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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 몬스타엑스 강동원 이준혁 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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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ga (Feat. Gaeko) - Heize (신기원님 피아노커버)'

노래를 트셔야 집중이 훨씬 잘 돼요!






-


조마조마했던 첫 오티가 끝나고, 드디어 조별모임의 첫만남 날이 되었다. 지난 주에 같은 고등학교 선후배 얘기로 멘탈이 탈탈 털렸던 터라, 이번엔 좀 만반의 준비를 했다. 사적으로 얘기가 흘러갈 시엔 빠르게 본론을 되찾자고. 난 4학년이고, 바쁜 사람이니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음을 보여주자고, 


그러나 막상 만남이 정해진 카페 앞에 서자, 긴장감이 엄습했다. 

그리 덥지도 않은데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손에도 땀이 차기 시작했다. 



이게 뭐길래. 긴장을 하냐. 


분명 자유롭게 나름의 일탈을 즐기러 들은 수업이었는데, 김재환의 존재가 마치 뱀처럼 베베 꼬아 내 숨을 조여왔다.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데. 어렸을 때 사귄 게 뭐 대수라고 다 큰 성인이 되서 긴장을 하는 건지, 도통 내 맘을 알 래야 알 수가 없었다.

짐작컨대 이 긴장은 종강을 하는 3개월 후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홀로 움찔해가면서.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다시 맘을 다 잡았다. 언제 김재환이 기억해낼 진 모르겠지만, 그동안의 우린, 생판 초면이라는 거. 내가 김재환과 사겼고 가볍게 차였던, 그 서사는 여기선 아무도 모른다는 거. 그래, 그렇게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는데...카페 문에 비친 내 모습에 다시 비참히 무너졌다. 어차피 남남인데, 잘 보일 필요도 없는데 왜,

난 또 원피스를 입고 있을까.





-


띵동. 문 위에 달린 종이 경쾌하게 울렸고, 나는 또각이며 어둑한 계단 속으로 내려갔다. 이 곳 카페 분위기는 일반 카페와는 달랐다. 지하에 위치해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은은한 조명만이 가득하며, 노래선곡도 세련되고 회색빛의 벽지와 모던한 소품이 잘 어울려진 카페였다. 학교와는 꽤 거리가 멀어 사람도 그리 붐비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카페는 아니었다. 호불호가 좀 갈린다. 발랄한 학교 생활과는 거리가 멀게 어둑컴컴하고 칙칙한 분위기의 카페였기에. 


나는 마이너한 취향이라 이 카페를 자주 애용했었다. 사람이 적어 공부하기에 편했고, 중간 공강 때 홀로 쉬기에도 좋았다. 그래서 이번 조 모임 장소를 정할 때도 직접 이 곳을 추천했다. 물론 그저 좋은 곳을 공유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내 속셈은 따로 있었다. 어둔 조명 아래, 조금이라도 김재환의 얼굴을 피하는 것. 대화를 나누다 눈이 마주친대도 부담스럽지 않게 마주하기 위함이었다. 밝은 곳에서 마주쳐봐. 어? 김여주?!! 하며 번뜩 옛날 일이 떠오를지 누가 알아.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니 금빛 조명 아래 위치한 작은 카운터가 바로 보였다. 갑갑한 속을 트여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하며 앉을 자리를 물색하는데...

저 쪽 끝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또 이 남자다. 

분명 먼저 도착하려 일찍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오늘은 내가 한 발 느렸다.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



그는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검정 쇼파에 앉아, 음악에 취해 고개를 까닥이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의 앞엔 휘핑크림이 가득 올려진 초코음료가 놓여있었고, 반쯤 줄어있는 상태였다. 대체 얼마나 빨리 온 건지...그의 부지런함에 진심으로 놀라며 맘 속으로 박수를 쳤다. 제대로 말을 섞어보지 않아 그에 관해 아는 건 김재환과 동기라는 것 밖엔 없지만, 지금껏 본 그는 참 성실한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다.


약속 시간을 잘 지킨다는 것. 조원으로서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었다. 그동안 조별을 하며 시간에 대해 데인 적이 너무 많았기에, 일찍 온 그의 모습은 사실 약간의 감동도 가져왔다. 조를 잘 만난 것 같기도? 그나마의 행운이었다.



그는 아직 내가 들어온 걸 보지 못한 듯 했다. 노래에 심취해있었고, 그래서 그가 민망해할까 그 쪽으로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핸드폰을 흘끗 보니 아직 약속시간보다 15분이나 앞서있었다. 고민이 시작됐다. 김재환이나 그 새내기 여학생이 오지 않으면 15분간 정적만 줄줄 흐를 텐데. 가서 어색하게 앉아있을까. 아님 밖에 나가 잠깐 시간을 때울까.


그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난 밖으로 나가는 걸 택했다. 벌써부터 긴장에 쪄들기 싫었다. 난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뒷걸음질 치며, 재빨리 입구를 향해 뒤를 홱 돌았다.



"왁!!!"



그 때, 난 뒤에 있는 커다란 화분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무릎을 박아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아악. 이라는 괴성과 함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진짜 되는 일 없다. 나로 인해 시끄러웠던 주위가 한순간에 고요해지며, 많은 시선들이 내게로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세운 역시 놀란 표정으로 내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



아, 쪽팔려. 다친 무릎을 매만지다 그와 눈이 마주치며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무릎이 깨질 것 같이 존나 아픈데, 그보다 창피함이 더 크다. 왜 마주칠 떄마다 그러는거지. 강의실에서 마주친 순간도, 지금 이 순간도. 한결같이 그지같다. 얼마나 변태같고 어설픈 사람으로 보일까.


창피한 마음에, 난 아픔을 무릅쓰고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차라리 아까 그냥 조용히 들어가 앉을걸. 이게 무슨 관종적 모먼트람. 수치심에 얼굴이 볼터치한 듯 새빨개졌다. 




"어...아아.."


세게 부딪히긴 했나보다. 처음엔 창피해서 몰랐는데, 걷는데 고새 무릎이 뻐근하며 저절로 아픈 신음이 입으로부터 새어나왔다. 밑을 바라보니 무릎은 바닥에 쓸려 까맣게 얼룩이 져 있었다. 젠장, 오늘 원피스 입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오늘 하루도 처음부터 꼬여버린 거다. 김재환을 만나기 전부터.


무릎에 묻은 먼저를 털기 위해 한 손으로 거칠게 무릎을 쓸어내리려는데, 

갑자기 눈 앞에 물티슈가 하나 내밀어졌다.


내민 손의 주인을 찾아 위를 바라보니, 세운이었다. 그는 내 얼룩진 한 쪽 다리를 쓱 보고는 '괜찮으세요?'라는 말과 함께 티슈를 내 손에 꼭 쥐어주었다. 말투는 담담했으나, 전해주는 손의 온기는 참 따뜻했다.



잘생겼는데, 부지런하고 친절하기까지 하다. 

이런 사람이 우리 학교에 다닌다는 게 정말 영광스럽고 마음이 들뜨면서도.


문득 그가 김재환의 동기라는 걸 직시하면 

그 감정은 순식간에 가라앉아버린다. 


만약 김재환 없는 조에서 그를 만났다면, 이 상황은 모쏠인 내 마음에 불을 지펴 아주 그냥 활활 타올랐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난 그럴 여력이 없다. 김재환의 친구인 이상, 그는 이번 조가 끝나면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사람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렇게 그의 호의는 짝사랑, 아니 호감 그 이상으로도 번지지 못한 채, 사그라졌다.






-


"늦어서 죄송해요...버스를 놓쳤어요..!!"

"아니이, 교수님이 수업을 늦게 끝내주셔서...핳 죄송합니다"



정적의 끝을 달린 15분이 지나고 또 15분쯤 더 지나서 30분 가까이 흘렀을 때, 그제서야 1학년 새내기와 김재환이 슬금슬금 모습을 보였다. 숨을 헐떡이며 이 조모임을 위해 열심히 뛰어왔다는 걸 강하게 드러내면서. 뭐, 예상했던 일이다. 내 옆에 앉은 이 남자가 특이한거지, 저게 정상이니깐. 보통 조모임을 대수롭지 않게들 여기기에, 모두 참여했다는 것 만으로도 내겐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다만 세운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형...앞에 수업 없잖아요..."

"어? 아하핳...수업이 아니고 상담, 상담!"

"상담도 없.."

"아하핳ㅎ우리 늦었는데 빨리 시작해요. 어..여주씨?"



