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내가 알던 네가 아냐
(짤 파티 주의 & 데이터 주의
그리고 '한꺼번에 듣기' 이거는 일시정지 누르시면 좋을 것 같아요!)
SISTAR- SHAKE IT
적힌 문구 위로 허허, 하며 웃기만 하던 강과장의 얼굴이 겹쳐진 것도 잠시.
현실은 나는 옹과장님과 함께 진행을 해야 한다는 것과, 그 장기자랑이 불과 세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저녁식사로 할당된 시간은 두 시간 남짓. 그후에는 한 시간 가량의 맥주타임이 마련되어 있었다. 밤이니까 티타임 대신 맥주타임이라는데.. 정말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뭔가를 하긴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극도의 집중력을 몰아서 큐시트를 보고 있는데, 큐시트 누가 썼냐...
"병아리 신입사원 ○○○입니다! 이렇게 풋풋한 사람 누구야? 나야나! 나야나!"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이거 대사 무시하고 제가 다시 쓰면 안 되나요 과장님...?
아무리 잘 살리려고 노력해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에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연습은 연습대로 하고, 무대 위에 올라가서 정 못하겠으면 내 방식대로 하자는 생각을 하면서 옹과장님과 함께 큐시트를 쭉 읽어내려갔다.
"순진한 얼굴, 방탕한 음색의 두 남자가 부릅니다. 너였다면!"
"......."
"과장님, 이거 큐시트 어떤 분이 쓰신 거예요..?"
"제가요. 팀장님한테 급하게 부탁 받아서 좀 급하게 썼는데... 티 나요?"
진지하게 물어오시는 바람에 차마, 급조한 티보다는 문구 하나하나가 너무... 트렌디해서 살리기 어렵다는 말은 못하겠고.
아, 아니에요. 요즘 말투 느낌이 많이 나서요... 하하하. 하고 멋쩍게 웃었더니, 조카가 자주 하는 말에서 착안하셨다고...
어쩐지.. 박지훈도 자주 쓰는 말이더라니.. 모르긴 몰라도 요즘 TV에 자주 나오는 말이라고는 생각하면서 다시 큐시트를 읽었는데.
꼬로록... 뱃속에서 듣기 민망한 소리가 나는 거다. 그것도 이 좁은 공간에 나와 옹과장님 딱 둘 뿐이 없는데.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팔을 들어 배를 가렸는데, 그렇다고 소리가 안 들릴 리는 없고. 그렇지만 과장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모른척 하시는 건가...
"하하.. 물놀이 했더니 좀.. 배가 고파서요."
"....아. 잠깐만요.
읽고 있어요. 금방 다녀올게."
큐시트를 읽다 말고 툭 내려놓으시더니, 금방 다녀오신다며 자리에서 일어선 옹과장님이다. 나는 예? 예... 하면서 빠르게 수긍하며 혼자 계속 연습을 이어갔다.
처음 볼 때는 아, 이걸 어떻게 해. 하는 마음이었는데 자꾸 읽다 보니 뭔가 정감이 가는 게 과연 옹과장님이 쓰신 큐시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강과장님은 영... 감감 무소식이네. 어디에서 뭘 하고 계신 걸까. 뭘 하는지는 알겠는데 어디 계신지는 통 모르겠어서 카톡을 보내봤다.
[어디에요?]
한창 바쁘기 때문인지, 기다려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막바지 연습을 하느라 바쁘겠지 생각이 들긴 했는데, 또 그 사이에 언제 연습을 해서 무대에 오른다고 신청까지 했는지 통 모르겠는 거다.
그렇게 그냥 허허 웃으면서 넘기더니, 이렇게 엔딩 무대까지 차지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강과장님이 안 나간다고 하면 억지로라도 내보낼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런 상황은 되지 않아서 한 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한데... 참, 어떤 모습으로 무대에 오를지 기대도 되고, 내심 걱정도 되었다.
"○사원! 짠-"
옹과장님이 두 손으로 음식이 쌓인 한가득 쌓인 접시를 들고 대기실로 돌아오셨다. 보아하니, 바깥에 세팅된 뷔페 음식들을 담아 오신 것 같았다.
