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2년 5월 30일 8시 13분 58초,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딱 그 시점. 이 시간대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일 장소에서 난 그놈을 처음 만났다. 별 또라이 같은 놈을. 아, 젠장. "치마 좀 늘리고 다녀라. 쫌!!"
"야, 너 거기. 어딜 내빼? 이리와, 이리와." "거기 1학년? 교복 위에 사복 입으면 돼요 안 돼요?" "명찰은 아침밥이랑 같이 드셨나. 몇 학년 몇 반이야." 그렇다. 난 이 시대 최고의 차세대 선도부. 3학년 캡짱 위엄있는 김성규님이시다. 난 지금 이 좀비 떼와 별 다를 것이 없는 무한고 학생들을 잡아 쳐 죽이기 위해 교문 앞에 서 있는 중이다. 지각 처리되기 1~2분 전이 가장 요란스럽고 시끄러운 법. 곧 수업 시작종이 칠 테고 이 김성규님에게 오케이 받지 못한 아웃 인생 프렌드 들은 지각이라는 죄에 의해 쓰레기 줍기 봉사를 시작하겠지.
마침 종 치네. 지금부터 오는 시끼들 모두 아웃. "야 거기 2학년! 빨리 뛰어!!"
"…허…헉…. 오, 지각 아니죠?" "지각 면하려고 뛰어온 거지? 수고했다" "뛰어온 보람이 있어!!" "그래. 보람있는 봉사를 시작하자. 정확히 32초 늦었다. 얼른 쓰레기 주워" 아 진짜!!! 여전히 숨이 차는지 헐떡거리며 지 머리를 잔뜩 헝클린다. 아니, 가만 보니 쥐 뜯네. 죽어라 뛰어와서 버겁게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남은 힘이 있는지 씩씩거리며 궁시렁궁시렁 거린다. 김성규 형 나빠.
"다 들리거든? 야 거기 쓰레기 있잖아!! 빨리 주워"
선도는 일주일씩 다른 반 선도부와 돌아가며 서는데 이번 주는 나와 이성열 담당이었다. 평소에는 저 쓸데없이 긴 다리가 이리도 얇은 바지통에 들어가기는 하는 걸까 진지하게 의심하게 하는 교복을 입고 다니는 놈이 후배들에게 겁나 포스 있는 선배로 보이고 말겠다며 선도부에 신청했다. 지도 교사 선생님의 너 부터 잘하라는 말에도 생떼를 써 기어이 선도부가 되었다. 댄 만한 게 선도부 들겠다고 애교부리던 걸 생각하니 당장에라도 저 머리통을 갈기고 싶다.
종이 친 후 5분가량 더 교문 앞을 지키고 있다가 이성열과 나도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허허 근데 저것들은 대체 뭐야. ´우리 좀 놀아요. 나 완전 쎈캐임 뿌잉뿌잉´ 하는 듯한 아우라가 풍기는 무리가 겁나 멋지구리 하게 절대 뛰지 않으며 학교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극소수의 몇 명만 착용한 명찰의 색깔은 파란색. 올, 당신들은 2학년이시군요. 나의 사랑을 받을 시간. "야! 종 친지가 언젠데 이제 기어와. 빨리 뛰어" …. 나 엄청나게 큰 소리로 말했거든? 저기 문구점 아줌마도 나와서 볼 정도로 큰 소리로 말한 거거든? 야 성열아 나 지금 씹힌 거냐? … …그러하다. 족히 10명은 되어 보이는 파란색 무리가 분명 내 말을 씹었다. 그리고
비웃었다.
교문까지 오는데 뭐가 그리 오래 걸리는지 한 발짝 떼는데 1분은 걸리는 거 같다. 저 거지 같은 것들. 오기만 해봐 다 죽었어. 오늘 너희는 화장실 청소까지 덤이다 촤하하.
