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Does The Fox Say?
W.LIGHTER
잘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몸조심, 마음 조심.
요즘 ㅇㅇ의 생활수칙이자 그녀의 집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하얀색의 액자에 꽂혀 있는 구절이다. 길거리에서 가훈으로 글귀를 적어준다는 사람이 있길래 나름 고심해서 그녀가 사온 것이었다. 이런 걸 붙인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다니엘이 이 말을 보고 제 스스로를 자각하기라도 한다면 더한 바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ㅇㅇ는 엄청 바쁜가 보네, 어떻게 된 게 핸드폰이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어?"
무작정 또 뒤에서 달려드는 다니엘에게 잡혀버린 제 두 어깨를 보아하니 그건 아마 제 깊은 바램으로만 남을 요량인가보다. 전화 왔었어? 주말에도 연락을 할 사람이 있던가. 가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당연히 지켜줘야 할 매너까지 팔아먹은 윗사람들이 전화를 할 때는 있었지만 12월도 얼마 남지 않은 이 연말 시즌에 연락을 할 사람은 없었다. 거기다 이렇게나 문자까지 가득 채워서 만나자고 할 사람은. 그래, 황민현이 아니고 또 누가 있겠어. 번호를 바꾸면 우리 사이에 연결된 끈은 없다고 생각했거늘 어떻게 알아낸 건지 잠금화면에 빼곡히 와 있는 문자 알람은 모르는 번호 였음에도 확연히 황민현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ㅇㅇ야, 자꾸 전화 피할거야?
'우리 아직 할 얘기 남았잖아.'
무슨 할 얘기가 남아, 남기를? 어디서 전남친의 구린 수작질을 배워와서는 제게 이제 와서 이러는지도 모르겠다는 ㅇㅇ였다. 여섯개 남짓 되는 문자와 착신 알람들을 다 지우면서도 그 분이 풀리지 않는 기분이었다. 좋아해달라고 애걸복걸 할 때는 무시하더니 막상 마음 좀 잡으려고 하니까 끝도 없이 당겨오는 그의 짓거리를 이해하기엔 자신의 그릇이 작은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황민현이 또라이 짓을 하는 거고.
"전남친인가, 그 사람인가보네."
"…솔직히 말해, 너 어디 돗자리 펴놓고 왔어?"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댔어, ㅇㅇ야."
나는 풍월 뿐만이 아니라 눈치도 알아서 배운거고. 어깨를 으쓱, 하던 다니엘의 표정은 평소와 미묘하게 달랐다.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을 해왔지만 ㅇㅇ의 어깨를 안은 손의 힘을 더 세게 주고 있었고 미간 사이에 자꾸만 생기려는 주름을 가까스로 참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풍월을 배운다고 했던 것이 엄한 질투나 먼저 배운 것은 아니런지 제 스스로 의심까지 들고 있었더랬다. 허나, 그걸 알아챌만치 제 주인은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니었으며 한 술을 더 떠 대단하다고 자신의 머리나 쓰다듬고 있었으니.
"그런 종류의 남자들은 다 늑대랬어. 조심해."
"그러는 너도 늑대면서, 무슨."
퍽이나 위협적인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음흉한 마음을 먹었다고 치면 ㅇㅇ, 제가 먼저 벌을 받아야 할 지도 모를 정도로 다니엘은 온순한 쪽에 속했다. 천성인 늑대일 때에도 웬만한 동물보다 순한 아이였던지라 인간이 되고 나서는 조금 더 이성적인 동물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편이었다. 다니엘을 만나고 나서 읽은 여러 늑대 인간에 대한 책들은 모두 순 엉터리였다고 믿을 정도로. 그는 함부로 물지도 않았고 그를 길들이느라 애를 먹을 필요도 없었다. 주인의 입장인 그녀 자신이 반대로 다니엘에게 길들여지고 있는 듯했으니 그의 말에 코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더랬지.
"그러니까 나도 조심해야지."
뭐? 순간 몸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뒤에서 안고 있는 다니엘이 별안간 힘을 주자 ㅇㅇ의 몸이 가뿐하게 침대에 누워 있는 꼴이 되었다. 왜, 왜 이래? 갑자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아마도 그녀가 그 말을 실로 체험하게 되는 인간상이지 않을까 싶었다. 분명 처음 다니엘을 집 안에 들였을 때도 그가 엄연히 사내라는 걸 잊어서 바닥 위에서 이런 모습을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자세만 조금 바뀌었을 뿐 그 때, 그대로 다니엘의 몸 위에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아니, 나는 그게 있지. 다니엘, 너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막 까불어도 너 아무렇지 않았잖아! 뒤돌아 있는 자세에서 다니엘에게 깔려져 있는 ㅇㅇ가 바둥거리면서 말을 꺼내보았지만 그녀의 뒤에선 거친 숨결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단다.
"누가 그래. 내가 아무렇지 않다고."
"으응?"
"참는 거야. 참고 또 참는 것 뿐이라고."
