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
: an incurable romantic
: 기약없는 로맨티스트
02
어떤 우정 어떤 사랑
"계속 아파?"
점심시간이 지나고 5교시가 시작함과 동시에 손목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남준이와 바꿨던 자리를 다시 원래대로 바꾼 우석이가 내 옆에서 붉게 부어오른 손목을 보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반에 있는 모든 시선을 떠안았고, 내 손목을 보신 선생님은 내게 보건실을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오다 허튼 짓 하지 말라고 김우석도 하나 딱 붙여서. 나는 느닷없이 아픈 손목에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았지만, 도저히 손목이 아플 만큼의 일을 한 기억이 없었다. 밥 잘 먹고, 그냥 김우석이랑 교실로 왔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아무런 예고없이 내게 축구공을 던진 우석이 때문에 추위에 바짝 얼은 손으로 공을 받아드는 내가 있는. 그런 장면. 나는 혹시나 싶어 보건실로 내려가는 걸 멈추고 김우석을 바라보았다. 김우석은 내가 손목이 저리다고 말한 순간부터, 제 탓이라는 걸 알았는지 내가 저를 처다보자 멎쩍게 웃으며 농담을 했다. 뼈 아프지 말라고 엔요 사줄까? 나는 녀석의 실없는 말에 고개를 젓고는 묵묵히 보건실로 향했다. 묵직하게 날아온 그 한방으로 정신 좀 차렸으니까.
보건 선생님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근육이 놀란 것이라며, 손목에 파스를 붙여주셨다. 덧붙여 우석이의 팔뚝을 아프게 한 대 때려주셨다. 임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자애한테 공을 던지냐. 던지기를. 김우석은 던진 게 아니라 건넨 거라며 바락바락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는 내게 동의를 구하려, 그치? 맞지? 하며 몇 번을 되물었다. 물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혼 좀 나라. 그렇게 보건실에서 가벼운 치료를 마치고 이런저런 실랑이를 하다보니, 5교시를 마치는 종소리가 들렸다. 아싸. 수학 하나 재꼈다. 이 마음은 김우석과도 통했는지, 우리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성공했다는 듯 실없이 웃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복도 멀리서부터 아이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퍼져왔다. 김우석과 나는 다음 과목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벼운 내기를 걸며, 계단을 올랐다. 나는 화학. 김우석은 영어였다. 진 사람은 성별 떼고 딱밤 한 번 거하게 맞기.
"파스까지 붙였어?"
코너만 돌면 우리 반이었다. 그런데 그 코너 바로 앞에서 남준이와 마주쳤다. 남준이는 곧장 내 손목을 보고는 파스까지 붙였냐며, 파스가 붙은 손목을 약하게 만졌다. 그리고는 물었다. 아파? 그 물음을 들은 우석이는 그걸로 아프면 입원해야겠다면 비아냥거렸다.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심지어 느낌도 잘 안 났다.
"느낌도 안 나는데?"
"조심 좀 하지. 뭘 하다 손목을 다쳐."
"쟤가 공 던져서."
"공?"
"축구공."
"넌 공을 던지냐."
공을 던지냐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주먹을 던질 수는 없잖아.'였다. 유치해. 김우석은 표정이 굳어가는 내 어깨를 가볍게 치고는 말했다. 야. 빨리 교실 가서 시간표 봐야지. 나는 그제서야 잠시 잊고 있던 내기의 존재에 걸음을 바삐했다. 그러자 남준이도 그런 내 뒤를 따랐다. 어디 가던 거 아니었나.
"너 어디 가던 거 아니야?"
"맞는데?"
"그럼 가! 나 쟤랑 내기해서 교실 가야 돼."
"나 너보러 가던 거야. 이제 교실 가면 돼."
또 이렇게 깜빡이 없이 훅 들어오지. 나는 순간 홧홧해진 얼굴을 푹 숙였다. 이건 파스 때문에 열이 오른거야. 파스가 뜨거워서. 파스 때문에... 정신승리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
"이마 대. 딱. 가만히 딱 대."
애석하게도 다음 교시는 영어였다. 김우석은 한껏 신이 나, 내 얼굴에 제 손을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와. 세 번째 손가락으로 치겠다고? 나는 애초에 이런 말은 없지 않았냐며 대들었지만, 녀석은 때리는 사람 마음이라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결국 마음을 굳게 먹은 나는 두 눈 딱 감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순간 거짓말처럼.
"다음 시간 화학으로 바뀌었어."
"... 진짜?"
"아. 구라즐. 김남준 구라지. 쉴드 치는 거지. 지금."
"진짜로."
"아싸. 야. 이마 줘."
"아. 잠시만 확인부터 하고. 야. 다음 시간 화학ㅇ,"
우석이가 지나가는 반 아이를 잡고 다음 시간을 확인하려 들자, 남준이가 누구보다 빠르게 우석이의 이마에 제 큰 손을 가져댔다. 그리고는 우석이가 질문을 끝내기도 전에.
