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ㅇㅇ의 눈이 길게 감겼다 떠졌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 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처음에 녀석의 얼굴을 볼 때 너무나 태연하게 나를 향해 벌리는 두 팔이, 당연하게 내 집을 들어오는 잔뜩 더러워진 발이,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머리에서 생각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듯했다. ㅇㅇ는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서 더러워서 똥이 피한다는 말을 실로 보여주시는 부장 새끼를 욕했고 한 손으로 빙빙 돌리고 있는 차키를 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이 맛에 돈을 버는 거지. 좆같은 회사 생활을 버티는 나름의 보상은 돈이 다였다. 조만간 로또번호에 당첨만 되면 아주 당당하게 사표를 내던지고 오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물론 그럴 일은 죽어도 없겠지만.
그런데, 이 모양이었다. 제 꿈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현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검은색의 후드를 입고 있는 장정의 사내가 누구 하나라도 죽일 기세로 두 눈알을 부랄이면서 ㅇㅇ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찾던 사람이라도 되는지 다짜고짜 자신의 이름을 불러오는 것이 아닌가.
"ㅇㅇ야."
".....네?"
"왜 그러고 서 있어."
털썩, 소파 위로 앉던 남정네는 짧게 고갯짓을 해왔다. 낯선 사람이 지금 자신의 공간을 아무렇게나 들어온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ㅇㅇ를 손짓으로 부르는 놈은 그런 말을 해왔다.
"이리와서 내 머리 쓰다듬어 줘야지."
꼭 제 주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말이다.
What Does The Fox Say?
W.LIGHTER
ㅇㅇ는 지금 자신이 있는 회사 안을 둘러볼때면 이따금씩 예전 생각을 곧잘 하고는 했다. 동물원에서 사육사로 제 딴에 유명세를 떨치던 자신의 옛 시절이 지금은 가물가물 할 지경이었지만 제 아버지의 핏줄을 속이지는 못하겠는지 정확히 기억도 하지 못할 어린 나이부터 눈을 뜨면 항상 제 곁에는 동물들이 가득했다. 정확히 말을 할 줄 알거나, 의사소통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었지만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보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곁에서 두 눈을 또롱또롱 뜨면서 쳐다보는 동물들이 더 좋았다. 그리고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았던가.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ㅇㅇ는 자신을 신랄하게 까고 있는 동기들이 한 때 자신이 돌보았던 맹수들 보다도 못한 존재 같았다.
'다니엘!'
그리고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 ㅇㅇ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아이는 늑대 개체 중에서 몸이 다른 아이들보다 약해 무리에서 항상 이탈되어 있는 회색털이 곱게 자라 예쁜 늑대 한 마리였다. 그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어느덧 큰 성체가 되는 날까지 ㅇㅇ는 언제나 그 아이의 옆을 지켰다. 마치 학교에서 좀처럼 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하는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서 안쓰러운 마음과 동질감으로 더욱 마음을 주었던 것도 같았다. 오죽하면 동물원 내의 모든 사육사들의 말은 안 들어도 ㅇㅇ의 말이라면 강아지 흉내라도 낼 아이가 다니엘이라고 할까. 처음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지었을 때만 해도 어디가서 이름 하나로 꿀리지 말아라 하는 뜻이 컸다. 이름이 때깔 나면 최소한 있어보기라도 할 테니.
'다니엘, 이제 우리 동물원이 운영을 안 할지도 모른대.'
'너랑 만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거야.'
