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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락비/지권] Find love in your song 09 |
귓전을 파고드는 달갑지 않은 목소리에 지호는 핸드폰을 잠시 귀에서 떼었다. 액정위로 선명히 비치는 세 글자 ‘아버지’를 확인한 지호는 인상을 팍 구기고 다시 전화를 받았다. ‘잘 지내고 있어요.’ 좁혀진 미간처럼 부루퉁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니,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한숨을 쉰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대체 언제 철들래.’ 무작정 노발대발 화만 내진 않으시는걸 보니 어머니가 분명 옆에서 듣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지호는 말했다. ‘그렇게 반대하신다고 제가 음악을 관둘 것도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등을 구부정하게 굽히고 두 다리를 끌어 모은 자세로 앉은 지호. 아버지는 잠시 동안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가만히 핸드폰만 귀에 가져다 댄 채로 침묵하던 지호가 말했다. ‘할 이야기 없으시면 끊어볼게요.’
“네 형 들어온다.”
종료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낮은 음성이 다시 들려온다. 아버지는 형이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지호의 눈이 놀란 듯 잠시 커졌다가 이내 무슨 이유에선지 다시 잔뜩 찌푸려졌다. 하. 잠시 코웃음을 친 지호는 핸드폰에 대고 이야기했다. ‘정식으로 실무경험 쌓으려고 7년 만에 컴백하나보네요. 잘 됐네요. 형이 있으니까 아버지도 좀 더 편해지시겠죠.’ 일부러 삐딱하게 나가는 것 같은 지호의 말투가 듣기 싫었던 건지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은 도중에 말을 끊은 아버지가 답했다.
“내일 모레, 오후 두시에 도착이다. 모처럼 가족끼리 갖는 식사자리니 괜히 어설픈 반항이랍시고 삐딱하게 굴지 말고 얌전히 집으로 와.”
“아- 대체!”
아, 대체 형이 뭔데. 미처 다 뱉지도 못한 말은 먼저 끊겨버린 전화에 끊겨 핸드폰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조용한 방 안 가득히 지호의 못 다 한 말이 메아리치는 것만 같다. 지호가 조금 열이 받았다는 걸 눈치라도 챈 듯, 영악한 애기는 슬그머니 몸을 사려 높은 책장 위로 도망쳤다. 아, 진짜. 형이고 뭐고 다 짜증나.
지호가 인상을 잔뜩 구긴 채 텅 빈 TV화면만을 쏘아보고 있을 때 샤워를 마친 유권이 욕실 밖으로 나왔다. 제 머리에서 떨어진 바닥위의 물기를 대충 욕실 문 앞에 놓인 깔개로 문질러 닦고는 성큼성큼 거실로 걸어온다. TV안에 아버지 얼굴이라도 있는 건지 지호는 계속 TV를 노려보고 있는데, 까만 브라운관 화면 앞으로 유권의 흰 나신이 쓱 하고 지나간다.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탈의한 유권의 몸에 지호는 깜짝 놀라 멍하니 놓고 있던 시선을 붙잡았다. 유권은 태연하게 TV옆 창가에 놓아둔 빨래 건조대에서 마른 빨래를 뒤적이며 속옷과 티셔츠를 고르고 있는데, 괜히 유권의 알몸을 의식한 지호만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허리에 매어둔 수건을 푸르고 속옷을 챙겨 입는데, 바닥에 툭 떨어지는 수건의 소리조차도 괜히 야하게 느껴져 지호는 어깨를 움찔거렸다.
"지호야? 이제 들어가서 씻어."
"아, 응. 응."
지호는 붉어진 얼굴을 가리려 고개를 뻣뻣이 반대편으로 고정한 채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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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씻고 밖으로 나오니 침대 매트리스 위에 앉아 기타를 조율하는 유권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유권이 버스킹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 처음 보는 기타를 만지는 모습이었다. 지호는 가만히 유권의 옆으로 다가가 매트리스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가까이 다가온 지호의 인기척에 유권이 살짝 고개를 돌려 지호를 쳐다보자 마주친 눈에 잠시 당황한 듯 한 지호가 물었다. '뭐 하는 거야?' 다시 기타에 시선을 고정한 유권이 답한다. '튜닝중이야. 오랜만에 노래나 써볼까 싶어서.' 그 말을 하면서도 기타를 만지는 일이 좋은 건지 유권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다. 아. 어쩌면 유권에게 기타란 나에겐 비트와도 같은 존재겠구나. 그 미소의 의미를 이해한 듯 지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뭐했어?"