다급하게 세운의 말을 막으며 김재환은 내 눈치를 보았다. 그냥 자신의 지각을 무마하려 생각없이 내뱉은 이름이겠지만, 뒤에 붙은 호칭이 꽤 신경쓰였다. 분명 동갑인데도, 잘 모른다는 이유로 김재환은 내게 -씨, 를 꼭 붙였다. 단톡에서도 세운과 아린에게는 편하게 반말을 트는데, 나에게만은 꼭 존칭을 갖췄다. 물론 내가 첫 만남부터 어색하게 거리를 둬서 그렇겠지만, 그래도 완전 선을 그을 줄이야. 한 때는 서로를 '재환아' '여주야''라고 다정하게 불렀을 때가 있었을 텐데. 난 아직 그 기억이 선명한데. 

저 말 하나로 9년의 거리감이 확 다가오며, 우리가 완전한 남남 임을 확실하게 실감케했다.



"네, 재환씨"

"혹시 영상 찍어본 적 있으세요?"

"...아뇨, 없어요"

"큰일이다. 아린아, 너도 없지?"

"넹...저 카메라도 못만져요"



다들 숙연해졌다. 생각해보니 우린 네 명중 단 한 명도 관련 과가 없었다. 카메라를 좀 다룬다거나 편집을 할 줄 안다거나. 아니면 연기 경험이 있다거나. 그런 사람이 일절 없었다. 수업 자체도 워낙 자율적이라 교수님의 터치가 없어 더 걱정이었다. 뭐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한 상태였다. 그래서 다들 벙찐 채로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거나 책상만 내려다봤지, 정말 아무 계획이 없었다. 


촬영 지원만 잘해주면 어떡해. 어차피 활용할 줄도 모르는데. 이번 조는 김재환 떄문이라도 묻어가듯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흐리멍덩하게 앉아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가방을 뒤적여 작은 수첩 하나와 펜을 꺼냈다. 제대로 뭔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의 내 습관이었다.


나서기 싫었는데. 정말, 나서기 싫었는데.



"제가 조장할게요"



자발적으로 지원했고,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원래 모든 내 손으로 일을 시작하고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조별 과제를 할 때면 1학년을 제외하곤 늘 조장을 맡아왔었다. 그래도 이번만은 꼭 피하고 싶었는데....그렇지만 나 기억 못하는 김재환 하나 때문에 이리 저리 눈치보다가 남은 학길 말아먹고 싶지 않았다. 난 뼛속까지 모범생이니깐. 교양 주제에 에이쁠 받아야 할 테니깐. 일탈을 행한 건 나였고, 그 결과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했다. 


조장이 된 나는 빠르게 상황을 주도했다.



"저, 일단은 어떻게 찍을지 방향부터 잡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큰 틀부터 잡고, 그다음 각자 시놉시스 써오기로"

"아..방향"

"그럼...장르부터 정할까요"



사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답은 정해져있었다. 한 편으로 끝낼 드라마였기에, 뭔가 거창하게 벌릴 게 없었다. 코믹을 찍기엔 우리들이 너무 평범해보였고, 액션과 공포를 찍기엔...경험이 부족하여 허접한 영상이 만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제일 무난한 게,로맨스였다. 웹드라마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 사람들은 별 뜻 없이 내뱉은 내 말 한마디에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뭐하지? 야, 세운아 뭐할까? 글쎄요...등 뭐 심각해보이진 않지만, 나름의 고민을 하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아린은 어째 딴 데 관심이 쏠린 듯 그 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뭐할까요 뭐할까 만 반복할 것 같아 빠른 흐름을 위해, '멜로나 로코로 할까요?' 라고 운을 뗐다. 그제서야 세운만 빤히 쳐다보던 아린이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내 말에 응했다.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네네네!!!! 저저 멜로 하고싶었어요!!!!"

 



"...아..멜로...."


그러나 김재환은 좀 더 특별한 걸 원했나보다. 멜로..오...하면서 이미 쳐진 눈꼬리기 더 추욱 내려갔고 금세 시무룩 해 보였다. 누가봐도 실망한 티를 팍팍 내는 김재환의 태도에 세운은 뭘하고 싶냐고 찔러봤고, 이에 재환은 기다렸다는 듯 신나게 말했다.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Jenga (Feat. Gaeko) - Heize (신기원님 피아노커버)'

노래를 트셔야 집중이 훨씬 잘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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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조마했던 첫 오티가 끝나고, 드디어 조별모임의 첫만남 날이 되었다. 지난 주에 같은 고등학교 선후배 얘기로 멘탈이 탈탈 털렸던 터라, 이번엔 좀 만반의 준비를 했다. 사적으로 얘기가 흘러갈 시엔 빠르게 본론을 되찾자고. 난 4학년이고, 바쁜 사람이니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음을 보여주자고, 


그러나 막상 만남이 정해진 카페 앞에 서자, 긴장감이 엄습했다. 

그리 덥지도 않은데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손에도 땀이 차기 시작했다. 



이게 뭐길래. 긴장을 하냐. 


분명 자유롭게 나름의 일탈을 즐기러 들은 수업이었는데, 김재환의 존재가 마치 뱀처럼 베베 꼬아 내 숨을 조여왔다.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데. 어렸을 때 사귄 게 뭐 대수라고 다 큰 성인이 되서 긴장을 하는 건지, 도통 내 맘을 알 래야 알 수가 없었다.

짐작컨대 이 긴장은 종강을 하는 3개월 후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홀로 움찔해가면서.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다시 맘을 다 잡았다. 언제 김재환이 기억해낼 진 모르겠지만, 그동안의 우린, 생판 초면이라는 거. 내가 김재환과 사겼고 가볍게 차였던, 그 서사는 여기선 아무도 모른다는 거. 그래, 그렇게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는데...카페 문에 비친 내 모습에 다시 비참히 무너졌다. 어차피 남남인데, 잘 보일 필요도 없는데 왜,

난 또 원피스를 입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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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문 위에 달린 종이 경쾌하게 울렸고, 나는 또각이며 어둑한 계단 속으로 내려갔다. 이 곳 카페 분위기는 일반 카페와는 달랐다. 지하에 위치해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은은한 조명만이 가득하며, 노래선곡도 세련되고 회색빛의 벽지와 모던한 소품이 잘 어울려진 카페였다. 학교와는 꽤 거리가 멀어 사람도 그리 붐비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카페는 아니었다. 호불호가 좀 갈린다. 발랄한 학교 생활과는 거리가 멀게 어둑컴컴하고 칙칙한 분위기의 카페였기에. 


나는 마이너한 취향이라 이 카페를 자주 애용했었다. 사람이 적어 공부하기에 편했고, 중간 공강 때 홀로 쉬기에도 좋았다. 그래서 이번 조 모임 장소를 정할 때도 직접 이 곳을 추천했다. 물론 그저 좋은 곳을 공유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내 속셈은 따로 있었다. 어둔 조명 아래, 조금이라도 김재환의 얼굴을 피하는 것. 대화를 나누다 눈이 마주친대도 부담스럽지 않게 마주하기 위함이었다. 밝은 곳에서 마주쳐봐. 어? 김여주?!! 하며 번뜩 옛날 일이 떠오를지 누가 알아.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니 금빛 조명 아래 위치한 작은 카운터가 바로 보였다. 갑갑한 속을 트여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하며 앉을 자리를 물색하는데...

저 쪽 끝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또 이 남자다. 

분명 먼저 도착하려 일찍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오늘은 내가 한 발 느렸다.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



그는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검정 쇼파에 앉아, 음악에 취해 고개를 까닥이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의 앞엔 휘핑크림이 가득 올려진 초코음료가 놓여있었고, 반쯤 줄어있는 상태였다. 대체 얼마나 빨리 온 건지...그의 부지런함에 진심으로 놀라며 맘 속으로 박수를 쳤다. 제대로 말을 섞어보지 않아 그에 관해 아는 건 김재환과 동기라는 것 밖엔 없지만, 지금껏 본 그는 참 성실한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다.


약속 시간을 잘 지킨다는 것. 조원으로서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었다. 그동안 조별을 하며 시간에 대해 데인 적이 너무 많았기에, 일찍 온 그의 모습은 사실 약간의 감동도 가져왔다. 조를 잘 만난 것 같기도? 그나마의 행운이었다.



그는 아직 내가 들어온 걸 보지 못한 듯 했다. 노래에 심취해있었고, 그래서 그가 민망해할까 그 쪽으로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핸드폰을 흘끗 보니 아직 약속시간보다 15분이나 앞서있었다. 고민이 시작됐다. 김재환이나 그 새내기 여학생이 오지 않으면 15분간 정적만 줄줄 흐를 텐데. 가서 어색하게 앉아있을까. 아님 밖에 나가 잠깐 시간을 때울까.


그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난 밖으로 나가는 걸 택했다. 벌써부터 긴장에 쪄들기 싫었다. 난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뒷걸음질 치며, 재빨리 입구를 향해 뒤를 홱 돌았다.



