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산소
"어, 백현아 나 지금 거의다왔어"
- 어딘데? 너 안보여
"신호등앞이야, 아 초록불이다"
- 어디? 어, ㅇㅇ아 잠깐만 ㅇㅇ아!! ㅇㅇㅇ!!!!!!!!!!
끼익- 쾅.
무서운 속도로 달리던 큰 트럭이 듣기싫은 마찰음을 내며 급히 멈췄지만 이미 나는 저 멀리 날아가 쓰러진 후 였다.
"ㅇㅇㅇ!!!! ㅇㅇ아, 괜찮아? 정신차려!! ㅇㅇ아 눈좀 떠봐 제발..ㅇㅇ아..!!!"
.
.
"여기가... 어디지...?"
마치 오랜잠을 자다 일어난것처럼 정신이 맑고 개운했다. 기지개를 쫙 펴고 상체를 일으켜 주위를 살펴보니 난생 처음보는곳이였다. 여기가 어딘지, 내가 왜 이런곳에서 잠을 자고있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분명 차에 치였는데...?
덜컥-
"어.. 도련님!!! 깨어났어요!!"
갑자기 열린 방문에 깜짝놀라 쳐다보니 한복을 입고있는 어린 여자아이가 서있었다. 내가 일어나 앉아있는걸 본 후 큰소리로 도련님을 애타게 부른다.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내가 귀를막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여자아이를 바라보고있는데 굉장히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다가왔다.
"백현이..?"
"정신이 좀 드는거 같소?"
"백현아? 백현이 맞지?"
"어찌 내이름을 알고있는것이오?"
"왜그래.. 장난치지마 여기 어디야? 나 왜 여기있어?"
"난 그저 계집아이가 길에 쓰러져있길래 안쓰러워 데려다 놓은 것 뿐이오. 어디 아픈곳이라도 있는게요?"
"도대체...이게 무슨..."
"아무래도 아직 정신이 덜 든모양인데, 조금 더 쉬어야 할 것 같구나. 향단아"
"네 도련님"
"니가 여기 남아 저 계집을 보살펴 주도록 하여라"
"알겠사옵니다 도련님"
도련님이라 불리는 저 남자는 분명히 백현이가 맞는데 입고있던 옷과 말투에서 낯설음이 느껴졌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눈만 깜빡이다가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어린여자아이에게 말을걸었다.
"저기.. 꼬마야 여기가 어디야?"
"꼬마가 아니라 향단이. 향단이라고 불러"
"아, 응. 향단아 여기가 어디니? 내가 왜 여기에..."
"여긴 변씨도련님댁이야, 언니가 대문앞에 쓰러져있길래 백현도련님이 데리고들어온거고"
"내가 쓰러져있었다구? 저기 혹시 지금 연도가 어떻게 되니..?"
"음, 지금이.. 1813년. 계유년이야."
"1813년-?"
말도안돼. 내가 지금 200년 전 조선시대로 과거여행을 하러왔단말이야? 옆에서 자꾸 이름은뭐냐, 어디서 온거냐, 내가 입은 옷은 어디서 구한거냐 등등 병아리처럼 쫑알쫑알 말을거는 향단이의 말을 모두 무시한채 멘붕상태에 빠져버렸다. 과학적으로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일을 내가 겪고있다는게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이건 꿈이겠거니 싶어 볼과 허벅지를 꼬집으며 억지로 깨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향단이가 제정신이냐며 내 팔을 붙잡고 말렸다. 이게 꿈이아니구나. 아무말없이 조용해진 내가 걱정됐는지 갈아입을 옷과 죽을 가져올테니 가만히있으라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잠시후 향단이가 가져다준 죽을 꾸역꾸역 먹은 뒤 내 몸에 딱 맞는 고운 분홍색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이후로 처음 입는 한복에 조금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금방 적응돼갔다. 내가 정말 조선시대로 와버린건가 믿기지 않아 밖으로 나가보고싶었다. 향단이가 나가지말고 방에 얌전히 쉬라고했지만 바람을 쐬고싶다고 부탁했더니 향단이가 어쩔수없다며 나를 마당까지 부축해주었다. 마당으로 나가니 백현이, 아니 백현이와 닮았지만 조금 다른 백현도련님이 서있었다.
"몸은 괜찮소?"
"...네..덕분에"
"그래, 집이 어디요? 내 직접 바래다 주겠소"
"집....?"
집이 있을리가 없었다. 여긴 조선시대고, 내 집은 대한민국 서울에 있으니까.
"혹, 집이 없는것이오?"
"......."
"저런, 그렇다면 이름은 무엇이오?"
"..ㅇㅇㅇ이요.."
"ㅇㅇㅇ.. 이름도 얼굴만큼 아름답구나"
"......."
"집이 없어 돌아갈 곳이 없을터이니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는것이 좋겠구려"
"아.. 감사합니다.."
향단이가 그럼 자기와 같은 방을 쓰자며 말동무가 생겼다는게 굉장히 신났는지 날 끌고 폴짝폴짝 방으로 뛰어갔다. 아... 난 언제까지 이 곳에서 살아야 하는거지? 가슴이 콱 막혀오는 기분이들었다.
.
.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이 곳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있었다. 향단이가 마당청소하는걸 도와주며 따사로운 햇빛을 받고있을 때 누군가 급하게 향단이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곧 가까워지고 백현이와 닮은듯 하지만 왠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가진 여자가 다가왔다.
"앗, 마님 찾으셨어요?"
"그래, 곧 이판서댁 따님이 찾아올터이니 장에가서 다과좀 사와주겠느냐?"
"예 알겠사옵니다"
"근데 옆에 너는 처음 보는 얼굴이구나"
"아, 백현도련님께서 데려오신 계집이어요"
"백현이가? ..그래 알겠다, 어서 다녀오거라"
향단이가 나도 장에 같이 가지 않겠냐며 물어왔다. 나도 밖으로 나가고 싶기도 했고 장구경하는것도 재밌겠다 싶어서 흔쾌히 승락했다. 장구경 할 생각에 조금 들뜬 내 모습을 본 향단이가 웃음을 지었다. 내가 웃는 모습을 처음 본다며 장난을 걸었고 괜히 민망해져 똑같이 장난을 치다보니 어느새 장에 도착해있었다. 내가 생각했던것 보다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앞으로 나가는것도 힘들어 보이는데 향단이는 사람들을 밀치며 잘도 나갔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향단이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데 낯선 여자가 나를 불러세웠다.
"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
"저..저요?"
"곧 보름달이 뜰거야"
'보름달..?"
"앞으로 5일후 보름달이 뜨는 밤 넌 이 세상에서 사라져"
"사라진다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알 수 없는 말만 해대는 여자에게 무슨 뜻이냐며 되묻는 나를 비웃으며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니 그게 무슨 소릴까. 내가 죽어 없어진다는건가, 아니면 혹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걸지도 몰라.
두편에 나눠서 쓸 생각은없었는데 쓰다보니 길어졌어.. 2편은 이따 학교 다녀와서 올릴게~작가의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