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읽으시는분들은 후닥 내려가서 전편 읽고오시는걸 추천!
5# 성규 |
그는 밥을 해주겠다며 부엌에 들어간지 꽤 되었다. 무언가 달그락거리고, 무언가 음식냄새가 났지만 난 먹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내가 지내는 방문 바로 앞에서 부엌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녀석을 멍하니 보고있었다. 그는 그런 날 보고 눈웃음을 지었다. 부엌 건너편의 거실, 그 옆의 내 방. 그 건너편 복도의 화장실 옆의 그의 방. 녀석의 방에 들어가려면 뻥 뚫리고 넓은 부엌과 거실을 지나야 했다. 문득 드는 호기심. 마침 녀석은 요리를 하기 위해 가스레인지 쪽으로 몸을 돌려 나에게 등을 보였다. 그래, 이때였다. 부엌을 쭉 지나 화장실 문에 다다르자 아주 살짝 열린 방문이 보였다. 문을 닫으려다 약간의 힘이 부족해 문턱에서 튕겨진 문. 그런 문을 밀어 방에 들어갔다. 깔끔하게 꾸며진 그의 방은 조용했다. 약간은 차갑고 조금은 오싹한 분위기에 난 살짝 주눅들었다. 문이 있는 벽에는 침대가 있었다. 사람이 자고 일어난 후 침대 이불을 펼치고 정리하지 않은 모양새가 그대로 보였다. 내 눈엔 이상한 점이 띄었다. 침대 옆에 커튼이 있었다. 창문쪽도 아닌 복도쪽의 벽인데 커튼이 있었다. 흰 커튼은 무언가를 가리고 싶어했다. 흰 커튼을 걷어냈다. 네모난 사진과 여러가지 모양으로 오려진 사진들. 그 사진 속에는 내가 있었다. 그 수많은 사진속에 담긴 수많은 나. 집 앞의 내 모습과 공원에서 산책을 하는 내 모습, 호프집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는 내 모습. 난 그런 '나'의 모습들을 보기 힘들었다. 황급히 몸을 돌려 억지로 건너편의 책상으로 향했다. 두꺼운 책과 그보다 더 두꺼운 앨범들, 그 여러 앨범안엔 어떤 사진들이 꽂혀있을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책상밑의 서랍을 열자 베이지색의 상당히 두꺼운 스프링 공책이 눈에 들어왔다. 무겁고 살짝 때가 타고 얼룩이 진 공책. 공책을 열자 난 입이 벌어졌다. " 나중에 보여주려고 했는데. " 언제 도착한 건지 그는 내 어깨에 손을 두르곤 빙그레 웃었다. 화들짝 놀라 움츠러든 내 어깨를 쓰다듬는다. 정교하게 연필로 그려진 그림속의 여자는 단연 나였고, 그 그림은 한두장이 아니었다. 놀라 멈춘 내 손 대신 그의 손이 책장을 넘겨 주고 있었다. 침대 옆의 수많은 나와는 또 다른 나였다. 난 몸이 떨리고 있었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난 그 두꺼운 그림공책을 덮어버렸다. 내가 떨리는 손으로 공책을 억지로 들고 있을때 어느새 녀석은 책장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파일이나 책받침 마냥 두껍게 코팅이 된 종이 한 장. 그는 뜸을 들이더니 나에게 내민다. "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 떨리던 몸이 잦아 들었다. 대신 온몸이 굳었다. 공책의 어떤 그림들보다 세심해 보였다. 그 속의 내가 입고 있는것은 분명 교복이였다. 머리가 짤막한 나는 어떤 테이블에 앉아 턱을 괴고 있었고, 그 테이블 위에 있는 건 내가 아직도 즐겨먹는 초코우유. 그 곳은 아직도 내가 자주 가는 편의점이였다. 몇년 전일까, 내가 학교에 있을때 언젠가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분명 완전히 잃어버렸던 물건들이 어느 순간 모두 제자리를 찾아왔다. 내가 아끼던 지우개, 볼펜, 샤프. 친구에게 빌려준 채 잊고있던 책과 체육복 마저도. 가끔씩 사물함 안에 들어있던 작은 선물들과 간식들. 그 모두가 네가 한 짓이라고? 녀석은 지금도 나와 어깨동무를 한 채 자신이 그린 그림을 미소를 띄우고 같이 보고 있었다. 나의 눈빛이 느껴지자 자신도 눈빛을 맞춘다. 쪽. 그는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성이 난 아이를 달래듯한 베이비 키스. " 밥 다 됐어. 먹자. " |
모르는척해줘요 |
이제 완전 다정돋는 성규...!! 2편밖에 안남았으니 얼른 새작을 써야할텐데요.. 자정 가까이에 글 올리고있어요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