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 뭔데요? "
실명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채로 내 앞에 서 있는 이 남자는 단호하게도 그렇게 대답해 온다. 원하는 답이 아니여서 나도 모르게 표정이 찡그려졌다.
제가 그 정도도 모르는 바보는 아니에요. 뭐라고 불러야 할 지나 알려줘요.
짜증 섞인 내 답에 무표정한 남자가 제 손에 들려있던 파일을 넘겨본다. 몇 장의 종이가 넘어가고, 원하는 서류를 찾은 건지 종이 하나에서 멈춘 채로 날 바라봤다.
목이 타는 느낌에 앞에 놓여있던 얼음 물이 든 잔을 잡아 입에 가져다 댔다. 한 모금 넘기려는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바비 입니다. "
하마터면 마시던 물을 그대로 뿜어낼 뻔 했다. 겨우 겨우 삼키고는 기침을 했더니,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괜찮냐며 손수건을 내밀어 온다.
손수건을 받아 입 주위로 새어나온 물을 닦았다.
바비?
" 설마 바비인형 할 때, 그 바비? "
" 네. 맞습니다. "
" 진짜…. "
아저씨들 작명 센스는 최악인 거 같아요. 가감 없이 솔직하게 뱉어낸 내 말에 '바비' 라는 이름을 말해주던 남자가 그런 반응일 줄 알았다는 듯 픽 웃었다.
바비가 뭐야, 바비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지은 거래요?
내 말에 픽 웃던 그 웃음을 감추고는 또 아무런 표정도 없이 묵묵부답이다.
재미 없어. 이 사람들은 늘 이렇게 재미 없다.
" 알았어요. 이제 가도 돼요? "
내 말에 옆에 있던 아저씨, 그러니까…. 내게 바비라는 이름을 알려주던, 표정 없는, K라는 명찰을 단 이 아저씨가 내 앞으로 종이 한 장을 내밀어 온다.
뭐에요? 하고 묻자 바비에 대한 정보입니다, 하고 또 짧게 대답했다.
어차피 조금 있음 보게 될 텐데 이런 걸 꼭 봐야할까. 그래도 마지 못해 종이를 들어 읽어 내리다가 얼마 가지 못해 시선이 멈췄다.
나이가… 24? 겨우 24?
" 스물 네 살 밖에 안 됐어요? "
" 네. "
" 당연히 아저씨들 처럼 아저씨 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
내 말에 그나마 젊은 (그래봤자 아저씨다.) 아저씨 한 명이 억울한 듯 뭐라고 말을 하려다 만다. 혀를 살짝 내밀어 보이곤 읽다 만 종이를 마저 읽기 시작했다.
바비, 24세, 남자, 키…. 시선을 옮기다가 사진이 붙어 있어야 할 칸으로 시선을 옮겼는데 아무 것도 붙어 있지 않다.
" 이 사람 사진은 없어요? "
" 없습니다. 대신 곧 여기로 오기로 했습니다. "
그래요?
뭐, 별로 크게 기대가 되진 않았다.
워낙에 성격이 화끈한 탓에 이리 저리 놀러다니기를 좋아하는 나를 포기한 사람이 벌써 몇 명이었다. 지독하게도 딸을 아끼는 아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누군가 경호를 한다는 걸 막을 순 없었지만, 뭐…. 이 사람은 또 얼마나 버티다 다른 곳으로 갈까 싶었다.
경호원이 바뀔 때마다 설레는 것도 다 처음 얘기지.
이번에 날 맡게 된 '바비' 라는 사람도 스물 네 살이라는 게, 나와 겨우 네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긴 했지만 별 다른 느낌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사람은 첫인상이 별로다. 바비가 뭐야, 바비가. 자기가 무슨 인형이라도 되는 줄로만 아는 걸까. 대체 이름을 왜 이렇게 지었지?
만나면 꼭 이건 물어봐야겠다, 하고 생각하며 또 느껴지는 갈증에 얼음 물만 꼴깍.
때 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
바비라는 저 사람도 양반은 못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데. 그쵸? "
" 그러게요. "
내 말에 K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요, 하는 내 대답에 문이 열리고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과 같은 정장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안으로 들어온다.
순간적으로 내 시선이 그 얼굴에 고정되었다.
