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시기 전 주의.
김종인,박찬열은 픽 중 동물로 등장하니 그 점 유의해주세요.
(BGM이 있습니다)
[김종인/도경수] 천사의 키스(Angel's Kiss)
written by. 피렌체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키가 크면 입겠다며 패기좋게 사다놓은 옷이 있었던 것 같다. 집안을 30분이나 엎고, 또 엎은 끝에. 결국 그 옷을 찾아낼 수 있었다. 돈 없던 고등학생 치고는 비싸게 줬던 옷인 것 같다.
사람으로 몸이 변한 카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키도 크고, 훤칠하게 생겨먹었다. 예전에 한번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변백현이랑 함께 카이랑 열이가 사람이라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결론은 열이가 키도 훨씬 크고, 잘생기기도 더 잘생겼을거라는 결론. 밥도 잘 먹고, 몸집도 보기좋게 자란데다 애교도 많고. 하여튼 경수는 전체적인 열이의 모습을 떠올리고선 카이가 더 잘났다는 증거를 내밀지 못했다. 옆에 있던 종대가 거든 덕분이기도 하고.
근데 이게 왠걸. 제가 생각했던 카이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키도 크고, 남성적으로 생겼다. 게다가 피부까지 보기좋게 그을린 것이 뭇 여성들의 마음을 쿵쾅쿵쾅 때려박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몸도 날렵하게 생겨선 고등학생 때 샀었던 오래된 트레이닝복도 원래 제 것인 것 마냥 잘 어울렸다.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카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경수는 괜히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만 같았다. 과하게 잘생겨서 그런가. 아, 꿀린다.
“ 형아. ”
“ … 어, 왜? ”
괜히 어색해진 느낌이다. 그걸 카이도 느꼈는지 저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 왜그래? ”
“ ㅁ, 뭐가 … ”
“ 형아 아파보여. ”
경수의 냄새가 가득 배인 배게를 끌어안고 앉아있던 카이가 벌떡 일어나 다짜고짜 경수의 이마 위로 손을 들이밀었다. 투박한 카이의 손끝이 경수의 이마에 닿았다.
“ 이렇게 하는거야? ”
“ 응? ”
“ 열? 재는 거. ”
이마에 손을 올려놓고는 고개를 까딱이며 물어본다. 뭐야, 귀엽게. 경수가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응, 그렇게 하는거야.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다는 듯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나 안 아파. ”
“ 그건 어떻게 아는건데? ”
뭐야, 아는 것도 없이 그냥 가져다 댄거야? 경수의 물음에 카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번에 TV에서 봤어.
“ 엥? 대체 언제? ”
“ 빨간 거 누르니까 켜졌어. ”
아, 그러고보니. 일주일 전, 분명 TV를 끄고 나갔었던 것 같은데 집으로 돌아왔을 때 환하게 켜져있었던 적이 있었다. 집 안을 어지럽히거나 허튼 짓을 하는 아이가 아니라서 왜 틀어져있나 했었는데. 그게 네 소행이 맞았구나.
“ 이마에 손을 댔을 때, 뜨거우면 열이 나는거야. ”
아 그렇구나. 카이가 헤에, 입을 벌린다. 경수가 아직까지 닿아있는 카이의 손을 떼어내었다. 안 아파. 정말.
경수의 말에 안심한 카이가 이내 경수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어욱! 경수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카이야 왜그래 …… 경수가 카이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안아주는 건 좋은데 … 형아 숨 좀 쉬자, 카이야 …… 경수가 끙끙거리며 카이의 몸을 밀어내려 애썼다.
근데, 근데 카이야.
“ 응. ”
“ 계속 이런 모습으로 있을거야? ”
“ 응? ”
“ 전에 네 모습으로는 못 돌아가? ”
경수가 물었다.
“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몰라. ”
“ …… ”
“ 그리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 ”
“ … 응? ”
“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 ”
어째서? 나는 내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카이가 더 좋은데 …
“ 형아랑 똑같아졌잖아. 아니, 내가 더 커졌어. ”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얼굴에 웃음이 만개했다. 경수가 못말린다는 듯 픽 웃었다. 그래, 작든 크든. 카이는 카이니까.
*
카이는 고기를 달라고 성화였다. 카이가 아까 이야기 했던 되게 맛없는 것이란 강아지 사료를 얘기하는 듯 했다. 거실 한쪽에 세워져 있던 강아지 사료를 보고 맛이 없다며 당장 버리라고 했다. 그래, 늑대한테 개 사료를 준 것부터가 문제가 있는 행동이긴 하지. 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사료를 개 세마리를 키우고 있는 백현에게 주겠노라 얘기했다.