"왁!!!"



그 때, 난 뒤에 있는 커다란 화분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무릎을 박아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아악. 이라는 괴성과 함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진짜 되는 일 없다. 나로 인해 시끄러웠던 주위가 한순간에 고요해지며, 많은 시선들이 내게로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세운 역시 놀란 표정으로 내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



아, 쪽팔려. 다친 무릎을 매만지다 그와 눈이 마주치며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무릎이 깨질 것 같이 존나 아픈데, 그보다 창피함이 더 크다. 왜 마주칠 떄마다 그러는거지. 강의실에서 마주친 순간도, 지금 이 순간도. 한결같이 그지같다. 얼마나 변태같고 어설픈 사람으로 보일까.


창피한 마음에, 난 아픔을 무릅쓰고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차라리 아까 그냥 조용히 들어가 앉을걸. 이게 무슨 관종적 모먼트람. 수치심에 얼굴이 볼터치한 듯 새빨개졌다. 




"어...아아.."


세게 부딪히긴 했나보다. 처음엔 창피해서 몰랐는데, 걷는데 고새 무릎이 뻐근하며 저절로 아픈 신음이 입으로부터 새어나왔다. 밑을 바라보니 무릎은 바닥에 쓸려 까맣게 얼룩이 져 있었다. 젠장, 오늘 원피스 입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오늘 하루도 처음부터 꼬여버린 거다. 김재환을 만나기 전부터.


무릎에 묻은 먼저를 털기 위해 한 손으로 거칠게 무릎을 쓸어내리려는데, 

갑자기 눈 앞에 물티슈가 하나 내밀어졌다.


내민 손의 주인을 찾아 위를 바라보니, 세운이었다. 그는 내 얼룩진 한 쪽 다리를 쓱 보고는 '괜찮으세요?'라는 말과 함께 티슈를 내 손에 꼭 쥐어주었다. 말투는 담담했으나, 전해주는 손의 온기는 참 따뜻했다.



잘생겼는데, 부지런하고 친절하기까지 하다. 

이런 사람이 우리 학교에 다닌다는 게 정말 영광스럽고 마음이 들뜨면서도.


문득 그가 김재환의 동기라는 걸 직시하면 

그 감정은 순식간에 가라앉아버린다. 


만약 김재환 없는 조에서 그를 만났다면, 이 상황은 모쏠인 내 마음에 불을 지펴 아주 그냥 활활 타올랐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난 그럴 여력이 없다. 김재환의 친구인 이상, 그는 이번 조가 끝나면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사람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렇게 그의 호의는 짝사랑, 아니 호감 그 이상으로도 번지지 못한 채, 사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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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해요...버스를 놓쳤어요..!!"

"아니이, 교수님이 수업을 늦게 끝내주셔서...핳 죄송합니다"



정적의 끝을 달린 15분이 지나고 또 15분쯤 더 지나서 30분 가까이 흘렀을 때, 그제서야 1학년 새내기와 김재환이 슬금슬금 모습을 보였다. 숨을 헐떡이며 이 조모임을 위해 열심히 뛰어왔다는 걸 강하게 드러내면서. 뭐, 예상했던 일이다. 내 옆에 앉은 이 남자가 특이한거지, 저게 정상이니깐. 보통 조모임을 대수롭지 않게들 여기기에, 모두 참여했다는 것 만으로도 내겐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다만 세운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형...앞에 수업 없잖아요..."

"어? 아하핳...수업이 아니고 상담, 상담!"

"상담도 없.."

"아하핳ㅎ우리 늦었는데 빨리 시작해요. 어..여주씨?"



다급하게 세운의 말을 막으며 김재환은 내 눈치를 보았다. 그냥 자신의 지각을 무마하려 생각없이 내뱉은 이름이겠지만, 뒤에 붙은 호칭이 꽤 신경쓰였다. 분명 동갑인데도, 잘 모른다는 이유로 김재환은 내게 -씨, 를 꼭 붙였다. 단톡에서도 세운과 아린에게는 편하게 반말을 트는데, 나에게만은 꼭 존칭을 갖췄다. 물론 내가 첫 만남부터 어색하게 거리를 둬서 그렇겠지만, 그래도 완전 선을 그을 줄이야. 한 때는 서로를 '재환아' '여주야''라고 다정하게 불렀을 때가 있었을 텐데. 난 아직 그 기억이 선명한데. 

저 말 하나로 9년의 거리감이 확 다가오며, 우리가 완전한 남남 임을 확실하게 실감케했다.



"네, 재환씨"

"혹시 영상 찍어본 적 있으세요?"

"...아뇨, 없어요"

"큰일이다. 아린아, 너도 없지?"

"넹...저 카메라도 못만져요"



다들 숙연해졌다. 생각해보니 우린 네 명중 단 한 명도 관련 과가 없었다. 카메라를 좀 다룬다거나 편집을 할 줄 안다거나. 아니면 연기 경험이 있다거나. 그런 사람이 일절 없었다. 수업 자체도 워낙 자율적이라 교수님의 터치가 없어 더 걱정이었다. 뭐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한 상태였다. 그래서 다들 벙찐 채로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거나 책상만 내려다봤지, 정말 아무 계획이 없었다. 


촬영 지원만 잘해주면 어떡해. 어차피 활용할 줄도 모르는데. 이번 조는 김재환 떄문이라도 묻어가듯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흐리멍덩하게 앉아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가방을 뒤적여 작은 수첩 하나와 펜을 꺼냈다. 제대로 뭔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의 내 습관이었다.


나서기 싫었는데. 정말, 나서기 싫었는데.



"제가 조장할게요"



자발적으로 지원했고,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원래 모든 내 손으로 일을 시작하고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조별 과제를 할 때면 1학년을 제외하곤 늘 조장을 맡아왔었다. 그래도 이번만은 꼭 피하고 싶었는데....그렇지만 나 기억 못하는 김재환 하나 때문에 이리 저리 눈치보다가 남은 학길 말아먹고 싶지 않았다. 난 뼛속까지 모범생이니깐. 교양 주제에 에이쁠 받아야 할 테니깐. 일탈을 행한 건 나였고, 그 결과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했다. 


조장이 된 나는 빠르게 상황을 주도했다.



"저, 일단은 어떻게 찍을지 방향부터 잡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큰 틀부터 잡고, 그다음 각자 시놉시스 써오기로"

"아..방향"

"그럼...장르부터 정할까요"



사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답은 정해져있었다. 한 편으로 끝낼 드라마였기에, 뭔가 거창하게 벌릴 게 없었다. 코믹을 찍기엔 우리들이 너무 평범해보였고, 액션과 공포를 찍기엔...경험이 부족하여 허접한 영상이 만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제일 무난한 게,로맨스였다. 웹드라마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 사람들은 별 뜻 없이 내뱉은 내 말 한마디에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뭐하지? 야, 세운아 뭐할까? 글쎄요...등 뭐 심각해보이진 않지만, 나름의 고민을 하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아린은 어째 딴 데 관심이 쏠린 듯 그 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뭐할까요 뭐할까 만 반복할 것 같아 빠른 흐름을 위해, '멜로나 로코로 할까요?' 라고 운을 뗐다. 그제서야 세운만 빤히 쳐다보던 아린이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내 말에 응했다.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네네네!!!! 저저 멜로 하고싶었어요!!!!"

 



"...아..멜로...."


그러나 김재환은 좀 더 특별한 걸 원했나보다. 멜로..오...하면서 이미 쳐진 눈꼬리기 더 추욱 내려갔고 금세 시무룩 해 보였다. 누가봐도 실망한 티를 팍팍 내는 김재환의 태도에 세운은 뭘하고 싶냐고 찔러봤고, 이에 재환은 기다렸다는 듯 신나게 말했다.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Jenga (Feat. Gaeko) - Heize (신기원님 피아노커버)'

노래를 트셔야 집중이 훨씬 잘 돼요!






-


조마조마했던 첫 오티가 끝나고, 드디어 조별모임의 첫만남 날이 되었다. 지난 주에 같은 고등학교 선후배 얘기로 멘탈이 탈탈 털렸던 터라, 이번엔 좀 만반의 준비를 했다. 사적으로 얘기가 흘러갈 시엔 빠르게 본론을 되찾자고. 난 4학년이고, 바쁜 사람이니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음을 보여주자고, 


그러나 막상 만남이 정해진 카페 앞에 서자, 긴장감이 엄습했다. 

그리 덥지도 않은데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손에도 땀이 차기 시작했다. 



이게 뭐길래. 긴장을 하냐. 


분명 자유롭게 나름의 일탈을 즐기러 들은 수업이었는데, 김재환의 존재가 마치 뱀처럼 베베 꼬아 내 숨을 조여왔다.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데. 어렸을 때 사귄 게 뭐 대수라고 다 큰 성인이 되서 긴장을 하는 건지, 도통 내 맘을 알 래야 알 수가 없었다.

