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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전정국] 그대야 안녕 7화 | 인스티즈 

 


 

 

 

 


 

BGM - Nighty, My Luna (세레노) 


 


 


 


 


 


 


 


 


 


 


 

7화 

: 꽃잎 하나 


 

 


 

 


 


 


 


 


 


 

 "정수기, 정수기 요정!" 

 "그래?" 

 "..그게 끝이야?" 


 


 

 쉬는 시간, 무언가를 봤는지 헐레벌떡 달려와 앞문에서 다급하게 날 부르는 나영이. 정수기 요정은 가끔씩 물을 뜨러 나오는 정국이를 우리끼리 칭하는 말이었지만 자신의 말을 듣고도 달려갈 낌새가 없는 내 발이 의아한 나영이가 앞으로 다가온다. 난 어제 선생님이 아량을 베풀어 오늘로 미뤄준 오답노트를 완성해야만 했기에 곧바로 다시 샤프를 움직였다. 가까이 온 나영이는 이내 뭔가 알아차린 듯 경악스러운 기색으로 눈을 크게 뜨더니 눈썹이 꿈틀댄다. 급기야 입까지 틀어막는다. 


 


 

 "설마.. 포기한 거야? 왜? 욕을 너무 많이 해? 그래서 깼어?" 

 "아니." 

 "그럼 왜? 네가 생각했던 이미지랑 달라, 가까이서 보니까? 땀냄새도 나고 막 생각보다 잘생기진 않았어?" 

 "전혀." 


 

 

 땀냄새는 무슨. 정국이한테서는 교복을 매일 빨아입나 싶을 정도로 봄꽃 향기가 풍겨. 정호석이랑 투닥대면서도 욕 한 번 쓰는 걸 못 봤고. 아, 이제야 생각나는 게 있는데 어제 뒤에서 보니까 정국이 웃을 때 꽤 선명하게 보조개도 있더라. 정호석이랑 말장난을 하다가 웃음을 터뜨리는데 그 옆모습이 너무도 맑아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쿵대 바로 숙여버렸지만, 어느 기억보다 선명한 장면이었다. 주위를 밝히는 환한 웃음을 보고서 이걸 왜 놓치고 있었을까 싶다가도 웃는 걸 가까이서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 근데 가만히 듣다 보니 별안간 피어오르는 궁금증에 고개를 들었다. 


 


 

 "너는 네가 생각했던 거랑 다르면 맘이 식어?" 

 "음.. 보통은 그러지 않아? 난 그러는데." 

 


 

 생각해오던 이미지가 상상과는 달라 포기한 거냐는 나영이에 물으니, 보통은 그렇지 않냐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면 그냥 그것으로 될 일일 텐데 상대에게 무엇을 그리도 바라는지. 자신의 환상에 발목을 잡아두고는 그것과 다르면 흔히 '깬다'고 한다. 정국이가 완벽한 탓인진 모르겠지만 난 그냥 정국이의 모든 게 그 자체로 좋아서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이었다. 더욱이 무엇보다 정국이가 나서서 좋아해달라고 한 적 없기에 내 생각의 틀에 정국이를 가두는 건 나에게나 정국이에게나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물론 학원 다니고부터는 스스로도 정신을 못 차리게 좋아해서, 내가 그동안 정국이를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도 있다. 게다가 요즘은 또 좋아한다고 무작정 말을 걸어보기 어려운 노릇이기에 머리가 더 여유가 없었던 탓도 있고. 뭐 그래도 오늘부터는 걸어다닐 거니까 조금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는 상황이 차차 괜찮아지겠지, 은근한 기대도 품어보고서 괜히 심심한 발을 꼼지락댔다. 


 

 

 "대박. 그러면 이따 점심시간도 안 뛰어가?" 

 "응." 

 "와. 네가 이러는데도 진짜 포기한 게 아니라고?" 

 "아니래도." 


