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국은 남자를 좋아한다
w. 정국학개론
01
전정국과 만난 지 무려 3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 사이는 여전하지만 변한 게 있다면 복학한 전정국이 곧 시작될 새학기에 2학년이 된다는 것, 원래는 4학년으로 새학기를 맞이했어야 하는 내가 우연한 기회로 S기업 인턴십에 선발되어 취업계를 내고 회사에 재직 중이라는 것. 우리가 각자 있어야 할 자리가 조금 변했을 뿐 나는 여전히 전정국을 좋아했고, 전정국도 아마 그렇다.
만남 횟수는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방학 중인 전정국은 최근에 S기업에서 주최하는 서포터즈 활동을 하느라 바빴고, 나는 인턴 딱지를 떼기 위해 회사 선배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평일에 일을 하고, 전정국은 서포터즈 활동이 주로 주말에 이루어지는 탓에 우리는 내가 조금이나마 덜 피곤한 평일 밤이나 전정국이 서포터즈 뒷풀이가 없는 주말 밤에 만나 데이트를 하곤 했다.
전정국에게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와 아주 가끔 만나는 그 시간에도 전정국은 폰을 잡고 놓지를 않더라. 오늘도 그랬다. 무려 일주일 동안 만나지 않은 탓에 만나자고 보채는 전정국에 못 이겨 퇴근한 후에 피곤한 몸을 겨우 이끌고 영화관을 왔는데, 티켓을 끊고 온다던 전정국이 한 손에는 티켓,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하며 걸어온다.
" 영은아, 울지 말고 천천히 얘기해 봐. "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앳된 여자애의 목소리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울먹이느라 잔뜩 뭉개진 발음에 전정국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 앞에서 살짝 한숨을 내뱉는 나를 흘낏 쳐다보던 전정국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내 손을 한 번 꼭 쥐고는 휴대폰을 들고 자리를 옮긴다.
" 그러니까 형이 뭐라고 했다고? "
전정국의 멀어지는 등을 보며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전정국은 이제 내가 모르는 얘기들 속에서 살아간다. 나도 물론 전정국이 모르는 얘기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서로 각자의 위치가 얼추 정해졌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내가 아는 사람들과 만나고, 내가 아는 곳에 있던 전정국이 내가 모르는 곳에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속이 뒤집힌다.
괜한 고집이다. 10분만에 돌아온 전정국이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아오면 덥다는 핑계로 손을 피하는 것도, 영화가 끝난 후 먹고 싶은 게 있냐며 저녁식사를 유도하는 전정국의 물음에 피곤하다며 굳이 집으로 들어온 것도 전부 괜한 고집이고, 질투다.
*
" 오늘은 웬일로 전정국 안 만나고 날 만나줘? "
가끔 찾아오는 여유를 전정국과의 데이트로 메꾸던 탓에 수정이와의 약속은 늘 뒷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수정이는 나를 밉지 않게 흘기면서도 입가엔 웃음이 잔잔히 걸려있다. 대학 다니던 시절, 이 무리에 김태형까지 껴서 자주 오던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익숙하게 서로가 각자 좋아하는 메뉴를 시키고 익숙한 자리에 앉았다.
" 전정국 바쁘대. "
" 아, 그 서포터즌가 뭔가. "
" 응, 그거. "
사실 좀 섭섭했다. 내가 유일하게 시간이 되는 날에 정작 남자친구가 시간이 안 되니까. 굳이 그 서포터즈 활동을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수정이는 이해한다는 듯 나를 안쓰러운 눈길로 쳐다보더라.
수정이는 작년에 학생회장이 되었다. 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학과를 이끌어갈 예정이라는데, 2월에 마침 수시오티도 있고, 새내기 배움터라고 개강 전 단과대학 MT가 있어서 골머리를 앓는 중이라고 했다. 올해 신입생이 어쩌고 저쩌고, 수정이 얘기를 듣고 있으면 꼭 내가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턱을 괴고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하는데, 곧 가방에 있던 휴대폰이 울린다.