저를 쳐다보며 가만히 있는 지호에게 유권이 물었다. 갑작스레 던져진 질문에 지호는 마치 초등학생의 일기처럼 답했다. '오늘, 그냥. 너한테 들려서 열쇠 주고서 녹음실에 잠깐 들렸다가, 친구 좀 만났다가…….' 그리고 몰래 너 보러 카페에 다시 들러서 두 시간 넘게 앉아있었어. 라고는 덧붙이지 않았다. 유권은 흐응- 하고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노래를 쓴다는 유권의 말을 듣고서 생각이 났다. 가사. 박경의 말이 맞았다. 반신반의했던 방법이었지만 내게는 통했나보다.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집중하려고 하니 가사가 술술 써졌다. 참 이상하지. 아무것도 모를 것이 분명한 유권의 옆얼굴을 바라보다 지호도 피식 웃어버렸다. 신기하다, 김유권.
기타 줄을 하나하나 튕겨가며 섬세하게 튜닝을 하던 유권이, 이내 조율이 다 끝났는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울리는 기타소리에 간간히 허밍을 하는 듯 했던 그 목소리는 노래가 진행될수록 분명한 목소리로 발음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비치는 깊어가는 밤하늘과 조용조용한 기타소리, 그리고 감미로운 유권의 목소리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때만큼은 지호도 유권의 노래를 감상하는 관객이었다. 처음 듣고 반했던 그 목소리가 부르는 노래를 듣다보니 아까 속에 담아두었던 화는 어디로 간 건지 눈 녹듯 사라진 것만 같았다. 유권의 입술은 달싹이며 고운 음색으로 노래하고, 아래로 내리깐 초승달 같은 눈과 고운 속눈썹. 지호는 유권의 노래를 따라 고개를 까딱였다. 책상위에 가만히 앉아있던 애기도 매트리스 위로 폴짝 뛰어내려와 유권의 곁에 사뿐히 자리했다. 조용한 작은 방 안에서 열리는 버스커 김유권의 공연. 관객은 오로지 저와 애기, 단 둘 뿐. 기타 선율이 흐르고, 사랑하는 어여쁜 이가 노래하는. 분위기가 참 좋은 밤이었다.
And I know you're shining down on me from Heaven Like so many friends we've lost along the way And I know eventually we'll be together One sweet day One sweet day Sorry I never told you All I wanted to say
***
[자냐.]
지호가 누운 머리 맡 위로는 벌써 둥그런 해가 떠 창문으로 햇살을 뿌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울리는 카톡소리에 부스스한 눈을 떠 핸드폰을 확인하니 한해 형이다. 그나마 이번엔 아버지가 아니라 다행이군. 지호는 자꾸만 힘이 빠져 핸드폰을 놓치려는 손으로 애써 자판을 두드렸다. [안자염.] 쀼쮸쀼쮸까지 보낼까 하다 힘이 들어 관뒀더니 바로 답장이 온다. [귀척 즐. 가사는?] 역시, 가사 다 썼냐고 물어보려고 카톡을 한 거였구만. 그래도 자신은 꿀릴 것이 없었다. 어제 가사를 다 써놓았기 때문에! 지호는 뿌듯함에 실실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걱정말아염! 다 썼져염 삉삉]
카톡을 보낸 뒤에 살짝 상체를 일으켜 매트리스 위를 바라보니 그 곳에 있어야 할 유권의 등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시간은 여덟시 반. 벌써 일어났나 싶어 허리를 일으켜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벌써 씻으러 간 거구나. 유권이 주인인 침대위에는 애기가 상전인 듯 버티고 누워있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도 같은 게, 유권이 된장찌개를 끓여 놓았나보다. 집안가득 퍼지는 맛있는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며 지호는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찌뿌둥한 몸에 힘을 주어 기지개를 펴고 허리를 돌리며 몸을 풀고 나니 유권이 욕실 문을 열고 나온다. 머리는 부스스하게 까치집을 지어놓은 자신과는 다르게 말끔한 유권의 모습에 지호는 괜히 멋쩍게 뒷머리만 매만졌다.
"일어났네. 찌개 끓여놨는데 밥 먹을래?"
"아, 너는? 먹었어?"
"난 우유. 나가봐야해서. 미안한데 혼자 챙겨먹어야겠다."
청바지에 다리를 끼워 넣으며 말하는 유권의 모습이 조금은 서두르는 것 같아 보였다. 지호는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곤 나갈 준비를 하는 유권의 등만 바라보았다. 오늘도 역시 부지런한 김유권은 일찍 집을 나선다. 음악을 하지 않고 회사원이 되었다면 지각 때문에 상사의 잔소리를 들을 일은 없을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지호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시 의자에 눌러 앉아있는 사이 머리도 대충 말린 유권이 가방을 매고 신발을 신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다 멈칫한 유권은 지호를 돌아보며 말한다. '애기 밥 좀 챙겨줘. 미안해!' 냉장고 곁 찬장을 가리키며 부탁한 유권은 다시 한 번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던 움직임을 멈춰서 뒤돌아보았다. '아, 열쇠 어제 새로 맞췄어. 니껀 저기 탁자위에 올려놨으니까 어디 나갈 거면 잃어버리지말구!' 유권은 그 말을 끝으로 정말로 다녀올게! 라며 집을 나섰다. 한 사람이 빠져나갔을 뿐인데 집안이 휑하니 빈 것 같다. 홀로 식탁에 앉은 지호는 왠지 쓸쓸해졌다. 같이 아침밥 먹고 싶었는데……. 우유 한잔을 아침삼아 현관을 나서던 유권의 뒷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 괜히 신경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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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생각보다는 괜찮네?"