이성열과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교문을 들어서는 파랑이 무리 중 한 놈의 팔을 붙잡았다. 무슨 이효리 누나인 줄 알았네요. 짧게 줄인 하복 상의가 겁나 섹시하십니다? 이성열 못지않는 딱 붙는 바지에 어라? 얘는 분홍빛이 나는 피어싱까지 하고 계신다.
"요즘 2학년 막 나가네? 너희 반이랑 이름 다 대."
아웃 인생 프렌드들의 안쓰러운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작은 수첩을 펼쳐 들고 이것들의 반과 이름을 쓸 준비를 했다. 속으로 방금 한 대사에 스스로 박수를 쳐주며. 엄청나게 있어 보이는 말이었다. 겁나 쫄았겠지? 근데 왜 대답 안 해 이 것들. 고개를 들어 10명의 무리를 쳐다봤다. 바로 내 앞에 서 있는 피어싱 男은 생글생글 웃고 있다. 허, 이것 보소. 나 방금 진짜 무서운 선배.ver 대사 날렸는데 웃고 있소?
"6반 우현이요"
가슴께에 달린 탈부착 되는 제 명찰을 톡톡 친다. 계속 웃는다. 저 팔자 주름을 턱까지 늘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불현듯 했다. 개 같은 새끼. 아니, 진짜 얼굴이 개같이 생겨서. 퍼피. 유노? 오해 노노! 쨌든 이름을 알려주니 수첩에다가 2학년 6반 남우현. 지각/액세서리 착용이라고 꼼꼼히 아주 또박또박 선명하게 써넣었다.
나머지 9명은 이성열이 지 큰 키로 다 발랐는지 차례대로 줄 서 있는 파랑이들의 이름을 적고 있었다. 머리를 조~금 격하게. 아주 little, 아주 살짝 턱!!! 턱!!! 치며 교실로 들어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 모습에 큭큭 웃으며 나도 교실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얼라리요? 이 피어싱 남은 안 들어가고 뭐하심? "선배 이름 뭐에요?"
예…? 뭐라요? 님은 뭐에요…? 후배님은 뭐길래 제 이름을 물으시는지 하하, 소인은 잘 모르겠다만…. 우리 학교 선후배 사이가 그리 엄하지도 않고 프리하지도 않은데 이렇게 처음 보시는 후배가 내 이름을 물어본다는 건 조금 문제가 있지 말입니다. ´나 당황 탔어요´ 가 얼굴에 다 쓰여 있는 줄도 모르고 난 그저 눈만 깜빡깜빡 거렸다. 옆에서 이성열은 존나게 쪼갠다.
"올, 남우현 패기 보소" 이 피어싱 남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르는 이성열에게 한번 놀라고 존나 간지나게 다음 말을 이어 하는 이 피어싱 남의 용기에 다시 놀랬다. 당신의 용기에 박수를! 환호를! 축복을!!! "저도 이름 알려줬으니까 선배도 알려줘요" 아니 저기요? 그래요. 그쪽이 내 이름 알고 싶어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다만 나 지금 명찰 달고 있거든요? 노란색 바탕에 검정 글씨체로 김성규라고 적혀있거든요? 대답도 없는 나를 그래도 빤히 쳐다보며 마냥 웃기만 한다. 이 피어싱 남 혹시…, 좀 돈 거 아닐까…? 쓰레기 줍기에 화장실 청소까지 해야 되는 절망적인 현실에 잠깐 정신을 놨을지도 몰라. "야 너 닥치고 빨리 들어가. 내일 그… 그 피어싱 또 끼고 오면 뺏는다" "알았어요. 이쁜이 선배" 피어싱 남이 한 말 중 예쁜이 선배는 누구를 뜻하는 걸까 생각하다가 무슨 대꾸도 못하고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냉큼 뒤돌아서 손을 흔들어 보이며 계단을 두 칸씩 껑충껑충 올라가는 저 피어싱 남을. 한참뒤에야 그 예쁜이 선배가 나라는 걸 알아체고 소리쳤다. 솔직히 이성열보다야 내가 더 예쁘게 생기긴 했지.
"저… 저 지랄 새끼!!!!!!"
진짜 정신을 놓았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