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밤이였다, 술에 젖어 비틀비틀 길을 걸으며 집에 도착했을땐 그 많던 신발들은 사라지고 신발장엔 작은 신발 하나와 내 신발만이 가득하였다. 가지런히 정리된 신발 작은 신발하나, 아마 변백현 신발같다. 그리고 조용히 들려온 울음소리. 나는 조용히 허공에 말을 던져보았다.
"변백현"
그순간 멈추어진 울음소리, 그 작은 신발 옆에 가지런히 내 신발도 놓고는 어두웠던 집안의 불을 켰다. 무릎을 꼬옥 껴안고 있는 변백현. 여전히 조그마한 체구와 갈색빛의 머리, 내가 생일선물로 사준 큰 티셔츠를 입고 있는 백현이. 나는 백현이를 일으켰다. 그러자 백현이의 얼굴이 보였고 얼마나 울었던건지 얼굴이 퉁퉁 부었다. 나는 그런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백현이의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맺히고 입에서 흘러나오는 울음소리를 막으려는 것인지 끅끅대는 소리만을 반복하였다. 손을 뻗었다, 변백현의 머리에. 그 갈색빛의 색이 은은하게 맴도는 변백현의 머리칼에. 변백현은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보았다. 이러면 안되는거였다, 허나 변백현은 나를 덥썩 껴안았다. 그리고는 울먹이며 하는 말은.
"헤어진지 한달밖에 안됐잖아…, 근데 너가 너무 그리워."
나는 변백현의 말에 미소를 지어주었다, 어린아이처럼 투정부리듯 말하는 변백현이 귀여웠다. 나는 그런 변백현을 바라보다가 백현이에게서 물러났다. 한걸음더, 한걸음더. 어느샌가 나와 변백현의 거리는 멀어졌고 변백현은 그런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백현이의 작은 신발을 손에 들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며 맘에 없는 소리를 하였다. 백현이에겐 너무나 상처가 되는 그 말.
"백현아"
"…"
"우리집에서 나가줄래?"
그리고는 내 손에서 멀어지는 백현이의 작은 신발, 백현이는 그 신발을 보더니 주먹을 꽉 지며 나를 지나쳐서는 현관문 앞에 있는 신발을 무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저렇게 가면 아플텐데, 많이…. 백현이가 집을 나선 후로 계속해서 현관문 앞에 떨어져있는 신발을 바라보던 나였다. 너무나도 작은 신발. 항상 내가 놀렸었는데, 넌 남자가 되서 그렇게 발이 작냐고. 그럼 백현이는 삐져서는 일부로 내 발을 밟고는 다른 아이들 곁으로 가곤 했었는데 이젠 그런 추억도 못만들겠다. 우린…, 멀어질때로 멀어졌으니까.
"미안해, 백현아"
조용한 복도, 새벽이라서인가 조용했다. 아무런 기척도 없었고, 아무도 안 보였다. 오직 이 복도엔 나 홀로 멍하니 백현이의 신발만을 보고있었다. 내 목소리만이 가득한 이 복도, 어느새 백현이의 신발이 출렁거려보인다. 참 나도 주책이네, 헤어진게 무슨 큰일이라고 이런 일에 눈물이 흐르는지. 이제 다 끝났잖아. 어느샌가 백현이와 나의 거리는 멀어질때로 멀어져서는 더이상 가깝게 좁아질수가 없었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백현이와 내가 가까워질수있는 거리는.
*
"아, 왜그러는데 백현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누나"
끈질기네, 이 사람. 나는 계속 사람좋은미소를 지으며 우리과 여선배와 말을 이어갔다. 아니, 그 선배가 나에게 접근하고 있다. 내가 게이라는걸 알면 얼마나 충격받으려고 이렇게 들이대는지 부담스럽다 부담스러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선배는 점점 내 옆으로 오더니 이내 눈을 감기시작한다.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러면 안된다. 선배는 내 행동에 놀라더니 그 부담스런 눈을 한두번 깜빡이고는 무슨일이냐고 묻는다. 나는 그런 선배에게 미소를 지으며 차갑게 말을 하였다.
"선배, 우린 좋은 선배와 후배에요. 전 선배한테 지금까지 아무런 감정없었다는거 아시죠?"
선배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그 자리를 빠르게 떠났다. 저 선배의 기분, 조금은 알것같다. 그때 그 새벽의 내 기분일까? 비참하던 그때의 그 기억. 나는 그 날 이후 박찬열이 휴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나보네, 박찬열. 항상 내 옆에 있던 박찬열이 사라지는건 참 쉬웠다. 사실 많이 그리웠고, 보고팠다. 아니 아직도 그립다. 옆에서 내 장난을 받아주고 웃어주는 박찬열이. 이제 더 이상 우리는 못만나는걸까, 찬열아?
그때 그 시절 우리는 그렇게 즐거웠고
그때 그 시절 우리는 그렇게 행복했다
낡은 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