" 아, 여기서부터가 제일 중요한데, 누구야? "
" 정국이. "
전정국이다. 서포터즈 활동이 끝나는 대로 바로 전화 준다고 했는데, 벌써 끝났나? 반가운 마음에 빠르게 손을 움직여 전화를 받는데, 시끌벅적한 소음을 배경으로 전정국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ㅡ 어, 아미야, 어떡하지. 나 오늘 서포터즈 전체 뒷풀이 있을 것 같은데……
" 아… 그래…? "
ㅡ 진짜 미안. 내가 뒷풀이 끝나고 집 앞으로 갈게.
" 그래, 그러면 이따… "
ㅡ 오빠! 여기서 뭐해요! 빨리 와요!
ㅡ 어? 어어. 어, 이따 전화할게.
통화가 끊기고 휴대폰을 든 채로 잠시 멍하게 있었던 것 같다. 수정이가 내 표정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전정국과 만나기로 한 거냐며, 이제 가는 거냐며 계속해서 묻던 수정이가 대답이 없자 입을 다물고 만다.
여자 목소리. 전정국을 오빠라고 불렀다. 그때 전정국과 통화했던 그 여자앤가. 전정국이 서포터즈 뒷풀이로 내 약속을 탕놓은 건 이번만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하는 그 분위기를 나도 알고, 나도 그만큼 전정국의 약속을 탕놓은 적도 많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크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근데. 그냥.
" 표정이 왜 그래? "
그냥 기분이 별로다.
*
며칠 후가 발렌타인데이라는 사실은 인턴 동기를 통해 알았다. 인턴 각자에게 회사 일을 비교적 쉽고 빠르게 알려줄 직속 선배가 한분씩 계셨는데, 최근에 내 직속 선배가 중국으로 얼마 간 출장을 가시는 바람에 그 기간 동안 나를 맡아줄 직속 선배가 같은 부서에 있는 유명한 또라이로 배정되었다. 고작 일주일인데, 그 일주일을 어찌나 굴리던지 팔자에도 없는 야근이 잦았고, 덕분에 전정국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흔한 기념일을 떠올리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이번엔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서 썸남에게 고백할 거라는 동기의 말에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초콜릿 살 시간이라도 있으면 다행일 텐데, 직속 선배가 중국에서 돌아오는 날이 발렌타인데이가 지난 후라 발렌타인데이 당일에 전정국을 만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 풀칠이 좀 엉망이네, 김아미 씨. "
"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
" 이게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 "
" 아닙니다, 선배님. "
" 이게 한낱, 겨우 풀칠이라고 해도 여기서 사람의 센스가 보이는 거거든. "
" ……. "
" 이렇게 꼼꼼하지가 못한데 어떻게 더 큰 일을 할 수가 있겠어. 어? 인턴십 마지막날에 있을 피티는 제대로 하겠어? "
" …죄송합니다. "
" 얼굴은 예쁜데, 일처리는 왜 이 모양이야? "
" …풀칠은 다시 해오겠습니다. "
" 그럼, 그럼. 다시 해와야지. "
" ……. "
" 해오는 김에 맛있게 커피도 좀 타오고. "
피곤해 죽겠다. 종일 직속 선배랍시고 진상짓만 부리는 또라이의 한낱 유흥거리가 되어주느라, 매번 하루 이상의 분량을 떠넘기는 또라이 탓에 컴퓨터 앞에서 치열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느라, 거기에 더불어 피티까지 준비하느라.
몸과 마음이 피로해질 때 늘 떠오르는 건 전정국이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끌어안고 싶고.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 반, 전정국을 만나서 충전하고 싶은 마음 반. 오늘은 후자가 조금 더 컸고, 그래서 전정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디야? "
ㅡ 나 지금… 잠시만. 야, 전영은! 어디 가!
또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이름에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너는 힘이 없는 내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걸까. 한참 동안 수화기 너머에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은 탓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 발신 목록에는 전정국 이름 석자와 15분이 찍혀 있을 텐데, 내가 집에 가는 그 15분 동안 너와 나눈 대화는 하나도 없다.
전정국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온 건 한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씻고 막 침대에 누웠을 때였다. 침대 위에서 울려대는 휴대폰을 전화가 끊길 때까지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그러길 세 번 정도 반복했을까, 짧은 진동이 두어 번 정도 세게 울린다.
[벌써 자?]
