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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크

L I N K

《Chapter 1, 단풍나무숲 (1)》

 

 

 

1

 

 가로등이 소리 없이 점멸하고 있었다. 깊은 밤. 몸뚱이를 길게 끌며 늘어지는 그림자가 요란스레 느껴질 정도로 골목길은 고요했다. 나는 드문드문 밝혀진 가로등을 따라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가볍게 등을 굽히고, 살피듯 주위를 돌아본다. 이런 내 모양새에 엄마는 항상 못마땅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고양이새끼도 아니고. 그렇게 혀를 끌끌 찼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곧추세우려다, 이내 천천히 긴장을 풀었다. 엄마는, 이미 없다.

 불쑥, 걸음이 멈추어졌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의 치마폭에 숨은 달을 따라 오늘밤은 별조차 칠흑이었다. 이곳은 사람도 하늘도 일찍 잠에 든다. 의지할 것이라곤 가로등뿐. 딱 그 정도의 길.

 전에 살던 곳은 이렇지 않았다. 낮보단 밤이, 새벽이 밝은 곳이었다. 누군가 흩어놓은 붉은 전단지가 일상처럼 발치에서 나부끼고, 그 너머로 전봇대를 부여잡은 샐러리맨이 토악질을 하고, 다시 그 옆의 호프집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판이 벌어지고, 게다가 안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불법유흥주점이 너나할 것 없이 가슴골을 드러내는 곳이었다.

 어쩌면 내 걸음걸이도 그곳에서 본능적으로 익혀진 것일지 모른다. 주위의 그 무엇과도 부닥뜨리고 싶지 않아 등을 굽히고,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발톱을 가장하는 어린 맹수인 양 주위를 살피고. 나는 그곳을 단풍나무숲이라 여겼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 거리에서 최초부터 단풍인 채 피어나는 잎사귀들 그리고, 매일같이 죽고 또 살아나는 붉은 사람들. 인간도 짐승도 아닌 그들 사이에, 그곳에, 홀로 떨어진 나.

 어린 나는 생각했다.

 언제라도 이곳에서 도망치지 않으면, 결국 나 또한 붉은 사람들에게 현혹되어 저들처럼 붉게 물들고 말 거라고. 그럼으로 더는 영영, 빠져나오지 못하게 될 거라고.

 

 “다녀왔습니다.”

 도착한 집은 까마득한 절벽처럼 캄캄했다. 현관의 주황빛 센서 아래서 신발을 벗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저씨는 오늘부터 출장, 아주머니는 여행. 동갑내기인 이 집 외아들은 아직 학원에 있을 시간이다. 나는 우선 방으로 올라가 가방을 내려놓은 뒤 적당한 옷가지를 챙겨 다시 거실로 내려왔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그 사이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과제를 할 요량이었다.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지금의 학교는 같은 인문계임에도 전의 고등학교와는 그 수준이 명백히 달랐다. 가까운 예로 과제의 양이나 정기 테스트의 난이도만 보아도 그랬다. 전학생인 내가 학원이나 과외의 도움 없이 진도를 따라가려면 잠을 쪼개고 또 쪼개도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소란이 아닌 고요와 함께하는 삶이었다. 그것이 설령, 누군가의 평온을 갉아내 만들어진 이상에 불과할지라도.

 진동이 울렸다.

 옷가지를 화장실 앞에 내려놓은 나는 잠시 소리의 근원지를 찾다, 이내 바지 뒷주머니를 뒤적였다. 휴대폰 위로 낯선 번호가 떠올라있었다. 당혹보다는 의아한 마음이 앞섰다. 내게는 전화를 걸어올 사람도, 그렇다고 걸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애당초 휴대폰이라는 기기를 가지게 된 것도 최근 들어서의 일인 것이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 진동은 곧 정적 속으로 흩어졌다. 받을까 말까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쓸모없는 종류의 수신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앞서 개켜둔 옷 위에 휴대폰을 내려놓고 재차 화장실 안으로 들어서려던 내게, 진동은 또 한 번 찾아왔다. 언뜻 비치는 액정으로 보아 이번에는 문자였다. 하는 수 없이 걸음을 되돌렸다. 스팸이라면 이 기회에 번호를 차단해두는 편이 좋을 터였다.

 나는 고개를 숙여, 바구니 속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너만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 명수야

 긴, 침묵이 흘렀다.