나는 놀라며 그 접시를 받아 들었고, 과장님은 같이 먹자고. 우리 둘 다 저녁 못 먹을 텐데. 하면서 웃으셨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왜 이렇게 맛있게 생긴 거야... 하면서 접시를 봤더니, 내 표정을 읽은 건지 옹과장님이 소리내어 웃으셨다.
긴장해서 굳어 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 과장님이라고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텐데 이렇게 잘 해주시는 걸 보니 또 죄송해지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잘 먹겠습니다. 하고 꾸벅 고개를 숙였더니, 주머니에서 나무젓가락을 꺼내주신다. 또 간단히 눈인사를 하며 젓가락을 받아든 뒤 염치불구하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
"스탠바이 할게요~"
과장님이 음식을 한가득 담은 채 가져온 접시를 싹싹 비우고, 두세 번 더 큐시트 전체를 읽고 나니 스탠바이 한다는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근데 무슨 스태프까지... 하는 생각에 나가보니, 우리 회사 직원이긴 한데 어느 팀인지는 잘 모르겠는 분이 스태프 역할을 하고 계셨다.
설마.. 다른 부분 다 이런 거야? 라는 생각으로 슬쩍 무대를 봤는데, 음향이고 조명이고 죄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아 있는 거다.
이건 분명... 회사 내에 이걸 담당하는 인재들을 쏙쏙 골라내서 적재적소에 넣었다고밖에 생각을 못하겠는 상황이다.
와... 진짜 스케일 한 번 대단하다, 싶었는데 금방 내 뒤를 따라온 옹과장님께서 나를 급하게 부르셨다.
"○사원, 옷 갈아입으래요."
"옷이요? 갈아입으라고요?"
"네. 의상 담당하는 팀이 가지고 왔어요."
.....예? 순간적으로 또 내 귀를 의심했다. 의상을... 담당하는... 팀이요? 속에서 끓어오르는 물음을 억누르고 일단 대기실로 향했다.
옹과장님이 말씀하셨던 의상 담당하는 팀 또한 우리 직원들이었는데, 평소에 옷 잘 입으시기로 유명한... 언니들이었다. 나보다 한참 선배.
나는 깍듯하게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했지만, 그 분들은 내 인사는 안중에 없고 그들이 가져온 옷이 나와 맞을지 안 맞을지, 어울릴지 안 어울릴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다.
나는 떠밀려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무릎 위로 껑충 올라오는 블랙 미니드레스였다. 이런 옷은 생전 입어본 적이 없는데...
"어울리네. 어울려."
"응. 괜찮네."
시크하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분들이 다시 나를 옹과장님에게로 밀었다. 내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과장님도 깔끔한 턱시도를 입으셨다. 오... 멋있어요. 했더니 말없이 웃는 과장님.
어느새 블랙으로 맞춰진 드레스 코드에 감탄한 것도 잠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내 머릿속에는 큐시트에 적힌 대사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만치 했는데 혹여라도 무대 위에서 실수를 해버리면 큰 일일 것 같아서, 점차 긴장되기 시작해서 말라오는 목에 큼, 큼, 하며 헛기침을 했더니 과장님의 시선이 닿아왔다.
과장님과 눈을 맞추니 긴장하지 말라며 다독여주시는데, 그 목소리가 따뜻해서 좀 위안이 되었다. 잘해야지, 잘 할 거다. 내가 나에게 이야기를 하며 무대에 오르기를 기다렸다.
"MC 두 분 올라갑니다-"
스태프 분이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하시며 무전에 대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끝남과 동시에 오프닝곡이 흘러나왔다.
듣기만 해도 어깨가 들썩들썩, 신이 나는 게 장기자랑의 분위기가 어떨지 대충 예상이 되었다.
가볍게 팔을 내어주시는 과장님이셔서, 나 또한 살짝 벌려진 틈새로 손을 넣어 팔짱을 낀 자세를 만들어냈다.