" 안 자…… "
[잘 자]
*
직속 선배의 출장이 예정보다 일찍 끝났다. 덕분에 또라이의 유흥거리였던 날이 막을 내렸고, 커플의 기념일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일도 반으로 줄었고, 야근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일이 반으로 줄면서 찾아온 여유로운 시간에 화장실에 쳐박혀 전정국에게 줄 초콜릿을 골랐다. 어느 초콜릿을 어디에서 사야 할지, 네이버 길찾기를 통해 회사에서 가장 빠른 루트를 생각하고, 그에 맞춰 전정국과 약속을 잡았다. 웬일로 평일에 보냐는 전정국의 물음에 말 없이 웃기만 했다. 현생에 치이는 전정국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구나.
정시 퇴근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아니, 정시보다 조금 이른 퇴근이었다. 오늘이 발렌타인데이인 걸 아는, 그리고 내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아는 선배는 늘 그랬듯 친절한 미소를 띄며 오늘은 조금 일찍 퇴근해도 된다고 하더라. 잠깐이나마 눈 앞에서 천사를 맞이한 내가 연신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퇴근 전에 찾아두었던 루트를 타고 초콜릿을 구매했다. 동기처럼 직접 만든 초콜릿은 아니더라도 깜짝 놀라서 좋아해줄 전정국이 눈에 선해 쇼핑백을 손에 꼭 쥐고 알 수 없는 음을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 일찍 왔네. "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카페에 앉아 멍하니 창 밖을 보던 나를 발견한 전정국이 창문을 두드리고는 그에 놀란 내 얼굴에 환히 웃으며 카페로 들어왔다. 전정국의 손엔 쇼핑백이 하나 들려져있다. 웬 쇼핑백? 묻기도 전에 전정국이 지갑을 들고 카운터에서 메뉴를 주문하고 돌아온다.
" 그거… "
쇼핑백의 존재에 대해 다시 묻기도 전에 전정국이 테이블 위로 쇼핑백을 건넨다.
" 뭔데? "
" 초콜릿이래. 너 먹어. "
" 초콜릿이래는 뭐야. 네가 산 거 아니야? "
" 아, 서포터즈 같이 하는 애가 준 거. "
" 뭐? "
전정국은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니 내 표정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겠지.
누가 줬는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전정국을 만날 때마다 지겹도록 들었던 그 이름.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고작 서포터즈 활동을 같이 하는 여자애한테 질투하지 말자며 애써 침착하게 쇼핑백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하트가 잔뜩 그려져 있는 분홍빛 상자를 열었다. 누가 봐도 직접 만든 초콜릿. 조금 엉성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모습에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래도 침착하게 굴었다. 같이 서포터즈 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초콜릿을 준 걸 수도 있으니까. 괜히 오바하지 말자, 제발.
그래도 기분이 이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여자친구도 아닌 누군가가 전정국에게 직접 만든 초콜릿을 준다는 사실은 고작 하루 전도 아닌 당일날에 모 브랜드 초콜릿의 구매를 결정한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초콜릿이 예쁘게 생겼고, 아무리 맛있어도 그 정성과 비교해보았을 때 내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괜히 기분이 나빠져 상자를 닫고 다시 쇼핑백에 넣으려는데, 카드 한 장이 들어있다.
여자의 감은 무시무시하다.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하트가 그려져있는 카드를 열었다. 고백이다. 아주 수줍은 고백.
" 맛없어? "
초콜릿을 열어보고서도 아무 말이 없는 나를 눈치챈 전정국이 그제서야 휴대폰에서 눈을 떼 나를 본다. 손에 쥐고있는 카드를 한 번, 전정국을 한 번, 계속해서 번갈아보자 이상함을 느낀 전정국이 내 손에 쥐여 있는 카드를 낚아채간다.
카드를 확인한 전정국의 얼굴이 묘하게 굳어진다. 전정국은 침착하게 카드를 쇼핑백에 집어넣고 내 눈 앞에서 쇼핑백을 치워버린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아오는데.