"야. 왜 니가 때려! 겁나 아프네."
남준이의 큰 손이 끼어들었다. 제법 큰 소리가 나게 김우석을 때린 남준이는 미련없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반 아이들은 붉게 부어오르는 김우석의 이마를 보고 한마디씩 던지며 킬킬 웃었다. 한껏 억울해하는 녀석을 뒤로 하고 걸음을 옮기자마자 쉬는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 앞문이 열리고.
영어 선생님이 들어왔다.
김우석은 화학 선생님이 아닌 영어 선생님의 모습을 보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선생님은 그런 녀석의 모습에 오늘은 네가 인사를 해보라며, 김우석에게 인사를 넘겼다. 덕분에 인사를 하기 위해 일어나던 김남준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김남준을 향해 다치지 않은 손으로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김남준 역시.
엄지 대신 하트를 보였다.
**
"김남준. 이따 피시방 와라."
"나 오늘 못 가."
"이 새끼 축구부터 오늘 하루 종일 배신하네."
'가자. 김탄소.' 남준이는 저를 보채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내 가방을 받아들었다. 아이의 행동에 김남준 친구들의 표정이 유난이라는 듯 변해갔다. 그 표정에 머쓱해진 나는 가방까지 들어줄 필요는 없다며 계속해서 가방을 달라고 했지만, 아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로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조심하고."
김남준. 너 진짜 베신자야! 새끼야! 나는 등 뒤로 느껴지는 남준이의 친구들의 외침에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김남준은 제대로 앞을 보고 걸으라며 계단을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내 등 뒤의 친구들에게 큰 하트를 그려보였다. 사랑한다. 친구들아! 나는 녀석의 머리 위로 그려진 하트를 보고 생각했다. 쟤한테는 하트가 그렇게 쉽나.
남준이는 집으로 가는 내내, 우석이와의 장난을 들먹이며 나를 혼냈다. 손까지 다칠 정도로 장난을 치냐. 딱밤 내기는 무슨 생각으로 한 거야. 대체. 걔 손 힘 엄청 세. 맞으면 너 나가 떨어졌어. 그리고 수업 시간 내내 왜 그렇게 떠들어. 짝꿍이면서도 할 말이 그렇게 많아? 오늘 선생님이 반 분위기 괜찮냐고 물어봐서, 너랑 김우석 이르려다 말았어. 듣고 있어? 야. 얼라. 야. 야. 김탄소. 햄찌야. 야.
"어?"
"듣고 있었냐고."
나보다 자리도 앞이면서, 계속 대화하는 건 언제 본 거야. 생각해보면 내가 남준이를 좋아하게 된 데에 김남준 탓도 있었다. 우리 또래 남자 아이들은 이렇게까지 다정하지 않잖아. 그런데 녀석은 천성이 다정하고 세심하고. 그랬다. 그래서 종종 착각하게 만들었고, 그 착각을 착각이라고 인지하기도 전에.
"또 멍 때리네."
지금처럼 코 앞까지 다가와, 내 양 볼을 잡고는 제 이마를 아프지 않게 부딪혔다. 착각을 또 다른 착각이 덮어서. 착각이 아닌 것처럼. 정말 올곧은 진심인 것처럼.
"하여튼 김우석이랑 장난 좀 그만 치라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왜 상관이 없어. 너가 장난 치다가 다치면, 내가 가방도 들어줘야 되는데."
"내가 안 들어줘도 된다고 했잖아."
"내가 그건 못 보지."
"얼씨구."
"춥다. 빨리 가자."
**
"빨리 앞접시 가지고 와."
"알겠다니까. 좀 기다려."
집에 오자마자 각자의 욕실로 들어가 빠르게 씻고 나와, 음식을 주문했다. 김남준은 머리도 채 말리지 않은 채로 주문을 마치고는 책가방을 정리했다. 그리고 내 교복과 제 교복을 챙겨 스타일러에 넣었다. 저렇게 꼼꼼한 건 이모를 똑 닮았는데, 저 머리칼에서 떨어지는 물은 어쩔거야. 덕분에 물바다 되게 생겼네. 문득 저 아이가 어떻게 전교 1등이고 전교 회장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와. 나 방금 넘어질 뻔 했어. 봤어?"
제가 흘리고 다닌 물을 밟아, 넘어질 뻔하는데. 나는 결국 작게 혀를 차고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밀대를 가져왔다. 아. 귀찮아. 진짜. 김남준은 그 사이 앞접시를 가지고 오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앞접시가 있는 가장 오른쪽의 선반을, 아니. 왼쪽 선반을 열었다. 왜 거기를 열지? 또 무작정 열고 본 것일 거다.