 

 

2

 

 이미 자정이 지난 시각이었다. 나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졸음이 주렁주렁 매달린 눈꺼풀을 들어 간신히 창밖을 내다보자, 익숙한 풍경들이 침묵에 잠긴 채 바람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저문다.

 졸음을 깨기 위해 고개를 두어 번 젓고 주머니 속의 미니단어장을 꺼냈다. 학원에서는 내일도 테스트가 있다. 모레도, 그 다음 날도. 일정 개수 이상 맞히지 못할 경우엔 지금보다 더 귀가시간이 늦어질 테지만 그렇다고 잠 잘 시간도 부족한 마당에 영단어만 붙잡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럴 때 외워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 농구시합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반납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나는 괜한 신경질이 뻗쳐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1학년 때는 그래도 이 정도로 삶이 고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최소한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잠도 그럭저럭 잘 수 있었다. 여유가 있으니 자연스레 공부할 마음도 생겼다. 그런데 내가 2학년에 올라오자마자 수험생 부모의 입장이 되어 지레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아들이 재수하는 악몽까지 꾼 엄마는 결국 학원 한군데와 과외 두 개를 더 끊는 것으로 자신의 고민을 해소하려 했다.

 무심결에 한숨이 새어나오려는 순간, 옆에 앉아있던 호원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밖을 향해 가볍게 눈짓하는 그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버스가 어느새 우리 집 앞에 다다라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둥지둥 가방을 집어 들고 딱딱한 아스팔트 도로에 발을 내디뎠다. 아직 행선지가 잔뜩 밀려있을 터인 버스는 제 그림자 하나 챙길 여유도 없는 양 바삐 떠나갔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부르르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고슴도치마냥 가시를 세우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근래 들어 부쩍 일교차가 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낮의 따뜻한 날씨에 방심해 카디건 챙기는 것을 깜빡하곤 하는 것이 문제였다.

 추위도 이길 겸 아까 외운 영단어를 곱씹으며 집으로 향했다. autograph, 사인. ceremony, 의식. circumstance, 환경상황. independent, 독립적인. ······, sympathy. sympathy······. 그러다 어느 한 지점에 다다른 순간, 저도 모르게 걸음이 멈추어졌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관찰하듯 턱을 높이 쳐들었다. 뭔가 이상했다. 어쩐지, 가까워진 집의 풍경이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은······.

 이유를 알아내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이 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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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하.....그대 저 전구에요ㅜㅠ 신알신 켜지자마자 댓글불밝히려 왔어요ㅜㅜ전에 살던 환경에 신경은 날카롭게 세우던 명수가 이번에는 고요함을 가질수있을지.. 명수에게 보내진 저 문자는....명수의 엄마가 보낸걸까요...?
12년 전
스위치
전구님 반가워요! 지금 가지고 계신 의문점은 모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시원하게 풀릴 거랍니다 : )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오늘도 좋은 오후 되세요!

12년 전
독자2
그대도 좋은 하루되세요!
12년 전
삭제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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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스위치
감사합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잘 전달 된 것 같아 다행이네요 ^^
12년 전
독자4
스위치그대 글은 항상 아련함넘치면서 서늘한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거 같아요ㅠㅠ하 좋다ㅜㅜㅜ현명이시여ㅜㅠㅜㅠ감사합니다ㅠㅠ
12년 전
스위치
마음에 들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다음 편도 잘 부탁드려요 : )
12년 전
독자5
아....분ㅇ위기..........쩔게좋다...........아정말......제가분위기에죽는지어케알고...ㅠㅠ.....찡찡.......ㅠㅠㅠㅠㅠㅠㅠㅠ언어력이딸려서표현은힘드네요....ㅠㅠㅠㅠㅠㅠ
11년 전
스위치
과찬이세요 ㅠ 부디 취향에 맞으셨으면 좋겠네요.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 ^^
11년 전
독자6
모르고 신알신을 취소해서 이번편을 오늘이 되서야 봤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스위치 그대의 이런 분위기가 느므 조아서 정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호름돋아욬ㅋㅋㅋㅋㅋㅋ 오늘텍파 ㄴ신청 나왔던데!! 빨리 못본데까지 빨리보고 신청해야게써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샴푸였어욬
11년 전
스위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샴푸님 : )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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