짐작컨대 이 긴장은 종강을 하는 3개월 후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홀로 움찔해가면서.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다시 맘을 다 잡았다. 언제 김재환이 기억해낼 진 모르겠지만, 그동안의 우린, 생판 초면이라는 거. 내가 김재환과 사겼고 가볍게 차였던, 그 서사는 여기선 아무도 모른다는 거. 그래, 그렇게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는데...카페 문에 비친 내 모습에 다시 비참히 무너졌다. 어차피 남남인데, 잘 보일 필요도 없는데 왜,

난 또 원피스를 입고 있을까.





-


띵동. 문 위에 달린 종이 경쾌하게 울렸고, 나는 또각이며 어둑한 계단 속으로 내려갔다. 이 곳 카페 분위기는 일반 카페와는 달랐다. 지하에 위치해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은은한 조명만이 가득하며, 노래선곡도 세련되고 회색빛의 벽지와 모던한 소품이 잘 어울려진 카페였다. 학교와는 꽤 거리가 멀어 사람도 그리 붐비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카페는 아니었다. 호불호가 좀 갈린다. 발랄한 학교 생활과는 거리가 멀게 어둑컴컴하고 칙칙한 분위기의 카페였기에. 


나는 마이너한 취향이라 이 카페를 자주 애용했었다. 사람이 적어 공부하기에 편했고, 중간 공강 때 홀로 쉬기에도 좋았다. 그래서 이번 조 모임 장소를 정할 때도 직접 이 곳을 추천했다. 물론 그저 좋은 곳을 공유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내 속셈은 따로 있었다. 어둔 조명 아래, 조금이라도 김재환의 얼굴을 피하는 것. 대화를 나누다 눈이 마주친대도 부담스럽지 않게 마주하기 위함이었다. 밝은 곳에서 마주쳐봐. 어? 김여주?!! 하며 번뜩 옛날 일이 떠오를지 누가 알아.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니 금빛 조명 아래 위치한 작은 카운터가 바로 보였다. 갑갑한 속을 트여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하며 앉을 자리를 물색하는데...

저 쪽 끝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또 이 남자다. 

분명 먼저 도착하려 일찍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오늘은 내가 한 발 느렸다.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



그는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검정 쇼파에 앉아, 음악에 취해 고개를 까닥이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의 앞엔 휘핑크림이 가득 올려진 초코음료가 놓여있었고, 반쯤 줄어있는 상태였다. 대체 얼마나 빨리 온 건지...그의 부지런함에 진심으로 놀라며 맘 속으로 박수를 쳤다. 제대로 말을 섞어보지 않아 그에 관해 아는 건 김재환과 동기라는 것 밖엔 없지만, 지금껏 본 그는 참 성실한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다.


약속 시간을 잘 지킨다는 것. 조원으로서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었다. 그동안 조별을 하며 시간에 대해 데인 적이 너무 많았기에, 일찍 온 그의 모습은 사실 약간의 감동도 가져왔다. 조를 잘 만난 것 같기도? 그나마의 행운이었다.



그는 아직 내가 들어온 걸 보지 못한 듯 했다. 노래에 심취해있었고, 그래서 그가 민망해할까 그 쪽으로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핸드폰을 흘끗 보니 아직 약속시간보다 15분이나 앞서있었다. 고민이 시작됐다. 김재환이나 그 새내기 여학생이 오지 않으면 15분간 정적만 줄줄 흐를 텐데. 가서 어색하게 앉아있을까. 아님 밖에 나가 잠깐 시간을 때울까.


그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난 밖으로 나가는 걸 택했다. 벌써부터 긴장에 쪄들기 싫었다. 난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뒷걸음질 치며, 재빨리 입구를 향해 뒤를 홱 돌았다.



"왁!!!"



그 때, 난 뒤에 있는 커다란 화분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무릎을 박아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아악. 이라는 괴성과 함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진짜 되는 일 없다. 나로 인해 시끄러웠던 주위가 한순간에 고요해지며, 많은 시선들이 내게로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세운 역시 놀란 표정으로 내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



아, 쪽팔려. 다친 무릎을 매만지다 그와 눈이 마주치며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무릎이 깨질 것 같이 존나 아픈데, 그보다 창피함이 더 크다. 왜 마주칠 떄마다 그러는거지. 강의실에서 마주친 순간도, 지금 이 순간도. 한결같이 그지같다. 얼마나 변태같고 어설픈 사람으로 보일까.


창피한 마음에, 난 아픔을 무릅쓰고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차라리 아까 그냥 조용히 들어가 앉을걸. 이게 무슨 관종적 모먼트람. 수치심에 얼굴이 볼터치한 듯 새빨개졌다. 




"어...아아.."


세게 부딪히긴 했나보다. 처음엔 창피해서 몰랐는데, 걷는데 고새 무릎이 뻐근하며 저절로 아픈 신음이 입으로부터 새어나왔다. 밑을 바라보니 무릎은 바닥에 쓸려 까맣게 얼룩이 져 있었다. 젠장, 오늘 원피스 입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오늘 하루도 처음부터 꼬여버린 거다. 김재환을 만나기 전부터.


무릎에 묻은 먼저를 털기 위해 한 손으로 거칠게 무릎을 쓸어내리려는데, 

갑자기 눈 앞에 물티슈가 하나 내밀어졌다.


내민 손의 주인을 찾아 위를 바라보니, 세운이었다. 그는 내 얼룩진 한 쪽 다리를 쓱 보고는 '괜찮으세요?'라는 말과 함께 티슈를 내 손에 꼭 쥐어주었다. 말투는 담담했으나, 전해주는 손의 온기는 참 따뜻했다.



잘생겼는데, 부지런하고 친절하기까지 하다. 

이런 사람이 우리 학교에 다닌다는 게 정말 영광스럽고 마음이 들뜨면서도.


문득 그가 김재환의 동기라는 걸 직시하면 

그 감정은 순식간에 가라앉아버린다. 


만약 김재환 없는 조에서 그를 만났다면, 이 상황은 모쏠인 내 마음에 불을 지펴 아주 그냥 활활 타올랐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난 그럴 여력이 없다. 김재환의 친구인 이상, 그는 이번 조가 끝나면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사람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렇게 그의 호의는 짝사랑, 아니 호감 그 이상으로도 번지지 못한 채, 사그라졌다.






-


"늦어서 죄송해요...버스를 놓쳤어요..!!"

"아니이, 교수님이 수업을 늦게 끝내주셔서...핳 죄송합니다"



정적의 끝을 달린 15분이 지나고 또 15분쯤 더 지나서 30분 가까이 흘렀을 때, 그제서야 1학년 새내기와 김재환이 슬금슬금 모습을 보였다. 숨을 헐떡이며 이 조모임을 위해 열심히 뛰어왔다는 걸 강하게 드러내면서. 뭐, 예상했던 일이다. 내 옆에 앉은 이 남자가 특이한거지, 저게 정상이니깐. 보통 조모임을 대수롭지 않게들 여기기에, 모두 참여했다는 것 만으로도 내겐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다만 세운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형...앞에 수업 없잖아요..."

"어? 아하핳...수업이 아니고 상담, 상담!"

"상담도 없.."

"아하핳ㅎ우리 늦었는데 빨리 시작해요. 어..여주씨?"



다급하게 세운의 말을 막으며 김재환은 내 눈치를 보았다. 그냥 자신의 지각을 무마하려 생각없이 내뱉은 이름이겠지만, 뒤에 붙은 호칭이 꽤 신경쓰였다. 분명 동갑인데도, 잘 모른다는 이유로 김재환은 내게 -씨, 를 꼭 붙였다. 단톡에서도 세운과 아린에게는 편하게 반말을 트는데, 나에게만은 꼭 존칭을 갖췄다. 물론 내가 첫 만남부터 어색하게 거리를 둬서 그렇겠지만, 그래도 완전 선을 그을 줄이야. 한 때는 서로를 '재환아' '여주야''라고 다정하게 불렀을 때가 있었을 텐데. 난 아직 그 기억이 선명한데. 

저 말 하나로 9년의 거리감이 확 다가오며, 우리가 완전한 남남 임을 확실하게 실감케했다.



"네, 재환씨"

"혹시 영상 찍어본 적 있으세요?"

"...아뇨, 없어요"

"큰일이다. 아린아, 너도 없지?"

