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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극 ː Chapter 1, 소나기 (4)

 

 

 

7

 

 이튿날, 그만 물러간 줄로만 알았던 호우가 돌아왔다. 성난 먹구름을 구원투수 마냥 이끈 채였다. 블라인드를 걷어낸 성열은 가만히 유리창을 문질러보았다. 먼 풍경이 온통 부연 물감을 쏟아놓은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창가에 매달린 비바람이 새벽나절부터 쉴 새 없이 먼지를 쓸어낸 덕분이었다. 순간 눈가에 맺혀있던 물방울 하나가 무심한 기색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성열은 한숨을 내쉬며 양미간으로 손을 가져갔다. 거칠한 피부에 다크서클이 번져있었다.

 지난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꿈에서 덜 깨어난 거리는 금방이라도 폭풍우에 휩쓸려갈 듯 위태로워보였다. 성열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지금껏 약은커녕 밥도 먹지 않고 호원의 전화를 받은 이후론 잠도 한숨 자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일종의 오기였다. 김명수가 내뱉었을 말, 그 말.…… 모두 거짓이라 부정하고 싶었다. 시종일관 사람을 내려다보는 그 눈빛과 잘난 그 얼굴마저도 산산조각내고 싶었다.

 위선자.

 성열이 신경질적으로 방문을 닫았다.

 

 

8

 

 일찍부터 형광등이 밝혀진 교내는 서늘했다. 성열은 젖은 머리를 털며 복도로 들어섰다. 한적한 울림이 신발 위에서 연거푸 미끄럼질을 쳤다. 이제 겨우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고, 의도한 고독이었다. 성열은 텅 빈 학교에서 유일하게 사람 냄새를 풍기는 교무실로 무거운 그림자를 이끌었다. 일찍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두엇의 교사가 문소리에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 안에 담임이 없음을 확인한 성열이 짧게 눈인사를 했다.

 “벌써 등교하는 거야? 무슨 학교에 꿀 발라놓은 것도 아니고. 오늘 네가 전교에서 첫 번째다, . 밖에 비 많이 오지?”

 “, ……. 여기 열쇠, 가져갈게요.”

 녹슨 보관함은 수십 개의 열쇠들로 빼곡히 메워져있었다. 성열은 그 중 하나를 살펴 꺼내든 뒤 어물쩍 대답을 회피했다. 웃는 낯이 도움이 되었는지 친근한 인상의 여교사는 고개를 한 번 주억거리곤 더 말을 건네지 않았다. 성열은 까만 뒤통수를 내보이며 재차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동시에 입가에 걸렸던 미소 또한 칠흑으로 메말랐다.

 축 처진 어깨로 성열이 층계참을 올랐다. 그 등이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평정을 가장하는 것이 이토록 힘들다, 고 성열은 뼈저리게 느꼈다. 교실 앞에 도착해 자물쇠를 여는데 손이 자꾸만 헛나갔다.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성열이 용을 썼다. 차라리 열쇠를 집어던지고 싶은 심정이 되었을 무렵에야 겨우 문은 열렸다. 성열이 쓰러지듯 제 자리를 찾아갔다. 짐 덩이 마냥 척추를 짓누르는 허물을 벗어내고 나자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써늘한 책상에 아무렇게나 얼굴을 묻었다. 교실바닥에 깔린 쾌쾌한 내음이 콧속을 마구 헤집었지만 환기를 시켜야겠다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시야 바깥의 시계가 부유하듯 흐르고 있었다. 마치 학교도 시간도 그도, 끝없는 폭우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성열은 목덜미를 간질이는 땀의 흔적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까무룩, 다시 잠이 들었던 듯도 싶다.

 

 “성열아? 성열아.”

 누군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열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흐릿한 초점 너머로 휘휘 흔들리는 손을 끌어내리자 그제야 세상이 환하게 밝아졌다. 눈앞의 존재가 호원임을 확인한 성열은 있는 힘껏 기지개를 펴며 하품을 했다. 순간, 어깨에서 무언가 툭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성열이 한 차례 눈을 비비곤 바닥을 두리번거렸다. 발치에 익숙지 않은 담요 하나가 떨어져있었다. 파란 바탕에 구름무늬. 온통 사내 녀석들만 가득한 반에선 너무하다고 할 정도로 강렬한 색채였다. 팔을 뻗어 담요를 집어든 성열이 중얼거렸다.

 “뭐야, 이거.”

 호원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그거 네 거 아냐? 네가 계속 덮고 있던데.”

 “, 말도 안 돼. 내 취향은 이런 유치찬란한……,”

 손사래를 쳐가며 부정하던 성열의 입이 곧 다물어졌다. 갑작스레 밀려온 현기증 탓이었다. 잠시 행동을 멈추고, 옅게 숨을 골랐다. 어깨에 묵직한 감촉이 느껴졌다. 호원의 음성이 머리 위에서 낮게 울렸다.