한해가 내 준 작사라는 숙제를 당당히 끝마친 지호는 뭐 하나 꿀릴 것이 없었다. 녹음실에 들어가 미리 와 있던 한해에게 작사수첩을 위풍당당하게 척 하니 내밀고 어깨를 으쓱이자, 한해는 찬찬히 읽어보더니 '어쭈 제법인데-' 라며 말했다. 좋은 반응을 얻어낸 자신의 가사가 자랑스러운지 지호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모양새였다. 지호가 가사를 완성하자 작업은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었다. 일단은 가녹음을 떠서 회사로 보내야 한다는 말에 진행한 녹음은 오래 걸리지 않아 끝이 났다. 녹음 부스를 나온 지호는 어깨위의 짐을 조금 덜어냈다는 듯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와- 근데, 너 요즘 나 몰래 연애라도 하냐?"
"어?"
"맨날 가사라곤 스웨거 쎈캐, 난 잘났다. 뭐 이런 것만 쓰느라 사랑노랜 영 젬병이었잖아 너."
대체 어디서 이런 가사를 만들어가지고 온 거지. 진짜 얘 요즘 연애라도 하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한해를 보며 왠지 속이 뜨끔한 지호였다. '글쎄요~ 뭐라도 있나보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박경이었다. 웃는 얼굴로 녹음실 문을 빼꼼히 열고 이쪽을 바라보는 경. 이시간만 되면 꼭 여기 오더라 넌. 한해가 중얼거렸다. 그 사이 지호에게로 살금살금 다가온 경은 덮치듯 지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지호는 갑자기 백허그를 하는 경에게 놀라 떼어내려고 발버둥이었다. '야! 꺼져! 닭살 돋으니까!' 지호가 경의 팔을 힘껏 뿌리치자 경이 푸하하- 유쾌한 소리로 웃어댔다. '야 너 솔직히 말해라. 누구 있지?'
"누가 있긴!"
"안 그럼 어제 그렇게 나가버리고, 오늘 뚝딱 가사가 완성된 게 말이 되냐?"
저를 놀리듯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경에게 지호는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 괜히 잘못 입을 열었다간 경의 페이스에 말려 사실대로 다 불어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에. 사실 지호가 꼭 입을 열지 않더라도 경의 빠른 눈치는 모든 걸 다 캐치하고 있었다. 뭔가 점점 변해가는 우지호의 분위기는 12년 지기인 저가 모를 리가 없다는 걸, 우지호만 모르고 있다. 경은 슬쩍 말을 흘려 지호를 떠보기로 했다. 연애초보 우지호는 두 마디도 필요 없어. 딱 한마디만 흘리면 덥썩 미끼를 물 걸?
"그래? 뭐 여차하면 도움 좀 줘볼까 했더니."
"도움?"
오케이. 걸렸다. 월척! 그럼 그렇지. 의외로 귀가 얇은 우지호가 이 달콤한 유혹을 그냥 빠져나갈 리가 없었다. 경은 순수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면서도 묘한 경계를 품고있는 지호의 눈빛이 꼭 동생같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그럼- 도움. 팁이지, 팁.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버렸다.
***
"유주야, 이거 들어봐. 피쳐링 부탁했던 거 가녹음본 도착한 건데, 어떤 것 같아?"
디렉터가 건넨 CD를 재생하자 미리 깔려진 반주와 함께 지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길게 웨이브 진 갈색머리를 한 여자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지호의 랩핑을 듣다 이내 중지버튼을 눌렀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곁에 함께 앉아있던 디렉터는 눈을 그녀에게로 돌리며 '별로야?'라며 되묻는다. '아뇨. 괜찮아요.' 가만히 다리를 꼰 채 앉아있던 그녀가 조금 흥미롭다는 듯이 상체를 디렉터 가까이로 기울여 물었다. '누구예요? 언더랩퍼라고 하던데.' 디렉터는 CD를 뽑아 다시 케이스에 넣으며 답했다. '우... 우지호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아는 동생한테 추천받아서 한 번 맡겨봤어. 생각보다 괜찮지?' 단정한 외모의 그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물었다. 그러자 싱긋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였다.
"네. 생각보다 많이 괜찮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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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자까는 설날연휴인 오늘도 글을 씁니다 (부지런히 써서 사랑받을거예요 힣S2<)
분위기에 어울리는 브금고르기는 힘이드네요:(
다들 명절 연휴 가족들과 즐겁게 보내시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고 오세요~
추운데 감기 조심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