"넹...저 카메라도 못만져요"



다들 숙연해졌다. 생각해보니 우린 네 명중 단 한 명도 관련 과가 없었다. 카메라를 좀 다룬다거나 편집을 할 줄 안다거나. 아니면 연기 경험이 있다거나. 그런 사람이 일절 없었다. 수업 자체도 워낙 자율적이라 교수님의 터치가 없어 더 걱정이었다. 뭐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한 상태였다. 그래서 다들 벙찐 채로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거나 책상만 내려다봤지, 정말 아무 계획이 없었다. 


촬영 지원만 잘해주면 어떡해. 어차피 활용할 줄도 모르는데. 이번 조는 김재환 떄문이라도 묻어가듯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흐리멍덩하게 앉아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가방을 뒤적여 작은 수첩 하나와 펜을 꺼냈다. 제대로 뭔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의 내 습관이었다.


나서기 싫었는데. 정말, 나서기 싫었는데.



"제가 조장할게요"



자발적으로 지원했고,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원래 모든 내 손으로 일을 시작하고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조별 과제를 할 때면 1학년을 제외하곤 늘 조장을 맡아왔었다. 그래도 이번만은 꼭 피하고 싶었는데....그렇지만 나 기억 못하는 김재환 하나 때문에 이리 저리 눈치보다가 남은 학길 말아먹고 싶지 않았다. 난 뼛속까지 모범생이니깐. 교양 주제에 에이쁠 받아야 할 테니깐. 일탈을 행한 건 나였고, 그 결과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했다. 


조장이 된 나는 빠르게 상황을 주도했다.



"저, 일단은 어떻게 찍을지 방향부터 잡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큰 틀부터 잡고, 그다음 각자 시놉시스 써오기로"

"아..방향"

"그럼...장르부터 정할까요"



사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답은 정해져있었다. 한 편으로 끝낼 드라마였기에, 뭔가 거창하게 벌릴 게 없었다. 코믹을 찍기엔 우리들이 너무 평범해보였고, 액션과 공포를 찍기엔...경험이 부족하여 허접한 영상이 만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제일 무난한 게,로맨스였다. 웹드라마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 사람들은 별 뜻 없이 내뱉은 내 말 한마디에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뭐하지? 야, 세운아 뭐할까? 글쎄요...등 뭐 심각해보이진 않지만, 나름의 고민을 하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아린은 어째 딴 데 관심이 쏠린 듯 그 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뭐할까요 뭐할까 만 반복할 것 같아 빠른 흐름을 위해, '멜로나 로코로 할까요?' 라고 운을 뗐다. 그제서야 세운만 빤히 쳐다보던 아린이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내 말에 응했다.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네네네!!!! 저저 멜로 하고싶었어요!!!!"

 



"...아..멜로...."


그러나 김재환은 좀 더 특별한 걸 원했나보다. 멜로..오...하면서 이미 쳐진 눈꼬리기 더 추욱 내려갔고 금세 시무룩 해 보였다. 누가봐도 실망한 티를 팍팍 내는 김재환의 태도에 세운은 뭘하고 싶냐고 찔러봤고, 이에 재환은 기다렸다는 듯 신나게 말했다.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비디오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공포영화 찍자! 아주 소름끼치는 거 하는거지. 좀비물도 좋고!!!"

"......"



말문이 막혔다. 웹드라마를 찍으라 했더니 왠 영화가. 

저기 미안한데, 분장은 어떻게 할 건데. 연기는 누가 할거고.


자칫 잘못하면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그저 그런 B급 병맛 영상이 될 게 뻔했다. 할말은 많았지만 그렇다고 김재환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건 곤란해' 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그저 누군가가 그건 아니라고 단호히 나서주길 바랄 뿐이었다. 내 옆에 앉은 아린을 흘끗 쳐다봤다. 



멜로 하고 싶어했잖아. 말해줘. 말해달라고! 저, 똥꼬발랄한 김재환을 말려달란 말이야.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는 이 주제에 관심이 없었다. 오티 때도 그랬지만, 그녀는 온종일 세운에게만 시선이 꽂혀있는 채였다. 

애타는 건 나 뿐이었다. 그렇게 내가 머뭇거릴 동안, 김재환은 상상의 나래를 더 펼쳐나갔다.



"아니면 의문의 연쇄 살인, 어때? 캠퍼스 안에서 벌어지는 범죄 스릴러! 학교 안에서 한명씩 죽어나가는 거지. 미스테리로! 어? 야, 이거 진짜 대박이다" 



그는 이미 머릿속에서 영화 한 편을 다 찍은 모양이다. 혼자 박수를 치며 자신의 영화가 실현되기 위한 연설을 시작했다. 세상에 들어본 적 있는 공포, 범죄, 스릴러의 소재는 다 나온 것 같았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 얼굴은 창백해져 갔고, 점차 학점이 멀어져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악, 안돼!!! 어릴 적부터 김재환은 자기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왔기 때문에. 더욱 두려워졌다. 이러다가 김재환의 말을 따라 얼토당토않게 시작할 확률이 컸다. 


불안함에 고개를 홱 돌리는데, 그 때 내 앞에 앉은 세운과 눈이 마주쳤다. 




"........"



차가운 무표정이다. 뭔 생각을 저리 골똘히 하는 건지. 단순히 김재환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딴 생각에 잠긴 것 같았는데...그런 그가 그 냉한 동공을 내게로 꽂아 쳐다보니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3초 정도 마주쳤나. 순간, 번뜩 했다. 그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유일한 키라는 걸. 난 김재환이 눈치채지 못하게 턱으로 그를 툭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이런 내 모습에 세운은 푸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그렇게 티나게 웃으면 어떡해. 



쫑알대던 김재환의 입이 멈추었다. 세운의 웃음에 아린과 재환이 동시에 그를 쳐다보았고, 나 또한 당황해서 뻘뻘대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저렇게 웃을 줄 몰랐다. 그냥 조금 눈치를 준 것 뿐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큰 파장으로 커질 줄 알았다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었을거다. 뭔데, 왜. 왜 계속 그렇게 웃는 건데. 그는 나를 보며 싱겁게 웃음을 흘리고 있는 상태였고, 난 그 시선을 애써 피했다. 혹여나 그가 김재환에게 일러바칠까 초조해하며.


"야, 너 왜 그래. 비웃냐"

"왜요~오빠?"


재환은 실실 웃는 세운을 보며 핀잔을 줬고, 아린은 더욱 관심 있는 표정으로 반짝이게 쳐다봤다. 이에 난 이미 얼음이 다 녹아버린 아메리카노를 벌컥 벌컥 들이키며 세운의 눈치를 봤다. 세 사람의 시선을 느낀 세운은, 그제서야 터진 웃음을 애써 감추며 작게 대답했다.


"전 로맨스요"






-


과반수로, 장르는 로맨스로 정해졌다. 이에 아린은 꺄르르 웃으며 좋아했고, 재환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난 얼떨떨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정세운, 저 사람은 왜 그렇게까지 웃은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서.  


장르가 정해지고는 다시 진전도 멈췄다. 다시끔 또 멍하니 시간만 보내는 꼴이 됐다. 제일 활발하게 참여하던 김재환이 시들해진 게 이유였다. 가라앉은 분위기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고, 차라리 이대로 끝내는 게 나을 듯 했다. 



"다들 생각 안나는 것 같으니깐 오늘은 여기서 마칠게요. 다음 주까지 생각나는 소재나 스토리, 적어와요."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예.."

(내 계획이 무산됐어...)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네."

(진짜 알겠음.)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



차가운 무표정이다. 뭔 생각을 저리 골똘히 하는 건지. 단순히 김재환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딴 생각에 잠긴 것 같았는데...그런 그가 그 냉한 동공을 내게로 꽂아 쳐다보니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3초 정도 마주쳤나. 순간, 번뜩 했다. 그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유일한 키라는 걸. 난 김재환이 눈치채지 못하게 턱으로 그를 툭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이런 내 모습에 세운은 푸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그렇게 티나게 웃으면 어떡해. 



쫑알대던 김재환의 입이 멈추었다. 세운의 웃음에 아린과 재환이 동시에 그를 쳐다보았고, 나 또한 당황해서 뻘뻘대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저렇게 웃을 줄 몰랐다. 그냥 조금 눈치를 준 것 뿐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큰 파장으로 커질 줄 알았다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었을거다. 뭔데, 왜. 왜 계속 그렇게 웃는 건데. 그는 나를 보며 싱겁게 웃음을 흘리고 있는 상태였고, 난 그 시선을 애써 피했다. 혹여나 그가 김재환에게 일러바칠까 초조해하며.


"야, 너 왜 그래. 비웃냐"

"왜요~오빠?"


재환은 실실 웃는 세운을 보며 핀잔을 줬고, 아린은 더욱 관심 있는 표정으로 반짝이게 쳐다봤다. 이에 난 이미 얼음이 다 녹아버린 아메리카노를 벌컥 벌컥 들이키며 세운의 눈치를 봤다. 세 사람의 시선을 느낀 세운은, 그제서야 터진 웃음을 애써 감추며 작게 대답했다.