 

 

 내가 이렇게까지 소극적인 짝사랑을 하게 된 데까지 얼마나 복잡한 생각들이 날 괴롭혔는지 나영이는 모른다. 나영이한테 다 말해버리면 나보다 더 답답해하며 그냥 정국이한테 관심 끄라고 할 것 같아서 애초에 얘기를 안 꺼냈기 때문에. 하소연하고 싶은 맘은 굴뚝 같았지만 그 뒤에 밀려오는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은 오늘도 생기지 않아 그냥 입을 꾹 닫기로 한다. 그러자 턱이 벌어지면서 포기한 게 아니냐고 재차 물어대는데 그런 나영이 모습에 참새가 짹짹대는 게 떠올라 귀여워서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내 속을 어떻게 알겠냐마는 그래도 네 덕에 별 생각 없이 웃음이 나온다. 


 

 


 

 


 


 


 


 


 


 

 아직 꽤 선선한 저녁 바람에 기분이 괜찮아진다. 석식을 먹고 좀 일찍 나와 혼자 애써 슬프지 않다고 되새기며 걸은 지 몇 분 됐나. 시간은 6시 30분을 막 넘기고 있었다. 저번에 테스트 보러 갈 때 지금보다 좀 느리게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으니, 천천히 걸어도 늦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살짝 여유로워졌다. 음악도 듣지 않고 그냥 저녁 분위기를 느끼며 혼자 걸으니 머리도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역시 마음 정리하는 데는 산책만한 게 없나 보다. 그래, 뭐. 내가 피해주면 다 괜찮아질 일이니까. 단순해지는 사고회로에 발걸음도 가뿐해지니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주위에 두리번거렸을까, 저 앞의 편의점이 내 지갑을 끌어당겼다. 뭐라도 마시면서 갈까. 편의점에 가까워지자 내 발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얼음 컵과 아이스티에 시선을 뺏겼다. 얼음 컵이 잘 보이는 곳으로 진열된 거 보니 이제 여름이 오긴 하나 보다. 이번 여름은 안 더웠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며 아이스티와 얼음 컵을 계산하고 열심히 제조했다. 아이스티를 안 흘리고 옮기는 데 성공하고 나서야 빨대를 꽂고 밖으로 나오는데, 


 


 

 “키야아아.” 

 


 

 손을 얼릴 정도로 기가 막히게 시원한 음료수가 내 목을 타고 넘어가니 저절로 약수터에서 자주 들릴 법한 감탄사가 나왔다. 와. 진짜 시원하다. 일주일치 갈증이 날아가는 느낌에 기분이 좋다가도 갑자기 머리가 띵해오는 것 같아 잠깐 관자놀이에 손을 갖다 대는데, 그때 엄청 큰 경적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흉통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에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돌아보니 그 곳엔 버스가 있었다. 돌아본 찰나에 불법 주차된 차가 비키고 다시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가까워지는 버스 기사 아저씨의 얼굴이 아직도 험상궂다. 진하게 새겨져있는 미간 주름이 많이 언짢아 보이신다. 아까 그 차가 잘못하긴 했네. 안 그래도 다른 학교와 우리 학교를 들르는 노선이라 사람도 빽빽한데. 밖에서 봐도 후텁지근해 보이는 버스 내부에 나까지도 답답해져 시선을 돌리려는데 순간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 


 


 

 개미처럼 몸을 부대끼고 서서 가는 사람들과 달리 1인 의자에 앉아 무심하게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하는 윤기 형이었다. 인상 쓰고 있는 여러 사람들과는 다른 공간에 있는 듯 홀로 평화로워 보이는 윤기 형은 그렇게 시크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내부가 꽤 더워보이던데 본인은 덥지도 않은지 보송하게 하얀 얼굴이 선명하다. 이 시간에 학교에서 오는 방향인 거면 윤기 형도 자습하다 오는 건가. 이과여서 그런지 일단 급식실에선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가볍게 피어오르는 궁금증에 잠시 생각에 빠져있었을까, 근데 잠깐. 나 몇 번 안 빨았는데 아이스티 어디 갔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걸어오는 게 생각보다 일이다. 오랜만에 저녁에 혼자 걸으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하다 보니 걸음이 느려졌는지 어느새 촉박해진 시간에 끝에는 거의 뛰듯이 걸어왔다. 갈비뼈가 아프게 차오른 숨을 크게 내쉬며 시계를 보는데 6시 55분. 늦진 않았다. 아, 그냥 밥 먹고 바로 출발할 걸. 아까 석식을 먹고서 여유롭다고 큰소리 뻥뻥치며 5분 정도 나영이와 수다를 떨었던 내 자신이 너무 후회스럽다. 아직 무더운 날씨가 아닌데도 이마를 적셔버린 땀이 왠지 모르게 억울해 손등으로 쓱 닦아내고 조심스레 강의실 문을 열었다. 문이 작은 소리를 내면서 열리고 발을 들이려는 찰나, 내 호수에 톡 하고 떨어진 꽃잎 하나. 


