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니엘/옹성우]
LOVE CIRCLE
W. LIGHTER
이게 무슨 일이지. 눈을 한 번, 두 번 깜빡이자 어느새 내 옆에는 성우 선배가 앉아있었다. 언제 왔는지 뛰어온 기색이 가득했던 옹성우는 술집 문을 거칠게 열면서 내게 오라고 했지만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단번에 나와 선배로 향해지는 무수한 학과 애들의 눈길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한 나를 아니꼽게 보는 우재 선배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한 손에는 핸드폰을 나머지 손에는 가방을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강우재라는 선배가 워낙에 되먹지 못한 인간이긴 했어도 무서움도보다는 불편함과 성가심이 강했어서 딱히 옹성우가 나타났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럼에도 옆에 누구라도 있어주었으면 하고 바랬던 내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았는지 선배의 등장이 반갑지 않은 건 아니었다. 뭐, 처음부터 옆에 앉은 동기들이 내가 나갈 자리를 만들어주지도 않아서 그 반가움을 표현할 길이 없었지만.
"과회식 할거였으면 나한테도 말하지, 사람 섭섭하게."
"야. 자고로 회식은 내 밑에 학번 데리고 하는게 재밌는 건데 뭣하러 널 부르냐."
그렇게 해서 옹성우는 애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내 옆에 앉았고 이미 취해있는 우재 선배에게 끊임없이 술을 따라주며 시덥잖은 말을 꺼냈다. 조금 전만해도 나를 보는 성우 선배는 꽤나 화가 나있었는데 그게 거짓말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선배는 사람 좋게 웃고 있었다. 다만, 왠지 모르게 하는 말들은 모조리 뼈가 있는 것 같았지만서도. 우재 선배는 내게 말을 걸려고 할 때마다 가로채는 옹성우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였고 두 사람으로 인해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원망어린 시선은 결국 내 몫이었다. 하긴 나 같아도 제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선배보다 저랑 같은 동기인 내가 욕하기엔 편할테니 굳이 내색은 하지 않았다. 단지, 모든 사단은 강우재라는 저 선배 같지도 않은 선배 때문인 것을 왜 화살을 나에게 돌리냐고 마음 같아선 고래고래 소리를 있는대로 지르고 싶었지만 부러 나까지 나서지 않아도 상황은 이미 안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너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냐, 새끼야."
"....뭐?"
"학번 줄 좀 길다고 어줍잖은 애들 데리고 설쳐대는 게 꼭 그렇잖아."
너 그러다가 애들한테 미움받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전에 애들을 밀치고서라도 옹성우를 따라서 나갈걸. 이대로라면 머지 않아서 오늘 회식 분위기는 망쳐질 게 틀림없었다. 친한사이인지, 아닌지 하는 말이 결코 무게가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어도 술잔이 서너번 비워져 나갔을까 성우 선배의 눈썹이 일렁이는 것을 보아하니 선배는 강우재라는 인간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 너머로 알 수 있었다. 아니, 안 좋아하는 것보다 싫다고 해야 되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마는.
"이 개새끼가. 야, 말 다 했냐?"
"그래, 이게 너답지. 그치?"
쨍그랑! 순식간에 바닥으로 나뒹구는 술잔은 처참하게도 부서져있었다. 여자애들은 소리를 지르며 황급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한 두명이 빠져 나가기가 무섭게 술자리는 깨끗하게 파토가 났다. 나는 왠지 모르게 나로 인해서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만 같은 죄책감에 다른 애들을 따라서 나갈 수도 없어서 요령껏 눈치를 보다가 괜히 종업원만 고생할 것이 뻔해 슬쩍 바닥에 있는 유리 조각들을 주워담기 위해서 쭈그려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 입에서 강우재라는 선배를 피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게 괜한 건 아니었네. 단순히 또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남의 영업장까지 와서 제 성질대로 되지 않는다고 이렇게 폭력적으로 나가는 꼴은 썩 보기 싫은 모습 중에 하나였다. 하나, 둘씩 냅킨 위로 모인 유리 조각들을 들어 휴지통에 버리며 자리를 다시 바라보자 어느 순간 옹성우는 제 멱살을 잡은 우재 선배를 바닥에 내던지고 있었더랬다. 사람이 생긴 건 그렇게 안 생겨서 화나면 많이 무섭구나.
