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은 요즘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짓기 위한 해외출장을 마치고 공항으로 들어서는 참이었다. 장시간의 비행이 불편하기는 커녕 이제 큰 프로젝트를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약 한달 전부터 찬열의 신경을 빼았고 있던 백현의 존재가 떠올랐다. 찬열은 한국에 도착 하자마자 출장 전에 병원에 간다던 백현에게 전화를 했다. 이제 나서서 백현을 관찰해 볼 생각이었다. "변백현씨 어딥니까." -아... 오늘 한국 오신다고 하셨죠. 전 지금 집이에요. "그...병원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아이도 건강하게 크고 있고 저도 별 문제 없다고 하셨어요. 이제 신경 안쓰셔도 되요. 찬열은 백현이 쓰러졌을 당시 담당의에게 백현의 상태를 전해들은 바가 있어선지 백현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일일히 신경을 쓰는 찬열의 모습은 찬열 본인도 모름이 분명했다. "따로 제가 병원 한번 들르겠습니다. 오늘은 외식하죠. 뭐 드시고 싶은거 있습니까?" -...병원을요? 아니요. 굳이 안그러셔도 되요. "아닙니다. 따로 드시고 싶으신거 없으시면 회사 주변에 있는 일식집으로 가죠." -네, 시간맞춰 나갈게요. 백현은 간밤에 잠을 설쳐선지 푸석한 얼굴을 쓸어 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찬열의 귀국이 반가운 반면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찬열의 어머니가 찾아온 다음날 백현은 다시 옛날 집으로 옮겨갔다. 오늘 만나서 찬열에게 이제 신경쓰지말라고 못박을 생각이었다. 일식집에 도착한 백현은 종업원의 안내를 따라 들어갔다. 룸에는 근 이주만에 보는 찬열이 앉아있었다. 백현은 조심스레 부른배를 잡고 찬열을 마주보고 앉았다.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옛날엔 이 일식집도 자주 왔었는데..." "우리가 자주 왔었나요?" "제가 생선회를 좋아해서 찬열씨가 많이 데리고 와줬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음식이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더욱 부른 배가 장기를 눌러선지 소화불량과 함께 다양한 위장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백현은 음식을 보자마자 한숨이 먼저 나왔다. 식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백현은 더부룩한 속에 식사를 그만두었다. 더이상의 음식을 받아드리면 바로 화장실로 뛰어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식사 끝나셨습니까?" "네, 요즘 속이 안좋아서..." "그래도 아이를 생각해서 더 드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따로 죽이라도 주문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요즘 아기가 많이 커져서 식사량이 줄어서 그래요. 평소엔 잘 챙겨먹고 있으니까 걱정마세요." 기억을 잃기 전엔 유독 백현의 식사에 민감했던 찬열이었다. 아이를 가진 후에 입덧 때문에 마음껏 먹지 못하는 백현을 위해 전국각지에서 산해진미를 사와 바칠 정도였다. 아이를 생각해서 더 먹으라는 찬열의 모습이 옛날 행복했던 모습과 겹쳐져서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럼 이만 일어나죠." 식사를 마친 찬열을 따라 백현은 주차된 차에 올라탓다. 현재 자신은 옛날 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려야 했지만 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입 밖에 꺼내기가 꺼려졌다. "저기... 저는 저기 앞에 지하철역에 내려주세요. 따로 가면되요." "따로 가다뇨. 지금 집으로 가는 길 아니였습니까?" "네, 저 찬열씨 없는 동안 짐 다 빼서 옛날 집으로 들어갔어요." "하... 제가 그러라고 했습니까?" "솔직히 말할게요. 저 나쁜사람이고 사기꾼이에요. 찬열씨가 따로 판단할 거 없어요. 전 그냥 그런사람이니까... 더 이상 찬열씨에 대한 믿음도 없고 서로가 불편할 것 같아요. 그냥 이렇게 지낼래요." "이렇게가 뭡니까?" "그냥... 모르는 사이처럼,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지내요, 우리." "전 출장간 동안 백현씨 생각했습니다. 왠지모르게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내가 좋아했다고 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쪽이 안쓰러운 마음에 혼란스럽기도 했단 말입니다." "그냥 호기심이에요." 백현은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를 말하고 차문을 열었다. 찬열의 시선이 닿는 것이 느껴졌지만 개의치않았다. 찬열의 말에 가슴이 뛰었던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왠지 29살의 찬열에게 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마음이 무섭고 다시 내쳐질까봐 두려웠기에 백현은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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