그대로 무대 위로 걸어나갔더니 조명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뭐랄까, 기분이 이상했다.
"네- 여기는 2017년도 해원기획 여름 워크숍, 광란의 밤!
저희는 이번 광란의 밤 진행을 맡은 옹성우, ○○○입니다!"
옹과장님의 낭랑한 목소리로 첫 대사가 흘러나왔다. 와아아, 사람들은 환호했고 내 입에서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슬슬 텐션이 오르는 걸 보니, 예감이 좋았다.
과장님은 청산유수로 준비한 멘트를 쏟아내셨고, 나 또한 적당한 리액션과 추임새를 중간중간 넣으며 과장님을 보조했다.
그래도 메인은 과장님이고, 나는 보조하는 역할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투탑 메인이었으면 부담감이 더했을 텐데. 이 정도는 그래도 괜찮았다.
"첫번째 무대입니다.
와... 이분들. 각자 다른 무대에서 고막을 녹여주시더니, 이번 워크숍에서는 듀엣을 준비하셨어요.
영업1팀 김재환 과장과 전략팀 황민현 대리가 꾸미는 발라드 무대인데요.
순진한 얼굴, 방탕한 음색의 두 남자가 부릅니다. 너였다면!"
이어지는 뜨거운 박수와 함성. 서둘러 내려가시는 옹과장님의 뒤를 따라 나도 함께 내려왔다.
으, 떨려떨려. 하면서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시는 옹과장님을 보며 나는, 이 분은 프로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진행까지 프로답게 하신다.
정말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평소보다 더 들었다. 제주도에서의 어색함은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더니, 어느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나는 무대에 오르는 김과장님과 황대리님을 바라봤다. 너무 캐주얼하지도, 너무 정장도 아닌 말끔한 의상과 헤어. 평소에 사무실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너였다면- 어떨 것 같아- 이런 미친 날들이- 네 하루가 되면 말야-"
"너도 나처럼 혼자- 부서져 본다면 알게 될까-"
뭐랄까. 황대리님은 음색이 정말 좋았고, 김과장님은 가창력이 좋았다. 물론 황대리님 가창력도, 김과장님 음색도 좋았지만... 굳이 특징을 고르자면 그랬다.
나는 잠시 넋을 놓고 노래를 듣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옹과장님과 함께 큐시트를 들여다 보았다.
무대 뒤 좁은 공간에서 머리를 맞대고, 급하게 큐시트를 들여다 보고 있는 이 상황이란 게 참 웃겨서 나도 몰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과장님은 대충 내가 왜 웃는지 아시는 눈치였다. 정신 없죠? 하고 물어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름 재미는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김과장님의 습관은 여기서도 드러났다. 두 분은 방탕한 음색으로 노래하던 것과는 달리 굉장히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무대를 내려가셨다.
박수와 함성이 따라붙었는데, 무대 아래에 있던 나도 굉장히 감명 깊게 들은 무대라 자연스럽게 박수가 나왔다.
스태프는 우리에게 와서 다시 올라가세요. 라고 말했고, 나와 옹과장님은 처음과는 또 다른 분위기로 진행을 시작했다.
"○사원, 이거. 이거 뭔지 알죠?"
갑자기 몸을 꿀렁이며 손가락을 탁, 탁, 튕기는 옹과장님이다. 큐시트를 읽으며 이 정도는 과장님께서 하실 거란 걸 알았기 때문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나는 아, 그럼 당연히 알죠! 센세이션이였던 곡 아닙니까- 하면서 능청맞게 말을 이어갔고, 과장님은 네. 맞아요. 바로 그겁니다. 하면서 언제 꿀렁였냐는듯 진지한 표정으로 진행을 하셨다.
"패기로운 신입사원들의 무대입니다. 트러블메이커."
익숙한 휘파람 소리가 들림과 둥시에 무대 위에 네 명의 남녀가 등장했다. 두 명은 여자고, 두 명은 남자였는데 그 두 명의 여자 중 한 명은 한사원이었다.