 


 

 "..." 


 


 

 누구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정국이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내 맘이 죄 없는 누군가에 피해를 끼치면 안 될 일이라고 그렇게 아로새기며 혹시 마주칠까 손이 닿는 데까지 피해온 정국이인데.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네 눈에 내가 담기고 내 눈 또한 너를 가지니, 나에게만 향해있는 동그랗고 예쁜 시선을 오래도록 잡아두고 싶어졌다. 너를 계속 불편하게 하고 싶어지고 말았다. 멈칫 그 자리에서 서서 한 시간 같은 몇 초를 보내며 못된 맘을 품다가도 금방 눈을 피해버릴까 했지만 눈길을 거두지 않는 정국이에 나도 시선을 고정했다. 평소 같았으면 얼마 안 가 고개를 돌렸을 텐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시간이 긴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내가 차를 안 탄 게 궁금했던 건지. 단순한 의문일지는 몰라도, 그 큰 눈을 깜빡이며 자리에 들어가는 나를 쭉 보는 정국이 때문에 하마터면 정신없이 뛰어대는 심장 소리가 밖에까지 다 들릴 뻔 했다. 내가 뒤로 사라지자 그제야 거둬지는 눈길에 차분히 숨을 고르는데, 앉자마자 반갑게 아는 체 해오는 쌈박질 콤비다. 사람이 들어왔는데 본 척도 안 해주는 여자 둘, 남자 하나와는 달랐다. 


 


 

 "깨빵, 안녕!" 

 "​어디 있다 와?" 


 

 

 동시에 두 고개가 돌아간 광경이 놀라워서 속으로 웃음을 삼키는데 또 동시에 말하는 둘. 입꼬리에 웃음기를 달고 인사한 호석이와 웃음기 대신 물음표를 단 태형이. 아직은 내가 그리 익숙하지 않을 텐데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는 호석이가 새삼 또 고마워서 웃으며 안녕, 하니 흡족한 듯 자세를 돌려 앞을 본다. 그리고 남아있는 태형이의 물음표. 아무래도 오늘 내가 학원차를 타고 온 줄 아는 모양이다. 안 탔다고 정국이가 말 안 해준 건가. 아, 둘이 안 친해보였지. 


 


 

 "어.. 잠깐 들릴 데가 있어서." 

 "어디?" 

 "그.. 뭐야. 그, 서점." 

 "아~ 뭐 샀어?" 

 "아니. 없.. 없어서 못 샀어." 

 "아, 그래? 혹시 그 영어 교재 부록 말하는 거야?" 

" ​어어.. 그거." 

 "없다고? 큰일이네. 나도 못 샀는데. 다음에 들어오면 같이 사러 가자." 

 "그래." 

 "히. 혼자 가기 싫었는데 잘 됐다." 

 


 

 친근하게 이것저것 묻던 김태형의 얼굴이 별안간 눈에 띄게 밝아지고 작게 손뼉을 친다. 꽤 먼 곳에 위치한 서점에 같이 갈 친구가 생겨서 기쁜지 아이 같이 해맑은 미소를 짓는데 보는 이까지도 웃음 짓게 하는 얼굴이다. 그러고는 작게 콧노래를 부르며 책을 펴는데 리드미컬하게 좌우로 움직이는 고개가 지금 태형이의 기분을 말해준다. 작은 일에도 큰 행복을 느끼는 친구인 것 같았다. 


 


 

 "야. 근데 너 소시지 사왔지?" 

 "너 아니었어?" 

