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처음부터
풍덩 빠지는 줄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 버리는 것인 줄을 몰랐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中-
남자친구가 바람피는 것 같아요
[정국이의 탄소]
W.하와이꼬질이
나는 기억력이 꽤 좋은편이다.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진건 아니지만,남들이 흐릿해 하는 기억들을 망설임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장점이라면 좋았던 기억들을 꺼내 현실을 묻어버릴 수 있는것 정도?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남아있는 내 기억의 첫시절은 4살즈음인 것 같다.
그때 기억이 또렷하다고 할 순 없지만,아버지가 계셨다는것은 확신할 수 있다.누군가 말해줬기 때문이 아니다.그냥 그 품은 아버지였다.
목소리가 낮았고,품이 넓었고,쓰다듬어 주던 손이 참 컸었더라는거.그게 기억난다.
그런 아버지가 5살이 되던 해,
돌아가셨다.
위암이라 그랬다.
그때 난 정확히 죽음이라는게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했다.그저 그날 이후론 아버지를 볼 수 없었고,엄마가 매일 밤 울었다는것.
그게 어린아이의 무서운 감각에 닿았을 뿐이다.
어린 나는 흐릿한 종이 한 구석에 담겨져 있는 아버지를 품 안에 넣고서도,모순적이게도 점점 잊어갔다.
그래선가 난,내가 그랬던 것처럼,누군가에게 쉽게 잊혀질까 그게 두렵다.
탄소와 처음 말했던건 유치원생 시절.
그때부터 웃기고,오지랖 넓고,막무가내인건 똑같았었다.
성탄소는 낯가리고,경계심 많은 나를 챙겨다닌 유일한 친구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로 진학하자 지도 여자라고 다른 여자애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속내를 표현하는게 서툴렀었던 나는 성탄소를 붙잡으려 괴롭히기도 참 많이 괴롭혔었다.
탄소는 아직까지 이 얘기를 꺼내면서 치킨을 뜯어내곤 한다.
탄소와 어색히 멀어진 중학교 시절 3년의 기억은 아주 또렷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뽀로퉁하게 정면만을 응시하는 탄소를 항상 뒤에서 보고 있었으니깐.
그게 참 애매했던 것 같다.
옆집이니깐,초등학교 동창이니깐,동갑이니깐.말걸고 싶은 이유는 끝없이 적을 수 있을만큼 많은데 원망스럽게도 항상 입을 열려고 하면 각자 집 앞에 도착한 상태였다.
학교에서 오늘 넌 뭐했어?너 축구하다 무릎다쳤지?
속에 맴도는 질문들과
어느 순간 점점 나보다 작아보이는 뒷모습부터
성탄소 볼 한가운데 난 자그마한 뾰루지,심지어는 아기같이 삐져나온 잔머리까지 궁금한게 참 많았는데 말이다.
성탄소와의 제대로 된 접촉은 고등학교때 이뤄졌다.
등굣길 앞서 걸어가는 너의 새 교복을 보고 같은 고등학교라는걸 확신할 수 있었다.뭐랄까,약간은 들떴었던것 같다.
그나마 아는 사람이라서 그랬었던 걸까?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에 도착해보면,역시나 뭔가 어색하다는 표정으로 자리 잡은 니가 보인다.아,우리 같은반이네.
안녕? 너 나 알지? 사탕 먹을래?
어떻게 말을 붙일지 10분은 고민했었다.
그렇게 고민해서 한 병신같은 첫마디는.
"야 멧돼지"
"...뭐 이새끼야??"
죽일듯 바라보는 탄소에 잠시 좆됐다며 당황했지만,불연듯 겹쳐보이는 유치원생 성탄소에 알 수 없는 웃음이 터졌었고 그에 탄소는 더 빡쳤었다고 후에 말해줬었다
그리고 내 고등학교 시절은 전부 성탄소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탄소는 정말 둘도 없는 친구였다.
성탄소와 함께 보낸 고등학교 생활들은
"사...랑..하는..그대..여..너의..존..잘..얼굴을..볼때마다...내..심장..은..아,좀 더 시적인 표현 없나?"
"야,무슨 도전장을 그렇게 어렵게 써"
"러브레터거든 병신아?"
"야..야..진짜 하지마..니 진짜 쳐맞는다에 박지민 새로 산 신발을 건다"
"거기에 왜 내 신발을 거는건데ㅡㅡ근데 솔직히 확실한거여서 화는 안난다ㅇㅇ"
"허,불쌍한 새끼들ㅋ러브레터 한번 못받아 보니 이러지.너넨 아직 남자를 잘 몰라~"
전교1등 김태형한테 홀딱 반해서 러브레터 쓰는 성탄소를 도와(?)주기도 했었고.
(김태형 랩하는 모습 보고는 마음 접었었다.)