아... 준비했다는 무대가 이거였구나. 싶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환호나 박수 없이 고개만 끄덕이게 되었던 이유는....
"노잼."
말없이 무대를 바라보던 옹과장님의 입에서 나온 한 단어였다. 그런데 그게 너무나도 적절해서 공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 그래. 노잼이었다. 그냥 별로... 음... 섹시하지도 않고. 상당히 비즈니스적인 분위기...?
뭔가 신입의 패기를 보여주고 싶어서 무대에 올랐다는 건 알겠는데, 직전무대처럼 잘해서 감탄이 나올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는 와중에 한사원이 춤을 잘 추기는 했다. 표정도 좋고... 열심히 준비한 것 같은데. 문제는 그냥... 별 감흥이 없었다는 것이다.
옹과장님 입에서 '노잼'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게임은 끝난 거라는 생각이... 그냥 얼핏 들었다.
나는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를 보았다.
"열심히는 하는데... 뭔가 느낌이 없다. 그쵸."
"네에... 남자 분들이 좀 더 영혼이 있으면 좋을 텐데..."
별로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해보다가, 또 눈 깜짝할 사이에 무대가 끝나버려서 부리나케 옹과장님과 함께 무대에 올라갔다.
옹과장님은 지금 이 무대가 좀 기대된다며 내게 작게 속삭이셨고, 나는 오... 하는 마음으로 무대를 소개했다.
"저희 이번 체육대회 때, 축구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셨던 분 기억나시나요-?"
"네!!!"
내 물음에 객석에서는 뜨겁게 네!!!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다들 밥도 배불리 드시고 맥주도 한 잔씩 걸쳐서인지 흥이 많이 나있었다.
바로 전 무대가 상대적으로 노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흥이 오르셨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네- 바로 인사총무팀의 박우진 인턴인데요. 우리 박우진 인턴이 동료 인턴들과 함께 무대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이 곡 또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래인데요, 특히 여성분들은 귀를 쫑긋하고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10점 만점에 10점!!!"
꽤 많은 수의 인턴들이 우르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상대적으로 젊은 피들이라 그런지 에너지가 넘쳤다.
우웅, 우웅 하는 전주가 나왔다. 나도 교복 입을 나이에 한창 즐겨 들었던 노래라 저절로 몸이 들썩였다.
사실 아까 큐시트를 읽을 때 이 무대는 그다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막상 기대를 안 한 게 미안할 만큼 박우진 인턴의 에너지가 대단했다.
그리고 특히 저... '섹시 베이베, 오 마이 레이디' 하는 부분...
저게 바로 끼라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면서 와아.. 하는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옹과장님도 살짝 눈썹이 꿈틀거리시는 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신듯 했다.
엄청난 힘으로 무대를 뛰어다니던 인턴들의 무대 또한 금방 끝나버렸다. 와.. 여태까지 재미없게 느껴진 건 트러블메이커밖에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동기들인데 좀 미안했다.
박우진 인턴의 깜찍한 윙크를 끝으로 무대가 마무리되었는데, 그 사이에 자리에서 들썩이기만 하셨던 분들은 어느새 일어나서 춤을 추며 공연을 즐기고 계셨다.
이래서 장기자랑, 장기자랑 하는구나... 다들 흥도 많으신데 사무실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참으셨대...
"우리 인턴들의 무대 잘 봤습니다. 해원기획은 인턴들도 이렇게 까리합니다-"
"네... 이제 뭐, 무대 순서를 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출연자만 공연하라는 법은 없죠? 그래서 저희 MC들이 특별한 무대를 준비했습니다!"
"잠깐이니까 눈 크게 뜨고 보세요! 마케팅팀 옹성우 과장님입니다!!"
큐시트에 MC 특별무대라는 게 적혀져 있길래 이게 뭐냐고 옹과장님께 물었더니, 예전부터 MC들도 하나씩 깜짝 무대를 해오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과장님은 내게 노래와 춤 중에 뭘 좋아하냐고 물으셨고, 나는 춤 추는 걸 좋아하긴 하는데 잘 추는 건 자신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음... 무대 오르는 건 좀 부담스럽죠? 하고 물으셨다. 솔직히 그랬기 때문에 네에.. 좀 부담스럽긴 한데.. 라고 말을 늘였다.