 "아, 이번엔 니잖아. 아~!" 


 

 

 조금 진정된 숨을 가다듬고, 검사 받을 오답 노트를 꺼내 뿌듯하게 보고 있는데 앞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 웬 소시지 얘기를 하다, 호석이가 우리 정국이를 살짝 때리고서 타박하더니 못살겠다는 듯 이마를 짚는다. 혹시나 ​정국이가 뭘 잘못한 건가 싶어서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알았어. 금방 사갖고 갈게." 

 "그럼 내 거까지 두 개." 

 "내가 왜?" 

 "네가 사오는 거 까먹었으니까." 

 "그래서 결국 사가는데 왜?" 

 "그냥. 내가 먹고 싶으니까." 

 


 

 언제나 대화의 끝은 앵무새의 뻔뻔함이었다. 둘의 말소리가 떠있는 걸 보니 진지한 일은 아닌 듯 보였는데 정국이가 사가지고 간다니. 혹시 그 간다는 시점이 영어 수업 끝나고 난 후라면 오늘 수학 수업 안 들어오는 건가. 설마 하며 걱정되기 시작하는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데, 시간을 보니 7시 정각이 됐고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쌤이 들어오자 계속 애교 부리는 호석이에 지겹다는 듯 웃으며 대충 알았다고 고개를 돌리는 정국이. 넌 책을 펴고 막 샤프를 들었지만, 내가 보기엔 내가 누울 자리를 펴주고 기름통을 드는 것 같았다. 웃는 얼굴로 내 맘에 불을 지른 것도 모르는지 여유롭게 오늘 풀 부분을 눈으로 훑는 너는 순진하지만 잔혹했다. 


 

 


 


 


 


 


 


 


 


 


 

 “...” 

 “...” 

 “...” 

 “...” 


 

 

 오늘은 나까지. 


 

 

 “...” 


 


 

 적막한 수학 강의실. 늘 그렇듯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게 쳐다보는 네 명의 애들은 첫날과 같았지만, 난 첫날과 달랐다. 애써 시선을 피했던 시간이 후회가 될 만큼 저 애들이 야속했다.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척지는 게 이해가 갈 리 만무했다. 안 그래도 방금 영어 수업 끝나자마자 정국이가 사라져서, 오늘 진짜 수학 수업 안 듣는 것 같아서 가뜩이나 기분도 안 좋은데 대체 언제까지 저럴 생각인지. 정국이가 학원을 그만둬야 멈출 건가. 아니, 내가 지금 무슨 망측한 말을 한 거야. 정국이가 뭘 그만둬. 절대 안 되지. 짜증나는 맘에 실언한 스스로를 때리고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 교재를 꺼내니 또 처지는 기분. 학원 다니고부터 기분이 울적해지는 빈도가 잦아지는 것 같은 아이러니다.  

 

 그나저나 정국이는 오늘 수학 수업에 안 올 것처럼 말하고 어디로 사라진 걸까. 방금 호석이랑 좀 신난 기색으로 어디 가는 걸 봤지만 따라갈 순 없는 노릇이니 궁금해도 홀로 삭힐 수밖에 없었다. 정국이랑 좀 친했으면 능청스레 물어보기라도 했을 텐데.. 아, 방금 또 욕심 부렸다. 자제하기로 해놓고. 이게 다 아까 정국이랑 눈 마주쳐서 그래. 왜 그렇게 날 길게 봐서는 된통 흔들어놓고 정작 본인은 어디로 쏙 사라져버린 거야. 오늘 하루 동안 정국이를 본 게 수학 시간이 전부여서 그런지 크게 드는 아쉬움에 책상에 엎어졌다. 뒤에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애들도 싫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미묘하게 따돌림 당하는 분위기 속에 의지할 사람도 없어져서 집에 가고 싶어졌다. 나도 너희랑 친해지고 싶었다고.. 오늘따라 더 억울해지는 맘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냥 가방 챙겨서 집에 갈까. 아님 독서실을 갈까. 걸으면서 기분 좀 나아지면 가서 공부하면 될 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충동을 행동으로 실천할 깡따구는 없어 고개를 떨궜던 그때. 열리는 강의실 문과 들리는 인기척. 정각이 다 된 시각이기에 선생님임을 직감하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하지만 들어온 사람은 선생님이 아닌, 막 뛰어온 듯 뜨거운 바람을 몰고 온 정국이었다. 후다닥 문을 닫고 내 옆을 지나 자리에 앉는데 순간 울 뻔했다. 어디 갔다 왔는진 몰라도 와줘서 고마웠다. 몇 번 안 온 수학 시간동안 나도 모르게 정국이를 많이 의지했는지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눈물에 고개를 돌렸다. 덕분에 버틸 수 있겠다. 