" 아미야. "
전정국이 내 이름을 부를 때,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
02
네가 인턴십이든 정직원이든, 그게 어떤 이름이든 간에 회사에 취직하고 난 후로 너 모르게 나는 살짝 패닉 상태에 빠져있었다. 네가 취직을 위해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나는 군생활을 하고 있었고, 네가 취직한 지금 나는 고작 1학년 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유능한 남자친구는 아니어도 무능한 남자친구가 되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네가 들어간 S기업은 자회사에서 주최한 서포터즈 경력을 꽤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네가 그곳 정직원이 목표라면 나는 네가 목표로 하는 그곳이 내 목표였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발된 인원은 나를 포함해 총 서른 명이었다. 서른 명 중에서도 각각 여섯 조로 조가 편성되었고, 아주 우연한 기회로 내가 조장이 되었다. 도움이 되는 일은 하되, 귀찮은 일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지만 조장으로 조를 이끈 경험이 큰 메리트가 될 거라는 학교 선배의 조언을 얻고 나서는 조장으로 나를 추천하는 조원들에게 굳이 거부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
우리 조는 다른 조에 비해 연령대가 많이 낮은 편이었다. 부러 그렇게 짜준 건진 몰라도, 스물세살인 나와 스물다섯인 형, 그리고 전부 스물하나였다. 문제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했다. 스물다섯이나 먹은 형은 스물한살인 영은이에게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일부러 툭툭 건드리는 게 눈에 보였고, 그걸 시비라고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 영은이가 서포터즈 활동을 그만두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남들에겐 사소한 문제였을지 몰라도, 네가 들어간 회사를 목표로 하는 내겐 굉장히 큰 타격으로 다가왔다. 좋은 결과가 있어야 네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을 텐데, 조원 하나가 빠지게 되면 조장이 된 내가 우습게 되는 꼴이었다.
그래서 영은이에게 조금 더 신경을 썼고, 조의 분위기를 흐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서포터즈 뒷풀이에 빠지지 않고 전부 참석했다. 사실 조장으로서의 의무감도 있었지만, 한번은 뒷풀이를 빠지고 너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도 이런 분위기를 여자친구가 좋아하지 않는다며 괜히 네 핑계를 대고 일찍 일어나려 하는데, 여자친구가 너무 빡빡한 사람인 거 아니냐며 나를 동정하는 분위기로 몰아가는 몇몇 조원들 탓에 괜히 기분이 상해 뒷풀이가 파할 때까지 남아있곤 했다. 그게 너를 심란하게 할 걸 알면서도, 너는 바쁘니까, 너는 나를 신경쓸 겨를이 없으니까, 핑계를 댔던 것 같다.
네가 오랜만에 평일 저녁에 만나자고 했다. 오랜만에 머리를 만졌고, 향수를 뿌렸다. 퇴근하고 만나는 너는 늘 격식 있는 차림이었기 때문에 차마 너를 배려하지 않고 캐주얼한 차림으로 그냥 나갈 수가 없더라.
영은이에게서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몇 시간 후였다. 잠깐 만날 수 있냐는 물음에 또 형에 관한 고민상담인가 싶어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너를 만나기 한 시간 전이었으니 잠깐 만나서 얘기하고 바로 네게 달려가면 될 일이었다.
" 이거… "
" 뭔데, 이거. "
영은이는 다짜고짜 분홍색 쇼핑백을 건넸다. 당연히 오늘도 울고불고 형에 관한 고민거리들을 나열할 거라 생각했던 나는 꽤 멀쩡해 보이는 영은이의 모습에 살짝 당황한 기색을 표하며 쇼핑백을 받아들었다.
" 초콜릿이에요. "
" 초콜릿? "
" 안에 편지… "
" 아, 잠깐만. "
이어서 뭐라고 말하려고 하던 영은이의 말을 끊게 만든 건 박지민의 전화였다. 박지민은 요새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며 속앓이를 하는 공간으로 나를 택했는데, 그래서 가끔 뜬금없는 때에 이렇게 전화를 걸어 참아두었던 말들을 토해내곤 했다. 그게 기본 삼십 분 정도였으니, 천천히 박지민의 전화를 받으며 너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가면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그 탓에 박지민의 전화를 받으며 영은이에게 짧게 인사했다. 뭐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입을 오물거리던 영은이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먼저 등을 돌렸다. 수화기 너머로 박지민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손에 들려있던 쇼핑백은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너를 만나고 나서도 카톡으로 하소연을 하는 박지민을 대충 받아주는데, 쇼핑백을 뒤적거리는 네 표정이 심상치 않다. 손에 무언가를 쥐고 심각하게 나와 번갈아보길래, 낚아채 확인했는데.