과장님은 그럼 내가 잠깐만 하고 금방 멈출게요. 다시 아무렇지 않게 진행하고 이어가면 될 것 같아요. 라고 하시면서 나를 안심시켜주셨다.
".......헉."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진행을 하기에는 너무 물 만난 물고기처럼 펄떡펄떡 움직이시는 거다. 굉장히 핫한 노래가 나오고 있는 와중에 과장님은 프리스타일 댄스를 추셨다.
그야말로 '헉'이었다. 전혀 상상해보지 못한 과장님의 모습에, 그걸 보고 있는 내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직원들, 특히 여직원들의 엄청난 환호 속에서 과장님은 신나게 몸을 움직이셨고, 나는 그 자리 그대로 굳어버려서 음악을 끊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출 만큼 다 추셨다고 생각하셨는지 옹과장님은 검지손가락을 요렇게 요렇게 움직이는 동작을 끝으로 동작을 멈추셨다. 자연스레 나오던 음악도 페이드아웃 되었다.
나는 굳어있던 입을 풀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과장님은 나를 향해 씨익 웃어보이셨다. 헐..... 굉장히..... 갭이 큰데....?
"하아, 하아. 오래간만에 춤췄더니 힘드네요."
무대로 돌아오신 과장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능청스럽게 마이크를 잡고 진행을 하셨고, 나는 얼떨떨한 기분을 뒤로 하고 이 상황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와... 춤 다 추고 손가락을 움직이던 모습이 잔상으로 남아 쉽게 지워지지가 않는다... 대박이었어.... 이런 반전이 따로 없다.
그래, 이때까지만 해도 더더욱 큰 반전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또 저만 춤출 수 없지요- 해원기획에 춤꾼이 얼마나 많은데요."
"정말요, 과장님?"
"그럼요. 지금 당장 음악 틀면 무대 나와서 춤추실 분들이 한두 분 아닐 거예요-"
"그러면 말 나온 김에 음악 한 번 틀어드릴까요?
지금 나와서 가장 막춤다운 막춤 보여주시는 분께 상품 쏩니다!!"
........또 한 번 더 헉 했다. 아까 분명 큐시트를 읽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타이밍에 나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아서 나라도 춤을 춰야 할까, 하고 고민했는데.
그런 고민이 아주아주 무색할 만치 객석에 있던 직원들이 우르르 나와서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새삼 대단하다. 와.... 장난 아니구나. 다들 이렇게 흥이 넘치는 사람들이었어...
"신나, 신나!!!"
그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영업1팀 김과장님.... 감미롭게 너였다면 부를 때는 언제고 춤신춤왕의 아우라로 막춤을 추고 계신다.
옆에 계신 황대리님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몸을 흔드시는데, 두 분이서 투탑인 것 같은 게 막상막하였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김과장님이랑 황대리님 보세요, 과장님."
"...원래 저래요."
늘 그래왔다는 듯 당연하다는 옹과장님의 반응이 이어졌고, 나는 혼자 컬쳐쇼크를 받아서 입을 헤 벌리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과장님은 막춤의 열기가 점점 과열되자 이제 끊어야겠다, 라고 하시면서 손으로 T 모양을 그리셨다. 음악이 서서히 페이드아웃 되었다.
과장님은 음악이 꺼졌는데도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김과장님과 황대리님 옆으로 가서 들어들 가시죠. 하면서 표정을 굳히고 말씀하셨는데,
그 모양이 또 웃겨서 객석에서는 잔뜩 웃음이 터졌다.
"이쯤 되니 1등은 정해진 것 같네요.
영업1팀 김재환 과장에게 맥주 한 박스 쏩니다!!!"