사고는 정지했고, 어, 말하자면 꼭 방 안에 있던 모든 빛이 저 사람만을 비추고 있는 거 같았다.
K와 같은 위치에 '바비'라는 명찰을 단 남자가 내 앞에 와서 섰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 내게 인사를 해 온다.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멍한 표정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으니 남자가 숙인 몸을 들어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다.
" 처음 뵙겠습니다. "
" ……. "
" 바비 입니다. "
그리고는 무표정하던 그 인사 끝에, 아주 살짝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로만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도 금새 사라져 버리긴 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그 얼굴만 바라보고 있으니 옆에 서 있던 K가 날 불러온다.
아가씨…?
K의 목소리에 정신이 깨서는 네, 네 하고 의미 없는 대답을 뱉었다.
" 바비…? "
" 네. "
" …그 쪽이 바비구나. "
뭔가…. 내가 생각하던 거랑은 되게 다르게 생겼네요.
당연히 여기 있는 아저씨들 처럼 뭔가, 아저씨 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되게…. 딱히 표현을 할 수 있는 말이 생각나질 않는다.
나를 또렷히 바라보는 그 눈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순간적으로 피해버렸다. 바비, 그 사람의 인적사항이 적힌 애꿎은 종이에만 시선을 둔 채로.
누군가의 시선을 잘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내는 편인데 방금은 …. 정말 나도 모르게 피했구나.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아까 눈이 마주친, 아니 사실은 바비라는 저 사람이 이 방 안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자꾸만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게 이상했다.
멍해진 내 정신을 K가 또 한 번 깨웠다.
" 아가씨.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
" 그럼 오늘부터 저는 이 쪽이랑 가요…? "
" 네. 바비와 함께 움직이시면 됩니다. "
고개를 끄덕이곤 바비에게 시선을 주지도 못한 채로 몸을 일으켰다.
평소였으면 아무렇지 않게 잘 일어서고, 잘 걷고, 유유히 이 방을 나갔을 텐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일어나는 것 부터가 문제다. 평소에 자주 신던 굽 높은 힐인데도 이상하게 일어서려는 순간 한 쪽 발이 살짝 미끄러지며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 어, 어…! "
그런 날 잡아준 건 내 앞에 서 있던 바비라는 남자였다.
내 팔을,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허리를 잡아 몸이 완전히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해준 바비 덕분에 넘어지지 않고 다시 제대로 설 수 있었다.
몸에 닿인 손이 금방 떨어졌고, 괜찮으십니까? 하고 묻는 그 음성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닿았다 떨어진 모든 곳이 다 따끔, 따끔. 뜨거웠다.
네? 네…. 네.
웅얼대며 대답을 하곤 천천히 문을 향해 걸으니 옆에서 바비가 함께 걷는 것이 느껴진다.
문 앞에 도착하자 문이 자연스레 열렸고, 바비가 먼저 방 밖으로 나간 뒤에 내가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닫히는 문. 밖에는 바비와 나, 둘 뿐이었다.
바비는 아무런 표정 없이 날 보고는 문 쪽으로 이끌었다. 이쪽입니다.
아, 네…. 그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바비가 안내한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심장이 자꾸 콩닥거렸다. 나도 모르게 옆을 힐끔, 힐끔 하며 바비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순간적으로 바비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온다.
눈이 또 마주쳤다. 그리고는 또 시선을 먼저 피한 건 나였다.
" 뭐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
느린 걸음으로 한 발 앞서 걸으며 물어오는 바비에 네? 하고 화들짝 놀랐다.
먼저 말을 걸 줄은 몰랐는데.
어…. 뭐라고 답을 해야 할 지 몰라서 잠깐 뜸을 들였더니 걷다 말고 다시 한 번 나를 바라본다.
" 아뇨. 그런 건 없는데…. "
내 대답에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묵묵히 걷기만 하는 바비와 두 걸음의 간격으로 조금 더 멀어지게 되었다.
또각 또각, 구두 소리와 함께 말 없이 입구를 향해 걷는데 정말 오늘은 이상한 날인가 싶다. 잘 걷다 말고 꼬여버린 스텝에 순간 또 휘청. 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도 모르게 앞서 가던 바비의 팔을 잡곤 내 몸을 지탱했다.
갑자기 자기를 잡아오는 내 손길에 바비도 놀란 듯 나를 바라본다.