일이 복잡하게 됐다. 완벽한 고백이었다. 오늘이 발렌타인데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있었는데, 알았다면 받지 않는 건데. 영은이를 만난 시점부터 박지민의 전화를 받고 별 생각 없이 너를 만나러 온 지금까지, 깊은 생각 없이 보낸 그 한 시간이 후회되었다. 곧 네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 후부터는 더. 눈 앞이 캄캄해지더라.
*
" 이거 너네 먹어. "
김태형과 수정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앞에서 불판에 고기를 올리던 수정이가 묻는다.
" 이거 뭔데? 설마 전정국한테 줄 초콜릿 사면서 우리 것도 산 거야? "
" 그러기엔 너무 하난데, 이거. "
" 야, 너 꿈이 크다? 아미가 우리 둘, 모두의 초콜릿을 사줘야겠어? "
" 그럼 이거 내 초콜릿? "
" 아니, 그거 내 초콜릿. 손 치우지? "
여전하다, 둘은. 티격대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절로 한숨이 나온다. 여러 종류의 반찬과 고기를 앞에 두고서도 도무지 입맛이 나지 않아 젓가락에 손도 대지 않았더니 수정이가 사뭇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김태형도 더불어서.
" 무슨 일 있었어? "
" 예를 들면 전정국이랑 싸웠다든지. "
" 왜, 그 눈치 없는 놈이 또 뭔 짓 했어? "
" 예를 들면 여자한테 초콜릿을 받았다든지. "
" 응……. "
" 받았어? "
" 진짜? "
아무 생각 없이 수정이 옆에서 거들며 입을 열던 김태형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수정이가 고기를 굽던 집게를 소리내어 탁 놓더니 큰 소리로 소주 한 병을 시킨다. 곧 김태형이 따라 큰 소리로 맥주 한 병을 시킨다.
수정이는 내 앞에 소주잔을 놓고 소주를 따라주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 전정국이 모르고 받은 거 아니야? 걔 눈치가 없어서 오늘이 발렌타인데이인 것도 모를걸? "
" …몰랐겠지… "
내가 오늘 느낀, 아니, 며칠 전부터 차근차근히 느꼈던 모든 감정을 말하기엔 감정이 너무 벅차올랐고, 사람이 너무 쪼잔해 보였다. 여자에게 초콜릿을 받아서가 아니라, 늘 전정국이 신경을 쓰던 내가 모르는 그 여자에게 초콜릿을 받아서라는 것. 가끔 나와 있을 때에도 그 여자와 통화를 했다는 것. 그리고.
울컥하는 마음에 소주를 들이켰다. 김태형과 수정이를 만나러 오기 전에 버스에서 인스타를 하다가 우연히, 아주 우연히 그 여자애의 인스타를 보게 되었다. 누가 나와 그 여자애 사이에서 친목질을 하고 있는 건진 몰라도, 돋보기에서 보이는 전정국의 모습이 낯설어 눌러서 확인했는데, 그 여자애 인스타더라. 98년생 전영은. 귀엽게 생겼고, 조금 과장을 더하자면 예쁘게도 생겼다. 서포터즈 뒷풀이 때 찍은 사진이 분명한 게, 술병 여러 개가 보였고, 두 볼이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전정국이 무심하게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었고, 그 해쉬태그. 해쉬태그 잘생긴우리조장오빠. 우리 조장 오빠. 우리. 우리 오빠.
" 전정국 나쁜놈… "
" 나쁜놈이네. "
" 나 잠깐 화장실 좀. "
수정이는 나를 김태형에게 맡기고 잠시 자리를 떴다. 술이 들어가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소주를 따라주는 김태형을 저지했다.