"전 로맨스요"






-


과반수로, 장르는 로맨스로 정해졌다. 이에 아린은 꺄르르 웃으며 좋아했고, 재환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난 얼떨떨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정세운, 저 사람은 왜 그렇게까지 웃은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서.  


장르가 정해지고는 다시 진전도 멈췄다. 다시끔 또 멍하니 시간만 보내는 꼴이 됐다. 제일 활발하게 참여하던 김재환이 시들해진 게 이유였다. 가라앉은 분위기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고, 차라리 이대로 끝내는 게 나을 듯 했다. 



"다들 생각 안나는 것 같으니깐 오늘은 여기서 마칠게요. 다음 주까지 생각나는 소재나 스토리, 적어와요."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예.."

(내 계획이 무산됐어...)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네."

(진짜 알겠음.)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



차가운 무표정이다. 뭔 생각을 저리 골똘히 하는 건지. 단순히 김재환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딴 생각에 잠긴 것 같았는데...그런 그가 그 냉한 동공을 내게로 꽂아 쳐다보니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3초 정도 마주쳤나. 순간, 번뜩 했다. 그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유일한 키라는 걸. 난 김재환이 눈치채지 못하게 턱으로 그를 툭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이런 내 모습에 세운은 푸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그렇게 티나게 웃으면 어떡해. 



쫑알대던 김재환의 입이 멈추었다. 세운의 웃음에 아린과 재환이 동시에 그를 쳐다보았고, 나 또한 당황해서 뻘뻘대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저렇게 웃을 줄 몰랐다. 그냥 조금 눈치를 준 것 뿐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큰 파장으로 커질 줄 알았다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었을거다. 뭔데, 왜. 왜 계속 그렇게 웃는 건데. 그는 나를 보며 싱겁게 웃음을 흘리고 있는 상태였고, 난 그 시선을 애써 피했다. 혹여나 그가 김재환에게 일러바칠까 초조해하며.


"야, 너 왜 그래. 비웃냐"

"왜요~오빠?"


재환은 실실 웃는 세운을 보며 핀잔을 줬고, 아린은 더욱 관심 있는 표정으로 반짝이게 쳐다봤다. 이에 난 이미 얼음이 다 녹아버린 아메리카노를 벌컥 벌컥 들이키며 세운의 눈치를 봤다. 세 사람의 시선을 느낀 세운은, 그제서야 터진 웃음을 애써 감추며 작게 대답했다.


"전 로맨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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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반수로, 장르는 로맨스로 정해졌다. 이에 아린은 꺄르르 웃으며 좋아했고, 재환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난 얼떨떨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정세운, 저 사람은 왜 그렇게까지 웃은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서.  


장르가 정해지고는 다시 진전도 멈췄다. 다시끔 또 멍하니 시간만 보내는 꼴이 됐다. 제일 활발하게 참여하던 김재환이 시들해진 게 이유였다. 가라앉은 분위기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고, 차라리 이대로 끝내는 게 나을 듯 했다. 



"다들 생각 안나는 것 같으니깐 오늘은 여기서 마칠게요. 다음 주까지 생각나는 소재나 스토리, 적어와요."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예.."

(내 계획이 무산됐어...)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네."

(진짜 알겠음.)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비디오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넹!!!"

(세운오빠!!!!)


서로의 속마음이 표현된, 정말 가지각색한 대답이었다. 



"다음 주엔 휴강이니깐, 수업 시간에 맞춰서 다시 이 카페로 모일게요. 아, 그리고...

웹드라마 하나씩 보고 와주세요. 그래야 좀 더 자유롭게 얘기 나눌 것 같아요"



나름대로 과제를 내줬다. 아무 성과 없는 조 모임은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라면서. 좀 더 그럴싸한 시나리오를 써올 것이라 생각하며 내준 과제였다. 정말 그저 아무 뜻 없이 그런거였는데. 내 의도를 잘 못 깨달은 사람이 있었다. 최아린. 그녀는 내 말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딱 짓더니, 양 쪽 볼에 활기를 띄며 신이난 듯 말했다.


"그러지 말고, 저희 다같이 영화봐요!!"

"....네?'

"로맨스를 찍으려면, 로맨스 영화정도는 봐줘야 하잖아요!"

"아..그건 각자 집에 가서.."

"다같이 봐야 더 영감이 생기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왜 딴 사람을 쳐다보는데? 

그녀의 의도가 뻔히 보인다. 정세운, 저 사람과 영화보고 싶겠지. 

그럼 둘이서 개인적으로 보고 오라고! 나랑 김....김재환까지 엮지 말고!

난 지금 이렇게 조 모임 갖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근데 영화라니, 김재환과 영화라니...그것도 로맨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아아...제가 바빠서..."

"아~~언니~빠지지 말구요! 저 진짜! 영화 같이 보면 정말 생각 잘 할 것 같아요!"

"......."

"아!!! 기대돼!! 담주 빨리 왔음 좋겠다!!!"


그러나 왠만해선 그녀의 사기를 꺾기 힘들어 보였다.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진 수그러들지 않겠다는 저 완강한 태도. 여기서 내가 아무리 거절한들, 어떻게든 보게 될 게 뻔했다. 난 이미 지친 상태였고, 의미없는 말들은 하고 싶지 않았다. 


"네, 그럼 다음 주에 봐요"


빨리 이 곳에서 벗어나 집에 가고 싶었다.





-


지친다. 제대로 뭐 한 것도 없는데, 벌써부터 지친다. 앞으로 어떻게 촬영을 해나가야 할지, 과연 시나리오는 짤 수나 있을런지 걱정이었다. 이 쪽 길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시놉시스, 시나리오, 콘티 작성 등...촬영 전에 해야 할 활동들이 빼곡했다. 조원 전체가 영상에 무지하니 유튜브를 뒤져서라도 편집하는 법도 익혀야 했고. 안그래도 막학기라 졸업과제도 준비해야하고 취업준비도 해야하는데, 참 해야할 일 투성이었다.


일탈? 이게 일탈이냐. 개고생이지. 집 나가면 개고생이랬다. 내가 지금 딱 그렇다. 감히 일탈을 꿈꾼 벌이다. 차라리 원래 하던 대로 가만히 책상에 앉아 십 센치나 되는 두꺼운 책을 읽는 것이 더 속 편할 뻔했다. 그래도 예전같으면 색다른 과제에 꽤 흥미를 느꼈을 만 하지만, 김재환이라는 어마무시한 존재가 있어 대실패다.  



그렇게 난 깊은 고민을 갖고 곧바로 집으로 가는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줄을 서서 버스에 올라타는데, 그 떄,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까 넘어졌을 때 다친 왼쪽 무릎. 이제보니 무릎엔 퍼렇게 멍이 져 있었다. 아까는 어떻게 걸었지? 긴장이 풀리고 나자 아픔이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살짝만 건들여도 움찔 몸이 반응을 했다. 빨리 앉아야했다. 절뚝거리며 빠르게 빈자리를 찾았다.


아, 젠장. 밖에서 언뜻 봤을 때 자리가 없어보이긴 했는데. 막상 버스에 올라타서 보니 정말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오후 5시.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교하는 시간대였다. 일단은 올라탔으니 위에 손잡이를 꽉 잡고 버티기는 하는데, 아직 버스는 출발 전이었고...그래서 고민이 되었다.


그냥 내렸다가 그 다음 셔틀을 탈까? 

근데 이거, 배차 간격이 30분인데...

그래도 한시간을 서서 가는 것보다 앉아가는 게 낫겠지.



다시 뒤를 돌았다. '잠깐만요, 저 좀 내릴게요'.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제치며 다시 버스 출입문으로 향하는데. 근데, 그 때.


아.

어떤 손이 내 팔목을 붙잡았다. 


깜짝 놀라 그 옆을 보니, 익숙한 사람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여기 앉아요"


와, 여기서 그를 보다니. 같은 버스 안. 그가 나와 같은 지역에 살 줄은 정말 몰랐다. 놀랜 나는 그에게 팔을 잡힌 채 멍하니 서 있었고, 그는 곧바로 제 자리를 내게 양보해줬다. 괜찮은데...괜찮은데...중얼거렸지만 그는 '다리 아프잖아요' 라는 말로 억지로 꿋꿋이 날 그 자리에 앉혔다. 아까 내가 넘어진 걸 지금껏 기억하고 있었다니. 그 세심함에 또 한번 놀랬다.


