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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극 ː Chapter 1, 소나기 (3)

 

 

 

5

 

 어디선가 흘러온 바람결이 살며시 콧잔등을 스쳤다. 성열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블라인드 아래로 긴 그림자가 펄럭이고 있었다. 얼마나 잔걸까. 마치 영원을 어둠 속에서 헤맨 듯 몽롱한 기분이었다. 채 사라지지 않은 수마가 그의 다리를 붙들고 늘어졌다. 성열은 망자인 양 너부러진 몸을 가까스로 지탱하며 한참을 그렇게 잠의 끝자락에 둥둥 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저가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려냈다.

 학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네모난 전자기기와의 씨름에 지쳐 잠든 사이 벌써 반 바퀴를 훌쩍 돌아있는 시곗바늘이 보였다. 그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허둥대며 책상 위로 팔을 뻗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이번에는 헛손질 없이 액정을 켤 수 있었다. 꿀꺽, 밀도 높은 긴장감이 성열의 목울대를 타고 흘러내렸다. 화면에 떠오른 부재중전화 표시가 가슴을 사정없이 방망이질했다.

 뭐라고 변명해야 하나. 가장 먼저 그 생각부터 들었다. 성열의 담임은 유독 깐깐하고 철두철미하기로 교내에서 익히 정평이 난 인물이었다. 이제 와 아파서 등교를 못했다 한들. 더구나 성열에겐 신학기 시작 채 한 달도 안 되어 감히 야자를 째려 한 전적이 있었다. 성적만능주의인 담임이, ‘공부도 운동도 겨우 평균치를 웃도는, 그러면서 머리에 그저 놀 궁리만 가득한 얼빠진 녀석이라 낙인찍힌 저를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줄리 만무했다.

 지금이라도 학교에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웃었다. 휴대폰 하나 쥐는 것도 힘들어서 벌벌 떠는 몸으로 무슨. 역시 어젯밤 그런 안이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절로, 입 꼬리가 내려앉았다.

 김명수, 그 녀석만 아니었다면.

 성열이 있는 힘껏 도리질을 쳤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김명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왜 갑자기 그런 쪽지를 보내고 그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 건지도. 녀석에 관한 무엇도 더는 알고 싶지 않았다. 자신과 김명수의 인연은 이미 2년 전 그 날, 종막을 고했으니까.

 무심코 입술을 깨물었다. 성열은 기분을 전환시키려 애쓰며 휴대폰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일단 전화 외에도 문자가 한 통 더 와 있었기에 그쪽을 먼저 열어볼 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결심하고 수신메시지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는 순간, 마치 타이밍이라도 맞춘 것처럼 세찬 전화벨이 울렸다. 성열은 깜짝 놀란 나머지 허둥대다 하마터면 휴대폰을 깨부술 뻔한 것을 간신히 막아냈다.

 액정을 확인한 그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이호원.

 “호원이……?”

 아마 자신이 아무 말 없이 학교를 결석한 탓에 걱정이 되어 연락한 모양이었다. 성열은 메마른 대지인들 이보다 거칠지는 못할 목을 가다듬으며 최대한 인간다운 음성을 내려 애썼다. 혓바닥이 바싹바싹 말랐다.

 “여보세요.”

 ―, 성열아.…… 잠깐만.

 벌써 점심시간에 접어든 모양인지 수화기 저편이 급식소 특유의 잡음으로 요란했다. 그 사이 드문드문, 아마도 곁에 있을 누군가에게, 무어라 말하는 호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이즈는 깨끗하게 사라졌다. 호원이 장소를 옮긴 모양이었다.

 이쪽에서 뭐라 해명할 틈도 없이 대뜸, 그가 물어왔다.

 ―너 괜찮아?

 성열은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적당한 말을 골랐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어 망설이다, 결국 한숨 같은 음성으로 답했다.

 “……, 일단은.”

 ―, 그래도 다행이다.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답장이 없어서 많이 걱정했어. 몸은 좀 나아졌냐?

 “, 좀 잤더니 그럭저럭 견딜 만……, 아니, 잠깐만.

 성열은 저도 모르게 이어가려던 말을 겨우 끊었다.

 “방금 뭐라고?”

 ―? 많이 걱정했다고.

 “그거 말고, 그 뒤에.”

 ―몸은 좀……, 나아졌냐고 했는데. ?

 어느새 따뜻하게 달아오른 전화기 너머로 호원이 의아하다는 듯 앞선 말을 되풀이했다. 성열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도리어 당혹스러웠다. 입을 다물자, 자연스레 둘 사이에 좁은 여백이 생겨났다. 호원이 이내 답을 재촉했다.

 ―성열아? 듣고 있어?

 “, …….”

 ―근데 왜 말을 안 해.

 “저기 근데 그게……, 어떻게 알았어?”

 ―?

 “내가 몸이 안 좋다는 거.”

 ―, 그거?

 난 또 뭐라고. 호원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열은 무심코 몸을 곧추세웠다. 온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진 채 이 너머에 있을 호원에게, 그의 다음 말에 잔뜩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호원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아침에 김명수가 그러던데? 너 오늘 아파서 쉰다고. 근데 성열아, 너 김명수랑 친했냐?

 

 

6 

 

 “성열아? 성열……, 끊겼나.”

