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구한다고?"
"집사 알바."
"드디어 미쳤네. 야. 내가 너 평범하지 않은 건 알았지만 오늘로 또 한번 느낀다."
"시끄러."
무덤덤한 윤기와는 다르게 석진이 얼굴까지 붉혀가며 말한다. 요즘 세상에 누가 남의 집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고양이를 보겠냐고.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자리에 앉은 윤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어 보인다. SUGA. 윤기의 회사 안 닉네임이 검정 플라스틱 판에 적혀있다. 윤기가 다니는 게임회사는 채 50명이 되지 않는 회사로, 사업 주제와 맞게 자유롭다.
"너 진짜 아무나 들이려고 그래? 너 설탕이 아낀다며!"
"아끼니까 구하는 거라고."
"난 도통 네 생각을 알 수가 없다. 우리 오뎅어묵이를 대입해서 생각해도.."
"형, 일 좀 하자."
윤기에게서 쉽게 들을 수 없는 '형' 소리에 석진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알아서 해라.. 하며 씁쓸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복잡한 프로그램을 모니터에 띄워놓은 윤기는 집중이 잘 되지 않는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는다. 그때 울리는 핸드폰 알림에 화면을 확인하니 '고양이 돌봄 알바 지원합니다!'라는 문자가 떠있다. 잠시 생각하던 윤기는 곧바로 외투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슈가님 어디가요??"
"먼저 퇴근합니다."
야 민윤기! 너 나랑 저녁 먹기로 했잖아! 뒤에서 석진이 뭐라고 소리치든 말든 망설임 없이 회사를 나서는 윤기다. 자신의 검은색 SUV 차량에 올라탄 윤기가 차를 출발시켰고, 이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핸들을 잡은 왼손 손목에서 윤기와 비슷한 분위기가 풍기는 시계가 반짝거렸다.
"여보세요?"
여주는 카페를 하나 운영하고 있다.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지만, 시그니처 메뉴들이 인기를 얻어 장사는 정말 잘 되는 그런 카페.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니 아르바이트생들도 알아서 척척이라 할 일이 없어졌다. 오늘도 무료하게 노트북만 들여다보는데, 마침 눈에 딱 띄는 문구. '고양이 집사 구합니다.' 알바 공고였지만 고양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여주는 관심이 확 불타올랐다. 하루 종일 고양이를 돌보다니!
'네. 집사 알바 공고 올렸던 사람인데요.'
"아, 안녕하세요!"
'혹시 오늘 시간 되시나요. 면접을 봐야될 것 같아서.'
"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전화를 끊고, 참 성격도 급하다 생각한 여주다. 아마 자신이 첫 지원자일 것 같았는데 이렇게 바로 연락이 오다니. 어깨를 한번 으쓱인 여주가 상대방이 불러준 주소의 위치를 찾아본다. 전화를 끊은 윤기는 곧바로 집으로 차를 운전했다. 사실 윤기가 서두르는 것은, 새로운 게임 프로젝트의 시작 때문에 집을 오래 비워 혼자 있는 설탕이를 위한 것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설탕이의 외로움을 없애주고 싶어서. 무덤덤한 성격과 다르게, 설탕이에 대한 애정은 놀랄 만큼 대단했다.
"고양이는 키워보신 적 있으세요?"
윤기네 오피스텔 앞 카페. 여주는 오랜만에 자신의 카페가 아닌 다른 카페에 와서 이리저리 둘러보기 바빴다. 윤기가 주문한 커피를 가지고 와 여주와 자신 앞에 내려놓은 라떼와 아메리카노. 그들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메뉴였다. 간단한 통성명 후, 질문을 하자 그제서야 윤기를 쳐다본 여주가 대답했다.
"네. 본가에서 키우고 있어요. 그래서 고양이 정말 좋아하고, 먹이면 안 되는 거, 배설물 치우는 거 다 할줄 알아요."
"하루종일 하는 데 괜찮으세요?"
"네! 제가 카페를 하는데, 알바생들이 알아서 척척이라 할 일이 없거든요."
처음 윤기를 본 사람들은 차가운 얼굴에 안 가리던 낯도 가리기 마련인데, 여주는 그런 기색 하나 없이 tmi가 될만한 이야기까지 웃으며 늘어놓는다. 그 밖에도 간단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물론 알바와 고양이에 관한.
"그럼 제 집에 가시죠."
"..에?"
"..왜 그러십니까?"
"집에는 왜.."
왜라니. 자리에서 일어나 정장 자켓 단추를 채우던 윤기는 왜 저런 걸 묻지, 생각했다. 당연히 제 집에 있는 고양이를 돌보는 알바니 고양이를 실제로 보고 얼굴을 익혀야 할 것인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윤기의 모습에 여주가 약간은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한동안 쳐다보다 그 표정 속의 의미를 알아챈 윤기가 아. 하고 말을 이었다. 자신이 말을 이상한 뉘앙스로 했다는 것을 알아채진 못하고.
"고양이가 집에 있습니다. 거기서 봐주셔야 해서."
"아.."
잠시 이상한 오해를 할 뻔한 여주는 머쓱해하며 윤기를 따라 일어섰다. 윤기가 차 키 버튼을 누르자 카페 바로 앞에 세워진 차의 불빛이 켜지며 삐빅, 소리가 난다. 타세요. 윤기의 말에 조수석에 올라타 벨트까지 야무지게 멘다. 금방 도착한 윤기의 집은, 주인을 닮아 심플하고 모던한 느낌이 가득했다.