" 나 내일 출근해야 해. "
" 어른 다 됐네, 김아미? "
" 어른은 개뿔…… 이 나이 먹도록 질투나 하고 있는데… "
김태형은 웬일로 말 없이 웃으며 제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더라. 곧 돌아온 수정이가 의자를 끌어 앉으며 다시 집게를 잡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둘은 내가 제 분에 못 이겨 다 털어놓을 것을 분명 알고있다. 그래서 안 묻는 거다. 또 괜한 고집이 발동했다. 정말 아무것도 묻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 얘네도 날 쪼잔하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 또다시 울컥 차오르는 분함과 억울함, 그 사이 무언가의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난 아주 뻔하게도 입을 열기 시작한다.
" 나 진짜 너무 짜증 났어. "
" 그랬어? "
" 아니, 너무 짜증 나. "
" ……. "
" 전정국, 걔. 정국이가… "
" ……. "
" 정국이가… "
" ……. "
" 정국이가 걔 만나는 거 싫어. "
앞에서 김태형과 수정이가 웃음을 참는 게 눈에 들어왔다. 웃지 마. 짧고 굵은 신경질에 둘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헛기침을 하는 김태형은 아직 웃고있는 것 같기도 하고.
" 내가 진짜 쪼잔해 보이는 거 알거든? "
" 아니야, 아니야. "
" 그래, 무슨 쪼잔이야, 이게. "
" 내가 그래서 정국이한테 말을 못하는데… 너무 쪼잔해 보일까 봐… 나한테 질릴까 봐… "
" 야, 또 무슨 그런 생각을 하냐, 넌. "
" 그래, 전정국이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
" 아씨, 조용히 좀 하고 들어봐. "
전정국이 나를 좋아한다는 김태형의 말에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다. 그 여자애가 떠올라서.
" 전정국이 서포터즈 하는 거 알지. 우리 회사에서 하는 거. "
" 알지. "
" 그래서 나랑 진짜 자주 못 만나는데, 자꾸 나랑 만날 때마다 거기서 만난 어떤 여자애랑 통화를 하는 거야… "
" ……. "
" 다정하게 영은아~, 막 이렇게 부르고. "
" 전정국이 잘못했네. "
" 그치. 진짜… 전정국 통화 목록엔 항상 내가 아는 사람밖에 없었는데, 그게 너무 싫어. 나 진짜 이기적인 거 아는데, 그래, 솔직히 내 통화 목록에도 전정국이 모르는 사람들 투성인 거 나도 인정해. 인정하는데, 난 그냥…… 아, 진짜 모르겠다. "
" ……. "
" 진짜… 나는 정국이가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만 있었으면 좋겠어. "
" ……. "
" 그 범위를 벗어나려고 하니까 너무 괴로워. 짜증 나고, 화나고, 막 그런다? "
" ……. "
" 나 진짜 바보 같다. "
" ……. "
" 그래도 난 걔가 너무 싫어. 너무 거슬려. 인스타에 정국이 사진 올려서 우리 오빠라고 하는 것도 싫고, 정국이가 걔한테 성 안 붙이고 이름만 부르는 것도 싫고, 정국이가 걔랑 둘이 만나는 것도 싫고, 걔가 직접 만든 초콜릿 준 건 더 싫고, 걔한테 고백받은 건…… 진짜, 너무, 너무, 너무 싫어. "
마지막엔 울음을 겨우 참았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차가운 손바닥으로 뜨거워진 두 눈을 막았다. 그때였다. 커다란 손이 내 뒷머리를 따뜻하게 감싸는 동시에 쓰다듬은 것은.
" 말을 하지. "
" …전정국…? "
" 왜 말을 안 해. "
" ……. "
" 속상하게. "
전정국이었다.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전정국은 내 눈이 조금 붉어진 것을 보고는 살짝 웃더니 손을 잡아왔다. 불과 몇 시간 전, 내 앞에서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그 애에게서 받은 카드를 집어넣는 전정국이 밉다 못해 싫기까지 했는데, 반짝이는 그 눈과 마주치자마자 마음이 녹아버린다. 자존심이 상해 괜히 씩씩대며 얼굴을 찡그리면서 눈을 피하는데, 전정국이 고개를 돌려가며 집요하게 눈을 마주쳐온다. 보고 싶던 그 얼굴에, 웃음이 삐져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곧 피어나는 싱그러운 웃음을 본 전정국이 그제서야 마음을 놓은 듯 저도 환하게 웃더라.