"너 작년 학생회비 빼간 것도, 조교 파일 몰래 뒤져서 시험 문제 살핀 것도 내가 다 넘어가주니까 우습지."
"......."
"괜한 애 건드리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해."
네가 원래 그런 사람인 건 이렇게 꼭 난리 피우지 않아도 다 알겠으니까. 의자에 있던 내 가방까지 손수 들고 온 성우 선배는 내 어깨를 감싸며 밖으로 이끌었다. 정확히 뭐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괜찮아? 라며 내 안부를 물어오는 선배의 얼굴은 여전히 경직이 되어 있었으면서 말투는 또 따뜻했다. 꽤나 급하게 나와서 반쯤 벗겨진 후드를 똑바로 입혀주고 헝크러진 머리를 쓸어주는 손길도 제 주인을 닮아서 내 안부를 챙기느라 급급한 그 성격부터 잔뜩 구겨져 있는 미간까지도 괜히 웃기고 아주, 정말 아주 조금 사랑스러워 보였던 것도 같았다. 아까는 그렇게나 무서워 보이더니 왜 지금은 제가 더 속상해하는 표정을 짓는 건지,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이러다가 진짜 선배 미간에 주름 생기겠다."
"......"
"저는 정말, 진짜로 괜찮아요. 뭐 저런 선배가 어디 한 둘인가. 똥은 원래 더러워서 피하는 거잖아요."
그제야 선배는 내 말에 작게 웃어왔다. 딱히 웃게 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심각한 표정보다는 한결 나았으니까 이걸로 된 건가. 오늘 수업 끝나고 급하게 가더니, 어떻게 왔어요? 바쁘다면서. 오늘도 나를 데려다 줄 생각인지 여전히 내 가방을 돌려주지 않던 선배는 내 옆에서 열심히 보폭을 맞추며 걷고 있었다. 그게 또 웃기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해서 나름 빠르게 걸으며 선배에게 묻자 돌아온 대답은,
"그냥 간만에 후배한테 연락이 와서 봤는데 강우재가 네 앞에 앉아 있다잖아."
"그런 거 익숙해서 괜찮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뭐 좋은 거라고 그런 거에 익숙해지려고 하냐."
정작 나한테는 낯가리면서. 선배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딱 옹성우다운 말이었다.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결론이 나야 저런 대답을 할 수 있는거지.
"선배도 참 한결같네요."
"그러는 넌 한결같이 내 고백 무시하잖아."
"제가 언제 그랬! 아,...죄송해요."
결국 난 본전도 못 찾고 사과를 하고 있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옹성우의 끝없는 고백에 졸지에 나는 철벽을 치고 있었다는 건 반박할 여지 없는 사실이었다. 뜸들이고 괜히 사람 마음 갖고 질질 끄는 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데 그걸 내가 하고 있었다니. 스스로가 봐도 정말 별로인 짓을 하는 나를 엄연히 팩트로 받아치는 건 진즉에 고민이랍시고 머리를 끙끙 앓고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도 내가 뭘 원하고 좋아하는지, 이제는 구분도 가질 않았다. 강다니엘을 좋아하지 않겠다 해놓고 다시 만났을 때 뛰어대던 심장을 보면 여전히 나에게 있어 다니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게 미안하면 짝사랑 좀 그만하고 나한테 오든가."