그러니까 왜 가만히 있는 늑대를 건드렸어, ㅇㅇ야. 오늘은 여러모로 다니엘에게 가혹한 날이었다. 차마 대놓고 싫어한다는 태도도 취할 수 없는 ㅇㅇ의 전남친이 자꾸만 그녀에게 치근덕 거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목덜미를 잡아 뜯어먹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다는 걸 그녀는 모르는 듯했다. 그렇지 않고선 12월의 말이 다가올수록 늑대들에게 어지간해서 매번 찾아오는 발정기의 시기가 있다는 것도 아마 잊고 있진 않았겠지. 다니엘의 몸은 그래서 자각도 하기 전에 ㅇㅇ에게 제 몸을 비비고 있었더랬다.
"야, 다니엘. 멈춰, 멈추라고!"
"…하, ㅇㅇ야."
눈 뜨고 코 베이게 생겼다. 아니지, 눈 뜨고 제가 키우는 늑대에게 마운팅 당하게 생겼다. 허벅지 밑으로 계속 문대오는 다니엘의 몸에 ㅇㅇ는 무척이나 매우 당황스러웠다. 작은 개들의 마운팅이야 쪼그만한 것들이 엉겨붙는 걸 귀엽게 넘어가면 되었고 설사 늑대나 큰 개들이 마운팅을 할 때는 동물의 순간적인 본능이라고 치부하며 넘어가면 될 것이었다. 근데 그녀가 살아온 스물 여섯의 해가 지날 동안 사람이 사람에게 마운팅을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선 배운 적이 없었다.
"우선 비켜봐. 어? 좀 비켜보라구."
아오, 얘는 왜 이렇게 덩치만 커가지고. ㅇㅇ는 생전 느껴볼래야 느낄 수 없었던 감촉들을 오늘에서야 다 느끼는 것만 같았다. 원래 그러던 놈이였으면 미리 준비라도 하고 조심했을 것인데 워낙 가만히 있던 놈이 불쑥, 동물의 본능만을 남겨두고 이성은 온데간데 없이 팔아 먹어버린 행동을 하니 누군가 뒷통수를 크게 때리고 간 것만 같았다. 웬만해선 떨어질 수가 없게끔 뒤에서 그녀를 옭아맨 채 얕은 신음만 내뱉고 있는 다니엘은 이젠 귀까지 빨개지고 있었다. 마치 전기장판을 뜨겁게 틀어놓은 것마냥 등 뒤로 전해지는 열기에 ㅇㅇ는 젖 먹던 힘을 내어서 다니엘의 등을 힘껏 때리고 나서야 벗어날 수가 있었다.
"너, 누가 그러랬어. 인간의 몸으로 그러면 된다고 했어, 안 했어?"
아직도 그 느낌이 생경하기만 했다. 이러다가 심장이 멎어서 죽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녀의 심장 소리가 꽤나 크게 고막을 울리고 있었다. 엄한 목소리로 멀리 떨어져서 다니엘에게 당부의 말을 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가 그런 듯 했으니. ㅇㅇ가 먼저 나 얕봤잖아. 안 그래도 얼마나 참기 힘든데 네가 부주의한 거야. 그렇다고 아무 사람한테 막 마운팅 하고 그러면 안되는 거야. 뚱한 표정으로 삐죽 입술을 내밀고 있는 다니엘은 이어지는 ㅇㅇ의 말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무한테나 하는 거 아니야. 늑대는 함부로 그러지 않아.
"나는 너 아니면 아무한테나 그런 짓 하는 놈 아니야."
유난히 동그랗게 뜬 보름달이 검은 하늘에서 휘영청 거리고 있던 날이었다. ㅇㅇ의 두 볼이 불그스름하니 예쁜 사과의 색을 띄고 있었던 날이. 말을 이어가던 다니엘이 그녀의 다리 밑으로 엉거주춤 기어가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은 채 바라보는 것치곤 뜨겁기만 한 시선으로 그녀를 마주한 날이. 그리고 제법 늦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ㅇㅇ는 낮은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손가락마다 입을 맞춰오는 그를 보다가 깨달았다지. 이런, 내가 정말 늑대를 키우고 있구나. 하고.
"그러게, 발정난 늑대를 만만하게 보면 안되는 거지."
남의 속도 모르고 밤은 잘만 깊어가고 있었다.
*
'띵동'
늦은 밤, 민현의 핸드폰이 작은 진동 소리와 함께 알림음이 울렸다. 이 시간에 연락을 하는 몰상식한 사람도 다 있나. 일찍 잠에 드는 게 습관 같았던 민현은 얼굴 가득히 덥고 있던 이불을 끌어내리며 핸드폰을 잡기 위해 탁자를 더듬대는 그의 손길이 다분히 신경질적이었다. 일에 관한 문제로 연락을 한 회사 사람들이든, 쓸데없이 찔러보는 친구들의 연락이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 민현은 꼭 답장에 뭐라 한 마디 해주려고 했었다. 그랬는데, 그렇게 마음 먹었는데 자연스레 발신자를 확인한 민현의 입가가 조용히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ㅇㅇㅇ?"