 “너 진짜 괜찮아? 차라리 하루 더 쉬는 편이……,”

 “괜찮아.”

 “성열아.”

 괜찮아. 그렇게 단정하듯 내뱉은 말에 둘 사이 짧은 여백이 생겨났다. 이윽고 체념인지 무엇인지 모를 숨소리가 들렸다. 성열이 고개 들어 친구의 얼굴을 보았다. 호원은 전에 없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무 매몰차게 말한 걸까 싶어 눈치를 살피는데, 몇 번이나 마른 혀를 축이던 호원이 한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열아, ……,”

 “다들 앉아라. 출석 부른다.”

 일순, 두 사람의 신경이 앞쪽으로 쏠렸다.

 교사가 회초리로 칠판을 탁탁 두드리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어느 틈엔가 종이 울린 모양이었다. 호원은 잠시 교탁을 응시하더니 이내 성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하고, 어깨 위에 놓여있던 손이 가볍게 그의 등을 쳤다.

 “아니다. 수업 잘 들어, 너무 무리하지 말고.”

 “, …….”

 그리고 호원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걸어가 두 칸 앞의 제 자리에 착석했다. 성열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다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담요가 그대로 손에 쥐여져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던 와중 담임이 그를 호명했다.

 “이성열.”

 “, !”

 성열은 지레 놀란 나머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잠긴 목에선 선명한 삑사리가 났다. 이어진 잠시간의 침묵. 상황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누군가 피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뱉었다. 그것이 신호였다.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웃음바다가 되어버린 교실에서 성열의 얼굴이 홍당무 마냥 붉게 타올랐다. 손등으로 뺨을 가리며 그가 얼른 의자에 앉았다. 이게 무슨 망신이야. 어찌할 바 몰라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던 성열이 무심코 어느 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

 김명수의 입 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가있었다.

 성열은 그만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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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으악 도대체 명수는 뭘까요ㅠㅠㅠ궁금해여ㅠㅠㅠ 다음편이 시급합니다!!
12년 전
스위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른 다음 화로 찾아올게요 : )
12년 전
독자2
그대 링크에서 현명의 현명한 선택이라고 개드립 날린익인이에요ㅜㅠ 링크보고 그대글 전부 정주행하고왔어요ㅜㅜ 대체 명수와 성열이 사이에 무슨일이 있던거에요ㅜㅠ?
12년 전
스위치
현명은 현명하죠. 수열도 바람직합니다 S2 정주행 감사드려요!
그러게요, 무슨 일일까요? 간극도 링크도 곧 다음 편이 나올 예정이니 그때까지 기대해주세요 ^*^

12년 전
독자4
그대 저 암호닉 전구로 기억해주실수있으세요? ㅜㅠ 그대 글 정말...하.....말이안나와요ㅜㅠ
12년 전
스위치
네, 전구님! 글이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마지막까지 함께 달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
12년 전
독자3
분위기진짜쩌러요......... 와 이런 아련 전공자 스위치님같으니....... 노래도 잔잔아련돋고......ㅠㅠㅠㅠ
12년 전
스위치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 들으면서 즐겁게 쓰고 있어요 : )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다음 화도 잘 부탁드려요!
12년 전
독자5
그대 진짜너무재밌어요 ㅠㅠ 역시 난이런분위기가좋아요 ㅠㅠ
12년 전
스위치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_T 다음 편도 재미있게 봐주세요!
12년 전
독자7
넵!!!열심히기다릴게요
12년 전
독자6
으엑1번이에여!ㅠㅠㅠ 스위치그대는 문체가 후덜덜ㅠㅠ 역시나 담요는 명수겠죠? 아 정말 무슨관계였을까요!? 성열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요..허헣 그대 잘 읽고갑니다~
12년 전
스위치
아직 많이 부족한 글이에요 ㅠㅠ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로 밝혀질 예정이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항상 감사드려요.
12년 전
독자8
ㅠㅠㅠㅠㅠㅠㅠ 그대 소나기 4 기다렸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 개샴푸로 기억해주세욯ㅎ 명수와 성열이의 사이에 어떤일이 있었는지 저도 정말 궁금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스위치
개샴풐ㅋㅋㅋㅋㅋ 네 알겠습니다 개샴푸님!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해요. 얼른 다음 편으로 찾아뵐게요 ^^
12년 전
독자9
반례하!!ㅎㅎㅎ좀늦엇죠??핸드폰이수리가서지금왓어요...ㅎㅎㅎ그나저나..열이몸은괜찮은건지...그렇게현기증나는데...담요는설마햇는데..명수군이아닐까요??뒤에서그렇게챙겨주는모습...큽..머시쪙..♥잘읽엇습니다!!ㅎㅎ수고하셔요!!
12년 전
스위치
반가워요, 반례하님 :) 휴대폰은 잘 고치셨나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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