" 김태형, 동작 그만. "
전정국이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연 건 다름 아닌 김태형 때문이었다. 김태형이 내가 그들에게 건넨 쇼핑백을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뒤적거리는 걸 본 전정국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원래부터 제 것이던 초콜릿을 회수하려는 것이다. 전정국에게 초콜릿을 넘긴 김태형이 울상을 짓는다.
" 이거 내 거 맞지. "
" 응… "
" 잘 먹을게. "
전정국이 예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해온다. 꼭 소중한 걸 받은 것처럼 쇼핑백을 품 안에 꼭 끌어안은 전정국을 보면서 자존심을 꺾었다. 얘 앞에서는 어떤 날도 세우지 말아야겠구나. 괜한 고집을 부리지 말아야겠구나. 어쭙잖은 질투도 하지 말아야겠구나. 올곧게 하나만을 바라봐주는 걸 알면서도 세운 괜한 자존심에 미안함을 느끼며 힘을 주어 전정국의 손을 잡았다.
*
전정국의 서포터즈 활동은 끝이 났다. 전정국이 바라던 최우수상은 받지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협동상을 받았다. 그 덕에 조별 뒷풀이비로 20만 원을 받은 전정국은 뒷풀이에 기어이 나를 불렀다. 나 없이는 뒷풀이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여자애가 있는 뒷풀이에 전정국을 홀로 보내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라 눈치 없이 잠시 끼었다가 떠나기로 했다.
" 아, 정국이 여자친구분? 말씀 많이 들었어요. "
" 형이 누나 얘기 엄청 했어요. 거의 팔불출. "
생각보다 조원들은 나를 반겨주었다. 스물다섯 살의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스물하나의 동생들까지. 그 여자애의 얼굴은 쉽게 알아봤다. 인스타에서 미리 본 덕도 있겠지만 전정국을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더불어 나를 보는 눈빛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나에 관한 다양한 칭찬에 샐쭉 웃으면서 전정국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전정국의 손을 잡기도 하고, 팔짱을 끼기도 하고, 취기가 조금 오른다는 이유로 어깨에 얼굴을 기대기도 하고. 물론 그 애를 의식해서 한 행동이었다.
" 언니랑 오빠는 언제부터 만났어요? "
한참 조용하던 그 애가 꺼낸 첫 마디였다. 그 애의 질문에 조원들 모두가 궁금했다는 듯이 우리 둘을 쳐다보더라. 뚱한 표정으로 나와 전정국을 번갈아 쳐다보는 그 애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 거의 3년? 좀 됐지. "
" …과에서 처음 만난 거예요…? "
좀 더 생각이 필요한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전정국을 처음 만난 그때부터 떠올리자니 꽤 오랜 시간을 건너야 했다. 전정국을 처음 만난 그때가, 그러니까…
" 아니, 고등학교 2학년 때. "
" 와, 대박. "
" 형, 누나 고등학생 때부터 좋아한 거예요? "
" 어, 열여덟 살 때부터. 내가 많이 차였지. "
머리 위로 물음표가 하나 떴다. 우리 처음 만난 게 열아홉이었는데. 한껏 달아오른 이 분위기를 굳이 깨고 싶지 않아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래, 뭐, 1년 차이 정도야.
어느새 조원들 사이에서 생글생글 웃고있는 전정국을 쳐다봤다. 낯선 사람들에 섞여있는 전정국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아주 익숙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 속에 있는 네 모습은 이렇구나.
우리의 연애 스토리 이후엔 계속해서 러브샷이 이어졌다. 나와는 다르게 술이 센 전정국은 연속해서 술을 마셔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이미 두 볼이 뜨거워진 나는 더 마시다간 다음날 숙취가 장난이 아닐 것 같아 찬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가게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인영이 보였다. 한참 전에 바람을 조금 쐬고 싶다며 나가던 그 애다. 이미 오른 취기에 굳이 피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 애 앞에 따라 쪼그려 앉았다. 그 애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곧 시선을 땅으로 떨어트린다. 적막이 이어지고, 입을 뗀 건 그 애였다.
