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덜덜 떨며 손에 입김을 호호 불어내며 발을 동동구르고 있는 나, 변백현. 오늘은 12월25일 크리스마스, 이 수많은 거리에 사람들은 죄다 하하호호 웃으며 지나가는 커플들, 아님 가족들뿐이였다. 모두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폈고 내 얼굴에서는 모두가 웃을수록 표정이 구겨졌다. 최악의 표정이 다가오자 뒤에서 백허그를 하며 얼어있는 내 손을 꽉 잡아주는 한사람, 그러며 나에게 귓속말로 다정하게 말을 해주었다.
"우리 백현이, 많이 기다렸지?"
나는 그 말에 곧 바로 뒤를 돌아 그 사람이 박찬열이란걸 확인하고는 환희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옛날부터 항상 박찬열이 오기전까지 짜증나던 이 상황이 박찬열이 날 안아주고 웃어주면 화가 다 풀렸었다. 역시 내 기분을 좋아지게 해주는것은 박찬열뿐인것같아. 난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박찬열을 꽈악 안으며 박찬열의 가슴팍에 내 머리를 기대었다. 박찬열 또한 내 머리를 쓰담아주었다. 우리둘은 몇분이나 그 상태로 길거리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행복했다, 왠지 모르게 행복한 느낌이 들었었다. 나는 웃으며 그만 박찬열의 품에서 나오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왜이리 널 보니까 반갑냐?"
"전학가고나서 내 생각밖에 안났지, 너?"
"아니거든! 공부만 생각했어, 공부만. 너 생각할시간이 어딨냐?"
박찬열은 웃으며 내 손을 꽈악 잡아주었다. 그러더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박찬열이 발걸음을 옮긴곳은 어느 작은 가게였다. 나에게 처음 선물을 사주었던 그 가게.
*
"어떻게 나한테 그 중요한 소식을 안 말할수있어? 나 너한테 제일 친한 친구아니였어?"
"말하면 너가 울꺼같아서…"
"그래도 말해줘야지! 다른 사람한테 너가 전학간다는 소식듣는게 얼마나 기분 나쁜지 알기나해?"
"백현아"
"…이번일도 너한테 정말 실망이야, 박찬열"
"미안해, 미리 먼저 말안해서. 말하면 너가 울고 상처받을꺼같아서."
"…."
"사실 너한테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었어, 근데 용기가 없더라. 너가 우는 모습을 보기가 싫어서…."
축제가 끝난 후, 나와 찬열이는 나란히 손을 잡으며 우리집 앞에 있는 인적이 드문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기고서는 둘이서 대화를 하다 오늘 종인이에게서 들은 박찬열의 전학소식을 물어봤다, 거짓말일것같아서. 장난인것같아서. 조심스럽게 박찬열에게 질문을 했을때 박찬열의 대답은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박찬열이 전학간다는 소식을 믿게 되었고 배신감 또한 느껴져버려 지금 이 상태까지 와버린것이다.
"사실 이 전학, 한달전부터 준비해두던거야. 백현아"
"…뭐?"
"앞으로 일주일남았어, 일주일"
"박찬열"
나는 입술을 굳게 닫았고, 그 상태로 그 자리를 벗어나버렸다. 너무나도 화가 났다. 박찬열이 나를 떠난다는것이. 너무나도.
그 날 이후로 일주일간 박찬열에게 눈길조차, 말조차 안걸었다. 찬열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도 화가 나서 반을 뛰어나왔고, 찬열이가 나를 안아주어도 그 품을 빠져나오려고 소리를 지르고도 했었다. 그리고서는 박찬열이 전학가는날, 선생님이 박찬열을 교탁앞에 세우고서는 마지막말을 전하라고 말을 하였다. 나는 그 말조차 무시하고는 책상에 끄적끄적 거리기만 하였다. 싫다, 너무하도 싫었다. 그때 당시의 박찬열이. 그리고는 시작된 찬열이의 마지막 말.
"2년동안 나랑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고, 이제 나없으면 누가 우리학교의 얼굴이 될까 걱정도 되고 우리 학교 평균키도 걱정이 되고 다 걱정이 되는데 무엇보다 걱정되는건 변백현. 지금 나한테 삐져서 계속 책상에 끄적거리는 변백현이 걱정된다. 나 없어도 다른애들이랑 잘 놀고있고 제일 보고싶을꺼다, 백현아"
그 말이 끝나자 반 아이들의 야유가 쏟아지고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박찬열을 보았더니 박찬열은 나를 향해 하트를 만들어주고서는 웃어보였다. 나는 그제서야 웃으며 나 또한 하트를 만들었다. 야유가 더욱 쏟아졌고 그 후 박찬열은 뒷모습을 보이며 우리반을, 우리학교를, 나를 떠났다.
*
"이거어때?"
"뭐야, 또 필통이야?"
"그 필통 내가 이것저것 적어서 더럽고 낡았잖아, 다시 사주려고"
"괜찮아, 난 그 필통이면 돼"
"또 말 안듣지? 내 말 좀 들어라"
나는 박찬열에게 메롱하며 혀를 내밀고는 이 가게에 다른것들을 둘러보고 있을때 내 눈에 튀는 물건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러며 뒤를 돌아보았을땐 박찬열은 열심히 내 필통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그 물건을 조심스럽게 손에 쥐며 계산대로 가서는 이 물건을 사버렸다. 이게 추억이지 뭐, 다른게 추억인가? 난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찬열이에게 달려갔다. 찬열이는 열심히 내 필통을 고르고 있었고 나는 그런 찬열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더니 박찬열은 나를 째려보며 뭘 웃냐고 소리를 지르길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방금 산 그 물건을 주었다. 내가 너한테 주는 선물이라고 말하며 말을 하자 박찬열은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때 내려오는 눈들, 하나둘씩 우리한테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찬열이는 내가 준 사탕 하나를 입에 넣고는 내 입에도 하나를 집어넣어줬다. 우리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고 찬열이가 내 손을 꽉 잡더니 진지하게 말을 시작하였다.
"백현아"
"응?"
"이러면 안될수도 있는데 말이야"
"뭔데?"
내가 너를 아무래도 많이 좋아하는거같다
그때 그 시절 우리는 그렇게 즐거웠고
그때 그 시절 우리는 그렇게 행복했다
낡은 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