"설탕-"
여주가 고양이는 어디 있나, 물어보려는데 방금까지만 해도 무표정하던 윤기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것도 눈이 사라질 만큼의 함박웃음. 설탕- 하고 부르니 느릿느릿 걸어 나오는 연갈색의 고양이 때문이었다. 애옹, 하고 작게 울더니 어느새 팔을 벌리고 앉은 윤기에게 안긴다. (엄밀히 말하면 윤기가 안아든 것이다.) 그 순간 여주와 눈이 마주친 윤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굳힌다.
"얘가 설탕이에요?"
"네."
"안녕- 너 진짜 예쁘다."
손을 흔드는 여주를 별 반응 없이 빤히 쳐다보는 설탕. 반쯤 뜨고 있어 가로로 긴 눈을 보니 주인과 참 닮았다 생각한 여주다.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니 눈을 스르륵 감는 게 여주의 손길이 싫지는 않은 듯했다. 꼬리를 살살 움직이며 가만히 있는 설탕이를 윤기도 의아하단 듯 바라보았다.
"내일부터 일 하셔야겠는데요."
"네?"
"얘가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만지면 원래 엄청 울거든요."
말하고도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설탕이를 쳐다보는 윤기다.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 여주가 안아봐도 돼요? 하자 윤기가 조심히 설탕이를 건네준다. 설마 안겨서도 가만히 있겠나 싶어서. 설탕이를 조심히 품에 안은 여주가 설탕이와 눈을 맞춘다. 빤히 바라보던 설탕이가 별안간 손으로 여주를 꾹꾹 누른다. 금세 여주의 얼굴이 감격에 젖는다.
"헐 꾹꾹이..!"
"..오늘 왜 이러지?"
"설탕이가 저 마음에 드나 봐요!"
여전히 여주를 꾹꾹 누르고 있는 설탕이. 윤기는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한테도 잘 안 해주는 꾹꾹이를 처음 본 사람한테 해주다니. 하는 질투심 섞인 눈빛을 설탕이에게 마구 쏘는 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심조심 쓰다듬는 여주의 손길에 또다시 눈을 꼭 감는 설탕이다. 잠시 아무 말이 없던 윤기는 여주의 품 속에서 설탕이를 데려와 자신이 안는다.
"오늘은 이만 가보셔도 될 것 같아요."
"저 그럼 월요일부터 오면 되나요?"
"네. 열 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내일 뵐게요! 밝게 인사하며 나가는 여주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한 윤기는 품에 가만히 안겨있는 설탕이를 쳐다보았다. 겨드랑이 사이에 양손을 넣고 들어 올려 얼굴을 마주하니 귀찮다는 듯 솜방망이 같은 손으로 윤기의 얼굴을 누른다. 윤기가 계속 치워내도 계속해서 손을 올린다. 결국 포기한 윤기가 소파에 설탕이를 내려놓는다.
"설탕아."
"내가 주인인 건 알고있지?"
애타는 윤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늘어지게 하품만 해대는 설탕이다.
"여보세요?"
여주의 카페는 주말에 매니저가 나와서 일을 한다. 따라서 주말엔 마음 놓고 쉬는 날이었다. 월요일부터 출근하면 된다는 윤기의 말에 여주는 주말 내내 본가에 가 있으려고 했는데, 토요일 점심 즈음 전화가 걸려왔다. 설탕이의 주인 윤기에게서. 무슨 일인가 하고 받아보니, 오늘 오후에 잠시만 설탕이를 봐줄 수 있냐는 용건이었다. 여주는 본가에 가 있으려 싸놓은 간단한 짐을 잠시 내려보다, 곧 알겠다고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아, 오셨네요."
"네..에.."
윤기는 어제 봤던 정장 차림과 다르게, 편한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온 여주는, 윤기를 보며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묘한 감정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이 기분은. 온 세상의 귀찮음을 얼굴로 표출하고 있는 띠꺼운 얼굴로 후드티를 입고 있다니. 어제 정장 차림을 봐서 그런지 약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그 모습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 무덤덤한 표정으로 설탕이를 쓰다듬는 윤기가, 귀여웠다.
"근데 오늘 진짜 시간 괜찮으세요?"
"네! 주말에는 카페에 안 나가서요."
"..."
"원래 본가에 제가 키우는 고양이 보러 가려고 했었거든요. 우리 슈가 본지 좀 오래돼서."
"..네? 슈가요?"
네! 이름 비슷하죠? 설탕이랑. 해맑게 대답하는 여주에 기분이 조금 이상해지는 윤기였다. 그럴 만도 한게, 회사에서는 슈가님! 이라고 불리는 윤기였으니. 회사 사람이 아닌 여주 입에서 나온 '우리 슈가' 라는 호칭이 이상했다. 뭔가 자신이 고양이가 된 것도 같고. 윤기는 금세 여주 손을 타는 설탕이를 조금 서운한 듯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이제 회사에 다녀와야 할 것 같네요."
"아,네! 얼른 다녀오세요!"
"설탕아. 말 잘 듣고 있어야 돼. 알았지?"
윤기의 말을 용케 알아듣고 애옹, 하고 작게 우는 설탕이. 여주의 품에 안긴 설탕이가 현관에 서서 자신을 쳐다보는 윤기를 눈을 반쯤 뜬 채 바라본다. 그마저도 귀여운 것인지 다시 입동굴을 보이며 웃는 윤기다. 여주가 조심히 다녀오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자 윤기가 살짝 목례를 하곤 집을 나선다. 이러니까 꼭 부부 같네. 하는 낯선 느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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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랑 똑같이 생긴 냥이 키우는 윤기..
(코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