그때 이해 안됐던 것 중에 하나는,도대체 김태형이 뭐가 잘생겼다는거지.
솔직히,내가 더 낫지 않나?
그리고 또 뭐였더라
"저기요 선배님;;저는 선배님 상대역이 되기 싫다고요;;"
"너 진짜 후회 안해?인생의 여주인공을 내가 너로 택했는데..?"
허우대만 멀쩡한 미친 연극부 3학년 선배를 남자답게 물리쳐주기도 했었지 참.
"저,선배님"
"?"
"성탄소 아시죠?"
"그녀는 내 상대역이야(뭐지 경쟁자인가)"
"성탄소가 그러는데 선배 등에 귀신 붙어있대요.걔가 곧 신내림 받을 애라서 정확하거든요.밤마다 꽹과리 두드리고 쌀뿌리고 난리라서 시끄럽긴 한데 신통해서 제가 믿고 전해드리는 겁니다.
저도 걔랑 다니면서 뭔가 어깨가 결렸었는데 어깨에 귀신 있어서 그렇다더라고요?걔랑 다니면서 뭔가 잠을 잘 못자기는 한데 기분탓이겠죠 하하"
"...........그거 실화니?(기독교)"
"ㅇㅇ물론입죠"
그날 이후로 연극부 미친놈이 자신을 미친년보듯이 한다며 찝찝해하는 탄소에게 말은 안했지만,내가 물리쳐줬다 이거다.
그래서 탄소에게 반했던 순간은 대체 언제냐고?
이 질문의 답이 참 애매하다.
나는 이상하게도 학창시절 내내 그 흔한 여자친구조차 없었고,호감가는 여자아이도 없었다.
아아,그치만 인기는 꽤 있었다 자부할 수 있다.성탄소는 눈꼽만큼도 관심 없었겠지만 나에게 접촉해오는 여자아이들은 꽤 많았으니깐 말이다.
이걸 성탄소만 모른다는게 참 문제다.
아무튼 그 시절,사랑은 뭐냐고 물었었더라면 나는 망설임없이
완전 뿅 가야지.심장이 터질것 처럼 두근되고 매일밤 생각나겠지.
라고 했을거다.
현실은 달랐다.하루하루 심장이 터질것 같은 애절함도,후광이 비춰지는것같은 착각도 들지 않았다.
처음은 가랑비에 어깨자락이 조금씩 젖어가는것에도 못미쳤었다.
어느날 나는 몽땅 젖어있었다 .
언젠가부터 내 일상에 자리잡았던 성탄소가 점점 걷잡을 수 없을만큼 커져
어느새 내 세상이 되어있었던 거다.
고2 여름날
"아 진짜 덥다"
정말 뜬금 없게도
"야 전정국"
가볍게 찡그리던 미간
"우리 여름방학때 뭐할까?"
어설프게 묶여져 있는 중단발의 머리
"이제 진짜 노는거 마지막이잖아"
날 바라보는 맑은 눈.
깨달았던건 그때였던것 같다.
그 순간의 감정을 인지할 수 없을정도로 너는 나에게 훅 들이닥쳤다.
깊숙히 숨겨져 있었던 마음이 드러나 버린것이다.
언제부터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을 할 수 없다.나조차 모르니까.
그저 전부터 쌓이고 쌓이던 마음들이 처음으로 나를 맞이하러 온것 뿐이니까.
첫사랑이 왔다는 걸 인지 못한채로,나는 첫사랑을 곁에 두고,첫사랑을 앓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로도 탄소와의 예전 관계를 유지했다.
그땐 화내고,웃고,울고,친구이기에 할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좀 더 소중했었던 것 같다.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탄소와 함께 시작해 탄소와 함께 마무리 지어졌다.
탄소가 알면 섭섭해 할수도 있겠지만 수능을 망쳤다며 펑펑 우는 탄소를 안아줄때 나는,
심장이 터질것 같았다.그 순간 난 내 자신을 달래느라 더 정신 없었다.
이거 성탄소가 알면 소름돋아 할지도 모르겠다.
내내 붙어있었던 고등학교 생활에선 몰랐지만,각자의 생활이 분리되기 시작하자.그제서야 탄소가 옆에 없는 시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시 수능공부에 임하는 탄소를 방해하기 싫어 언제나 독서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뿐이였다.그땐 그 시간마저 얼마나 좋았던지.
그러던 중 전정국 이 멍청한 새끼는 탄소와 함께 대학생활을 하자는 일념으로 황급히 입대했고.
나는 아직까지도 이 일을 후회한다.아니,어쩌면 평생.
탄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며 펑펑 우는 어머니의 목소리.어머니는 소중한 사람을 또 잃는구나 하는 좌절감과.