"거기 아니ㅇ,"
왼쪽 선반을 열자마자 떨어진 밀가루가 녀석의 온몸을 덮었다. 동시에 피자와 치킨이 도착했다는 초인종이 울렸다. 남준이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 저도 어이가 없는지, 밀가루가 들어가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을 꿈뻑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 아. 웃으면 안 되는데. 나는 웃음을 감추기 위해, 괜히 천장을 한 번 바라봤다. 하지만 녀석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 결국은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자 김남준은 밀가루를 펄펄 날리며 내쪽으로 걸어왔다. 미쳤나봐. 오지마! 하지만 김남준은 크게 웃은 내가 괘씸한지 제 몰골을 보고 걱정도 안해주냐며, 큰 덩치로 칭얼거렸다. 진짜 무슨 짓돗개 같다. 나는 그 사이 집 현관문을 열었고, 배달을 오신 배달부 아저씨는 거실 중앙 김남준의 모습에 숨을 참으셨다. 헙. 하고. 하긴 나 같아도.
**
"... 이거 안 떨어져."
"뜨거운 물로 씻었어?"
"응."
아니. 밀가루가 묻었는데, 뜨거운 물로 씻으면.
"여기 앉아."
나는 녀석에게 내가 앉아 있는 소파 아래로 손짓했다. 머리카락 군데군데 남아 있는 밀가루의 흔적이 조금 전의 상황을 다시금 떠오르게 만들었다. 남준이는 밀가루를 쓴 채로 피자와 치킨을 먹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몰래 곁눈질 해서 바라보다, 몇 번이고 사레에 걸릴 뻔했다. 아이는 내 다리 사이에 앉아 가만히 머리를 내어주었다. 나는 드라이기로 아이의 머리를 말리며, 이미 굳어버린 밀가루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그러자 그 손길에 노곤해진 아이가 조금씩 고개를 꾸벅이더니, 결국은 내 한쪽 다리에 제 고개를 완전히 묻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자?"
"..."
"사고뭉치야."
"..."
"잠시도 마음을 못 놓게 하네."
"..."
"집에서도 너 때문에 긴장 해야 되냐."
혼자 떠들다보니, 억울한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누구는 팔자 좋게 머리 정리해주는 손길에 잠이나 자고. 누구는 심장 부여 잡고 롤러코스터 타고. 나는 녀석이 기댄 다리를 조심스레 떼어내, 아이의 머리를 소파에 기대게 만들었다. 나는 소파에서 내려와 잠든 아이의 옆에 몸을 굽혀 앉았다. 그리고 그냥 한 번,
입을 맞춰봤다. 어차피 잠에 들면 잘 안 깨는 아이니까. 나는 남준이에 대해서 아주 잘 알았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어떤 색을 좋아하고 어느 브랜드에 관심이 있는지. 영어 단어와 중국어 단어를 외우는 법은 어떻게 다른지. 중학교 때 만났던 여자친구와 왜 헤어졌는지. 그런 사소한 것들을 다 알았다.
하지만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완전하게, 완벽하게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걸 몰랐다.
가지런히 감겨 있던 남준이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우리의 입술은 아직 맞닿아 있었다.
**
안녕하세요. 겨울입니다.
감정 앞에 솔직하지만 서투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출발한 작품이라. 두 주인공이 많이 솔직하고, 많이 서툴 거예요. 애정으로 지켜봐주세요. 그럼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암호닉은 글 먼저 올린 후, 수정해서 올릴게요. 댓글들 잘 읽고 있어요. 맨날 맨날 고맙습니다. 하트.
낭만적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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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코코 / 담담 / 10041230 / 드우밍게 / 가로세로 / 봄봄이 / 정꾸기냥 / 꾹후 / 요를레히 / 또이 / 정별이 / 밀키 / 정꾸 / 슈멬이 / 퐁퐁이 / 호비호비 / 무네큥 / 인생진리 / 고짐 / 바다코끼리 / 1218 / 보고싶다 / 슙슙해 / 하리하리 / 망순이 / 일구구삼 / 새우버거 / 체리 / 담이 / 춍춍 / 비트윈티 / 저장소666 / 꾸꾸야 / 수달 / 넌나의책장 / 초코아이스크림2 / 뷰뷰 / 병아리 / 새싹이 / 뜌 / 녹차맛콜라 / 박스 / 첫사랑 / 0415 / 찜찜 / 곰세마리 / 지니 / 보성녹차 / 봉이 / 0221 / 우연운명 / 고로케 / DS / 김안녕 / 울샴푸 / 블랙 / 다람이덕 / 굥기 / 호두 / 공배기 / 김짱구 / 토끼정 / 꽃소녀 / 계란말이 / 슈가베이비 / 청보리청 / 토끼 / 아듀 / 챈 /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 한겨울 / 은하 / 구구 / 방긋 / 김다정오빠 / 청포도 / 비행기 / 리본 / 또또 / 홀리 / 깨방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