사람의 몸이니만큼 생고기는 안된다고 딱 잘라 얘기한 경수는 냉장고에 넣어둔 고기를 꺼내 얇게 썰었다. 형이 고기 구워서 줄게. 알았지? 경수의 말에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수 말이라면 죽고 못 사는 카이였기에 익은 고기를 흔쾌히 먹겠다고 해준 것이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후라이팬에 고기들을 올려놓던 경수가 잠깐 뒤를 돌아 카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 아차. ”
“ …… ”
“ 카이야, 네가 늑대면 열이도 당연히 늑대겠네? ”
“ 응, 당연하지. 저번에 생고기 같이 먹는 거 형아도 봤잖아. ”
“ 변백현도 알고 있었던 건가? ”
“ 알고있다고 그러던데. ”
열이가 그래?
응.
경수가 입술을 짓이겼다. 이것들이 다 알고 있었으면서 나한테만 비밀로 했다 이거야? 다이나믹하게 변하는 경수의 얼굴 표정을 카이가 턱을 괴고 감상했다. 우리 형아는 감정이 밖으로 다 드러나서 참 좋아.
얇게 썬 덕분에 고기는 아주 빨리 익었다. 그릇에 고기를 담아준 경수는 젓가락질이 서툴 카이를 위해 포크를 손에 쥐어주었다. 콕 찝어서 입에 넣어. 그리고 씹어. 카이는 경수의 말을 잘 따랐다. 그래, 잘하고 있어. 익은 고기도 나름 맛있다며 잘 먹고 있는 카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경수가 조용히 방으로 들어섰다.
고기를 깔끔하게 해치운 카이가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뒷쪽을 쳐다봤다. 아까와는 다른 옷을 입고 서 있는 경수가 있었다. 본능적으로 경수가 어디론가 나간다는 것을 알아챈 카이가 빠른 걸음으로 경수 앞에 섰다. 형아, 어디가. 가지마. 말하진 않았지만 카이는 경수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제일 싫었다. 놀고 싶은데. 형아랑 계속 같이 있고 싶은데.
“ 악의 무리를 처단하고 올거야. ”
“ 악의 무리? 끝난 거 아냐? ”
“ 아니, 연장선이야. ”
… 연장선? 말을 알아듣지 못한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냐, 못 알아들어도 돼. 경수가 괜찮다며 카이의 등을 토닥인다.
“ 형아 금방 올테니까,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 해. ”
“ 안 가면 안돼? ”
“ 안돼. ”
“ 나 데리고 가. ”
“ 그건 더더욱 안돼. ”
경수는 단호했다. 왜 안되는데? 카이가 경수의 손을 꽉 붙잡곤 놓아줄 생각을 않았다.
“ 혼내주러 갈거야. 네가 옆에 있으면 네 얘기로 헛소리 하면서 피하려고 할 게 뻔해. ”
“ 혼내 줘? ”
“ 응, 김종대랑 변백현 혼내주러 갈거야. ”
“ 왜? ”
“ 네가 늑대인 걸 알면서도 모른 척 거짓말 쳤잖아. ”
아까도 얘기했듯 경수는 제 감정을 표정으로 다 들어냈다.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는 걸 보니, 짜증이 나긴 한 모양이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드는 경수를 바라보던 카이가 입을 열었다.
“ 형아는 내가 늑대인게 그렇게 싫어? ”
“ … 뭐? ”
“ 내가 늑대인 게, 싫은거야? ”
카이의 표정이 좋지 않다. 경수가 그제서야 카이의 말을 이해하고선 급히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야, 그런 거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지마. 경수가 두 손을 허덕이며 그런 뜻이 아니었음을 격하게 표현했다. 카이의 표정이 풀리는 것 같자, 그제야 경수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런 오해를 하고 그래.
“ 네가 늑대인 게 싫은 게 아니고. 거짓말을 쳤다는 게 괘씸한거야. ”
“ 그런거야? ”
“ 응, 네가 늑대라서 싫은 게 아니야. ”
알았지? 그러니까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착하다. 경수가 카이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늘상 있던 일이라는 듯 카이가 자연스레 눈을 감았다.
“ 약속, 형아 빨리 다녀올게. ”
빨리 오겠다는 약속까지 받아 낸 카이는 흡족하게 웃었다. 신발을 신고 헐레벌떡 집을 나서는 경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베란다로 나가 경수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다.
형아는 화난 것도 귀여워. 카이가 그르렁, 소리를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