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t, too Much 03
"피곤해 보인다."
여름의 더위는 가시질 않았다. 해가 진 이후에도 습하게 달라붙은 머리카락은 떼어내느라 바쁘기 일쑤였고,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불필요한 것들에 체력을 쏟아 피로가 잔뜩 쌓인 채였다. 집 안은 그런 나를 배려하듯 미리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다. 냉수를 잔뜩 들이키고 나니 그제서 몸이 잔뜩 늘어지더라. 소파 위로 늘어진 몸, 머리카락. 냉수를 건네준 석진이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다 뭔가 발견한 듯 옆에 앉았다. 어깨 위에 뭉쳐서 내려온 머리가 눈에 띈 모양이었다.
"무슨 사건 사고야, 옷도 그렇고. 머리도 엉켜서 달라붙고."
"아, 이거."
흘린 커피 하며 주스에 엉킨 머리가 내 눈에도 들어왔다. 아, 그랬지. 이 상태로 집에 들어왔지, 나. 뭐하면 옷을 새로 사입고 와도 됐을 텐데. 살인적인 더위가 그럴 의지까지는 심어주지 못했나 보다. 제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석진이를 보면서 이전의 옷을 이렇게 만든 남자를 떠올렸다. 모를 줄 알았는데, 나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던 그 타투이스트 말이다.
편의점에서 본 적 있지 않느냐는 남자의 질문에 나는 그대로 멈춰 남자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 막상 알아보니까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 하기는 그렇겠지. 생각하기에 잊혀지기 쉽지 않은 시선이었겠지. 나 같아도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했을 텐데. 나는 아까와 달리 남자와 마주치던 눈을 거뒀다. 시선을 돌리니 어디에 두고 말을 이어야 할 지 몰라 괜한 행동으로 머쓱함을 가렸다. 뺨을 긁적이는 손. 혹시 기분 나쁠까. 슬쩍 눈을 한 번 바라보니 남자는 여전히 내 눈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일단 모른다고 잡아떼볼까.
"나, 알아요?"
"일주일 전에 마주쳤던 거 같아서요. 편의점 앞에서."
아. 확신하는구나.
역시 사과하는 게 맞겠다.
"그때,"
"그때, 나 계속 보고 있던데."
"…."
"나한테 무슨, 할 말 있었어요?"
할 말. 이건 확실히 태클일까. 나는 죄를 지은 사람마냥 주스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사과도 못하고 말문이 막혔다. 나는 남자를 보고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무슨 말이 하고는 싶었을까. 그 날의 일이 되새겨지자 기억을 천천히 더듬어 보았다. 늦은 한 여름의 새벽. 편의점에서 풍겼던 술 냄새와, 티셔츠 사이로 살짝씩 비치던 타투. 하얗게 내뿜으며 나오던 연기와 어우러졌던 남자. 젖었는지 새빨갛게 변한 눈. 나는 그 분위기에다 대고 할 말이라는 게 있었던 걸까.
아니, 그냥 신기해서였을 거다. 단지 분위기 하나에 홀렸다면 그 뿐. 당시의 기분을 할 말로 섞어서 풀어낼만한 재주는 없었다. 질문은 남자에게만 붙어있었고, 나는 드디어 그 물음표의 끝에 대답을 전했다. 고개를 젓는 것. 남자는 가만히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할 말은 없었어요."
그냥 당신이 신기하게 보였던 것이 다입니다.
"타투이스트 님이 신기해 보여서."
"슈가."
"예?"
"슈가라고 불러주세요. 타투이스트 활동명이야."
"아."
"제가 신기해 보였다고요."
이번엔 고개를 끄덕였다. 표현법이 이상했나. 사람을 동물원의 동물 보듯이 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의 이유가 신기해서라는 게. 납득이 안 갈 지도 모를 터였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는데. 지금이라면 단순히 스쳐서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 꽤 인상깊게 서로의 머리에 남았다는 게 새삼. 신기하더랬다.
"아프진 않았을까. 왜 술을 마셨지."
"…."
"그리고 왜 울었지."
"제가?"
"그게 다예요."
"울었을 리가."
남자는 무슨 소리냐며 가볍게 웃었다. 타투는 아팠고, 술은 마신 게 맞았지만, 그 날 울고 있지는 않았다고. 잘못 본 건가. 어쨌든 가장 중요한 남자의 기분을 망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럼 처음부터 모르는 척이나 하지 말지. 자신을 슈가라 소개한 남자는 사람을 관찰하는 게 나쁜 건 아니라는 말을 이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할 일이 남았다면서. 그리고 다음 번에 타투를 받을 땐 꼭 자신을 찾아 달라면서.
"아 그래. 머리는 안 자를 거죠?"
화 낸 게 아니니 너무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었을까. 남자는 웃는 얼굴을 하더니 일어나서 자신의 작업방으로 향했고, 남자를 따라 이어진 시선은 벽지에서 멈췄다. 눈을 감았다 뜨니 벽지는 익숙한 색으로 돌아와 있었고, 옆에는 에어컨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 익숙한 TV와, 화분. 고개를 돌리면 옆에 앉은 석진이가 손에 시원한 커피를 손에 쥐고 있었다.
"있잖아, 진아."
"응?"
"누가, 나더러 머리 기르면 예쁠 것 같다더라."
"누구, 친구가?"
"글쎄."
커피를 받아들었다. 아, 그거 내가 마시려고 타 온 건데. 차가운 얼음이 입술에 닿았다 떨어지니 찌푸린 인상을 편 석진이 입을 열었다. 남자한테 들었구나. 어깨를 으쓱였다. 모른다니까. 아무렴 어때, 그게 듣기 좋은 말로 남았으면 된 거지.
"그래, 마음에 들었으면 계속 길러."
일단 옷은 좀 갈아입자. 해탈한 듯 고개를 저은 눈 앞의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당분간 머리 가지고는 잔소리 안 하겠네.
Tat, too Much 03
1,2화는 인스티즈에서 자체 복구가 안 될 경우 개인적으로 복구시킬 예정입니다.
업로드가 늦어 죄송합니다.
3편의 길이가 짧은지라 이어 나오는 4편에서는 좀 길어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