그런데, 또 나를 제 구렁텅이에 집어넣는 옹성우에 대한 마음이 나쁘지는 않아서. 아니, 나쁘기보다 오히려 좋았다는 게 문제였다. 옹성우는 받는 사랑이라는 게 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대놓고 이젠 어색한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선배였어도 사람 사이에 어울리는 걸 잘 못하는 내가, 궁상맞게 짝사랑이나 하면서 혼자 앓아대는 게 다였던 내가 이렇게 사랑을 받을 수도 있구나, 라고 깨닫게 해주는 건 말로는 못할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ㅇㅇ야. 생각에 잠겨서 발 끝만 보고 가던 내가 성우 선배의 목소리에 얼굴을 들었을 때는 큰 나무 몸통에 머리를 박을 찰나의 순간이었다. 당연하게도 선배는 그런 내가 혹시라도 다칠까 재빠르게 내 이마를 감싸왔고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나는 예닐곱의 어린애가 된 것처럼 수줍었단다. 거봐, 이러는 데 어떻게 싫어해.
"...손 안 다쳤어요?"
"내 생각 하는 건 좋은데, 아무데나 머리 박고 그러진 말아라."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내내 다정한 선배의 말로 인해 나는 마주보고 있는 옹성우의 눈길은 받아칠 수가 없었다. 예고 좀 하고 들이대든가 하지. 뜬금없이 무방비 상태일 때마다 훅, 하고 들어오는 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만 같았다. 순간 아까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선배랑 말을 하고 길을 걸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마치 로봇이 움직이는 것마냥 잔뜩 굳은 표정으로 걸어가는 나를 보는 선배의 표정이 이해할 수 없는 듯한 얼굴을 해 온 것도 같은데 차마 볼 용기는 없었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 속에서 나는 옹성우가 옆에 있다는 게 퍽이나 불편했지만 또 헤어지기는 싫은, 내가 생각해도 개 같은 생각으로 인해 막판에 내 집에 다 도착해갈 때에는 슬쩍 곁눈질로 그를 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ㅇㅇ야, 왜 연락이 안돼."
그리고 갑자기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가 꼭 강다니엘 목소리랑 같아서 바보같은 착각이다,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자 어떻게 알았는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나오는 다니엘의 모습이 천천히 내 동공에 들어오기 시작했더랬다.
Episode 8,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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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면 좋은 친구 라이터예요!
우선 오늘도 내 글을 읽어주는 모든 독자님들을 사랑합니다!!!! 아끼고 또 많이 아껴요!!!!!!!!!
벌써 여기는 가을이 와서 쌀쌀하다가 춥다가 난리도 아닌데 러브서클 속의 애들은 아직 기말을 앞 둔 초여름이라는 게 왠지 미안해지는 것 같네요^ㅠ
여러분 강우재라는 익명의 아무렇게나 이름을 지어버린 저 선배는 현실에서도 지극히 존재하는 리얼 팩트 인간상입니다. 뭔가 대학 들어가서 만나는 사람들은 좀 더 또라이끼가 있고 이상한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 사회로 나가면 더 심하겠지요(눈물) 글 속에서는 성우가 딱 나타나고 막 다니엘이 막 어? 문자 보내주구 그러는데!! 현실은 혼자서 헤쳐나와야 하는 자기주도적 생활을 배우고 있는 게 슬프지만 제 글에서라도 두 사람의 사랑을 우리 독자님들이 듬뿍 드으으으음뿌우우우우우우우ㅜㄱ 받았으면 좋겠어요
방학도 이미 깨끗하게 청산되고 현생을 사시느라 바쁜 우리 독자님들 괜차나요...우리는 서로 동지자나요...우리 서로 의지해서 살아봅시다..(아련미) 곧 있으면 오는 추석 미리미리 많이 먹을 배 준비하고 아프지 말고 잘 버티다가 긴 추석 연휴에 신나게 놀아요! 잘 자구 다음에 우리 또 봅시다, 아이럽유 x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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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the love, 아이시떼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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