김과장님은 무대에서 내려가시다 말고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셨다. 김재환 과장님 저런 분인 줄 몰랐는데.... 여기에서 새로운 모습 발견하게 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전부 다인 것 같기도.... 대체 이런 모습을 어떻게 숨기고들 지내신 걸까, 하는 의문만이 남는 장기자랑이다.
"자자, 해원기획 여름 워크숍 광란의 밤!
드디어 마지막 무대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네, 마지막 무대입니다.
이 분, 올해 겨울 워크샵에서 절제된 섹시미가 돋보이는 춤사위로 뭇 여직원들의 심장에 난도질을 하셨던 분이죠.
듣자하니 이번에는 또 다른 매력을 준비했다고 하는데요.
영업2팀 강다니엘 과장입니다!"
(브금 끄고 겟어글리 들어주라...)
익숙한 팝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리듬감이 좋아서 자주 듣던 노래였다. 탁, 소리와 함께 켜진 핀조명은 무대 위에 혼자 서있는 강과장님을 비췄다.
.........?
.........어......?
.........예?
.........선생님. 아, 아니. 과장님....?
................과장님!!!!!!!!!!!!
처음엔 웃옷도 청, 아래옷도 청인 게 그렇게 찰떡일 수가 없어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내가 맨 처음 봤던, 뭐랄까. 묵묵하고 까칠했던 과장님의 모습이 보여서 또 눈을 떼지 못하다가,
음악에 맞춰서 씨익 웃으면서 춤을 추는 게 정말 멋있고, 그렇게 섹시할 수가 없어서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다가,
스스럼 없이 복근을 까보이는 장면에 뜨헉, 하면서도 섣불리 무어라 할 말을 못 찾겠어서 어버버 하고만 있다 보니 무대가 끝나버렸다.
무대 위에서 쪼그려 앉은 상태에서 씨익, 웃으면서 나를 보는데 눈이 마주쳤다. 헉. 나도 모르게 벌어지는 입술을 억지로 닫느라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그 어느 때보다 거세고 힘찬 박수와 함성이 쏟아지고, 나 또한 서 있는 자리에서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가 뭘 본 거지.... 내가 본 게 강과장님이 맞나... 아침까지만 해도 나와 회사에 같이 출근한 그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멍하니 가만히 서있는데 옹과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무리 해야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옹과장님을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갔다.
마무리 멘트를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머릿속에는 온통 청남방에 청바지를 입고 기깔나게 무대 위에서 움직이던 강과장만 남아 있다.
무대에 오른 그보다 더 안절부절 못했던 게 내 모습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찌하리.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괜시리 부끄러워져 볼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 진짜. 잘한다, 잘한다 소리를 들었어도 이런 느낌의 잘한다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광란의 밤의 3등부터 1등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먼저 3등입니다! 10점 만점에 10점에 맞춰 춤춘 박우진 인턴 외 해원기획 인턴들 나와주세요~"
무대 위에서 패기 넘치게 뛰어다녔던 젊은 피들이 우르르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박우진 인턴이 대표로 상을 받았다.
현물이 아닌 걸 보니 사무실에 돌아가서 주시려는 모양이다. 보나마나 상품은 또 엄청나게 좋을 거라서, 내심 상 받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나도 내년에는 노려볼까, 하는 생각이 약간 들기도 하는...
"다음은 2등입니다. 너였다면 무대와 막춤에서 열일해주신 영업1팀 김재환 과장님!!"
영업1팀에서는 경사가 났다. 솔직히 내가 봐도 이번 장기자랑의 웃음 포인트는 김재환 과장님의 하드캐리였다.
2등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면서 과장님을 진심으로 축하해드렸다. 언제 그렇게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고, 춤신춤왕다운 막춤을 췄냐는 듯 태연한 표정이었다.
"대망의 1등은... 두구두구두구두!
모두들 예상하셨던 분입니다. 영업2팀 강다니엘 과장님-"
1등은 과장님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휘적휘적 무대 위에 올라와서 상을 받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까리하게 앞머리를 샥 넘긴 헤어스타일이 정말... 내가 알던 과장님이 아닌 느낌이었다.
