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의 재발견
W .석원
5.
어젯밤 가장 마지막으로 접했던 사실은 박지민은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문과, 특히 이 반에는 아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기에, 짝꿍과 친해지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던 나에게는 불행이면서 다행이었다. 어제처럼 그의 시선을 받으며 하루를 보내기보다는 혼자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수학과 사회에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뒤처져있기에 더욱 그랬다.
박지민에 대한 정보를 하나둘 알아감에 따라 궁금증도 커져갔다. 겨우 하루 만났지만, 어딘가 순해 보이는 얼굴이 쉽사리 잊히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자신을 기억하냐는 말이 자꾸만 머리에 떠다녔다. 분명 처음 보는 이름과 얼굴이었는데, 그는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그랬다. 새 학기의 첫날밤은 어쩐지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6.
" 평소보다 늦게 나오네? "
" 어, 잠을 좀 설쳐서. "
" 잠은 왜? 너 누우면 바로 곯아떨어지잖아. "
그러게. 졸린 눈에 힘을 준 채로 김태형에게 대충 대답해주는데도 자꾸만 졸음이 쏟아졌다. 벌써부터 졸면 안 되는데, 이게 다 너무나 독특한 나의 짝 덕이었다. 온몸이 졸리다며 짜증을 내는 탓에 김태형이 옆에서 하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오기도 전에 다른 데로 자꾸 빠져나갔다.
" 너 내 말 안 듣고 있지. "
" 듣고는 있는데… "
" 이거나 먹어. "
네모난 입으로 웃으며 내 입에 넣어주는 사탕을 멍하니 받아먹었다. 매운 거 싫은데, 인상을 작게 찌푸리니 잠 깨려면 먹어야 한다며 뱉으려는 내 입을 꾹 다물게 하는 김태형이었다. 투닥투닥 장난을 치다 멀리서 보이는 버스에 전속력으로 뛰어 겨우 자리를 잡고 앉자 다행히 잠이 조금은 깬 것 같았다.
" 아, 아까 무슨 말했어? "
" 오늘 우리 집 와서 밥 먹으라고. "
" 나야 좋지. "
김태형네 밥 맛있는데. 한껏 신난 채로 밖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이어폰을 꽂고 후드티에 손을 꽂고 지나가는 박지민과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다. 정상 등교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본인도 꽤나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박지민이었다. 내 반응에 놀란 김태형도 같이 고개를 돌렸고, 정차한 버스 사이로 우리 둘과 박지민은 버스가 다시 출발할 때까지 멍하니 서로를 보고 있었다.
" 쟤 정상 등교 거의 안 한다고 했는데, 특히 3월에는. "
" 그러게. 나도 처음 봐. "
김태형도 나와 같이 벙찐 채로 마주 보며 이야기했다. 여전히 그에 대한 미스터리를 품은 채 멍을 때리자, 내려야 한다며 나를 이끄는 김태형에 우리 학교 학생들로 가득 찬 버스에서 정신없이 내렸다. 많은 학생들이 동시에 내리는 탓에 엉망이 된 내 뒷머리를 익숙한 듯 정리하는 김태형을 가만히 기다렸다. 다 됐다며 내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 끝나고 문자 해. 우리 반 종례 느리대. "
" 알겠어. 수업 잘 듣고, 졸지 마라 김태형. "
" 누가 할 소리를 하냐. "
웃으며 손을 흔드는 김태형에 손을 한 번 흔들고 문과 건물로 향했다. 신발을 갈아 신는데 내 위로 손이 하나 지나갔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건 아까보다 조금 안 좋아진 표정의 박지민이었다.
7.
박지민이 등교를 했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충격을 준 것 같았다. 거의 동시에 박지민과 교실로 들어온 나에게도 시선이 집중되었고, 수군거림도 함께 들려왔으니까.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꺼내는데 김태형이 준 사탕 덕에 달아난 줄 알았던 졸음이 다시 오고 있었다. 문제집을 정리하고 힐끔 박지민 쪽을 보니 어제와는 달리 무엇을 깊게 생각하는지 내 쪽은 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박고 무언가 적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들이 말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그를 꽤 오래 보고 있었나 보다. 박지민과 눈이 마주친 걸 보면.
" 할 말 있어? "
" ……아니. 하던 거 해. "
부리 같은 입은 댓 발 나온 채 할 말이 있냐고 묻는 박지민이 웃겨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아치라고 하기에는 복장이나 머리색 말고는 집을 만한 점이 없었다. 수업이 시작하고 나서도 고개를 박고 공책에 무언가 끄적이는 박지민을 곁눈질로 살피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망할, 김태형 사탕의 효력은 1교시 전 오전 자습 시간뿐이었다.
8.