"저...이 버스 타세요? 몰랐네요

"아, 네"


고마움도 잠시, 나와 같은 셔틀이라는 뜻밖의 사실에 난 굉장히 놀랐는데. 근데 이상하다. 왜...왜 나만 놀란 것 같지? 마치 그는 내가 여기 탈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단 눈빛이었다. 지난 주는 조 모임이 끝나고 친구 집에서 잔 터라 셔틀을 타지 않았고, 이게 조 모임 이후 처음 타는 버스일텐데...날 알리가 없을 텐데...


의문이었다. 그저 우연일 거라 생각했다. 그가 너무 침착해서, 이런 놀라운 우연에도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버스가 출발한 지, 한 10분쯤 지났을 때였다. 내 옆에 아는 사람이 서 있어서인지 피곤했지만 불편해서 잠이 잘 안 왔다. 그냥 집가서 푹 자야겠다 생각하고 이어폰만 대충 끼고 음악을 들으며 가고 있는데, 무심코 보게 되었다. 그의 손목에 걸친 하얀 봉지를.


자세히 보려고 한 건 아니다. 그냥 딱 내가 앉아있는 눈높이에 그 봉지가 머물러있어서 눈길이 간 거였다. 

그렇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무심결에 본 거였는데, '호원 약국'. 그 봉지에 적힌 로고가 제법 눈에 띄었다.



...약국? 어디 아픈가? 


아까까지만 해도 검정 배낭밖에 없던 것 같았는데, 지금 이렇게 그의 손에 걸쳐져있는 걸 보니 조 모임이 끝난 뒤 버스에 오르기 전, 막 산 것 같았다. 딱히 아픈 것 같진 않았는데, 사실 아팠던 걸까? 생각해보니 아까 모임에서 계속 딴 생각을 하며 멍을 떄리는 것 같아 보였었는데, 그게 아파서 그런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뭐야. 아픈데 지금 나 대신 서있는 거잖아. 다친 핑계로 앉아있었던 건데, 그도 아픈 거라면 내가 여기 앉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안 봤으면 모를까. 마음이 찜찜해진 나는 '저기...'라며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아프세요?"

"......"
"아픈 줄 몰랐네요. 다시 저랑 자리 바꿔요"



그는 내 말에 느리게 눈을 깜빡일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슨 소리냐며 눈썹만 들썩일 뿐이었다. 그래서 난, '아...이거..' 하며 그가 들고 있는 하얀 봉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프신 거 아닌가요? 내 말에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그는 싱겁게 한번 웃으며 그 봉지를 내게 건넸다. 


"이거 제꺼 아니예요"

"네? 그럼요?"


난 영문도 모른 채 그가 주는 봉지를 엉겁결에 끌어안았다. 그는 나를 빤히 보다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집에 가서 연고바르세요"



그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내꺼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아까 넘어진 나를 위해 약을 산 건 둘째치고, 이걸 사고 버스에 탔다는 건 내가 이 버스에 탈 것을 알고 있는 건데. 나를 어떻게 알고?


아니겠지? 아까 전해주려다가 못 준 거겠지. 그러다 버스까지 탔고, 우연히 같은 버스였던 거고.

아....아니..그것도 아니면, 오다가다 스친 나를 기억했는데...우연히 같은 교양....

아님 설마..


...아, 모르겠다. 심란하다.

우연이 너무 많아져버리니깐, 알고보니 사실 우연이 아니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가 싶기도 하고.머리가 복잡했다.


미리 짜놓은 대본같았다.

물론 현실이 진짜 드라마도 아니고, 그건 정말 말이 안되는데.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

저 웃는 표정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도 들었다.




그는 말없이 웃는다. 아까 날 보고 웃었던 그 표정으로. 

정말 별것도 아닌 일에 실실 웃었던 그 표정으로. 뭔가 다 알고 있으면서 감추는 듯한, 


그런 묘한 표정으로.

그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려다 보았다.


어째 설마..설마..했던 내 가정이 얼추 맞는 것 같았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그리고,



 


"나, 기억안나요?"

"......."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여기 앉아요"


와, 여기서 그를 보다니. 같은 버스 안. 그가 나와 같은 지역에 살 줄은 정말 몰랐다. 놀랜 나는 그에게 팔을 잡힌 채 멍하니 서 있었고, 그는 곧바로 제 자리를 내게 양보해줬다. 괜찮은데...괜찮은데...중얼거렸지만 그는 '다리 아프잖아요' 라는 말로 억지로 꿋꿋이 날 그 자리에 앉혔다. 아까 내가 넘어진 걸 지금껏 기억하고 있었다니. 그 세심함에 또 한번 놀랬다.


"저...이 버스 타세요? 몰랐네요

"아, 네"


고마움도 잠시, 나와 같은 셔틀이라는 뜻밖의 사실에 난 굉장히 놀랐는데. 근데 이상하다. 왜...왜 나만 놀란 것 같지? 마치 그는 내가 여기 탈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단 눈빛이었다. 지난 주는 조 모임이 끝나고 친구 집에서 잔 터라 셔틀을 타지 않았고, 이게 조 모임 이후 처음 타는 버스일텐데...날 알리가 없을 텐데...


의문이었다. 그저 우연일 거라 생각했다. 그가 너무 침착해서, 이런 놀라운 우연에도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버스가 출발한 지, 한 10분쯤 지났을 때였다. 내 옆에 아는 사람이 서 있어서인지 피곤했지만 불편해서 잠이 잘 안 왔다. 그냥 집가서 푹 자야겠다 생각하고 이어폰만 대충 끼고 음악을 들으며 가고 있는데, 무심코 보게 되었다. 그의 손목에 걸친 하얀 봉지를.


자세히 보려고 한 건 아니다. 그냥 딱 내가 앉아있는 눈높이에 그 봉지가 머물러있어서 눈길이 간 거였다. 

그렇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무심결에 본 거였는데, '호원 약국'. 그 봉지에 적힌 로고가 제법 눈에 띄었다.



...약국? 어디 아픈가? 


아까까지만 해도 검정 배낭밖에 없던 것 같았는데, 지금 이렇게 그의 손에 걸쳐져있는 걸 보니 조 모임이 끝난 뒤 버스에 오르기 전, 막 산 것 같았다. 딱히 아픈 것 같진 않았는데, 사실 아팠던 걸까? 생각해보니 아까 모임에서 계속 딴 생각을 하며 멍을 떄리는 것 같아 보였었는데, 그게 아파서 그런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뭐야. 아픈데 지금 나 대신 서있는 거잖아. 다친 핑계로 앉아있었던 건데, 그도 아픈 거라면 내가 여기 앉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안 봤으면 모를까. 마음이 찜찜해진 나는 '저기...'라며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아프세요?"

"......"
"아픈 줄 몰랐네요. 다시 저랑 자리 바꿔요"



그는 내 말에 느리게 눈을 깜빡일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슨 소리냐며 눈썹만 들썩일 뿐이었다. 그래서 난, '아...이거..' 하며 그가 들고 있는 하얀 봉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프신 거 아닌가요? 내 말에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그는 싱겁게 한번 웃으며 그 봉지를 내게 건넸다. 


"이거 제꺼 아니예요"

"네? 그럼요?"


난 영문도 모른 채 그가 주는 봉지를 엉겁결에 끌어안았다. 그는 나를 빤히 보다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집에 가서 연고바르세요"



그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내꺼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아까 넘어진 나를 위해 약을 산 건 둘째치고, 이걸 사고 버스에 탔다는 건 내가 이 버스에 탈 것을 알고 있는 건데. 나를 어떻게 알고?


아니겠지? 아까 전해주려다가 못 준 거겠지. 그러다 버스까지 탔고, 우연히 같은 버스였던 거고.

아....아니..그것도 아니면, 오다가다 스친 나를 기억했는데...우연히 같은 교양....

아님 설마..


...아, 모르겠다. 심란하다.

우연이 너무 많아져버리니깐, 알고보니 사실 우연이 아니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가 싶기도 하고.머리가 복잡했다.


미리 짜놓은 대본같았다.

물론 현실이 진짜 드라마도 아니고, 그건 정말 말이 안되는데.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

저 웃는 표정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도 들었다.




그는 말없이 웃는다. 아까 날 보고 웃었던 그 표정으로. 

정말 별것도 아닌 일에 실실 웃었던 그 표정으로. 뭔가 다 알고 있으면서 감추는 듯한, 


그런 묘한 표정으로.

그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려다 보았다.


어째 설마..설마..했던 내 가정이 얼추 맞는 것 같았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그리고,



 


"나, 기억안나요?"

"......."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여기 앉아요"


와, 여기서 그를 보다니. 같은 버스 안. 그가 나와 같은 지역에 살 줄은 정말 몰랐다. 놀랜 나는 그에게 팔을 잡힌 채 멍하니 서 있었고, 그는 곧바로 제 자리를 내게 양보해줬다. 괜찮은데...괜찮은데...중얼거렸지만 그는 '다리 아프잖아요' 라는 말로 억지로 꿋꿋이 날 그 자리에 앉혔다. 아까 내가 넘어진 걸 지금껏 기억하고 있었다니. 그 세심함에 또 한번 놀랬다.