" 안 다치셨습니까? "
" 네, 괜찮아요. 아…. 오늘 자꾸 왜 이러지. "
내가 제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내 팔을 잡은 바비의 손을 바라보다가 바비를 올려다 보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내 구두를 바라보고 있다.
괜찮아요. 괜찮아. 잡고 있던 손이 떨어지고 바비를 보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람이 웃으면 같이 좀 웃어주지…. 바비는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가 구두를 바라보다가. 다시 나로 시선이 옮겨 온다.
" 이거 꼭 신으셔야 합니까? "
" 네? "
" 신발요. "
" 아, 구두요? 당연하죠. "
여자의 자존심이잖아요, 구두는.
내 말에 바비의 심각한 표정이 조금은 풀어진 것도 같다. 구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즈막히 한마디 해 온다.
잘 신고 다니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다음부터 이런 거 신지 마세요.
그 말에 심장이 콩닥.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것 같이, 규칙적으로 콩닥, 콩닥, 콩닥.
" 아니에요.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잘 신고 다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자꾸 발이 꼬여…. "
또 다시 무표정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바비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칭얼거렸다.
정말이에요. 나 원래 이것 보다 더 높은 것도 잘 신고 다니는데, 오늘은 자꾸 발이 꼬여…. 이유가 뭘까요. 바닥이 좀 미끄러운가? 진짜에요. 나 원래 이렇게 덤벙대는 사람 아니니까 오해 마요. 오늘 처음 봤는데 하필 왜 오늘 이런 모습이 자꾸 보이는 건진 모르겠는데, 저 원래는 이런 여자 아니에요….
걸으면서도 자꾸만 칭얼대는 내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는, 표정을 알 수 없는 바비에 괜한 서운함이 든다.
사람이 말을 하면 반응을 좀 해주면 안 돼요? 나 진짜 원래 이렇게 허술하고 그런 여자 아닌데….
두 걸음 먼저 걸어가는 그 뒷 모습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거야, 아님 무시하는 거야.
어느새 입구에 도착한 건지 문을 열어주는 바비에게 계속 칭얼대는데, 순간 보인 들려오는 바비의 음성에, 그리고 그 표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덩달아 멈춰버린 걸음.
" 아가씨 쉬운 여자 아니신 거 알겠습니다. "
멈춰선 나를 보는 바비의 표정은 처음으로 웃고 있었다.
안 가실 겁니까? 하고, 여전히 웃음 머금은 그 눈빛과 그 표정으로 내게 물어온다.
" 지금, 웃은 거에요…? "
" 네? "
" 지금… 웃은 거…. "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웃는 얼굴을 딱 마주한 순간 미친 듯이 콩닥거렸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딱 하나 뿐이었다. GAME OVER.
나는 저 사람에게 첫 눈에 반했다.
아까, 바비, 저 사람 첫인상이 별로라고 했던 말 취소에요!
♡
드디어 Team B를 벗고 IKON이 되었어요!♡♡♡♡♡♡♡
WIN에서 Team B 일 때 부터 정말 오래 좋아해 온 거 같은데 이제 진짜로 데뷔 할 거라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진짜.. 하여튼 엄청나게 묘한 기분이에요
축하하는 이 마음이 저 7명에게까지 전해질까요? ㅎㅎㅎㅎ..ㅎㅎ♡
이제 정말 아이콘이 된 기념으로 IKON을 적어 보았습니다!
뭐, 어찌 되었든 깜짝 글이에요!
기쁜 마음에 그냥 한 편 써본 거긴 한데, 개한빈이 끝나고 그 다음 글이 될 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이런 지원이도 좋거든요
개한빈에서 지원이가 너무 매몰차게 버려졌으니 여기서, 이렇게 여주 사랑 듬뿍 받으며 구원해줘야 겠다는 마음도 들고..
'아가씨' 의 내용은 어떨지 감이 딱 오시나요?
경호 업체, 아가씨 전담 경호원 바비랑 철부지, 사고 뭉치인 귀한 외동딸 아가씨!
뭐 그런 내용이에요
뒤에 내용은 쓰면서 또 어떻게 바뀌고, 조정이 되고 하겠지만!
그럼 좋은 밤 되세요, 다들♡
개한빈 9화와 함께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는 걸로 해요, 제 이쁜이들!
사진은 정장 입은, 웃는 지원이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