하지만 서서히 몸집이 커지면서 제법 맹수 같은 눈을 하고 있던 다니엘은 자신의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하는 모양인지 제 말에 긴 하울링을 해왔다. 뭐, 동물원이 점차 없어지는 추세이기도 하고 더이상 아이들을 이렇게 가두는 것도 좋지 못하다는 세간의 질타들 속에서 운영을 해가는 게 어렵다는 거야 일찌감치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에게 몸을 비벼오는 다니엘을 보자니 속에서 울컥하는 감정들을 솟구쳤다. 결국 ㅇㅇ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큰 늑대를 가득 껴안으며 처량하게 울어대는 걸 마지막으로 더이상 다니엘을 볼 수가 없었다. 혹시나 말도 안되는 판타지라도 이루어진다면 이 아이가 나중에 사람이 되어서 자신에게 나타나기를 꿈꿀 뿐.
"그래서, 네가 다니엘이라고?"
"응."
하지만 제 아무리 판타지적 요소가 생기길 바란다고 한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 어느덧 소파에 앉아있는 ㅇㅇ의 무릎을 베고선 한껏 허리를 감싸오는 다니엘은 자꾸만 제 몸을 비벼왔다. 자신이 크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건가. 덩치는 성인 남성의 표준치를 넘는 듯하면서 하는 짓은 아직도 어린 아이 같았다. 어디서 정신이 좀 이상한 아이가 제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닐까, 싶어 ㅇㅇ가 살짝 눈을 흘기자 정말 아주 잠깐 사이에 의심쩍은 제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남자는 제 주머니에 있던 목줄을 꺼내보였다.
"이걸 네가 왜 갖고 있어?"
"네가 줬잖아."
너무나도 당연하게 대답하는 남자는 ㅇㅇ의 손에 빨간색의 목줄을 쥐어주었다. 많이 낡은 태가 보이는 목줄은 누가 보아도 ㅇㅇ, 자신이 준 것이었다. 헤어지고 나서 후에라도 나중에 만나면 알아보자는 별 이상한 헤어짐의 말을 하면서 자신이, 가장 사랑해 마지 않았던 다니엘에게 친히 매어주었던 목줄. 아무리 믿고 싶지 않아도 믿어야 되는 일이 있는 것인가.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 내보내야 하는 것인가. 수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인정해야 할 건 저 놈이 미친놈이 아닌 이상 자신은 녀석의 말을 믿는 척이라도 해야 되다는 것이다.
"저기, 너무 이상하게 듣지는 말고 내가 아는 다니엘은 늑대였거든. 근데, 왜..."
"몰라. 그냥 너 찾으러 다니다가 보니까 이 모습이야."
"날 찾으러 다녔어?"
"응."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쳐다보지 말고 칭찬해 줘, 응? 뭐라 말을 하려다 입을 꾹 다문 ㅇㅇ는 아무래도 무엇이 맞는지 그른지는 후에 혼자서 조용히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의사소통은 곧잘 하지만 어디서 기워입었는지 제대로 입지도 않아서 맨 몸에 후드집업과 아버지가 입어야 할 것만 같은 바지를 입은 놈은 노숙을 하는 사람들보다 더 불쌍하게 보였으니까. 다만, 늑대들 중에서도 곧잘 잘 생긴 아이라고 칭찬을 받았던 말이 사실인지 자신을 왜 찾았는지도 물어보기 전에 들이밀어 오는 얼굴 하나는 기깔나게 잘 생겼다만.
"날 왜 찾으러 다녔어?"
"뭐?"
"뭣하러 찾아. 너희 잘 살라고 풀어준 건데."
"네가 울었잖아. 나 보고 싶다고 했잖아."
애초에 저 얼굴을 해가지고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서스럼 없이 하는 건 데미지가 컸다. 순식간에 얼굴 부근이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듯했다. 동물원이 문을 닫고 나서 흐른 시간이 얼마인데 그 때의 ㅇㅇ의 말을 뚜렷하게 기억하듯 한 자, 한 자 읊어나가던 다니엘의 시선은 어느 순간 내 손으로 옮겨져 있었다. 이거, 해줘. 훅, 하고 다가오는 다니엘에 잔뜩 굳어있던 ㅇㅇ는 동상이라도 흉내낼 듯이 딱딱하게 굳어만 갔다. 그도 그럴것이, 남자라는 사람을 제대로 만나보기도 전에 우선적으로 사내 안에서 들어오는 동기나 직속 선배들, 하다 못해 대리와 부장까지 다 똥통에나 빠져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 뿐인지라 ㅇㅇ는 무릎까지 꿇고는 자신의 손을 제 목으로 가져가는 다니엘의 행동에 이제는 손까지 부들부들 떨어대기 시작했다.
