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 은은 스스로가 잘난 사람이었다. 황궁에서 태어나 황자로 살았고 얼굴도 키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성격도 활달하여 종종 황제께 사내대장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물론 그의 수많은 형제들 중 그보다 잘난 이들이 있기도 했으나 따지고 보자면 같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왕 은의 잘남 중 일부분이 되었다. 그래서 은은 언제나 자신감에 차있었다. 원하는 것을 얻었고, 하고 싶은 것을 했고, 낭만과 꿈속에 빠져 살았다. 어느 부분에 있어서 그는 백아와 참 잘 맞기도 했다. 다르다면 은은 언제나 어렸다는 점이랄까. 백아가 고아하고 청백하다면 은은 푸릇하고 쾌활했다. 그래서 은은 항상 즐거웠다. 꺼릴 것도, 미래의 막막함도 은이 앞에서 그저 단순한 고민과 헛된 걱정에 불과했다. 왕 은은 해맑게 태어나, 아무 걱정 없이 살아 온 사람이었다.
“빨리 사과해요!”
“이것이….”
그래서 감히 황자를 향해 직접적으로 문제를 이야기는 해 수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민망한 상황을 마주쳐 부끄러웠고 또 감히 황자를 향해 뻔뻔스럽게 소리치는 모습이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은은 제 잘못 인 걸 알면서도 똑같이 소리쳤다. 왕 은에게 있어 스스로의 잘못 보다는 상처 하나 없이 평생을 쌓아 온 자존심이 더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은은 결코 해 수와 싸울 생각은 없었다. 남자로서 여자와 싸울 수 없었고 또 황자라는 위치에서 오는 안전이 그를 안일하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수는, 은은 생각보다 더 열성적이었고, 똑발랐고, 감정적이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놔, 이거 놔라! 감히 황자에게!”
“사과해요!”
그때부터 은은 아무생각도 하지 않았다. 잘못했다는 생각도, 남자라는 자존심도, 황자라는 체면도 다 잊은 채로 그저 질 수 없다는 자존심 하나에 분노하며 몸을 뒹굴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몰려들어도 그저 잡아당기는 머리채에 급급했고 나중에 할 변명 보다는 차가운 땅바닥의 냉기가 먼저였다. 은은 소리쳤고 수는 화를 냈다. 곧 있어 형님들과 연화가 나와 싸움을 말리긴 했으나 은은 여전히 화를 냈고 짜증냈다. 그때는 해 수 또한 똑같이 화를 내고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해 수는 차분히 조용하게 분노했을 거다. 그건 온도의 차이고, 생각의 차이고, 연륜의 차이고 기어코 마음의 차이가 되었다. 그것은 차라리 엇갈림만 못했다. 은은 그것이 몹시도 후회되었다.
“맨날 철없이 놀 생각만 하며 살 줄 알았는데. 결국 너도 혼인을 하는 구나.”
“그래 은아, 이제 안 사람도 있고 가정도 생길 테니 조금은 어른스러워지렴.”
“맞아요. 형님, 이제 저잣거리에 같이 놀러가자고 해도 같이 안가드릴 겁니다!”
하늘은 푸르고 산들 바람은 여전히 자유로웠다. 어제도, 그제도, 언제까지라도 똑같은 하루에 은만이 달라지고 있었다. 은은 자신이 혼인한다는 것을 결코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아직도 어렸고 자유롭고 싶었고 완벽히 이루어진 안락한 가정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제 앞에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는 형님들과 정이에게 말하고 싶었다. 혼인하고 싶지 않다고, 아직 나는 너무 두렵다고. 순덕이는 착한 여인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왕 은은 언제나 직접적인 것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수많은 형님들 아래, 황자라는 지위 아래, 사내라는 성별 아래. 그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다 해결 된 문제 사이를 걷고 있었다. 그건 은이 회피한 일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은의 차례가 오기도 전에 모든 것이 해결돼 있었다. 그래서 은은 너무도 두려웠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은은 걱정했고 염려했고 두려웠다. 그래서 은은 결국 모든 처음인 이들이 가장 잘 하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회피였다.
“은아, 어디로 가느냐?”
“…. 수야.”
“은아?”
“아니, 아닙니다.”
황제께 아직 혼인이 너무 버거우니 미뤄 달라 청하려는 순간 은은 제 눈이 몹시 쓰라려지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해 수였다. 자신을 향해 사과하라며 소리쳤던 해 수의 손이었다. 오래 전 욱 형님 집에서 싸우며 문제를 마주하라고 화냈던 해 수였다. 은은 멍하니 제 눈을 매만졌다. 형님들과 정이가 자신을 이상하게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행동을 그만 둘 수 없었다. 은은 손에 의해 따가워진 눈을 만지며 깨달았다. 왕 은은 이제 더 이상 회피 할 수 없었다. 결코 그럴 수 없었다. 이 아픈 눈이, 머릿속에서 소리치는 해 수가, 그리하여 이 마음이 그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은은 제 속에 넘실거리는 마음을 느꼈다. 평생을 편히 살았으니, 드디어 제 차례가 왔으니. 어리기만 했던 왕 은이 이제 스스로 마주해야 할 때였다.
“은아! 은아, 어디 가느냐!”
“형님! 이제 곧 혼인식입니다!”
망설임 없이 뛰쳐나가는 등 뒤로 욱 형님과 정이가 소리쳤다. 하지만 은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은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은은 문득 달리면서 온 몸이 자유로워지며 기쁨으로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책임이 두려운 혼인식에 답답하기만 했던 은에게 있어 처음으로 스스로가 쟁취한 진정한 자유였다. 은은 아무생각 없이 수를 향해 달렸다. 수가 어떤 반응을 할지 생각하지 않았다. 은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고민하지 않았다. 은은 원래 그런 것을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은은 수를 향해 달렸고 단지 그 뿐이었다.
“수야! 해 수야!”
“은 황자님? 결혼하신다면서요. 그런데 왜 여기에….”
“좋아한다. 수야.”
“예?”
“진심으로 연모하고 있다. 해 수야.”
이것은 진심이다.
알고도 맞이하는 아픔이다.
평생을 짊어지고 갈 처음.
그래서 첫사랑.
“황자님. 아닌 거, 알고 오셨죠?”
은은 문득 맞은 눈이 다시금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아, 어쩌면 그것은 마음이 아파서 눈이 시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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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퀄은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이젠 멘탈이 깨지지 않는다..! 엉엉ㅠㅠㅠㅠㅠㅠ좋은 소재는 왜 항상 내가 망쳐버리는 거신가...ㅠㅠㅠㅠㅠ 그래도 은해가 다 해자나여.. 그렇다고 해줘여.. 약간 은해의 모습보다는 은이가 수를 만나 짝사랑하면서 성장하는? 조금씩 어른이 되는 모습을 쓰고 싶엇소.. 하지만 소재 준 뾰가 이런 모습을 원했는지는 모룸... 엉엉엉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글 봐주서 너무너무 고마워! 사랑해! 애정해! 다음글은 욱해랑 소해가 될 거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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