ㅇㅇ였다. 그녀라면 말이 달라졌다. 화를 낼 게 아니라 당장 전화라도 해줄 수도 있었다. 항상 자신의 일에 예외를 만들어두는 것도 모두 ㅇㅇ때문이었으니 꽤나 민현은 기쁜 얼굴을 해보였다. 잠결에 부시시한 눈을 거칠게 비비면서 그녀가 보낸 문자를 천천히 확인했을까 이건 뭐,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는 말들을 보냈다. 얘 또 술 마셨나. 무슨 말이야. 이게?
'이 개놈 ㅇ ㅡ ㅣ 자 시 ㄱ아 디 힐래?'
개놈까지 써져 있는 것만 보면 딱히 좋은 말을 쓴 것 같지는 않은데. 자다가 바로 일어난 민현은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어 몇 번이고 그녀가 보낸 문자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아야 했다. ㅇㅇ가 원체 화가 나면 말을 거칠게 하는 경향이 있기는 했어도 술에 취해서 문자를 보내는 짓은 하지 않았다. 만약에라도 취했으면 부어라 죽어라, 하면서 마셨을 거고 결국 연락이 오는 건 그녀의 친구나 회사 동기들이었으니까. 그럼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이지. 듬성듬성 이어지는 글자들을 조금씩 곱씹어보고 있었을까 민현의 입에선 헛웃음만 나오고 있었다.
"이 개놈의 자식아…, 뒤질래?"
차라리 알아내려고 하지 말 걸 그랬나. 대뜸 오밤 중에 욕을 먹은 건 또 무슨 일일까. 하루종일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더니 고작 보낸 문자가 이거라고? 가뜩이나 눈이 부셔서 구겨진 그의 미간의 굴곡이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 욕을 하든, 말도 안되는 꼬장을 부리든. 그것도 다 이해할 수 있다. 너그러이 안아주고 품어줄 수 있을만큼 민현은 그녀를 좋아했으니. 하지만 그건 모두 ㅇㅇ가 했을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밤에 연락도 잘 하지 않던 그녀가, 더군다나 이제는 말도 하기 싫다며 등을 돌린 그녀가 이런 문자를 보냈다면 그건 꽤나 귀여운 애정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가 줄 수 있었다.
"잠 한 번 자기 더럽게 힘드네, 진짜."
ㅇㅇ, 네게 다른 새끼가 꼬이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What Does The Fox Say?
Episode 5, fin
헬로, 알로, 안녕, 라이터입니다.
정말로 이제 딱 2017년을 보내야 되는 날인데 다들 잘 지내고 있었나요?
요즘 제 친구들도, 가족들도 다들 감기를 달고 살아서 고민입니다. 이러다간 (감기=나) 공식을 들고 다니는 제가 걸리게 될까 걱정이 되네요...ㅎ
우리 독자님들도 부디 제발 아프지말고 건강하게 새해를 맞이하길 바랍니다. 저는 매일 연말마다 아프다가 이번 해에는 안 아파서 증맬루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프면 누워만 있어야 하자나요....맛있는 것도 많이 못 먹고....그런 슬픔 삶은 다메데쓰.
아 그리구 조만간 제가 나중에 공지? 그냥 글을 하나 올릴 예정인데 앞서서 제가 왓더즈폭스세이를 끝내고 나면 차기작을 생각하기까지 약간의 여유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사이의 공백 기간 동안 독자님들이 원하시는 소재를 적어주시면 그거에 맞춰서 한 세 편? 정도를 써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대물이든, 조직물이든, 학교물, 알파오메가물, 짠내물, 뭐든 좋아요. 그냥 말해주시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잘 노력해보도록 하께요;;;;
드디어 뭔가 시작되는 기분이 드는 게 이번화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렇게 빨리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지금 이 글의 시간은 제가 있는 현실의 시간과 동일하게 보는데 찾아보니까 늑대의 발...정...기가 12월부터 시작이라네요? 이건 뭐 순수하게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다니엘이 늑대이고 늑대님이 감히 짝을 찾는 기간이라는데?
고로, 저는 순수하지 않은 인간입니다. 솔직히 민현이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상상을 하면서 글을 썼는데 그것만으로 코피 나올 것 같아써요....흑....너무 좋아...
우리 애들은 왜 다 잘생겨서 난리? 왜 난 덕후여서 난리? 덕질이 없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아지네요!
본격적으로 삼각관계와 다니엘의 들이대는 늪에서 허우적 해봅시다.(우리 셍언이 내가 얼른 나오게 해주께...미안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알신도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은 내년에 만수무강하고 돈을 쓸어 담을 것이며 무엇보다 우리 워너원의 티켓팅은 모두 되는 금손을 지닐 것입니다.
<마지막 인사는 그대로 분량 수납 당한 성운이로!>
그럼 우리 다음에 또 만날 수 있는 거지요~?
#암호닉 신청은 최신화에서 해주세요#
암호닉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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