"나, 버리지 마."
"......."
"너 찾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수영도 잘 못하는데 바다까지 건너서 왔단 말야. 무슨 사람 사는 곳은 바다도 그렇게 더러워? 아무래도 한강을 바다로 잘못 알고 있는 듯한 다니엘에게 무어라 말을 정정하기 위해 가만히 얼이 빠져있던 ㅇㅇ는 그제야 입을 뗄 수가 있었다. 그건 한강이야. 바다는 그것보다 더 커. 지금 이 순간에 이게 중요한지는 모르겠다만 그 조그맣고 사람들만 꾸역꾸역 넘쳐대는 한강을 바다로 알고 있을 다니엘이 불쌍해서 상황에 맞지도 않게 나름 엄한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ㅇㅇ의 말을 알아듣고 있는지 깊게 아우, 하는 소리로 다니엘은 답을 하고 있었다.
"이, 이곳에서 막 그렇게 소리내면 안돼."
그것도 사람 모습을 하고 퍽이나 늑대 몸짓이 그대로 베어있는 녀석은 조만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왔다. 그래, 너도 이해하기 어렵지. 나도 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란다. 어느덧 정각을 향해 가는 시간에 하품을 길게 내뿜던 ㅇㅇ는 타이르는 듯한 말을 꺼내며 슬슬 감겨오는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우선 너는 씻고 여기서 자. 아침에 보자. 씻는 법을 다니엘이 알 수는 있으련지 괜한 걱정이 밀려왔지만 그것보다 내일 당장 있을 회의에 자신은 잠을 자야했다. 대충 다니엘의 목에 목줄을 채워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허리를 곧추 세웠을까 ㅇㅇ는 폭신한 침대 대신 딱딱하기만 한 거실 바닥 위를 그대로 나뒹굴어야 했다.
"어디 가."
"아니, 우선 잠은 자야 되잖아."
"안돼."
아, 녀석이 엄연한 남자라는 걸 잊을 뻔했다. 공손하게 두 손목을 가지런히 잡혀버린 ㅇㅇ는 뒷덜미에서 땀이 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를 어쩌지. 좀처럼 제 의견을 좁힐 것 같지 않은 놈을 어떻게 구슬려야 벗어날 수 있으려나. 굴러가지도 않는 머리를 빠득빠득 우겨서 열심히 뇌를 가동시키고 있는 ㅇㅇ의 입술을 순식간에 혓바닥을 핥아오는 다니엘의 행동으로 인해 그마저도 되지 않을 듯싶었단다.
"나랑 같이 자."
아니, 그러니까 제발 그 얼굴로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
핸드폰 알람을 끄기 위해 뻗은 ㅇㅇ의 손은 비단 신경질적이었다.
"아....회사 가기 싫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마다 ㅇㅇ는 지구가 망하기를 바랬다. 매년마다 지구 종말이다 뭐다, 해서 소란들을 떨어대면서 정작 그 흔하게 말하는 지구 종말은 오지 않았고 자신은 정각 일곱시에 일어나야 하는 직장인의 비애를 겪어야 했으니까. 평소에도 일어나기 싫어서 밍기적 거리는 짓은 ㅇㅇ의 습관 중 하나였는데 오늘따라 자신은 더욱이 제 침대가 꽤나 푹신푹신 한 것이 일어나지 말라는 신의 뜻처럼 느껴졌다. 십 분만 더 자고 일어나야지. 눈을 감았음에도 밝게 들어오는 햇살에 이불을 뒤집어 쓰며 몸을 뒤척거리자 조만간 부들부들한 털인지 솜인지도 모를 것이 제 손에 감겨왔다. 내가 언제 이런 베개를 샀지. 손을 더듬거리며 자연스레 그 털뭉치에 얼굴을 문대고 있을까 ㅇㅇ는 제 머리 맡에서 그릉거리는 소리에 떠지지도 않던 눈을 떠야만 했다.
