저 앞서가는 황민현의 옆에 붙어서 나란히 걸었다.
"쟤네 밥이라도 사주지, 왜."
"아니야, 오늘은 너랑 먹기로 정했어."
황민현은 그냥 뱉은 말인데, 또 귀가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어서 괜히 귓볼을 만지작댔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던 황민현이 '어, 너 귀 뚫었어?' 라고 물었다.
"응, 한 6개월 됐는데."
"봐봐."
내 귀를 보겠다며 갑자기 훅- 다가오는 황민현에 깜짝 놀라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가까이서 풍겨오는 황민현의 향수 냄새와 내 팔목을 살짝 붙잡은 손 때문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오, 다 아물었네. 너 중학교 때도 뚫었다가 곪아서 막혔었잖아 ㅋㅋ'
그 거리를 유지한 채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하는 황민현에게 나는 'ㅇ,어..' 또 바보같이 대답했다.
*
"알바 한다고?"
"응, 편의점."
"오, 언제 언제 하는데"
"나 평일 내내, 야간이야. 밤 10시부터 아침 5.."
"야간? 야 하지마"
내 말을 자르고 갑자기 정색을 하는 황민현에 당황해서 벙지고 바라보니,
단호하게 '하지마, 그거' 라고 계속해서 고개를 젓는다.
"왜에! 야간이 시급도 훨씬 세단 말이야."
"야, 시급이 세건 말건 여자애가 무슨 야간 편의점 알바야. 너 진짜 세상 무서운 줄 모르네."
"야 괜찮아. 요새 씨씨티비도 다 달려있고, 얼마나 안전한데. 집도 가까워서 괜찮아."
내 말이라면 거의 들어주는 편인 황민현이 유독 오늘따라 단호하게 나오길래,
그런 녀석을 대충 안심시키는 말을 하고는 앞에 남은 피자 한 조각을 우겨 넣는데,
"야, 민아 누나는 허락 했어? 또 말도 안하고 혼자 결정했지."
"...언니 얘기가 또 왜 나와?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일일이 물어보고 결정해야되냐?"
"그런 말이 아니잖아. 민아 누나도 분명 들으면 그만두라고 할걸."
항상, 저렇게 결국 언니 얘기를 꺼내고 마는 게 황민현의 특징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황민현을 따라 같은 독서실을 다니려고 할 때도, '민아 누나한텐 허락 맡았어?'
황민현은 대학교를 가고, 나는 재수를 하던 시절에도, 재수 학원 말고 독학 재수를 하겠다는 내게 '민아 누나는 뭐래?'
과거의 기억들이 한 번에 찾아오는 느낌에 또 머리가 지끈거리고 울컥하는 느낌이다.
울컥하는 감정을 떨치려고 할 때는 너무 늦어 버려, 이미 내 두 눈에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야, 울어?!"
"...앙울어"
"...하여튼, 울보."
황민현 앞에서 우는 게 싫어서 입술을 꾹 깨물고 지독하게 울음을 참아 냈다.
남은 피자 조각을 입에 쑤셔넣고는, 콜라를 벌컥벌컥 마셨다.
황민현은 그런 나를 그저 턱을 괴고 지그시 바라봤다.
"다 울었어?"
"안 울었다니까!"
"알았어 알았어. 다 먹었으면 가자."
그래도 내가 운 걸 신경은 쓰는 건지, 가는 길에 황민현은 더 이상 내게 편의점 알바에 관련된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
오늘은, 하여튼 되는 일이 없다.
황민현 앞에서 질질 짠 것도 모자라, 지금은 알바 첫 출근까지 늦게 생겼으니.
개강총회에 잠깐 엉덩이만 붙였다 간다는 게 그만 또 선배들한테 걸려서 시간을 끌고 말았다.
22:06 PM 이미 출근 시간을 넘겨버린 시간에, 조금 더 걸음을 빨리 해서 뛰었다.
술기운 때문에 안그래도 달아오른 볼이 숨이 차니까 더 달아오른다.
내가 다시 술자리에 나가면 개다, 개.
'딸랑'
"ㅈ, 죄송합니다!!!"
우선, 들어가자마자 앞도 보지 않고 허리를 구십도로 푹 숙였다.
아씨, 첫 날부터 찍히면 진짜 큰일인데.
내 사과에도 묵묵부답인건지 작은 편의점 안에는 정적이 흘렀고,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
무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전타임 알바생으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 금방이라도 나한테 욕을 내뱉을 것 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쳐다보길래 제 발이 저렸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죄,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나요?"
"..조금요."
"아..."
단호한 남자의 대답에 나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첫인상부터 지각한 주제에 술냄새 풍기는 주정뱅이로 찍혀 버린 건가.
망했다, 싶은 나는 우선 기계처럼 꾸벅 꾸벅 고개를 숙이며 우선 조끼를 갈아입고 나왔다.
그 사이에 남자는 이미 나갈 채비를 마치고는, 문을 나서려 하는게 보였다.
"저, 저기!"
"...?"
"진짜.. 진짜로 죄송해요. 내일부터는 절대 안 늦을게요! 진짜 진짜로.. 죄송합니다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고개를 푹 숙이고 사죄를 빌었다.
이 쯤 되면 그래도 사과를 받아주겠지 싶어서, 소심하게 고개를 들고 남자를 쳐다봤다.
"네, 다음부턴 10분 전에는 꼭 와주세요. 저도 뒤에 스케줄이 있어서 늦으면 곤란하거든요."
"ㄴ, 네! 알겠습니다!!!"
남자는 내 우렁찬 대답을 듣고는 그제서야 목례를 하고, 편의점을 나갔다.
와씨.. 이거.. 약간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랑 성적 상담하는 기분이였어.
또박또박 내뱉던 남자의 말을 들으니 정말 정신이 똑바로 차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늦으면 내가 개다. 라고 다시 한 번 맹세했다.
*
응앙악 종혀니 등ㅇ장
부족한 글에 댓글 달아주시고 예쁜말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뷰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