" 언니 S기업 다니신다면서요. "
" …네. "
" ……. "
" ……. "
" 오빠가 그래서 S기업 서포터즈 하는 거래요. "
" ……. "
" 언니랑 같은 회사 갈 거라고. "
누군가가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퉁 하고 치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애는 코를 살짝 훌쩍이며 영혼 없이 한마디 툭 던지더니 곧 몸을 일으켜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 언니랑 오빠랑 잘 어울려요. "
그 애가 들어가고 난 후 생각에 잠겼다. 전정국이 우리 회사를 들어오려고 한다는 것. 그래서 서포터즈를 한다는 것. 확실히 S기업 취직을 위해서 자회사 서포터즈를 하는 게 크게 도움이 된다고 들은 적이 있다. 비록 나는 서포터즈 활동을 놓쳐서 아쉬워했던 적이 있었지만 우연히 좋은 기회가 생겨 인턴십 선발에 성공하게 되었고. 전정국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니, 전정국의 입장은 단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았다. 내가 취직한 상태에서 전정국이 본인의 미래에 대해 얼마나 큰 불안함을 가지고 있을지, 얼마나 뒤쳐진다고 생각했을지. 미안함과 후회가 동시에 몰려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 멍청이… "
" 누가. 나? "
무심결에 혼잣말로 중얼거리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등장한다. 마침 전정국을 생각하고 있던 터라, 제 말하면 온다는 호랑이의 등장에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듣기 좋은 웃음 소리가 퍼졌고, 전정국을 밉지 않게 흘겼다.
그 애에게서 들은 말은 굳이 묻지 않았다. 꼭 전정국의 속마음을 내가 모두 알아야 하는 법은 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그게 독이 될 때도 있었고. 전정국이 세운 마지막 자존심을 굳이 무너뜨리고 싶지도 않았다. 전정국은 가만히 내 옆을 지켰다. 춥지 않냐며 내 어깨를 감싸주었고, 제 손과 내 팔뚝을 마찰시켰다.
" 아, 맞다. 우리 열아홉 살 때 만났는데, 어떻게 그걸 헷갈려? "
" 난 너 열여덟 살 때 봤는데. "
" 어? "
" 버스에서. "
" 버스? "
" 있어, 그런 게. "
전정국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궁금해하는 내 눈을 애써 피하려는 듯, 웃고만 있는 전정국의 옆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전정국의 서포터즈 활동 내막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정국은 알리고 싶지 않은 게 또 있나 보다. 전정국의 볼을 쿡 하고 찔렀다. 전정국이 살짝 눈을 내려 나를 쳐다본다.
" 진짜 말 안 해줄 거야? "
전정국이 눈을 위로 올려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웃어버린다. 입을 삐죽 내밀며 전정국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 말도 안 해주고. "
내 어깨를 조금 더 단단히 끌어당긴 전정국이 곧 고개를 숙여 삐죽 나와있는 내 입술에 소리내어 짧게 입을 맞춘다. 밖에서는 듣기 드문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으면 전정국이 개구지게 웃으며 내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는다.
" 귀여워서 어떡하냐, 진짜. "
" 네 눈에만 귀여워. 어디 가면 징그럽대, 다들. 우리 엄마만 봐도… "
" 사랑해. "
내 입술을 다시금 막은 건 전정국의 입술이었다. 이번에도 얄밉게 소리내어 짧게 입을 맞췄다 떨어지는 전정국의 입술에 잠시 기분이 묘해졌다. 뭐야, 지금 이거. 내 벙찐 표정에 전정국은 웃으며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더니 곧 고개를 숙여 이전보다 깊게 입을 맞춰온다.
전정국의 손은 내 뒷머리를 단단히 붙잡았고, 내 손은 전정국의 후드티 어딘가를 꽉 쥐고 있었다.
//////////사담//////////
아미와 정국이는 그렇게 같은 회사에 입사해 꽁냥꽁냥 사랑을 나눴다는 후문이-----------------------
제가 생각했던 대로 발렌타인데이에 맞춰서 글을 올릴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진짜 딱 발렌타인데이가 다가오니까 꼭 번외편을 그때 올리고 싶어서 많이 생각했거든요 (^ㅁ^)
다들 즐거운 발렌타인데이 보내시고 행복하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