 

 


 

 


 

 


 


 


 


 


 

 한창 진행되고 있는 수학 시간. 선생님은 우리에게 실전 문제를 풀라고 한 뒤 제출한 오답 노트를 보고 계시는데, 도통 붙잡고 있는 6번 문제가 도저히 안 풀린다. 음.. 뭐지. 뭘까. 머리를 싸매도 내 두뇌로는 역부족이라 살짝 정국이가 푼 거 봐볼까 했지만 그러다 걸리면 잣 될 것 같은 분위기에 금방 관뒀다. 몰래 보다가 눈 마주치면 소멸하고 싶어질 것 같아. 상황을 얕게 상상만 해봐도 끔찍해서 작게 몸서리를 치는데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미안, 미안.” 


 


 

 경쾌한 소리의 주인은 수학쌤이었고 수신자를 확인하시고는 미안하다며 급히 교재를 훑어보신다. 


 


 

 “1, 2, 3, 4는 쉬우니까 빼고.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나와서 풀고 있어.” 


 


 

 학부모의 중요한 상담 전화인 듯 무책임하게 우리를 남기고 나간 선생님은 폭탄을 떨어뜨리셨다. 난 이미 6번부터 끙끙대는 중이었는데 5번부터 풀고 있으라고..? 화이트 보드 아래에 있는 보드 마카는 두 개였고 난 5번이라는 문제를 잡아야 했다. 앞에서부터면 일단 나부터 풀어야 한다는 건데 눈치싸움이 시작될까 무서워 소심하게 주위를 둘러보니, 


 

 

 “...” 


 


 

 바로 옆 책상에서 정국이와 눈이 마주쳤다. 정국이는 분명 심화문제라고 표시돼있는 11번, 12번 문제까지 다 풀었을 텐데 내가 가서 5번 정도는 선점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마치자마자 바로 나가서 파랑색 보드 마카를 들었다. 내 키에서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높이에 당당하게 5번이라고 쓰고 안도하며 슬쩍 웃는데, 그런 내 옆으로 나온 정국이가 빨강색 보드 마카를 집는다. 언제 나왔는지 모르게 다가와 내 옆에 서는 게 떨려서 살짝 옆으로 떨어져 문제를 푸니 이내 정국이의 손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도 무리 없이 계속 풀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 상황이 너무 긴장돼 손이 미끄러질 것 같았다. 화이트 보드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떨어졌어도 겨우 한 걸음 거리였기에 잘못하다가 팔이 닿을까 조심스러웠다. 문제를 풀면서도 눈은 또 정국이를 계속 보고 싶어서, 눈이 관자놀이에 달린 듯 완벽한 곁눈질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정국이가 풀고 있는 문제가 눈에 들어오는데.. 10번? 정국이는 6번이 아닌 10번을 풀고 있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난이도였기에 차례대로라면 여고 맨 뒷자리 애가 풀게 될 문제였는데. 배려해준 것 같은 느낌이 역력해 역시 마음이 넓은 아이구나 싶다가도, 하필 그 대상이 왜 저 입술 빨간 애인 걸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10번은 심화문제만큼이나 어려웠기에 사실 여기에서 정국이 아니면 못 풀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남을 쉽게 비웃는 착하지 않은 애가 배려 받으니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이젠 남이 배려 받는 것조차도 마음 쓰는 내가 못된 건가 싶다가도, 생각이 길어져 잘못 쓴 풀이를 알아채고 손가락으로 지웠다. 


 

 

 “흐음..” 