"저...이 버스 타세요? 몰랐네요

"아, 네"


고마움도 잠시, 나와 같은 셔틀이라는 뜻밖의 사실에 난 굉장히 놀랐는데. 근데 이상하다. 왜...왜 나만 놀란 것 같지? 마치 그는 내가 여기 탈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단 눈빛이었다. 지난 주는 조 모임이 끝나고 친구 집에서 잔 터라 셔틀을 타지 않았고, 이게 조 모임 이후 처음 타는 버스일텐데...날 알리가 없을 텐데...


의문이었다. 그저 우연일 거라 생각했다. 그가 너무 침착해서, 이런 놀라운 우연에도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버스가 출발한 지, 한 10분쯤 지났을 때였다. 내 옆에 아는 사람이 서 있어서인지 피곤했지만 불편해서 잠이 잘 안 왔다. 그냥 집가서 푹 자야겠다 생각하고 이어폰만 대충 끼고 음악을 들으며 가고 있는데, 무심코 보게 되었다. 그의 손목에 걸친 하얀 봉지를.


자세히 보려고 한 건 아니다. 그냥 딱 내가 앉아있는 눈높이에 그 봉지가 머물러있어서 눈길이 간 거였다. 

그렇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무심결에 본 거였는데, '호원 약국'. 그 봉지에 적힌 로고가 제법 눈에 띄었다.



...약국? 어디 아픈가? 


아까까지만 해도 검정 배낭밖에 없던 것 같았는데, 지금 이렇게 그의 손에 걸쳐져있는 걸 보니 조 모임이 끝난 뒤 버스에 오르기 전, 막 산 것 같았다. 딱히 아픈 것 같진 않았는데, 사실 아팠던 걸까? 생각해보니 아까 모임에서 계속 딴 생각을 하며 멍을 떄리는 것 같아 보였었는데, 그게 아파서 그런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뭐야. 아픈데 지금 나 대신 서있는 거잖아. 다친 핑계로 앉아있었던 건데, 그도 아픈 거라면 내가 여기 앉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안 봤으면 모를까. 마음이 찜찜해진 나는 '저기...'라며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아프세요?"

"......"
"아픈 줄 몰랐네요. 다시 저랑 자리 바꿔요"



그는 내 말에 느리게 눈을 깜빡일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슨 소리냐며 눈썹만 들썩일 뿐이었다. 그래서 난, '아...이거..' 하며 그가 들고 있는 하얀 봉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프신 거 아닌가요? 내 말에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그는 싱겁게 한번 웃으며 그 봉지를 내게 건넸다. 


"이거 제꺼 아니예요"

"네? 그럼요?"


난 영문도 모른 채 그가 주는 봉지를 엉겁결에 끌어안았다. 그는 나를 빤히 보다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집에 가서 연고바르세요"



그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내꺼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아까 넘어진 나를 위해 약을 산 건 둘째치고, 이걸 사고 버스에 탔다는 건 내가 이 버스에 탈 것을 알고 있는 건데. 나를 어떻게 알고?


아니겠지? 아까 전해주려다가 못 준 거겠지. 그러다 버스까지 탔고, 우연히 같은 버스였던 거고.

아....아니..그것도 아니면, 오다가다 스친 나를 기억했는데...우연히 같은 교양....

아님 설마..


...아, 모르겠다. 심란하다.

우연이 너무 많아져버리니깐, 알고보니 사실 우연이 아니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가 싶기도 하고.머리가 복잡했다.


미리 짜놓은 대본같았다.

물론 현실이 진짜 드라마도 아니고, 그건 정말 말이 안되는데.




[호원즈/정세운/김재환] 웹드라마 촬영중 EP02. 우연을 가장한 필연 | 인스티즈

"......."

저 웃는 표정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도 들었다.




그는 말없이 웃는다. 아까 날 보고 웃었던 그 표정으로. 

정말 별것도 아닌 일에 실실 웃었던 그 표정으로. 뭔가 다 알고 있으면서 감추는 듯한, 


그런 묘한 표정으로.

그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려다 보았다.


어째 설마..설마..했던 내 가정이 얼추 맞는 것 같았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그리고,



 


"나, 기억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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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다운이형 동생, 세운이예요. 누나"


김재환과 나 사이와 같은 어떤 그 무언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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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랄라.
안녕하세요. 룰루랄라입니다!
쓰다보니깐 어디서 이야기를 끊어야 할지 몰라서,
계속 줄줄 쓰다보니깐 늦게 오게 됐어요ㅠㅠ그런데 그렇게 분량이 많지도 않네요..죄송합니다
1회에 댓글 달아주신 분들, 너무 감사해요!! 정말 큰 힘이 됐어요!!!
늦게 올리지만 계속 꾸준히 글을 적을 테니깐요. 큰 기대 없이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년 전
독자1
오매,, 작가님 ㅠㅠㅠ 세운이가 연하라니요 ㅠㅠ 너무 좋잖아여 ㅠㅠㅠㅠ
5년 전
룰루랄라.
네 세운이는 연하예요ㅠㅠㅠㅠ 누나 소리 많이할것 같아요...(강제 누나행..) 읽어주셔서 김사합니다!!❤
5년 전
독자2
작가님ㅠㅜㅜㅜ 분량도 재미도 있어용ㅎㅎㅎ 다음화 올라 올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게요><
5년 전
룰루랄라.
감사해요ㅠㅠ근데 제가 현생도 있고해서 3~4일에 한번 올릴것 같아요. 미리 죄송합니다..ㅜㅜ 기다리지 마시구 신알신올라오면 가볍게 봐주세요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5년 전
독자3
허어어엉어ㅓㄱ 뮤ㅓ죠뭐죠 신알신 울려서 보러왔는데 몰입도 잘되고 애들 다 음성지원되는 것 같아욬ㅋㅋㅋㅋㅋㅋㅋㅋ 세운이는 벌써설레고.... 재환이는 또 얼마나 설렐지... 꺄악 잘읽었어요 작가님!!!!!♡
5년 전
룰루랄라.
제 목적은 세운, 재환이 모두에게 설레서 못 고르게 만드는 거랍니다! 길게 댓글 달아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해요ㅠㅠ❤
5년 전
비회원43.150
죄송하다니요ㅠㅠ괜찮아요 작가님!!!!!세운이가 내 앞에서 웃는게 너무 상상이 가서 설레죽을꺼같아요...ㅋㅋㅋㅋㅋㅋ큐ㅠ 설레는 글 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5년 전
룰루랄라.
세운이는 사랑이죠ㅠㅠㅠㅠ 최대한 빙구적인 세운이를 넣고 싶은데 어느 타이밍에 넣어이할지 고민중..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5년 전
비회원134.46
아 작가님 세운이 무표정이었다가 갑자기 웃고 그러면 너무 설레요 그래요ㅠㅠㅠㅠㅠ 재환이도 무슨 생각하고 있을지 너무 궁금하고ㅠㅠㅠ 재미있는 글 너무 감사해요😭💕😭💕
5년 전
룰루랄라.
스포하자면 아직 재환이는...(아무생각 없을거예요 아직까진..세운이는 많은 생각을 하고있겠...) 네...그렇구요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5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5년 전
룰루랄라.
헐ㅜㅜ 그럴리가요...최애작품이라고 해주시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이 드네요ㅠㅠ 댓글에 힘 얻구 가요!!❤
5년 전
독자5
우왕 오늘 처음봤는데 다음화가 기대되는 작품인 것 같아요!!
5년 전
독자6
자까님... 최고... 분위기며 진행이며 여주 성격이며 너무 제 스타일입니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꼭이요.ㅠㅠㅠㅠㅠ
5년 전
독자7
세우니가 연하라니 ㅠㅠ 작가님 감사합니다 🤭
5년 전
룰루랄라.
추석을 앞두고 밀린 현생일 마치느라고 지금부터 글씁니다! ㅠㅠ 보실 분이 있을랑가 모르겠지만...이틀간 열심히 쓸게요!
5년 전
비회원77.2
너무잼써요ㅜㅜ흑 호원즈라니..!!!
5년 전
비회원50.95
얼른 와주세요 ㅠㅠ
5년 전
독자8
신알신하고갈게요 ㅜㅜ 다음것도 보고싶네요 잘읽고갑니당 작가님♡
5년 전
독자9
오랜만에 생각나서 다시 읽으러 왔어요 직가님ㅠㅜㅜㅜ다시 읽어도 설레고 너무좋아요ㅠㅜㅜㅜㅜ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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