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호찡] [낑깡] [8월의 겨울] [봄꽃] [열시십분] [여름밤] [호시 부인] [디케이] [쑤하진] [아니아니] [슝] 캔버스와 물감 [물감 아홉 방울] "아..." 나는 당황감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는 그저 눈을 깜빡였다. 벌어진 입술 틈 사이로는 짧은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내 앞에서는 부승관이 울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닌 부승관의 품 속에 안겨진 내 그림 때문이었다. - 어제 권순영과 헤어진 후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방과 교복을 정리하고는 손목에 걸려져 있던 머리끈을 빼어내어 머리를 올려 묶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물감 냄새가 코 끝을 간지럽혔다. 벽에 기대어진 체 놓여 있는 작은 캔버스를 들어 올려 이젤 위로 올려놓았다. 붓을 들어 물을 적시고, 천에 갖다 대어 머금어진 물의 양을 조절했다. 대회 전까지는 시간이 조금은 있었다. 이렇게 급하게 완성하지는 않아도 됐다. 그래도, 오늘 완성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하루빨리 부승관에게 선물해야 될 것만 같았다. 하루빨리,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마음처럼 만큼이나 빠르게 움직이는 손놀림에, 반쯤 채워져 있던 캔버스의 위는 금세 여러 색의 물감으로 뒤덮였다. 마지막 붓질을 마치고 붓을 내려놓았다. 조용한 방 안에 '탁' 하고 붓을 내려놓는 소리가 울렸다. "예쁘다" 작은 캔버스 위를 가득 채운 색들의 향연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다 같은 회색이지만, 그 무엇보다 예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보다 큰 작품도 그려봤다. 이보다 더 오랜 시간을 걸려 작품을 완성해봤었다. 이보다 더 많은 색을 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이제껏 그 어떤 작품보다 마음에 들었다. 아직 물감이 덜 마른 캔버스 위의 허공에 쓸어내리듯 손을 움직였다. 기뻐해 줬으면, 좋겠다. 다음 날 나는 아침에 일어나 가방을 메며 캔버스를 종이봉투에 넣어 꾹, 쥐었다. 수업시간에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부승관을 떠올리며 빈 종이 위를 오간 손은 동글동글한 작은 체리 몇 개를 그려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라며 어김없이 나의 반으로 달려온 부승관에게 나는 책상 옆에 걸려져 있던 종이봉투를 꺼냈다. 갑작스레 자신의 앞에 들이밀어진 종이봉투에 동그래진 눈을 깜빡이던 부승관은 얼떨결에 종이봉투를 받아들었다. "뭐야 김세봄?" "열어 봐" 자신에 손에 들린 봉투가 무엇인지 묻는 부승관에게 열어보라며 짧게 말하고는 슬쩍 웃어 보였다. 그런 나의 반응에 부승관은 손을 움직여 종이봉투를 열어냈다. 종이봉투 안에서는 천으로 둘러진 캔버스가 나왔지만 부승관은 모르겠다는 듯 이게 대체 뭐길래 이렇게 꽁꽁 싸매놓았냐며 말했다. "어, 부승관 그거 뭐야?" "어.." "저번에, 네가 본관에 걸렸었던 그림 마음에 들어 하길래 그렸어. 솜사탕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선물이니까..." 부승관이 천을 풀어냄과 동시에 열려져 있던 뒷문으로 이지훈이 들어왔고, 이지훈의 질문에도 부승관은 그저 그림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그런 부승관의 모습에 급히 입을 열어 이야기를 꺼냈다.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빈말일 뿐이었는데 내가 과하게 반응했을 수도 있다. 내가 오만했다. 내가 그 사람을 친구로 여겼다 해서 내가 그 사람에게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복잡해져 오는 머릿속에 말의 속도는 점점 더뎌졌다. 그리고 바닥으로 향했던 시선을 들어 올리며 부승관을 바라봄으로써 나의 말소리는 멈췄다. 부승관이 울고 있었다. 나의 말소리가 멈추자 조용해진 교실 안에는 옅은 부승관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뒤에서 다가오던 이지훈도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숙인 부승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부승관의 반응이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특유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을 보이기는커녕 눈에는 눈물이 잔뜩 고여있었다. "나는, 네가 날, 이렇게 생각할 줄 몰랐어" "늘, 항상, 걱정했어. 내가 너한테 너무 과하게 대했을까, 혹여 무심결에 실수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네가 날 싫어하지 않을까" "친구라고, 여기지 않을 줄 알았어" 조용한 교실 안에 퍼지는 부승관의 목소리가 멈추자 나는 이로 물었던 입술을 놓았다. 코 끝이 아려왔다. 눈가가 뜨거웠다. 친구라고 생각했다. 늘 나를 걱정했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전한 부승관의 말은 꾹, 내 머리를 짓눌렀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멍청해, 진짜" "멍청한 부승관" 약간은 젖은 내 목소리가 다시 한번 더 조용한 교실을 울렸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눈물에 잔뜩 젖은 부승관의 얼굴이 보였다. '멍청한 사람이랑은 친구 안 해', 그렇게 말하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날 보던 부승관은 더욱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볼록이 귀엽게 나온 광대가 올라가고, 앙 다문 입술이 벌어지며 둥글게 변했다. 특유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과 함께. - 오늘은 완전한 세봄이와 승관이의 화가 되었어요. 세봄이가 누군가에게 그림을 준다는 게 특별한 행동인 걸 승관이도 알아요. 또, 자신이 스치 듯 한 말을 기억하고 그린 세봄이의 행동이 승관이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죠. 물론 세봄이한테도 큰 의미였고요. 이렇게 세봄이는 승관이와 함께 조금 더 성장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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