여태껏 나는 누구를 알고 지내왔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웃음이 비실비실 새는 게 좀 묘한 기분이라.
반한 표정으로 과장님을 보던 여직원들의 눈빛도 생각나는 게 영...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모르겠다. 한 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는 기분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과장님은 입꼬리를 끌어올려 쓱 웃어보이셨다. 놀란 마음을 차마 진정시키지 못한 나는 웃을 생각조차 나지 않아서 못 웃었던 것 같다.
결과 발표까지 끝나고, 나와 옹과장님은 뒷풀이 장소를 안내하며 광란의 밤을 마무리했다. 물론 진짜 광란의 밤의 시작은 지금부터겠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나는 옹과장님께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제가 너무 부족해서 고생하셨죠- 했고,
과장님은 아니에요. 진짜 잘했어요. ○사원이야말로 고생 많았어요. 갑작스러워서 당황했을 텐데. 전혀 떨지도 않고. 너무 잘했어요! 하시면서 칭찬을 쏟아내주셨다.
나는 뿌듯해진 마음에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과장님은 뒷풀이에 먼저 가있겠다며 옷 갈아입고 천천히 오라는 말씀을 남기고 사라지셨다.
하아... 달아오른 볼이 아직까지 후끈후끈, 뜨겁기만 하다. 태연하게 드러내던 복근이 잊혀지질 않는다.
아니 왜, 그런 것만 생각나는 거야!!!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에서 양 손을 들어 내 볼을 찰싹찰싹 때렸다.
"휴.... 피곤하다."
바짝 긴장을 해서 여태껏 몰랐는데, 긴장이 풀리니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낮 내내 물놀이를 하고서 진행까지 맡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뒷풀이고 뭐고 얼른 들어가서 씻고 자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지잉, 하고 휴대폰이 한 번 울렸다.
[2층 로비에서 잠깐 보자.]
강과장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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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전할게요... 지난 편 올릴 때 제가 구독료 확인을 못했어요ㅠㅠ 올리고 나서 바로 뻗어서 자고, 한참 지나서 글 보러 들어왔는데 구독료가 25포인트로 잡혀 있더라고요. 그래서 헉 해가지고 뭐야 이거! 했는데 우리 독자님들... 아무도 왜 25포인트로 올렸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안 계셔서... 엄청나게 죄송한 한편 또 천사 독자님들에 감동했어요...ㅠㅠ 뒤늦게라도 구독료를 내리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가 내려버리면 25포인트 다 내고 읽은 분들께는 또 더 죄송한 일이 되어버려서... 염치 불구하고 25편만 25포인트로 하고, 이번 편은 5포인트로 깎았어요.. 다음편부터는 다시 10포인트로 할게요ㅠㅠ 제 실수에 대해 너그럽게 용서 부탁드립니다.. 25포인트라 그런지 암호닉 다신 분들 말고도 댓글 달아주신 분들이 많던데.... 그 분들도 앞으로 계속 같이 댓글 달아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하
내일은 사정이 있어 못 올 것 같아서 오늘 미리 왔어요! 오늘 양도 많고 짤도 많고, 브금도 두 개나 됩니다! 위에 올라가서 브금 끄고 밑에 꺼 다시 켜서 읽기 귀찮으셨겠지만.. 좀 더 강한 몰입도를 위해서... 노력해주셨던 분이 계실 거라고 믿어요ㅋㅋㅋ 강과장 춤추는 거랑 장기자랑 시간이 전반적으로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여러분들은 금방 읽으셨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장기자랑 에피 진짜진짜 여느 때보다 더 고민 많이 하고, 걱정하면서 썼어요- 막상 쓰고 보니 그래도 재밌게 써진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제가 오늘 또 맥주 한 잔 걸치고 쓴 거라 혹시 오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내일은 못 뵙지만(아마 단편으로는 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확실히는 모르겠어요ㅠㅠ) 일요일은 뵙기를 바라면서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들 즐거운 금요일 밤 보내세요~ :) 잠들기 전까지 댓글창 지켜보고 있겠습니둥... 후후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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