 


 

 근데 이게 말이지.. 내가 앉아서 풀었을 때 잘못 푼 건지 풀수록 망하는 느낌이 역력하다. 이 부분이 잘못됐나 싶어 지워보면 풀이가 막히고, 저 부분을 다시 풀어보면 숫자가 말이 안 됐다. 어려운 문제도 아니고 중간 난이도인 5번 문제인데도 못 풀어서 쩔쩔매고 있으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내가 이렇게 헤매는 건 학원 교재 자체가 어려운 이유도 한몫했다. 합리화가 아니라.. 진짜. 


 


 

 "..." 


 


 

 내 풀이는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멈춰 그냥 멀뚱멀뚱 서있다가, 정국이가 풀고 있는 걸 한번 봐볼까 하는데 와.. 내가 보기엔 얘 메크로다. 풀이 길이가 풀다 끊긴 내 풀이의 5배는 되겠다 싶다. 막힘없이 술술 적는 저 손의 움직임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어려운 문제라 그래도 조금은 고민하지 않을까 했던 기우가 단숨에 날아가버렸다. 그래.. 정국이는 정국이었지. 내가 지금 잠시나마 누구 걱정을 했던 건지 스스로에게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내 걱정을 해야 했다. 중간에 뚝 끊겨있는 풀이는 난감했고 그 앞의 난 뻘쭘했다. 그래도 요즘 수학 공부 열심히 했는데.. 막혀서 좀 아쉽고 속상한 맘이 들었다. 


 

 

 "..킥." 


 

​ 

 킥은 무슨. 바나나킥이다, 이 놈아. 저번처럼 또 웃음을 참는 듯하지만 일부러 낸 것 같은 소리가 들려 기분이 확 나빠졌다. 보나마나 입술 빨간 애겠지 싶어서 그냥 뒤돌아 째려보는 것도 포기했다. 아오, 짜증나. 넌 정국이의 배려를 받고도 착해질 줄을 모르는가 보구나. ​​사람이 당연히 못하는 게 있는 거지. 지들은 다 잘해? 그냥 어른인 내가 참자는 생각으로 진정하고 가만히 서서 마저 곰곰이 고민했다. 어떻게 써야 가장 아쉽게 틀린 것 같을까.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가장 아깝게 틀리게 보여야 했다. 안 그래도 요즘 수학쌤이 내 성적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정도로, 다닌 지 며칠 안 된 내가 케어 대상이라 티가 나면 안될 일이었다. 다른 팔로 벽에 기대어 풀이를 썼다 지웠다 하며 그렇게 풀이 조작을 시도하는데, 별안간 쑥 넘어오는 잘생긴 하얀 팔이 내 손에 있던 파랑색 보드 마카를 쏙 빼간다. 


 

 

 "..." 


 


 

 옆에서 이미 문제를 다 푼 정국이었다. 다부졌지만 부드럽게 생긴 새끼손가락으로 내 풀이 한 줄을 쓱 지우더니, 말없이 가져간 파랑색 보드 마카로 새 숫자들을 창조하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내 쪽으로 다가온 정국이에 많이 놀라 거의 벽에 딱 붙어서 바보 같이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꿈인가. 거의 처음으로 보는 가까운 정국이 옆모습에 속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러다가 정국이 귀에 내 심장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내가 풀던 풀이는 내 머리 위에 있는 위치였지만 너에겐 바로 얼굴 앞인 게, 최대한 내가 쓴 숫자 생김새와 맞추려 유심히 번갈아보며 쓰는 모습이, 네 손에서 나던 몽글몽글한 비누 냄새까지 설레 미칠 것 같아서 심장이 쿵쿵쿵쿵 뛰기 시작했다. 원래 이렇게 세심한 아이였나 생각이 들다가도, 망설임 없이 움직이는 하얀 팔에 굵게 자리잡혀있는 힘줄에 그만 마음을 뺏겨버려 얼굴에 불이 붙은 듯 뜨거워졌다. 큰 눈을 열심히 도르륵 굴리며 내 글씨에 맞춰 써주는 정국이가 안 믿기고 꿈을 꾸는 것 같이 떨려서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잠깐 고민이 들지만, 곧 심장이 얼굴에서 뛰는 것 같이 달아올라서 말 하는 건 금방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그때 문제를 푸는 정국이 팔에 선명하게 보이는 길쭉한 생채기가 눈에 들어온다. 할퀸 몇 개의 줄이 동물의 것 같은데. 생긴 지 얼마 안 된 듯 빨갛게 자리잡혀있는 피딱지에 마음이 깊숙한 곳부터 아파오려는데, 