"......."
ㅇㅇ는 제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늑대의 모습에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잠깐 사이에 어젯밤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늑대가 왜 내 옆에서 자고 있는 건가. 누가 보면 세상에 둘도 없을 병신짓을 한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지금 자신은 좀처럼 현실적이지 못한 이 회색 털뭉치로 인해 눈가를 빨개져라 비비는 것 외에는 퓨즈가 끊긴 듯했다.
'내가 잘 때까지 기다려 주면 안돼?'
'내가 진짜 늑대라고 백날 얘기해봤자 너, 안 믿을거잖아.'
와, 진짜 현실감각 떨어진다. ㅇㅇ는 자신의 뺨을 세게 휘갈기다가 어젯밤 제가 자는 모습을 봐달라고 덩치에도 안 맞는 떼를 쓰는 다니엘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럼 이게 진짜야? 믿으려고 해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뻗은 ㅇㅇ의 손은 어느샌가 익숙하게 늑대의 털을 만지고 있었다. 간만에 느껴보는 복슬복슬한 촉감에 상황에 맞지도 않게 베시시 웃음까지 나오려고 하는 걸 달래기 위해서 그녀는 부던히 애를 써야만 했다. 한동안 적성에 맞지도 않은 일을 하느라 심신이 모두 지쳐있던 자신을 위해서 이건 필시 신이 저에게 주는 선물이지 않을까. 쓱쓱, 손바닥 안으로 잡히는 윤기나는 털에 ㅇㅇ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잘 잤어?"
갑자기 사람 모습으로 변한 늑대인지 사람인지(?)도 모를 다니엘은 어젯밤의 모습 그대로 아니, 옷은 어따 팔아먹었는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ㅇㅇ를 반기고 있었고,
"........"
뒤늦게 볼을 붉히던 그녀는 고요히 제 얼굴을 이불로 둘러싸기 시작했더랬다.
"그러게, 나 잘 때까지 기다리라니까."
맞지도 않은 빨간색의 큰 목줄이 다니엘의 목에서 반짝, 하고 빛났던 바야흐로 좋은 아침이었다.
What Does The Fox Say?
Episode 1, fin
안녕하세요, 라이터입니다!!!!!!
다들 잘 있었어요???? 차기작 같은 차기작 아닌 차기작으로 돌아왔어요.
제 차기작을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또 독자님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저는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기뻐요ㅠㅠㅠ
미리 말했다시피 이번 남주는 더도 말고 더도 말고 다니엘입니다!!
예전부터 다니엘로 반인반수물을 쓰고 싶었는데 이미 녜리는 반인반수로 유명하더군요....맞아요...강다니엘하면 반인반수가 진리지요...
여기서 나오는 다니엘은 늑대에요. 정말 뭐 뼛속부터 태어나길 늑대로 태어났지만 주이니를 찾으러 다니는 길에 온갖 험난한 라이프를 겪다보니 인간화(?)가 되었다, 뭐 이런 스토리입니다! 성격이 개썅마이웨이라는 특이사항이 있지만 많이 예뻐해 주실꺼죠?!?
우리 녤이가 주인님을 찾으러 바다 같은 한강을 건너왔던 것만큼 제 글도 좋아해주시면 예...더할 나위 없는 나날이네욯ㅎㅎ
그럼 우리 다음화에서 다니엘과 함께 또 만나요!
*암호닉 신청은 해주시면 넙죽 잘 받아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