" 서여주. 너 고개 안 아파? "
" 아파 죽겠는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
" 마지막 20분 내내 책상에 고개를 박고 있는데, 안 아플 리가 있나. "
김태형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나는 졸 때 고개를 꺾은 채 자세를 유지하기 때문에 보통은 내가 먼저 목이 아파 일어난다고 했다. 그리고 나도 그의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를 하는 게, 깨고 나서는 늘 목이 뻐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목이 뻐근해서라기보단 차가운 게 이마에 계속 닿는 듯한 느낌에 눈을 떴다.
" …. "
" …. "
눈앞에 희미하게 보이는 손 하나에 놀라 고개를 들었고, 아직 상황 파악이 안된 나와 당황스러워 보이는 박지민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박지민의 손은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는지 내 이마를 받쳐주던 그 위치 그대로였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짧게 고개를 꾸벅이고 문제집에 고개를 박았다. 정신이 돌아오니 미친 듯이 민망했다. 진짜, 진짜로.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노트 구석을 찢어 고마워.라고 적은 뒤 여전히 노트만 보는 그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작게 웃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하다.
9.
1교시의 부끄러움 덕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뒤부터는 쭉 깨어 있을 수 있었다. 나와 바통 터치라도 한 건지 내가 깬 이후로는 박지민이 쭉 잠들었다. 책상 한편에 놓인 내 쪽지를 볼 때마다 아까의 민망함이 떠올랐지만, 꾹 참고 수업을 듣다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교실에 아이들이 거의 남지 않았는데도 일어나지 않는 박지민을 몇 번 흔들어 깨우다 혹시라도 싫어할까 봐 관두고 급식실로 향했다. 보통은 나, 김태형, 민윤지 세 명이 함께 먹지만 축구 경기에 가야 한다며 남자애들과 먹는 김태형을 뒤로하고 윤지와 자리에 앉았다.
" 적응은 잘 하고? "
" 별로. 아직 친구도 없고. "
" 쟤는? "
" 벌써 친해졌어? "
" 아니. 그냥, 쟤 보면 재밌어서. "
" 수상한데. "
나를 빤히 보는 윤지에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몇 마디 섞어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늘은 부끄러운 일까지 겪었는데, 친하긴. 그냥 엄청 이상한 애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 아, 나 오늘 아침에 쟤한테 완전 민망한 꼴 보였어. "
" 뭘 했는데? "
" …아니, 그냥. 졸았거든. "
아무래도 아침의 일을 꺼내면 놀림당할 게 분명했기에, 대충 졸았다고 얼버무렸다. 너 조는 거 하루 이틀 보냐며 다시 밥을 먹는 윤지에 고개를 끄덕이며 식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역시, 이야기하지 않기를 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10년 치 놀림감이었다.
10.
" 서여주. "
" 어. 어쩐 일이야? "
" 민윤지한테 들었어. 아침에 졸았다며. "
또 김태형에게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아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니 내 손을 가져간 김태형이 여러 개의 사탕을 그 위에 올려 두었다. 아침에 먹은 맛없는 박하사탕을 포함해서 내가 좋아하는 딸기맛 사탕도 함께였다.
" 졸릴 때마다 먹으라고. "
" 고맙다. "
내 말에 김태형은 어깨를 으쓱이고 뒤이어 들리는 종소리에 서둘러 이과반으로 향했다. 후식 겸 어떤 사탕을 먹을지 고민이 되어 사탕을 뒤적거리며 자리로 돌아오려는데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그 부리를 댓 발 내밀고 나를 보고 있는 박지민과 눈이 마주쳤다.
" 먹을래? "
" 사탕 싫어해. "
" ……그래. "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어 사탕 하나를 건네다가 대차게 거절당했다. 나름 짝으로서 친목을 다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나 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남은 시간 내내 꿍얼 거리기도 하고, 내 쪽을 어제처럼 빤히 보기도 하고,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던 박지민은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나름 열심히 오늘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새 학기라 청소가 없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김태형네 반에 가기 위해 가방을 챙길 때였다.
" 야. "
" 어? "
" …너 아까 걔랑, "
" 걔? "
" ……아씨. 아니야. 잘 가라고. "
한참을 머뭇거리다 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대뜸 잘 가라고 인사하는 박지민이 조금 의아했지만 너도 잘 가라고 손을 한 번 흔들고 교실을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들은 것보다는 훨씬 순한 애 같았다. 그리고 오늘은 민윤지나 김태형에게 짝이랑 조금은 친해졌다고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뿌듯함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0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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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귀여운 지민이가 양아치라뇨!
사실 달방 보면서 저 움짤은 꼭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쓰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따흑
졸린 지민이는 너무 귀엽잖아요 (심장 터짐)
오늘 드디어 여주의 친구들이 다 나왔네요. 사실 호숙이도 등장시키려다가, 네 꾹 참았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랑을 주셔서...저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감사한만큼 더욱 열심히 쓸게요.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에는 더 빨리 올게요.
덧. 여러분 중간에 지밈이 움짤 잘 보이나요? 저는 자꾸 빈 공간으로 나와서 불안해요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