 


 

 "아. 네네. 들어가세요, 어머님~ 네~" 


 


 

​ 복도에서 곧 통화를 마치고 오는 듯한 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로 놀라 눈이 커지고 순간 헙, 소리를 내며 어색함 가득하게 눈이 마주치는데, 정지된 사고회로에 굳어있는 내게 얼른 빨강색 보드 마카를 쥐어주고 날 옆으로 보낸다. 설렘에서 허우적대고 있기도 잠시, 내가 자리를 잡기 무섭게 들어온 쌤에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났다. 


 


 

 "정국이 아직도 풀어?" 

 "..네." 

 "이거 네가 헤맬 문제 아닌 것 같은데." 

 "잘못 풀어서요. 처음부터 다시 풀고 있어요." 


 


 

 쌤은 5번 문제를 아직도 푸는 정국이를 보고 의아한 듯 물어보셨고 너는 작은 계산 실수를 한 것처럼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다 날 보시고는 눈과 눈썹 사이가 멀어지는 쌤. 

​ 


 

 "오. 10번 푼 거야?" 

 "..네, 네." 

 "실력 많이 좋아졌네. 그래. 똑똑해서 조금만 하면 될 줄 알았어." 

 "..하하." 

 "근데 다 풀었으면 앉지 왜 아직도 서있어." 

 "아.. 네." 


 


 

 다 풀었는데 왜 안 들어가냐는 쌤의 말에 흠칫 놀라, 대신 문제를 풀어주고 있는 정국이를 두고 무거운 발걸음을 떼는데 내게 한 마디 더 하시는 쌤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강의실이 좀 덥니​? 얼굴이 빨갛네. 에어컨 온도 지금이 제일 낮은 건데." 


 


 

 아니요. 제가 홍삼을 못 받을 정도로 원래 몸에 열이 좀 많아요. 속으로 헛소리를 둘러대며, 쌤에게 아니라고 괜찮다고 작게 대답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남이 보기에 그렇게 티가 나나 싶어서, 터질 것 같은 얼굴을 숨기려 책을 들여다보는 척 머리로 얼굴을 가렸다. 이럴 땐 머리가 짧은 게 원망스러웠다. 


 


 

 "..." 


 

​ 

 고개를 숙이고 있다 보니 금방 자리로 돌아오는 정국이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자리에 앉아서 다시 샤프를 드는 소리와 함께 괜한 헛기침이 들린다. 큼큼, 하고서 그 뒤로 나오는 여자 애들에게 걸릴까 앉은 채 책상을 조금 옮기는 소리가 나는데, 숨이 가빠지는 떨림이 계속되는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 머리는 빨강색 보드 마카를 쥐어줄 때 닿았던 정국이의 부드러운 손에서 멈춰있었고, 내 온신경은 아무렇지 않은 듯 옆에 앉아있는 너한테 쏠려있었다. 화상 입은 듯이 화끈거리는 손을 혹시라도 누가 볼까 꼼지락대며 숨겼다. 넌 참 위험천만한 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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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잇나잇
사정이 있어서 8화는 9월 다 돼서야 올라올 것 같아요.. 그때 봬요❤
5년 전
비회원32.176
오늘도 설레고 재밌게 봤어요(ᵔᴥ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8화 기다리고 있을게욤💜

5년 전
독자1
오늘도 너무너무 설레네요 ㅠㅠ 정말 최고입니당 ,, 브금까지 너무 완벽해요 !! 그와중에 마신것같지도않은데 사라진 아이스티 ㅋㅋㅋㅋ 완전 현실적.. 9월까지 잘 기다리고있겠습니당 ㅎㅎ 오늘도 설레고 좋은 글 감사해요❤️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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