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지난 달 귀양 온 귀양나리
예전엔 한마리 고고한 학처럼 먼 산만 바라보고 관가만 기웃거리더니, 요즘은 자꾸만 어디선가 튀어나와 시조 한수를 읊지 않나 한양에 가보고 싶지 않냐며 망고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댄다.
망고는 그런 귀양나리가 싫지만은 않다. 다만 죄인이라는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려 선뜻 마음을 주기가 어렵다.
그러던 어느 날, 포악한 마을 사또의 수청을 들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망고에게 떨어진다. 수청을 거부해 옥에 갇힌 망고 앞에 나타난 귀양나리. 옥 창살 너머로 거칠어진 망고의 뺨을 만지며 귀양나리가 말한다.
"…우리 놀이 하나 하자구나.
너는 춘향이다. 기생 성춘향. 나는 춘향의 짝 이몽룡이고.
춘향아, 걱정 말아라. 몽룡이는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오지 않았느냐."


B
탐관오리? 사또
세금을 좀더 걷었다고 궁시렁거리는 자의 볼기를 몇번 때렸더니 그는 어느새 마을 제일의 나쁜 놈이 되어있었다. 전번 달 산에서 내려온 도적을 해치운 것도, 가뭄 들던 해에 몰래 집집마다 쌀자루를 갖다 놓은 것도 자신인데 아무도 알아주지를 않는다. 마을 어귀만 돌아다녀도 다들 줄행랑을 치니 여린 사또 마음은 또 곯아만 간다.
그러다 만난 것은 어린 아이를 무등태워 감을 따던 망고. 자신을 발견한 아이는 이미 저만치 도망갔는데 망고는 제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막 딴 감을 내민다.
문득 사또는 망고가 갖고 싶어졌다. 그러나 망고는 수청을 거부했다. 어느 달 밤, 망고가 갇힌 옥을 바라보며 사또는 한숨을 쉰다.
"어찌하면 너를 가질 수 있느냐?
내가 가진 금은보화를 포기해도 좋으니 너만은 내 것이 되어주면 안되느냐…?
왜 이 마음을 몰라주어, 이 매정한 사람아…."


C
천하를 호령하는 어린 왕
어느 집 양반 자제인지 항상 뒤를 따라다니는 어른에게 하대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래도 어른에게는 존대해야 한다는 망고의 훈계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시정하는 것을 보니 제법 바른 생각을 가진 이다.
소년은 망고보다 분명 어린데 가끔은 다 큰 어른처럼 보이기도 한다. 왠지 이번년에 즉위한 어린 왕이 이 소년을 닮았을 것만 같다. 실없는 생각에 베시시 웃는 망고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소년이 품 안에서 비녀를 하나 꺼냈다. 망고의 손에 꼬옥 쥐어주며 자신의 정인이 되지않겠냐 묻는 소년이 오늘따라 더 어른스러워 보인다. 망고는 어색해하며 자신같은 절세미인은 왕 정도는 되어야 취할 수 있지 않겠느냐 농을 던지지만 소년은 말없이 웃었다.
"내 정비가 되어주시오. 그대가 모든 이의 어미가 되어 이 나라를 품어주시오.
눈 감는 날까지 그대와 궐 안에서 함께 하고 싶은 내 뜻을… 알겠는가?"


D
왕의 그림자인 호위무사
항상 표정없이 굳은 얼굴로 검을 차고 다니는 사내가 망고는 신경 쓰인다.
어느날 밤, 위험한 일을 하는지 한 쪽 팔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앞에 나타난 사내에 망고는 깜짝 놀란다. 급히 자신의 댕기를 풀어 상처를 감싸는 망고의 모습에 생전 처음 사내의 얼굴 위로 감정이 드러난다. 아프지는 않냐, 오히려 망고가 눈물 글썽이며 묻자 사내는 망고의 손을 거머쥐고 자신은 그림자일 뿐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자신을 아끼지 않는 사내가 한심하고 안타까워 망고는 엉엉 울어버리고 만다. 태어나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망고의 말에 사내는 혼란스러워한다.
며칠 후 사내는 다시금 망고를 찾아오고, 부러진 자신의 검을 내민다. 뜻을 모르는 망고에게 사내는 묻는다.
"주군에게 부탁드렸다.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남은 여생은 그림자가 아닌 빛으로 살아도 좋다 허락도 받았다.
…네 곁에서 사람으로 살아도 되겠느냐?"


E
성균관 유생
공부만 하던 유생들을 고을마다 내려보내 훈장 노릇을 시키겠다는 생각이 정말 하늘같은 임금님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맞냐며 암만 툴툴거려도 어쩔 수 없는 일. 망고네 고을에도 유생이 내려왔다. 얼굴이 왠만한 규수집 처녀보다 고운 훈장님이었다.
벌써 유생이 내려온지 넉달 째. 헌데 마을 최고 어르신도 새침떼기 복순이도 다 뗀 글자를 망고 혼자만 못 떼고 있다. 망고가 제 머리는 돌이라며 징징대도 유생은 봐주는 일이 없다.
시간이 흘러 유생에게 성균관으로 돌아오라는 전갈이 도착한다. 마지막 수업이 섭섭한 망고는 유생의 넋이 나간 사이에 그의 이름을 또박또박 쓰고는 자랑스레 펼쳐보였다. 유생은 망고가 쓴 제 이름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와 같이 올라갑시다.
이리 느린 학생을 가르치려면 내 평생을 바쳐도 모자라겠습니다.
낭자, 내 부인이 되어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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