 호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려다본 손엔 어느 순간부터 묵묵부답인 휴대폰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화한 김에 김명수랑 무슨 사이인지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가 멋쩍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아픈 애를 오래 붙잡아두고 있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

 슬슬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호원이 걸음을 돌렸다. 마침 멀리서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굳이 눈을 가늘게 뜨고 확인하지 않아도, 그 뛰는 걸음만으로 호원은 상대가 동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볼일이 있으니 먼저 식사하고 있으라고 했건만. 녀석도 말 참 어지간히 안 들었다.

 “호야!”

 양 팔 가득 뭘 바리바리 싸들고 있나 했더니 아주 매점을 통째로 털어온 모양이었다. 저대로라면 금방이라도 엎어질 것 같아 지켜보는 호원의 마음이 더 조마조마했다. 결국 이쪽에서 먼저 달려가 품 안의 양식을 받쳐 들자, 초원의 왕 마냥 사나운 눈매에 더할 나위 없이 천진한 미소가 피어났다.

 “호야, 호야. 뭐부터 먹을래? 참고로 이거랑 이거랑 이건 내 거니까 건들면 안 돼.”

 “난 아무거나 상관없어. 그보다 넌 밥도 안 먹고 왜 따라왔냐?”

 “그야 혼자 먹으면 맛없으니까. , 저기 명수다.”

 명수? 호원은 저도 모르게 동우가 손짓하는 방향으로 어깨를 틀었다. 그러자 어딘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입을 굳게 다물고 걸어가는 김명수의 옆모습이 보였다. 발치 가까운 곳에 아무렇게나 시선을 던져둔 폼이, 특별히 행선지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지간해선 교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녀석인데. 별일이라고 느낀 호원이 재차 고개를 돌렸다.

 “동우야, 너 쟤 알아?”

 그새 초코바 하나를 까먹고 있던 동우는 여상스러운 얼굴로 긍정을 표시했다.

 “알지 그럼. 명수 나랑 중학교 때 같은 학원이었거든.”

 “같은 학원……?”

 “. 근데 쟤 몇 년 사이에 분위기 되게 많이 바뀌었다. 예전엔 안 저랬는데……. 역시 성열이 때문인가.”

 “?”

 동우가 지나가듯 흘린 그 말에 호원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의 입에서 명수라는 이름이 나온 것만으로 충분히 놀라운데, 거기에 성열이까지 보태질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바였다.

 ……어쩌면.

 호원의 손바닥에서 절로 진득한 땀이 배어났다.

 어쩌면 호원은 이것으로, 보슬비처럼 늘 자신의 시계(視界)를 얇게 어지럽히던 김명수에게, 그 끝없이 둘러쳐진 세계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동우야. 그 얘기, 자세하게 좀 들려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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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반례하!!호원이가저렇게말하니까왜이렇게어색하지..성열이가아픈건진짜맞는데..학교와서선생님께혼날까무섭네..명수는무슨생각을하는걸까..동우가알고잇는그이야기는뭘까??호기심폭발이네요..잘읽엇습니다!!수고하셧어요
12년 전
스위치
또 뵙네요 : ) 호원이 말투는 좀처럼 감을 못 잡겠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도 잘 부탁드려요.
12년 전
독자2
브금왜케좋아요.. 문체도 제스타일이에요.. 사랑해요♥
12년 전
스위치
저도 사랑합니다 ♥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 ^^
12년 전
독자3
와 . . . 재밌어요 ㅜㅜ 다음편도 기대 많이 할께요 ㅎ
12년 전
스위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좋은 밤 되세요.
12년 전
독자4
엉엉 저 1번이에요! 아유 도대체 2년전에 명수랑 성열이랑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요!? 무슨 관계였길래...흠 우선은 동우가 같은 학원이였다고 하니 곧 이야기를 해주껬죠?ㅎㅎ 성열이가 어쨌길래! 명수가 변했을까요.. 원래는 다른 성격이었니 봐요! 엉엉 역시 그대의 문체 참 좋네요!ㅠㅠㅠ 깔끔하고 읽기좋고!ㅠㅠ 정말 항상 잘 읽고가요! 그대 항상 호이팅!
12년 전
스위치
1번님 반가워요 : ) 항상 감사합니다.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
12년 전
독자5
고....고퀄이다...고퀄ㅇㅣ 나타났다ㅠㅠㅠ할렐루야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감사합니다 이런 글을 읽게 해주셔서ㅜㅜㅠㅠㅠㅠㅜㅜ신알이야 무조건 이건 신알을 해야해..!!!!ㅠㅠㅠㅠㅏㅇ 아아 이런 분위기 좋아요ㅠㅠㅠ자ㄱ가님 금손
12년 전
스위치
과찬이세요 ㅠㅠ 저야말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오후 되세요 ^^
12년 전
독자6
이잉...감귤이에요그대ㅠㅠ학교땜에못들어오다가오늘들어왔쪄용!역시그대는금손이시다가브금도좋아여ㅠㅠㅠ내사랑...드디어그얘기를알수잇는건가요!둑흔둑흔
12년 전
스위치
감귤님 안녕하세요! 할 일이 밀려서 다음 화 업뎃이 조금 느려지고 있네요… 최대한 빨리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 )
12년 전
독자7
이힣괜찮아요!전항상그대편!
12년 전
스위치
감사합니다! 다음 편도 잘 부탁드려요 ^^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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