그 뒤로 들어찬 혼자 울고 있을 성탄소
재촉하는 뒷 사람들의 소리를 무시한채로 성탄소 번호를 급히 누르다,이내 내 손은 맥없이 떨어졌다.
한달 후에나 이 사실을 안 내 자신이,지금 당장 달려갈 수 없는 내 자신이,성탄소의 울음섞인 목소리를 들을 용기가 없는 내 자신이
끔찍할만큼 싫고,원망스러웠다.
머릿속에 들어찬 성탄소로 휴가까지의 시간들을 겨우 견뎠다.
"여보세요"
"돼지야"
"...어,왜?"
기운없는 성탄소의 목소리에 한없이 죄책감이 몰려왔지만
"나 휴가 나간다"
"아 그르냐.미안한데 나 마중은 못갈것 같은데"
"내가 성탄소한테 뭘 바라냐.나중에 보자"
아무렇지 않은척 해보이는 탄소를 깨트릴 수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집 앞에서 30분동안 죽어라 표정연습하고,자책하고,고민하다
답지않게 초인종을 눌렀고.이윽고 등장한 탄소의 모습은 나의 두 눈을 아프게 했다.
"ㅋㅋㅋㅋ왔냐?"
반절이나 더 작아진 체구가 그동안의 시름을 대신 말해주는 듯 했고.
여전히 맑은 두 눈은 간절하게 도움 요청을 하고 있었다.
너 내가 밉지 않았어?
"그래 군바리 왔다"
미안해
"그러니깐 밥먹자"
이제 곁에 있어줄게
위로하는 말 한마디 못한채로 탄소 집을 나갈 시간이 되고,
엉거주춤히 신발신던 내가 할 수 있었던건 그저
"성탄소 나 간다"
"그래 잘 가라.군바리야"
".........밥 잘 챙겨먹어라"
투박한 말투로 일상을 되돌려주는것.
그 순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보이던 탄소는 황급히 나를 내몰았다.
그 후 내가 한 일은 닫힌 현관문 틈새로 들려오던 너의 울음소리 곁을 밤새 지키는 것 .
그렇게라도 괜찮아지길 빌었다.
탄소는 강한아이니깐.
다음 해 겨울,대학에 붙은게 좋아서 흘리는건지,그 동안 참았던 눈물을 이렇게라도 내보이는건지.
탄소는 펑펑 울면서도 내 앞에서 활짝 웃어보였다.
그 순간
"ㅠㅠㅠㅠㅠ내 20살ㅠㅠㅠㅠ21살ㅠㅠㅠㅠ다 어디로ㅠㅠㅠㅠ감?ㅠㅠㅠㅠ"
"성탄소"
참으로 겁이 났지만,
"ㅠㅠㅠㅠㅠ내가ㅠㅠㅠ못갔던ㅠㅠㅠㅠ맛집ㅠㅠㅠㅠ다 갈거고"
니 옆에 언제까지고 머물고 싶었다.
"나랑 연애할래?"
지켜주고 싶었다.
탄소야,너는 나한테 참 소중한 사람이야.깊숙한 곳까지 물들여진 그런 사람.
어린시절 엄마를 보며 깨달았던게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서 떠난다는건 참 가슴아픈 일이라는거.남은 사람들의 마음에 평생 메워지질 않을 구멍이 생긴다는 것.
그러지 않으려해도 남은 엄마를 보며 문득문득 아버지 원망을 했던것 같다.
철없었던 옛날 생각이 그 순간 다시 떠올랐고,나는 다짐했다.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탄소를 혼자 두는 일 따윈 없어야지.절대.
내 세상이 되어준 성탄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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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하와이꼬질이에요><
주말이 시작하자마자 열심히 적어보긴 했는데,독자님들이 많이 기다리신것 같아서 마음에 많이 걸리네요ㅠㅠㅠ
이번화는 보시다시피 정국이의 시점이에요!분량조절 실패로 다음 몇화에도 정국이 이야기가 계속 될것 같아요ㅎㅎㅎㅎ
항상 읽어주시구,댓글까지 달아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너무 감사하구요,저한테 부탁하고 싶은거나,궁금한게 있으면 언제든지 질문해주세요!
능력이 닿는대로는 모두 해결해드리겠습니다!!그리고 암호닉 신청을 해주시는 정말 고마운 독자님들이 몇분 계시더라구요!!암호닉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리고 잊을수 없는 우리
[이슬이],[난나누우],[꼬취꼬춰],[홉월드],[보라색하늘],[존경],[국이네],[허쉬초콜릿]
[김다정오빠],[쿠키],[자연스롭겡],[유자몽],[설팅],[몽구],[돼지고기만두]
[오빠아니자나여],[몽9],[쩡구가]
님들!!너무 사랑합니다♥즐거운 주말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